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1
671회. 마신(魔神) 메디나 이사엘라
천수각 뇌옥.
연적하의 고집을 당해 내지 못한 남궁연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남궁연의 어깨를 연적하가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격하게 서로를 탐했다.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연적하는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사실 피곤하다던 말은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오지산에서 몰록과 싸운 뒤 곧바로 천지종 종산으로 날아왔다.
그의 체력이니 버텼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앉은 채로 잠들었을 것이다.
남궁연은 기절한 듯 나자빠진 연적하의 팔을 베고 그 옆에 누웠다.
홀로 있을 때는 그렇게 음산하던 뇌옥이 그의 팔을 베고 있으니 아늑했다.
어쩌면 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아직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아직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지 못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적하야.”
“드르릉. 푸우!”
기대했던 대답 대신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 남궁연은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게 잠들었던 연적하는 네 시진(8시간) 만에 깨어났다.
“쓰읍. 누님, 내가 졸았어요?”
상체를 세운 연적하가-손등으로 입가의 침을 쓰윽 닦으며-묻자 남궁연이 답했다.
“졸았냐고? 누가 찾아와도 모를 만큼 아주 곤하게 자더라. 지금쯤 해가 중천에 떴을걸? 곡분조 노조가 직접 음식까지 가져다주고 갔어.”
“그래요? 그 노인네 참 부지런하네. 그 사람이 여기 뇌옥의 관리자라면서요?”
“어떻게 알았어?”
“오지산에서 오는 동안 천지종 얘기를 많이 해 주더라고요. 혹시 그 사람이 누님에게 잘못한 게 있나요?”
“그런 건 없었어. 노조가 제군에게 잘못하면 큰일 나지.”
남궁연이 배시시 웃었다.
사실 곡분조 노조가 빙설화를 잘 대해 준 건 제군이라는 신분 때문만은 아니다.
천지종에서 빙설화 제군은 언제고 본래 자리로 복귀할 사람이었다.
그러니 조심하는 게 당연했다.
“참, 잠들기 전에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나를 불렀어요?”
“일찍이도 물어본다.”
“헤헤, 왜 불렀어요?”
“아이를 가졌어. 두 달 전 네가 염화각에 왔을 때 생긴 것 같아. 그날 이후로 달거리가 끊어졌으니까.”
“아이요? 진짜요?”
깜짝 놀란 연적하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다.
아기라니?
이게 꿈인지 사실인지 모르겠다.
멍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고 있는 그에게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와아! 기분이 묘하네요?”
“그래서, 좋아?”
“당연히 좋죠.”
“너 어린애들이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 그건, 인성에 문제가 있는 애들이 싫다는 거였죠. 헐벗은 사람 보면 거지라고 막 돌 던지는 애들요. 제가 그런 돌에 맞아 봤잖아요.”
“다행이네. 나는 네가 우리 아이를 싫어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거든.”
“누님,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런 좋은 일로 고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남궁연은 억울한 얼굴로 펄쩍 뛰는 연적하를 보며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연적하는 한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해 냈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남궁연이 말했다.
“적하야, 나는 우리 아이를 이곳에서 낳고 싶지 않아.”
“예? 그럼 천뢰종으로 갈까요?”
연적하는 그녀가 천지종을 불편해 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자신도 찬밥 대접을 받아서 그런지 소요종이 싫은데, 뇌옥에 갇혀 있던 그녀는 오죽할까.
“아니, 석경장이 좋겠어.”
“아…….”
뜻밖의 말에 연적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남궁연의 출산 문제가 강호와 연결될 줄은 몰랐다.
“너는 이곳, 구주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거 느끼지 못했니?”
“다들 욕심이 좀 과해 보이더라고요. 종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그걸 말하는 거예요?”
“맞아. ‘왕들의 하늘’을 지배하는 건 순수한 욕심이야. 일반인들은 물론 종문 제자들조차 욕망을 거스르지 못해.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당연하게 여기지. 그건 구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이야. 마치 짐승처럼, 욕망에 이끌려 살다가 죽을 운명.”
“설마 우리 아이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이 세계에서 태어난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될 거야.”
“그러면 안 되는데.”
“석경장으로 가면 돼. 나는 못 해.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할 수 있어요?”
“응, 이 우주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해 줄 거지?”
“당연하죠. 나는 나를 못 믿어도 누님의 말은 믿어요. 할게요. 종문 세 개만 더 끌어들이면 돼요. 천문(天門)을 모두 가지게 되면 방법이 생기겠죠?”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거야. 천문은 너를 위한 거니까.”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런데 누님. 내가 오지산에서 몰록을 처치했다고 말 안 했죠?”
“응, 마천의 군단장이라는 몰록을 죽였니?”
“네. 그런데 그놈이 죽어 가면서 이상한 말을 했어요. 종사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말?”
연적하는 남궁연에게 몰록의 말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전했다.
“나는 그림자. 구주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무덤을 열고 들어가 누워라. 그리하면 죽음이 지나간 뒤에 시체를 남길 수 있으리라. 보니사 마헤오(속히 오소서).”
“몰록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
“네, 소머리에 개 주둥이를 가진 게 사람의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남궁연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연적하는 기대 어린 눈길로 남궁연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보니사 마헤오라고 했지?”
“네.”
“그건 마천의 언어로 ‘속히 오시라’는 간청이야.”
“마천의 언어요? 마물들의 언어란 말이죠?”
“맞아. 그리고 마신(魔神)인 메디나 이사엘라의 별명이 마에트, ‘죽음’이지. 몰록은 자기가 메디나 이사엘라의 그림자라고 말한 거야.”
“그럼 뭐예요? 마신이 온다는 거예요? 오시라고 기원한 거예요?”
“전자일 거야. 그림자가 구주에 왔으니까, 곧 본체가 온다는 거지.”
“마신이 온다고요?”
“응. 지금까지 마신이 대놓고 구주를 넘본 적이 없는데, 메디나 이사엘라의 몸이 단 모양이야.”
“왜요?”
“종사들과 같은 생각을 했겠지. ‘성물이 사라졌으니까, 조만간 천문까지 사라질지 모른다’라고.”
“마신도 ‘삼천의 신’이 되려는 걸까요?”
그러자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신은 ‘삼천의 신’ 중에 하나인 ‘마하수라천’이야. ‘삼천의 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선(眞仙)의 자리를 노리는 것 같아.”
“예에? 마신이 ‘마하수라천’이라고요?”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삼천의 신 중에 하나가 마신인데, 그가 구주를 노리고 있다니!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가 물었다.
“그런데 누님도 진선을 알아요? 진선이 대체 뭐예요?”
“창조신이 만든 세상 밖의 세계[無何有之鄕]가 있어. 그곳에 거하는 신들을 진선이라고 해. 그 아래 ‘왕들의 하늘’이 있고.”
“아!”
그제야 비로소 연적하는 진선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구천구검’이 법보보다 뛰어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진선의 검공이니 강할 수밖에.
“허! ‘삼천의 신’까지 천문에 욕심을 낼 줄은 몰랐네요. 그냥 대충들 만족하고 살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그렇게들 난리래.”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삼천의 신’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왜 더 바라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종문을 소집하면 안 되겠네요?”
“맞아. 마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죽었다가 깨나도 마신의 상대는 안 될 테지만.”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감당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종문을 한곳에 모을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
뇌옥을 나간 연적하와 남궁연은 추회 존자가 사용하던 안학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미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게 알려진 터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이 안학궁에서 함께 생활한 뒤로 천지종 고수들 간 쉬쉬하던 교제가 공개되고, 심지어 권장되는 진기한 현상까지 생겼다.
종문은 그동안 남녀 간의 정리를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그런 금기는 종문 최고수인 연적하 대종사와 빙설화 제군으로 인해 깨졌다.
‘부부도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다’에서 출발한 소문은 급기야 ‘남녀지정을 알아야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로까지 발전했다.
의외로 그런 현상을 환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간 종문 고수들은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욕정이 차오르면 속세에 나가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평범한 삶을 즐기다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얻은 자손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남자는 속세의 자식을 외면했고, 여자는 출산한 자식을 내다 버렸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 때문일까?
무책임한 삶은 종종 깨달음에 장애가 됐고, 그건 다시 이성(異性)을 금기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연적하 대종사와 빙설화 제군의 부부지연으로 의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닷새 후.
안학궁.
대종사 연적하의 부름에 스무 명의 노조가 안학궁으로 달려왔다.
노조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상석에 나란히 앉은 연적하 대종사와 빙설화 제군을 주목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 하는 연적하가 곡분조 노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곡분조 노조가 노조들의 앞으로 나섰다.
“대종사님을 대신해 말씀드리겠소. 오지산에서 대종사님께서 몰록을 처치한 것은 알고 있을 게요. 빙설화 제군님께서 몰록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을 풀이하셨소. 빙 제군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림자’는 ‘몰록’이고, 그가 말한 ‘죽음’은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요.”
순간 노조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은-조금 전까지 마신의 이름조차 몰랐지만-몰록이 마신을 거론한 것에 놀랐다.
노조들의 술렁거림이 멎자 곡분조 노조가 말을 이어 갔다.
“하여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사실을 종문들에 전파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소. 더불어 아직 대종사님에게 굴복하지 않은 법요종, 광염종, 혈주종의 병탄에도 속도를 내어야 하오. 대종사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여덟 종문에 사자를 보내고자 하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노조들이 앞다퉈 사자를 자원했다.
모두 연적하 대종사 부부에게 눈도장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곡분조 노조는 그중에 자신과 가까운 여덟 명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연적하 대종사의 친서를 건넸다.
“마신이 언제 어떻게 침략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전해야 할 게요. 그리고 법요종, 광염종, 혈주종으로 가는 사자들은 종사들의 답변을 반드시 받아 오도록 하시오.”
답변을 받아 오라는 말에 혈주종으로 가게 된 장등 노조가 조심스럽 게 물었다.
“만약 혈주종의 종사가 답을 주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혈주종은 괴팍하고 잔혹하기로 유명한지라 장등 노조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자 곡분조 노조는 연적하 대종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답할 수 없는 문제인 까닭이다.
연적하가 답했다.
“답을 안 주면 불복하겠다는 거니까, 그냥 와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겠다는 사람은 그러라고 해요. 어차피 천문(天門) 때문에 내가 찾아가야 하니까, 무리하게 답을 받으려고 하지 마요.”
“예!”
그제야 장등 노조와 목수평 노조의 얼굴이 밝아졌다.
광염종과 혈주종 종사들은 성질이 고약해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연적하 대종사의 밀지를 품에 넣고 여덟 명의 노조가 종산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