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4
674회. 신격에 견줄 수는 없지
삼십칠 일 전.
오지산 중지봉 협곡.
무너진 협곡에서 운 좋게 살아나온 마원 노조는 생존자 무리 속에서 한숨을 돌렸다.
처음 서른셋이던 노조 중에 살아남은 이는 자신을 포함해 열다섯.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이 넘게 죽다니 기가 막혔다.
지금까지 치른 어떤 전쟁에서도 이렇게 많은 희생자는 처음이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그의 옆에서 검지산 노조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 노조, 연적하가 제군이라는 게 믿어지오? 나는 그가 칠성 제군과 진명 제군을 일검에 참살하는 걸 보았소. 그건 사람의 검공이 아니었소.”
“사람이 아니면 신이라도 된다는 거요?”
“…….”
머뭇거리던 검지산 노조는 동문서답을 했다.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게요.”
마원 노조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복후지지(福厚之地)의 부적이 있었다지만 노조와 진인들까지 살아나왔다. 그런 정도의 위력을 가진 법 진에연적하 제군이 당했을까?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윗분들은 왜 천붕지환의 법진을 발동한 것일까?
요행을 바라고?
아니 어쩌면 결과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졌다.
마원 노조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쳐들었다.
‘헉!’
역시나 연적하 제군이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그를 발견한 순간 천지종 고수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원 노조는 자신이 마치 종산 아래의 일반인이 된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그와 종문 제자 사이의 간격은 컸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 날아오른 추회 존자와 세 명의 제군이 왜소해 보일 정도면 말 다 했다.
추회 존자와 세 제군의 검령을 본 순간,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연적하 제군이 꺼낸 검령은 추회 존자와 제군들의 검령을 압도했다.
존재감 자체가 달랐다.
추회 존자와 제군들의 검령이 산이라면 연적하 제군의 검령은 바다였다.
결국 바다는 산을 집어삼키고, 추회 존자와 제군들까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추회 존자와 제군들의 최후를 보았지만 분노는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는 연적하 제군이 천지종을 향한 노기를 거두기만 바랐다.
이윽고 추회 존자와 세 명의 제군을 죽인 연적하가 천지종 앞에 내려 섰다.
마원 노조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건 다른 노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알겠지만, 추회 존자는 내 처에게 못된 짓을 했어. 당신들에게도 기회를 줄게. 추회 존자의 뒤를 따라갈래? 아니면 나를 따라올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격정에 사로잡힌 마원 노조는 누구보다 크게 소리쳤다.
“대종사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과거의 회상에서 깨어난 마원 노조가 곡분조 노조와 눈을 맞추었다.
“곡 노조님도 그날 대종사님의 검령을 보셨잖습니까. 혈주종이 제아무리 기괴하다 해도 대종사님을 당해 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곡분조 노조가 지나가듯 말했다.
“혈주종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일세.”
“그 이후의 일요?”
“혈주종의 일을 마무리 하면 그다음은 어디가 되겠는가? 그 여세를 몰아 광염종과 법요종까지 갈 걸세. 대종사님께서 사자의 팔을 자른 광염종을 그냥 두실 것 같은가?”
“가만히 안 두실 겁니다.”
“광염종까지 병탄하면 법요종 하나가 남게 되네. 대종사님께서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자네도 느꼈을 걸세.”
마원 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샤스 킨샤사에 대한 대종사의 묘사에는 경외심이 없었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편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군주에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종사님은 법요종도 병탄시키려 할 걸세. 대종사님이 원하는 것은 아홉 종문이니까.”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이 종문 간의 일에도 관여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요종의 페라르바 존자가 간청하면 들어주실지도 모르니 하는 말이네. 법요종에서는 우샤스 킨샤사 군주를 신으로 섬기고 있지 않은가.”
“흐음…….”
마원 노조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곡분조 노조의 말은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군주들은-절대적인 신격(神格)에 걸맞지 않게-변덕이 심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종문 내부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생각에 잠긴 마원 노조의 귓가로 곡분조 노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천지종과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의 법요종이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이네. 대종사님의 무위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신격에 견줄 수는 없지. 그것이 내가 걱정하는 바일세.”
“대종사님이 말씀은 좀 세게 하셨지만, 그 정도는 아실 겁니다.”
“나도 그러기를 바라네.”
이윽고 곡분조 노조는 빠른 걸음으로 마원 노조를 스쳐 지나갔다.
곡분조 노조의 말을 곰곰 생각하던 마원 노조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군주님인데…….’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신에 견줄 수는 없다.
연적하 대종사가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적정선은 지킬 게다.
***
다음 날 오전.
천수각.
토벌대의 인원을 점검하던 곡분조 노조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사람을 다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침 일찍 인원이 다 찼다.
오히려 진인의 경우 지원자가 많아 선착순으로 끊어야 했다.
대종사의 칼끝이 법요종으로 향하는 순간 우샤스 킨샤사 군주와 싸워야 할 텐데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대종사의 눈에 들고 싶어도 그렇지 하나뿐인 목숨을 걸다니.’
고개를 젓던 그는 이름 하나가 눈에 띄자 멈칫했다.
‘심통…….’
대종사와 동향 사람으로 천뢰종에서부터 넘어온 사람이다.
대종사가 정말 우샤스 킨샤사 군주와 싸울 생각인지 아닌지 그라면 알고 있을까?
‘한번 만나 봐야겠군.’
속으로 심통의 이름을 읊조리던 곡분조 노조는 이내 장부를 덮었다.
군림전.
정오 무렵, 토벌대 명부를 들고 안학궁으로 가던 곡분조 노조가 군림전으로 걸음을 돌렸다.
생각난 김에 심통 진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가 군림전 영내에 들어섰을 때마침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광염종에서 한 팔을 잃고 온 목수평 노조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천지종에서 가장 강한 조직인 군림전의 전주가 되었다.
상대를 확인한 순간 곡분조 노조의 눈에 부러움과 질시가 스치고 지나갔다.
서열과 공적으로 볼 때 군림전 전주는 자신이 되어야 했다.
자신이야말로 수백 년간 천지종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 왔으니까.
하지만 목수평 노조의 팔 하나에 밀렸다.
천지종에서 수직으로 신분이 상승한 사람은 목수평 노조 하나가 아니다.
사자로 갔던 노조 중에 목수평 노조를 포함한 다섯이, 제군들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오전(五殿)의 전주가 되었다.
그에 비하면 노조들 중 최고수인 자신은 여전히 각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조 중에 최고수지만, 노조들의 권력 서열에서는 여섯 번째로 밀린 셈이다.
‘그러니 대종사의 눈에 들기 위해 앞뒤 구별 없이 날뛰는 게지.’
대종사는 매사를 대충대충 넘겼지만 특이하게 신상필벌은 확실했다.
장등 노조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면, 군림전 전주는 그의 차지였을 게다.
수백 년의 노고와 팔 하나.
생각할수록 입맛이 쓰다.
곡분조 노조와 눈이 마주치자 목수평 노조가 먼저 묵례를 했다.
직급이야 전주가 높지만 무위로는 한참 아래인 까닭이다.
“곡 노조님, 어쩐 일이십니까?”
“토벌대 문제로 심통 진인을 만나 볼까 해서 왔네.”
“심통 진인요? 그라면 안에 있습니다. 사람을 시켜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나야 그래 주면 고맙지.”
목수평 노조가 근처의 진인 하나를 불러 심통 진인을 데리고 나오라 했다.
진인이 군림전으로 들어가자 곡분조 노조가 목수평 노조에게 슬쩍 물었다.
“군림전의 일은 할 만한가?”
“아직은 얼굴 익히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군림전은 천지종 최고의 조직이니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걸세.”
“그렇지 않아도 대종사님께서 전주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내리고 계십니다.”
“대종사님이 천지종에 대해 뭘 안다고?”
“조직의 운영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무공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종사님이 직접 전주들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곡분조 노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종문에서는 오직 직계 제자에게만 가르침을 내렸다.
지금까지 추회 존자도 법보만 하사했을 뿐, 무공은 일절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데 무공을 가르치다니?
그것도 구주제일인으로 알려진 대종사가?
“예, 천지종에 제군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곡분조 노조의 표정이 굳자 목수평 노조는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곡분노 노조는 독요 구 성으로 노조들 중에 최고수다.
하지만 성물이 파괴된 지금 상승의 경지를 홀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에 반해 전주들은 성물과 스승을 대신해 대종사가 이끌어 주고 있다.
어쩌면 그보다 수백 년 늦은 후배들이 그를 따라잡게 될지도 모른다.
대종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심통 진인이 군림전의 문을 열고 나왔다.
심통 진인이 곡분조 노조에게 묵례를 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심통이 나오자 목수평 노조는 곡분조 노조에게 눈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착잡한 얼굴로 서 있던 곡분조 노조가 심통 진인을 힐끔 보며 말했다.
“따라오게.”
곡분조 노조는 덕유봉에서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곡분조 노조는 멀리 북악봉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멈춰 섰다.
“천지종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말하게. 내가 군림전 소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조 중에는 최고 선임이니까?”
“어이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다들 잘 해 주셔서 내 집 같은 느낌입니다.”
“스승이 천뢰종의 옥청 노조라지?”
“예.”
“천지종에 왔으니 이끌어 줄 사람이 없겠군. 아니, 대종사님이 돌봐주시려나?”
곡분조 노조는 슬쩍 대종사를 언급했다.
그러자 심통 진인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닙니다. 대종사님의 무공은 너무 높아서 제 수준에 맞지 않습니다. 노조들이시라면 모를까? 저의 경우는 서각에서 무경서를 읽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대종사님이 노조들을 지도해 준다는 말은 들었네. 자네는 아니라니 의외군.”
“헤헤, 제가 노조가 되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너무 수준 차이가 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던 곡분조 노조가 지나가듯 말했다.
“자네는 대종사님의 최측근으로 알고 있는데, 토벌대에 왜 지원했는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토벌대에 지원하는 노조와 진인의 생각이야 뻔하지 않은가. 대종사님의 눈에 들어 한자리 차지하고 싶겠지. 그런데 자네는 이미 대종사님의 최측근이란 말이야. 내가 볼 때는 오직 자네만이 순수하게 토벌대에 지원을 했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는 자네처럼 순수하게 대종사님이 과업을 이룰 수 있도록 보필하고 싶네. 그런데 대종사님의 뜻을 알아야 보필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닌가.”
“아…….”
심통이 탄복한 얼굴로 곡분조 노조를 보았다.
강호에서 자신이 즐겨 써먹던 ‘상대를 어르고 달래서 뭔가 알아내려는 수법’이다.
‘이 늙은이가 나를 물로 봤군. 대체 뭐가 알고 싶어서? 아니, 그걸 알아서 뭐에 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