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9
689회. 마신이 스스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곡분조 노조는 대종사인 연적하를 모시고 산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광명진천의 근처에 이르자 연적하를 남겨 두고 슬쩍 물러났다.
너럭바위에 앉아 있던 광명진천이 힐끔 돌아보더니 손가락을 까닥였다.
“예?”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손가락질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광명진천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가까이 오거라.”
“아…….”
연적하는 내심 경계하며 광명진천의 곁으로 다가갔다.
광명진천이 동쪽 능선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마신이 교활한 수작을 부리고 있다.”
“왜요?”
“천뢰종 종산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 남쪽으로 광천사 베레드가 서진(西進)하고 있다. 마신은 분명 천뢰종 종산으로 가고 있을 텐데,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영천주로 넘어온 마천의 군세는 크게 둘.
하나는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 다른 하나는 광천사 베레드가 이끌고 있었다.
광명진천은 두 군세가 만나기 전에 마신과 싸우려 했다.
하지만 마신이 기운을 숨겨 어디로 오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마신이 천뢰종 종산으로 갈까요?”
“그럴 것이다. 마천의 마귀들도 종사들만큼이나 천문(天門)에 욕심을 내니까.”
“광명진천님도 천문을 보셨죠?”
“보았다.”
“돌기둥 두 개가 전부던데 왜들 그렇게 천문에 욕심을 내는 거죠?”
“너는 어떠하냐? 천문에 관심이 없느냐?”
광명진천이 같잖다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건 천문 때문에 일곱 종문을 통합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관심은 있죠. 그런데 천문이라는 게 사실 돌기둥 두 개로 끝이잖아요? 그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요즘은 회의가 들어서요.”
“그래도 뭔가 더 있다고 생각해 종문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 그런 기대가 없었다면 사벌주로 쳐들어가지도 않았겠지.”
“기대하는 마음이야 있죠.”
“마천의 마귀들도 너와 같은 마음으로 천문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마귀들은 천문을 숭배하기도 한다. 그러니 항상 종산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천문을 숭배한다고요?”
“너는 마천의 마귀를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느냐?”
“…….”
연적하는 답하지 못했다.
소요종의 서각(書閣)에서 ‘왕들의 하늘’과 구주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그건 생각해 보질 않았다.
한심하다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던 광명진천이 말을 이어 갔다.
“마천의 마귀들은 창조신이 자신들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들만의 믿음이지. 창조신께서 아무리 심심하다 해도 마귀들까지 만드셨겠느냐?”
광명진천은 스스로의 농담이 마음에 드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서 마천의 마귀들이 천문을 숭배한다는 건가요?”
“살아생전 천문을 보는 것이 소원인 마귀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보다 마귀가 더 천문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마신은 어느 쪽인가요? 천문을 조사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창조신을 숭배해서?”
“둘 다일 것이다. ‘삼천의 신’들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천문을 연구했지만, 비밀을 풀지 못했다. 그럼에도 천문을 쟁취하러 왔다면 뻔하지 않으냐?”
“숭배를 한다고요? 마신이?”
연적하가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메누아는 ‘이 세계와 이 세계를 만든 창조신을 증오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광명진천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신도 마천의 일부다. 마천에서 나고 자란 마신이라고 다를 줄 아느냐? 그들은 스스로를 창조신의 피조물이라 믿는다. 그러니 숭배하는 것도 당연하지.”
“…….”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메누아는 ‘이 세계를 창조신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건 자신이 창조신의 피조물이라는 걸 고백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숭배하면서 증오하다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만큼이나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생각에 잠긴 연적하의 귓가로 광명진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신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와 광천사 베레드의 군세가 합쳐지기 전에 마신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마신을 찾아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다.”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명진천조차 느끼지 못하는 마신을 누가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마신을 찾죠?”
“나도 찾지 못한 마신을 누가 찾겠느냐? 마신이 스스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마신을 나오게 만든다고요?”
“네가 광천사 베레드의 진영을 염탐하고 와야겠다.”
“제가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언제는 육 일 동안 자신에게 붙어 있으라고 하더니 이젠 염탐을 하란다.
“네가 가면 마신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광천사 베레드의 진영이 어디에 있는데요?”
“우리가 가던 방향으로 이레쯤 가면 보일 것이다.”
광명진천은 지명(地名)을 특정하지 않았다.
연적하와 광천사 베레드가 어느 지점에서 만날지 알 수 없어서다.
“제가 광천사 베레드의 진영에 갔는데 마신이 나타나지 않으면요?”
“그곳에 없다는 뜻이지. 광천사 베레드가 아니라면 누구와 있겠느냐?”
“아!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
“이제 알겠느냐?”
“그러니까 저를 미끼로 마신을 낚으시겠다는 거네요?”
“저속한 표현이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네 앞에 마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군단장인 악투스 발라지크에게로 갈 것이다. 너는 속히 돌아오면 된다.”
“예, 그런데 광천사 베레드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는 마천의 제후 중에 하나다. 구주식으로 말하면 군주급이지.”
군주라는 말에 연적하는 내심 안도했다.
“우샤스 킨샤사와 비슷하다는 거죠?”
“우샤스 킨샤사보다는 광천사 베레드가 강할 것이다. 우샤스 킨샤사는 군주들 중에서도 약체에 속하니까.”
“아, 우샤스 킨샤사가 약체였군요?”
연적하와 법요종의 갈등을 알고 있는 광명진천은 바로 그를 비웃었다.
“흥! 좋아할 것 없다. 그렇다 해도 반신(半神)인 너보다는 훨씬 강하니까.”
“누가 뭐라고 했나요?”
“그러니 제후인 광천사 베레드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마천에도 왕이 있고, 제후가 있나 봐요?”
“마천도 인간이 살고 있는 구주만큼이나 넓다. 강약에 따른 서열도 확실하고. 간혹 길을 잃고 구주로 넘어오는 마물로 마천의 마귀를 판단하지 마라.”
“아, 예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청명신주를 암송하는 건 어떻게 하죠? 약속대로라면 광명진천님과 나흘을 더 함께 지내야 하는데…….”
“됐다. 네가 마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니 더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걸 어떻게 알았대요?”
광명진천은 대답 대신에 손을 까닥였다.
가라는 뜻이다.
“아, 예. 그럼 먼저 갑니다.”
이윽고 연적하가 떠나자 광명진천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청명신주의 암송을 중지시킨 것은 광명안(光明眼)이 연적하에게 통하지 않아서다.
상대의 정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청명신주를 암송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어떻게 광명안을 끊었지?’
반나절 내내 생각했지만 연적하가 무슨 수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광명진천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곡분조 노조에게 손짓했다.
곡분조 노조가 말 잘 듣는 개처럼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나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줘야겠다.”
“영광입니다!”
곡분조 노조가 눈을 빛냈다.
그는 대종사의 눈 밖에 난 이상 광명진천이라도 꽉 잡을 생각이었다.
***
연적하는 동쪽으로 빛살처럼 날아갔다.
혼자 움직이니 다른 종문 고수들을 배려할 것도 없다.
자신을 두고 반신(半神)이라더니, 과연!
반나절 내내 쉬지 않고 운종술로 날아가는데 힘든 줄을 모르겠다.
해거름 무렵, 벌써 한산주를 지나 영천주에 이르렀다.
이 정도 속도로 날아가면 내일쯤은 영천주의 절반을 가로지를 것 같다.
휘이이이-.
구름을 타고 날아가던 연적하는 석양에 하늘이 붉게 물들자 지면으로 내려갔다.
더 어두워지면 방향을 잃게 되니 적당한 곳에서 쉬고 갈 생각이다.
행여나 사람들이 보고 놀랄까 봐 산속에 내려선 그는 대로(大路)로 나갔다.
길은 벌써부터 피난민의 행렬로 가득했다.
대로에서 벗어난 연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점점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길 밖으로 빠져나왔다.
밤에도 말과 마차가 다니니 행여나 자다 날벼락을 맞을까 봐 피하는 것이다.
연적하의 주위로도 몇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날씨는 포근했지만 사람들은 야수에 대한 공포로 불부터 피웠다.
가족 단위로 불을 피우다 보니 거의 이십 보마다 모닥불 하나가 만들어졌다.
연적하가 혼자라 그런지 한 가족이 그와 십 보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그의 지근거리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이미 엉덩이를 붙인 연적하는 귀찮은 마음에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불을 피운 김에 저녁 준비라도 하는 모양이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연적하의 코끝으로 고소한 음식 냄새가 솔솔 밀려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최근 주로 선단(仙丹)을 먹어서 그런지 음식 냄새를 맡으니 입에 침이 고였다.
피난민이 야외에서 대충 만드는 음식이니 잡탕죽일 게 분명하다.
연적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냄새로 재료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모닥불을 등지고 아이 하나가 다가왔다.
“아저씨.”
처음 듣는 아저씨 소리에 연적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나 십 보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나?”
“예, 저녁 안 먹었으면 와서 한 그릇 드시래요.”
여자아이는 말을 또랑또랑 잘했다.
열 살도 안 돼 보이는데 말을 잘하는 걸 보니 어려 보이는 얼굴인가 보다.
어차피 아침까지 할 일도 없던 연적하는 굼실굼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끓였는데?”
“쌀이랑, 야채랑, 아, 고기도 조금 넣었어요.”
“고기를? 고기가 어디서 났길래?”
“집에서 싸 온 거예요.”
집에서 싸 왔단다.
지금은 유월 중순, 해가 지면 선선하지만 한낮은 여름처럼 덥다.
과거 상한 음식을 얻어먹고 탈이 났던 연적하는 고기 상태가 신경 쓰였다.
불안한 마음에 ‘집이 가깝냐?’고 물으려는데 벌써 모닥불가다.
국자로 무쇠솥을 휘젓고 있던 사십 대 남자가 연적하를 힐끔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아직 저녁을 안 먹은 것 같아서 불렀소. 이것저것 때려 넣어 끓인 것이라 맛은 장담할 수 없소.”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피난을 나온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그걸 어떻게 아셨소?”
남자가 조금은 경계하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기껏 불쌍해 보여서 불렀는데 남의 사정을 훤히 아니 덜컥 의심이 들었다.
“아이가 죽 속에 집에서 가져온 고기도 넣었다고 해서요. 집이 멀면 고기가 상해서 버렸겠죠. 혹시 상한 고기를 넣은 건 아니죠?”
“아! 그랬구려. 맞소. 여기서 반나절 거리인 두뫼현에서 왔소. 한 집 두 집 피난을 가니, 불안해서 남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고기는 괜찮았으니 마음 놓으시오.”
“예에, 그런데 피난은 어디로 가요?”
“어디라고 할 게 있소? 마귀들이 물러갔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 가야지.”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야수에 마천의 마귀들까지, 참 고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남자가 죽이 든 그릇을 건네며 물었다.
“그런데 가족은 어쩌고 혼자 다니시오?”
“가족은 한산주에 있어요.”
“천만다행이구려. 아무리 마귀들이 극성이어도 한산주는 넘보지 못할 테니.”
“왜요?”
“나도 들은 소문인데, 광명진천님과 여러 신들이 종문을 돕기 위해 나섰다고 하더이다. 광명진천님은 저 하늘에 떠 있는 ‘삼천의 신’이 아니오? 마귀들이 한길로 몰려왔다 가도 일곱 길로 달아날 게요.”
남자의 호언장담에 연적하는 대꾸하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광명진천을 떠받드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갑자기 입맛이 싹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