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90
690회. 넌 꿈이 뭐냐?
연적하는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입에 넣었다.
분명 입맛이 똑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술술 넘어갔다.
이것도 속세의 음식이라고 배 속에서 환장을 하는 것 같았다.
‘거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죽을 떠먹는 연적하에게 여자아이가 물었다.
“왜요? 맛이 이상해요?”
첫째의 말에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를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연적하는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맛있어!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라 그러는 거야.”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연적하는 자신에게 신경 써 주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의 가족은 조부모에 부모, 그리고 형제자매 셋까지 무려 일곱 식구였다.
도처에 야수가 들끓는 구주에서 이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연적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너 몇 살이냐?”
“열두 살요.”
생각보다 많은 나이에 연적하는 조금 놀랐다.
체구가 작아 그보다 훨씬 어리게 봤는데 열두 살이라니!
“넌 꿈이 뭐냐?”
“네?”
“뭐가 되고 싶으냐고.”
“그런 거 없는데요?”
“되고 싶은 게 없다고?”
“네.”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나중에 크면 식당 일을 도울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식당 일을 하는 게 꿈이구나?”
“도울 거라니까요!”
“같은 소리 아냐?”
“아니거든요? 그냥 도와주는 거라고요.”
아이가 강하게 부정하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소리인데 왜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것일까?
당최 속을 모르겠다.
머쓱해진 연적하는 그릇 바닥에 붙은 죽을 알뜰하게 긁었다.
이번에는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는 무슨 일 해요?”
“나?”
“예.”
“나는…….”
연적하가 적당히 둘러대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다.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롭던 저녁 식사 시간이 한순간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중년 남자는 죽 그릇을 내려놓고 짐 속에서 낡은 단창을 꺼내 들었다.
“우왕좌왕하지 말고 가만히들 있어. 아버지, 어머니, 집사람과 같이 애들 좀 보고 계세요.”
“설마 거기에 가 보려고?”
노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보았다.
노인은 잠시 군문(軍門)에 있었다고 뻑하면 단창을 꺼내 드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무슨 일인지 확인만 하고 올게요. 뭐가 나타났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하죠.”
중년 남자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연적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저도 함께 갈게요.”
무슨 일인지 궁금한 것도 있지만, 중년 남자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다.
가족들 곁에 낯선 남자만 남겨 두고 가면 얼마나 찜찜하겠는가 말이다.
연적하는 중년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둠 속을 걸어갔다.
단창으로 나뭇가지를 툭툭 쳐 내며 걷던 중년 남자가 운을 뗐다.
“이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황우연이오. 두뫼현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소.”
“연적하라고 합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요.”
“글공부라도 하셨소?”
황우연은 연적하가 호리호리해서 문사 정도로 생각했다.
“책을 베고 자면 모를까? 읽는 쪽은 아니에요.”
“후후!”
황우연은 실소를 흘렸다.
생긴 건 여리여리한데 의외로 솔직 담백하게 구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우리 첫째가 귀찮게 하는 것 같던데, 잘 받아 줘서 고맙소.”
“애가 똑똑하더라고요.”
“자식 셋 중에 그 녀석이 가장 똑똑한 건 사실이오. 그래 봐야 도토리 키 재기지만.”
황우연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또다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악-!”
처음 것이 여자였다면, 이번에는 남자였다.
연적하가 눈을 찌푸렸다.
산적인지, 혹은 야수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피난민에게는 재앙이었다.
빨리 야수를 퇴치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황우연에게 성큼 다가갔다.
“왜…….”
황우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적하는 그를 잡고 날아올랐다.
연이어 나무 꼭대기를 평지처럼 밟고 달렸다.
파파팟-.
한 걸음에 무려 십 장(약 30미터)씩 앞으로 나아갔다.
황우연은 놀란 얼굴로 연적하의 허리를 죽어라 부둥켜 안았다.
연적하는 다섯 걸음을 걷고,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어두운 들판에 주인 잃은 모닥불 세 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최소한 세 가족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불빛에서 멀리 떨어진 시커먼 숲 언저리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적하와 황우연은 이끌리듯 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사람의 내장을 뜯어먹던 검은 곰 두 마리가 머리를 돌렸다.
집채만 한 검은 곰을 본 황우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헉! 금수산의 흑웅?”
금수산은 이곳에서 백 리(약 4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곳에 사는 흑웅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니!
흑웅 두 마리는 새로 등장한 두 사람을 빤히 보기만 했다.
마치 ‘저것들을 어쩔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피 맛을 본 흑웅들에게 새로 등장한 사람은 그저 신선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우웅-!”
“우워엉-!”
두 마리 흑웅은 대화하듯 한 차례씩 소리를 지른 뒤-새로운 먹이를 향해-천천히 돌아섰다.
깜짝 놀란 황우연은 단창을 말아 쥐었다.
그러다 뒤늦게 흑웅이 철급 야수임을 떠올리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때 연적하가 ‘도(道)!’라고 외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피잉-!
칠현금 퉁기는 소리와 함께 빛줄기가 흑웅들을 향해 날아갔다.
빛은 흑웅들을 휘감았다가 밤하늘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두커니 서 있던 흑웅 두 마리가 맥없이 뒤로 넘어갔다.
킁! 쿠웅-!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광명진천 덕분에 대성하게 된 천둔검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으니 무겁게 검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크기로 말하자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없다.
이 얼마나 유용한 검인가 말이다.
이윽고 그는 황우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 아저씨.”
“예?”
대답과 함께 황우연이 눈을 내리깔았다.
“식당을 한다고 했죠?”
“그, 그렇습니다.”
“흑웅에게서 쓸 만한 부위가 있을까요? 먹을 거라든지, 몸에 좋다는지, 하는 거 말이에요.”
“간만 빼고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고기에 기생충이 많지만 익혀 먹으면 괜찮습니다. 몸에 좋은 부위는 쓸개지요. 술에 담가 술과 함께 먹으면 됩니다.”
식당 주인답게 흑웅에 대한 정보가 줄줄 나왔다.
“그럼 필요한 만큼 챙기세요. 흑웅이 사람을 먹었으니, 공평하게 사람도 흑웅을 먹어야죠.”
“예.”
황우연은 급히 흑웅의 사체로 다가갔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흑웅의 고기는 피난민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였다.
그가 단창으로 배를 힘껏 찔렀지만 오히려 단창이 튕겨져 나왔다.
당황한 얼굴로 서 있는 그에게 연적하가 다가갔다.
“왜요? 잘 안 돼요?”
“예, 날이 안 들어갑니다.”
“줘 봐요.”
이윽고 연적하는 황우연의 단창으로 흑웅의 가죽을 죽죽 찢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흑웅의 가죽이 너덜너덜해졌다.
황우연은 못 쓰게 된 가죽이 안타까웠지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번에는 황우연이 달라붙어 가족들이 먹을 고기와 쓸개를 발라냈다.
집채만 한 흑웅이라 고기를 한 아름이나 덜어 냈지만 티도 나지 않았다.
황우연과 함께 한 아름의 고기를 안고 가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나머지 한 마리의 가죽도 찢어 놔야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얻을 수 있겠죠?”
“그, 그렇기는 합니다.”
황우연이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철급 야수의 가죽은 일반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가서 다른 놈 하나 마저 찢어 놓고 올게요.”
연적하는 황우연이 가죽에 대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번개처럼 돌아갔다.
연적하와 황우연이 돌아오자,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황우연의 부친이 아들을 붙잡고 야단쳤다.
“이놈아! 거기가 어디라고 달려가? 네가 죽으면 처자식은 어쩌라고! 이 무책임한 놈아! 나이를 처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
“아범아, 네 아버지 말이 맞다. 이번에는 네가 백번 잘못했다. 네가 잘못되면 네 처와 애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거냐?”
노부모의 야단에 황우연은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황우연은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다.
자신의 단창은 부끄럽게도 흑웅을 상대로 무용지물이었다.
만약 연적하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흑웅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야수의 위험을 알면서 한순간 안일하게 행동했다.
황우연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자 노부모도 더는 야단치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왔다.
황우연의 처가 고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고기가 어디서 났어요?”
“어? 아, 이거? 갔더니 곰이 있더라고. 연 형제가 보통 사람이 아니야. 그냥 한 대 후려치니까, 찍소리도 못 하고 바로 죽데?”
“곰 고기예요?”
“어.”
황우연은 가족들이 놀랄까 봐 철급 야수인 흑웅을 일반 곰으로 말했다.
황우연의 가족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더 묻지 않았다.
죽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황우연은 흑웅의 고기를 주물럭거렸다.
그는 요리에 고기를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 저녁쯤이면 남아 있는 고기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때아닌 고기 냄새에 주변 사람들이 연신 힐끔거렸지만 찾아와 구걸하는 사람은 없었다. 피난 초기라, 아직 그 정도까지 굶주린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본래 곰 고기는 그 특유의 노린내 때문에 요리가 까다롭다.
하지만 식당 주인답게 황우연이 만든 곰요리는 고소하고 달콤했다.
곰 고기로 배를 채운 연적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일렁이는 불꽃을 볼 때다.
첫째가 슬금슬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응?”
“아저씨는 무술을 배웠어요?”
“그건 왜?”
“아니, 아저씨가 곰을 잡았다고 해서요.”
“그래 배웠다. 됐냐?”
그러자 첫째는 돌연 선망의 눈으로 연적하를 올려다보았다.
그 노골적인 눈길에 부담을 느낀 연적하는 슬쩍 상체를 반대편으로 틀었다.
연적하의 뒤통수를 향해 첫째가 나직이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요. 저도 크면 아저씨처럼 무술을 배울 거예요.”
“아까는 되고 싶은 게 없다면서?”
“지금 결정한 거예요.”
“아이고, 그러셔? 곰 고기가 그렇게 좋았냐?”
“헤헤, 그런 것도 있고요.”
첫째가 천진난만하게 웃자 연적하는 그만 피식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문득 메누아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황우연의 첫째는 메누아와 비슷한 또래였다.
“이름이 뭐냐?”
“서윤요.”
연적하는 품에서 선단(仙丹)이 든 가죽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라.”
“이게 뭐예요?”
“몸에 좋은 거. 잘 가지고 있다가, 하나씩 먹어라. 나중에 무술을 익힐 때 큰 도움이 될 거다.”
“고마워요.”
서윤은 연적하에게 받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와! 냄새 좋다.”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연적하는 주머니에 정신이 팔린 서윤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황우연이 급히 다가와 연적하를 배웅하려 했다.
“됐어요.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인데.”
연적하의 자리가 십 보 밖이니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뜬 연적하는 묘한 느낌에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
늦은 시간까지 곰 요리를 함께 먹었던 황우연과 그의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아침에 헤어졌을 텐데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좀 좋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