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0
670회. 몰록의 말보다 아홉 종문의 통합이 더 중합니다
오지산 엄지봉.
천뢰종 종사 광성 존자는 천지뢰행으로 마물의 목을 벤 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쐐기형으로 시작했던 진형은 점점 벌어져 일자형(一字形)이 되었다가, 지금은 학익진(鶴翼陣)으로 변해 정상에서 내려오는 마물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기를 잘했군.’
다소 위태로웠던 처음과 달리 여섯 종문은 꽤나 안정적인 모습이다.
그 많던 마물도 이제는 얼추 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줄었다.
그 정도로 여섯 종문의 상황은 여유로웠다.
‘설마 대종사께서 혼자 몰록을 상대하고 계신 건가?’
마물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홀로 몰록의 군세를 당해 내다니 실로 믿기지 않는 무위다.
역대 어느 종사도 단신으로 몰록을 상대한 이가 없었다.
마천의 군단장 몰록은 반신의 마물로 인간이 넘볼 수 없는 벽과도 같았다.
천태종의 종사 혜문 존자가 천태종 곁을 떠나 광성 존자에게 다가갔다. 종사가 자유로이 움직여도 될 정도로 전황은 종문에 유리했다.
이윽고 혜문 존자가 말을 걸었다.
“마물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지 않소?”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소. 대종사께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몰록을 잘 막아 주고 계신 모양이오.”
“그보다는 여섯 종문의 힘을 마물이 당해 내지 못한 거라 생각하오.”
혜문 존자는 모든 걸 여섯 종문의 공으로 돌렸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닌지라 광성 존자는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여섯 종문에 일천의 마물은 큰 위협이라 보기 어려웠다.
새까맣게 몰려 있던 마물이 듬성듬성해지자 광성 존자는 종문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때 혜문 존자가 말했다.
“광성 존자께서는 대종사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떻게라니요?”
광성 존자가 의아한 눈으로 혜문 존자를 보았다.
뜬금없이 ‘대종사를 어떻게 생각하냐?’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이 기세라면 대종사께서 아홉 종문을 통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묻는 것이오.”
“…….”
광성 존자가 눈을 찡그렸다.
점점 모를 소리다.
대종사가 아홉 종문을 통합할 것 같은 것과, 대종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무슨 상관이라고?
“광성 존자께서는 천문(天門)에 뜻이 없으시오?”
광성 존자는 깜짝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
“종문의 사람치고 천문에 뜻이 없는 사람도 있소?”
“하지만 이대로라면 존자와 제군은 영원히 천문을 손에 넣지 못할 게요.”
광성 존자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번졌다.
확실히 대종사의 나이를 생각하면 존자와 제군은 천문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요?”
“지금 당장 뭘 하자는 건 아니오. 시간을 두고 우리가 이 문제를 의논해 보자는 뜻에서 해 본 말이외다. 평생 수련만 하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소?”
“알겠소. 나도 천문에 대해서는 혜문 존자의 의견에 동의하오.”
“그럼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알리다.”
혜문 존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광성 존자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다들 마물과 싸우느라 두 사람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그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알겠다니?’
아무래도 혜문 존자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느낌이다.
“혹시 그 문제를 의논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소?”
“대종사의 휘하에 있는 종문이라면 같은 고민을 가지지 않겠소?”
질문의 요지에서 살짝 벗어난 대답이다.
광성 존자는 소요종과 천지종을 떠올렸다.
‘대종사를 인정한 종문들과 따로 소통하고 있는 건가?’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혜문 존자를 보았다.
태을 존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로 이런 사람을 보면 경계심부터 생긴다.
그러다 그는 잊고 있던 중요한 문제를 떠올렸다.
“만약 대종사가 천문을 열면, 그때는 어쩔 생각이오?”
“정말 대종사가 천문을 열어 신의 반열에 오를 거라 생각하시오?”
광성 존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하는 말이오. 대종사께서 천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지 않소?”
대종사가 신이 되면 종사들도 대종사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럼 종사들의 고민도 자연히 해결되니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종문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오. 최초의 종사들마저도 실패한 일을 대종사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소?”
혜문 존자의 단호한 말에 광성 존자는 멋쩍은 얼굴을 했다.
말을 한 자신도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물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자 종사들은 대종사의 질책을 염려해 속도를 냈다.
그리고 약 한 식경(약 30문) 후, 종문의 고수들은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서 그들이 본 것은 폐허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연적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산 정상은 마물의 시체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네 명의 종사들은 기이한 술식부터 찾아 없앴다.
종사들이 한창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광성 존자는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대종사님, 마물들을 남김없이 정리하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괜찮아요.”
“몰록을 처치하셨군요. 경하드립니다. 지금까지 몰록을 해치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구주에 대종사님의 이름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그럼 전에는 몰록이 어떻게 됐어요?”
“오백 년 전에는 궁지에 몰리자 왔던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달아나기 전에 남긴 말은 없었고요?”
“글쎄요. 몰록과 대화를 해 본 사람이 없어서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몰록이 무슨 말을 남기던가요?”
“자기가 그림자라고 하면서, 구주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무덤에 들어가 누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죽 음이 지나간 뒤에 시체를 남길 수 있다나 뭐라나.”
광성 존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록이 말을 한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지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다른 네 종문의 종사들이 슬금슬금 연적하에게 다가왔다.
광성 존자는 그들에게 몰록이 남긴 말을 전했다.
다른 종사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혜문 존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종문의 서각(書閣)에 어쩌면 그것에 관한 기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종문으로 돌아가 서각을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종사들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했다.
아직 연적하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태상종과 무극종 종사까지도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진표 존자(태상종)와 구산 존자(무극종)는 연적하의 무위에 압도된 상태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종문을 바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종문을 병탄하고, 천문을 쟁취한다는 생각은 진즉에 사라졌다.
그들은 그저 몰록의 말을 핑계로 이 복잡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모두가 혜문 존자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당장 천뢰종의 광성 존자가 반대했다.
“대종사님, 지금은 몰록의 말보다 아홉 종문의 통합이 더 중합니다. 대종사님은 이제 고작 네 개 종문을 병탄했습니다. 아직 다섯 종문이 남았으니…….”
문득 광성 존자가 말을 끊고 진표 존자와 구산 존자를 쏘아보았다.
“진표 존자, 구산 존자. 말이 나온 김에 물읍시다. 대종사님에 대한 태상종과 무극종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 주시오. 두 분은 우리 천뢰종 연합과 함께하시겠소? 아니면 이 자리에서 우리와 생사 결전을 벌이시겠소?”
진표 존자와 구산 존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다.
네 개 종문인 천뢰종 연합을 상대로 태상종과 무극종이 싸울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연적하에게 머리를 숙였다.
“저희 태상종은 대종사님을 따르겠습니다.”
“무극종도 대종사님을 따르겠습니다.”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산에서 함께 마물을 퇴치한 그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싶다.
태상종과 무극종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자 광성 존자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대종사님, 이야기가 잠시 샜습니다만, 종문의 통합을 먼저 끝내심이 어떻겠습니까? 몰록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천이 지난 수십만 년 구주를 침략했지만 종문에서 잘 막아 냈으니까요.”
진표 존자와 구산 존자는 천뢰종 연합에 의탁하자마자 태도를 바꾸었다.
진표 존자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마천의 위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구산 존자도 그에 질세라 한마디 했다.
“종문부터 통합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진표 존자와 구산 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혜문 존자는 눈을 찌푸렸다.
‘어리석은 것들, 생각이라는 걸 좀 하면서 살아야지.’
연적하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왜 저렇게 안달들인지 모르겠다.
분위기가 전쟁으로 흐르자 태을 존자도 넌지시 한마디 했다.
“몰록의 일도 중요하지만 종문 통합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종사들의 의견이 전쟁으로 모아졌다.
다섯 명의 종사들은 연적하가 전쟁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벌써 여섯 개 종문을 손에 넣었으니 마무리를 짓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다섯 명의 종사들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각자 종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할게요. 가서 몰록이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내요.”
연적하는 천지종으로 가서 남궁연의 안위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광성 존자는 그런 연적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대로 종문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남은 세 개 종문을 그대로 두고요? 대종사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싸울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종사님이 얼굴만 비쳐도 넙죽 엎드릴 겁니다.”
주변에 있던 종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아 있는 세 개 종문 중에 천뢰종 연합과 자웅을 겨룰 종문은 없었다.
하지만 연적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내 생각은 변함없어요. 여러분은 일단 종문으로 돌아가 몰록의 말을 조사하세요. 아, 참, 그리고 나는 천지종에서 지낼 거니까, 일이 있으면 그리로 오거나 사람을 보내세요.”
거듭된 연적하의 말에 종사들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가 천지종에서 지낸다고 하자 두 사람이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소요종의 태을 존자와 천뢰종의 광성 존자다.
태을 존자가 어딘지 복잡한 얼굴이라면, 광성 존자는 반대로 희색이 완연했다.
***
연적하는 살아남은 천지종 고수들을 이끌고 천지종 종산인 원덕산으로 향했다.
천지종 생존자들의 분위기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당연시하는 종문에서 연적하를 원수로 여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깨달음’이 곧 ‘수명의 연장’인지라 천지종 노조들은 연적하의 주위를 맴돌았다.
성물이 파괴되고, 종사와 제군들마저 사망한 지금, 그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연적하뿐이었기 때문이다.
노조들 중 최고 경지에 오른 이는 천수각 각주인 곡분조 노조였다.
그는 자청해서 대종사의 시중을 들며, 한편으로 대종사와 노조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의 노력으로 연적하는 조금 더 빨리 천지종에 녹아들 수 있었다.
한산주.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연적하는 원덕산에 도착하자마자 뇌옥으로 달려가 남궁연부터 만났다.
지하 뇌옥으로 우당탕 뛰어 들어온 연적하를 본 남궁연이 활짝 웃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설마 내가 아홉 종문을 다 통합한 뒤에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적하는 뇌옥의 자물쇠를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가 남궁연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벌떡 일어난 남궁연이 연적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일해야지.”
“누님, 서둘러 왔더니 피곤한데 조금만 쉬었다가 가면 안 돼요?”
“뇌옥에서?”
“뇌옥이 어때서요?”
연적하가 뻔뻔한 얼굴로 남궁연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이 꼭 잘 꾸며진 침상에서만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