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4
654회. 종사가 되고 싶은가?
태을 존자도 사람이다.
최고 경지에 이른 소요종의 종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삼천의 신’에 버금가는 신격(神格)을 획득했다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벗겨 놓고 보면 그저 남들보다 오래 산 노인에 불과했다.
궁지에 몰린 그는 저도 모르게 ‘잠깐!’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연적하는 태을 존자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았다.
친선 비무도 아니고 한창 생사가 오가는 혈전 중에 잠깐이라니?
개도 웃을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 늙은이가 나를 뭐로 보고!’
자신이 때리면 맞고, 멈추라면 멈추는 병신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 소격각에서 삼관정으로 보냈겠지.
울컥한 연적하는 마구잡이로 몰아쳐 가던 검에 변화를 줬다.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이 펼쳐졌다.
진검강으로 넉 자(1미터 20센티) 길이까지 늘어난 청사가 부드럽게 전진했다.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그 속에 담긴 검의(劍意)는 이미 천외천.
태을 존자는 왠지 꺼림칙했지만 일단 금이 간 검으로 슬쩍 걷어 냈다.
스륵-.
분명히 걷어 냈건만 검의 진행 방향과 속도가 바뀌지 않는다?
‘헉!’
대경실색한 태을 존자는 코앞까지 밀려온 진검강을 피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검이 벼락처럼 허리를 훑었다.
가가각-.
호신강기를 둘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허리가 잘릴 뻔했다.
살기 충만한 연적하의 칼질에 태을 존자는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소요종의 지존이라는 자부심에 금이 갔다.
오백 년 만에 처음으로 칼질이 두려워진 그는 다시 크게 외쳤다.
“잠깐만 멈추게!”
“이 늙은이가 누구더러 하라 마라 하는 거야!”
태을 존자를 향해 달려가던 연적하가 마치 호랑이처럼 허공으로 도약했다.
이윽고 공중에서 세 가닥 진검강이 아래로 뻗어나갔다.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龍爪割地)의 수법이다.
슈아악-.
이전의 용조할지가 한 뼘 두께였다면 지금은 한 아름이나 됐다.
태을 존자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했다.
콰콰콰-.
세 가닥 진검강의 경로에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잘려 나가고 땅거죽이 뒤집혔다.
이미 투지가 꺾인 태을 존자는 피하기에 급급했다.
반격을 해 봐야 먹히지도 않으니 어쩌면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연적하는 그림자처럼 태을 존자에게 따라붙으며 연신 청사를 휘둘렀다.
콰직-.
기이한 소리와 함께 태을 존자의 보검에서 뭔가 뚝 떨어져 나갔다.
금 갔던 검신이 부러진 것이다.
말로 풀어 보려 했던 태을 존자는 보검이 부러지자 그만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놈이! 감히!”
그는 반토막난 검을 연적하에게 던졌다.
쉬이익-.
이기어검으로 보였지만 실은 파검술이다.
그는 부러진 보검을 터뜨려 연적하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이었다.
연적하가 가소롭다는 듯 반 토막 난 검을 쳐 냈다.
순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반 토막 난 검이 터졌다.
사실 파검술은 속세의 무가에서도 잘 쓰지 않는 비루한 수법이었다.
검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무인에게 파검술이란 명예롭지 못한 까닭이다.
게다가 파검술은 이름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었다.
검을 잘게 부수기 어려워 실제로는 두세 토막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검편(劍片)이 어디로 튈지 몰라, 이래저래 득보다 실이 많았다.
하지만 종사가 쓰면 삼류도 일류가 된다.
게다가 검신에 금이 가 있던 터라 검편의 숫자도 많았다.
귀청을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잘게 부서진 검편들이 연적하를 덮쳤다.
위기의 순간, 연적하의 몸에서 호신강기가 일어났다.
검편은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맥없이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이 늙은이가!”
파검술에 깜짝 놀랐던 연적하가 이성을 잃고 청사를 던졌다.
스스로 검을 부순 태을 존자는 적수공권으로 청사를 상대해야 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 나간 거대한 장영(掌影)이 청사를 막았다.
대범수인(大凡手印)이었다.
순간 연적하도 이기어검에 천산검영(千山劍影)의 공법을 더했다.
츠츠츠츠-.
한 자루 청사가 수백 개로 불어나 허공을 가득 메웠다.
이윽고 청사들이 차례로 장영에 박혔다.
퍼퍼퍼퍼퍽-!
청사들이 장영을 때릴 때마다 태을 존자의 어깨가 움찔움찔했다.
대부분의 공법은 영기를 통해 시전자와 연결되어 있다.
태을 존자도 청사가 대범수인에 박힐 때마다 마치 벌에 쏘인 것처럼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시간이 지나자 벌침은 화살처럼 느껴졌다.
태을 존자는 검령의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것만은 참았다.
이 상황에서 연적하가 검령까지 꺼내면 정말 수습할 길이 없어서다.
당하더라도 영기에 당하는 편이 나았다.
영기야 다치고 마는 정도지만 검령은 생사가 갈리는 까닭이다.
파아아앗-!
마침내 대범수인이 소멸했다.
그럼에도 청사의 검형은-처음과 별 차이 없이-허공에 가득했다.
‘크윽! 어린놈의 영기가 어떻게…….’
태을 존자는 연적하의 영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종사가 되기까지 수천 년을 고련한 자신보다 더 많은 영기라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수백 개의 청사를 피해야 했다.
그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었다.
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 위로 청사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콰콰콰콱-!
듣기에도 섬뜩한 소리를 뒤로하고 태을 존자는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 몇 번이나 검형에 맞았다.
그럴 때마다 호신강기가 검형을 튕겨 냈지만 태을 존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호신강기가 만능은 아니다.
계속된 외부의 충격으로 내부가 조금씩 진탕되고 있었다.
‘크윽! 오백 년 전 추회 존자와 싸울 때도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는데…….’
고작 제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니 속이 쓰리다 못해 아플 지경이다.
콰직!
태을 존자의 신형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정수리를 직격당했는지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이윽고 코까지 맹맹해졌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진 태을 존자가 급히 소리쳤다.
“연 제군! 멈추게! 정말 나와 끝을 볼 생각인가!”
“흥! 끝을 보려고 나를 몰아세운 거 아니었어?”
태을 존자가 코피를 줄줄 흘리자 연적하의 음성이 조금 누그러졌다.
태을 존자와 같은 이가 코피를 쏟을 정도면 내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정말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하늘에 가득하던 청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태을 존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연 제군도 섭섭했던 모양인데 병법이란 게 본래…….”
“흰소리는 그만하시고요. 왜 나한테 그랬어요? 나 지금까지 군말 없이 잘했잖아요?”
“병법에 이르기를…….”
“다시 병법 소리하면 죽여 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을게요.”
“끙! 연 제군이 너무 빨리 치고 올라와 기를 조금 죽일까 해서 그랬네. 결코 물을 먹인다거나 하는 천박한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닐세.”
“기를 죽이기 위해서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려고 했다? 나처럼 신의를 아는 사람을 배신자로 만드는 게 물 먹이는 짓이라고요. 그리고 뭐? 기를 죽여? 천지종에서는 빙설화에게 종사패까지 내줬다는데, 참 이상한 노인네야. 오래 살더니 노망이 났나?”
연적하의 막말에 태을 존자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이내 가라앉았다.
“추회 존자야 전쟁을 일으켰으니 앞에 내세울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오늘 한 건 뭔데요? 천뢰종과 칼 들고 친목질을 했나?”
계속된 연적하의 추궁에 태을 존자는 손을 들었다.
“내가 잘못했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걸세. 아니, 없도록 하겠네.”
“앞으로는 그러고 싶어도 못 그럴 거예요. 왜? 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이박을 거거든.”
“연 제군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나……. 그래도 종사에 대한 예의는…….”
“예의는 무궁전이나 초월전에 가서 찾으시고요. 나는 본래 받은 대로 돌려주는 사람이에요. 그쪽이 나를 막 대했으니까 나도 그쪽을 막 대할 거예요. 뭐 잘못됐어요?”
“연 제군도 언젠가는 종사가 될 게 아닌가. 소요종 제자들 앞에서 종사의 체면을 깎으면, 결국 연 제군에게도 손해라는 걸 모르나?”
“그러니까 종사 대접을 해 달라?”
“자네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게 낫다는 걸세. 내가 종사 자리를 얼마나 더 지키고 있겠는가? 하지만 자네는 못 해도 수천년을 종사로 지내야 하네. 나뿐 아니라 자네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소리지.”
“아니, 그 전에 왜 그쪽이 계속 종사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건데요?”
연적하가 삐딱한 눈으로 태을 존자를 쏘아보았다.
실력으로 보면 자신이 앞서니 할 수 있다면 그를 종사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싶었다.
아홉 종문의 천문을 손에 넣으려면 자신이 종사가 되는 게 유리했다.
그러자 태을 존자가 야릇한 시선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어딘지 입꼬리도 위로 살짝 올라간 게 비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종사가 되고 싶은가?”
“꼭 되고 싶은 건 아닌데, 종사가 되는 자격이 따로 있어요?”
“있다마다. 그 하나 때문에 종사가 종문에서 존중을 받고 있거늘. 몰랐나 보군.”
“뭔데요? 그게?”
“득물(得物)이네.”
“득물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것을 득물이라 하네. 자네도 법기에 대해 들어 보았을 걸세. 법기는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니라네. 그건 모두 득물의 경지에 있는 종사들이 창조해 낸 물건이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요?”
“완전한 무는 아닐세. 종사의 영기를 이용해서 만들어 내니까. 여하튼 영기로 법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종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네. 자네는 자네의 영기로 법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네가 내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소요종 제자들이 반대하지 않을 걸세.”
“어렵네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존재가 종사일세. 나와 선대 종사들의 영기로 만든 법기가 소요종을 지탱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네.”
“…….”
“소요종 제자들이 종사의 말에 복종하는 것은 그것을 알기 때문이지. 이제 종사의 권위를 왜 세워 줘야 하는지 알겠는가?”
자신을 종사로 대우해 달라는 소리다.
연적하는 계획과 다소 멀어지자 찜찜했지만 일단 수긍했다.
“내가 득물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으니 종사 자리를 내주지 못하시겠다?”
그러자 태을 존자가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자네는 법기를 만들 수 있는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 자리를 내어주겠네.”
“좋아요. 아직은 내가 득물인지 뭔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넘어가 줄게요. 하지만 그쪽도 이후로는 나를 물 먹일 생각하지 말아요. 그래봐야 개망신당하는 건 그쪽일 테니까.”
“어허, 제군이 어찌 그런 상스러운 소리를.”
“그게 다 멀쩡한 사람을 조리돌리려고 한 죄라 생각하세요.”
연적하가 청사를 갈무리하자 태을 존자가 헛기침을 터뜨리며 말했다.
“험, 험, 밖으로 나가면 잘 마무리 지었다고 할 터이니 눈치껏 따라 주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요종을 위해서 하는 부탁일세.”
연적하는 태을 존자의 코밑에 남은 핏자국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을 존자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모르고 서둘러 진경을 떠났다.
느긋하게 자신의 본체로 다가가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득물’을 생각하는데 문득 천둔검이 떠올랐다.
‘혹시 그것도 득물로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법기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니, 하는 말들과 천둔검은 꽤 잘 맞아떨어졌다.
천둔검이 득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태을 존자에게는 안된 말이지만-예상보다 더 빨리 종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