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8
688회. 어떻게? 한 번 더 외울까요?
한산주.
삼채성 옥천항.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연적하와 심통은 마주 보고 앉아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연적하가 어탕(魚湯)을 그릇에 퍼 담으며 심통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 아직까지 축 늘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이래 봬도 원영 칠 성의 진인입니다. 하룻밤이면 거뜬합니다.”
연적하가 주변에 있는 다른 진인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다들 축 늘어진 얼굴이다.
하룻밤 휴식으로 피로는 풀렸지만, 강행군이 계속될까 봐 지레 겁먹고 움츠린 것이다.
원영 팔 성, 구 성의 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조들도 헐떡거리는 마당에 원영의 벽을 깨지 못한 진인들이야 오죽할까.
그에 반해 심통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였다.
“아닌데, 뭐 좋은 일 있어?”
연적하가 심통을 빤히 보았다.
심통은 남궁연을 제외하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함께 생활한 기간은 남궁연보다 더 길다.
평상시의 그라면 지금쯤 광명진천을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식사 중에 히죽히죽 웃는다?
틀림없이 뭔가 있다는 소리다.
“어이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마천의 마귀들이 쳐들어왔는 움좋은 일이라니요? 저 그렇게 이기적인놈 아닙니다요.”
그렇게까지 시치미를 떼자 연적하도 더는 캐묻지 못했다.
워낙 행실이 가벼운 늙은이니 또 뭔가 바보 같은 짓에 정신을 팔고 있으려니 여겼다.
“아니면 말고.”
연적하는 미지근하게 식은 어탕 국물을 그릇째 들고 후루룩 마셨다.
그가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의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 심통이 물었다.
“그런데 대종사님, 광명진천은 어떤 신입니까?”
“응? 어떤 신이냐니?”
“좋은 신인지 나쁜 신인지 궁금해서요. 구주 사람들을 위해 싸워 주겠다고 나선 걸 보면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 구주에서 그런 걸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노마(老魔)답게 예리한 질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답했다.
“이 세계의 신들은 좋고 나쁨이 없는 것 같아.”
“좋고 나쁨이 없다고요?”
“어, 그냥 자기들 꼴리는 대로 사는 거야. 그게 사람한테 유익하면 선신(善神)이라 부르고, 아니면 악신(惡神)이라 그러는 거지.”
“선악이 없다니 황당하네요. 무슨 신이 그렇답니까?”
광명진천에게 월성금구의 영석을 선물받은 심통에게는 은근 찜찜한 소리였다.
“이곳의 신은 그렇더라고. 누군 그러더라. 신들은 계곡에 부는 바람처럼 살아가는데, 그걸 두고 사람들이 좋다 나쁘다 말하는 거래.”
“누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것 같은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더라? 하여튼 어디선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일단 광명진천이 악신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얘기가 또 그렇게 되는 거야?”
“바람이라면서요.”
“그 전에 자기들 꼴리는 대로 한다고 말했잖아.”
“그게 악신이라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강호로 치면 정사지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아닙니까?”
“정사지간이 맞겠네. 광명진천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조심해.”
“삼천의 신이라 불리는 광명진천이 저 같은 진인 나부랭이에게 해코지 할 일이나 있겠습니까? 진인이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해 보일 텐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 속을 누가 알겠어? 혹시 광명진천이 친절을 베풀면 조심해.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에이, 제가 어린애입니까? 한때는 구밀복검이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아시면서. 대종사님이나 조심하십쇼. 대종사님은 광명진천과 붙어 다니지 않습니까? 어제도 진지한 얼굴로 광명진천 앞에서 뭔가 하시는 것 같던데. 뭘 하신 겁니까?”
“어제? 아! 있어 구질구질한 거. 별거 아냐. 신경 쓰지 마.”
“조심하십쇼. 섣불리 빌미를 내줬다가는 일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신다니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심통이 영석의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면, 연적하는 청명신주의 암송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다.
식사를 마친 천지종과 태상종 고수 들은 하나둘 광명진천의 숙소 앞에 모여들었다.
곡분조 노조는 대종사부터 찾았다.
웬일인지 대종사는 일찌감치 나와 한쪽에 서 있었다.
자세는 시정잡배들처럼 삐딱했지만 광명진천보다 늦지 않아 고마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명진천이 나오질 않고 있다?
‘설마 어제의 복수인가?’
곡분조 노조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다.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태상종의 진표 존자가 다가와 한마디 했다.
“곡 노조. 광명진천님께 우리가 집결했음을 알려야 하지 않겠나?”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백오십여 명이나 되는 종문 고수들의 기세를 생각하면 모를 수가 없었다.
“어허, 누가 그걸 모르나.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진표 존자가 눈을 부라렸다.
곡분조 노조는 진표 존자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쭈뼛쭈뼛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홀로 나온 곡분조 노조가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대종사님.”
“왜?”
연적하가 짜증 어린 눈으로 곡분조 노조를 보았다.
데리고 나오라는 광명진천은 어쩌고 자신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광명진천님께서 대종사님을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나를? 왜?”
“대종사님이 뭘 해 주셔야 한다고…….”
“뭘?”
울컥한 연적하는 광명진천이 왜 부르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보나 마나 청명신주를 외우게 할 게다.
출발 직전에 들어와 외우라니, 광명진천은 정말 꼴리는 대로 하고 있었다.
“어제의 그 일이 아니겠습니까?”
곡분조 노조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천지종과 태상종에는 광명진천과 연적하의 일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보란 듯 주법(呪法)을 암송하게 했으니 모를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은 연적하가 왜 그것을 암송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연적하와 마신의 만남에 대한 대화는 안학궁에서 이루어진 까닭이다.
“어제 뭐?”
“…….”
연적하가 째려보자 곡분조 노조는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사명을 완수했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그와 반대로 연적하는 세상 짐을 떠안은 사람 같았다.
광명진천이 불렀으니 가야 하겠지만, 주인 행세를 하는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자신의 정신을 검증받는 것도 짜증나는 판국에 시도 때도 없이 오라 가라 하다니!
연적하가 움직이지 않고 뭉그적거리자 진표 존자가 넌지시 말했다.
“대종사님, 광명진천님께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발이 늦어지면 노조와 진인 들만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노조와 진인을 생각해서 그만 가 보라는 말이다.
그 말에 연적하는 더 버티지 않았다.
출발이 늦어지는 만큼 휴식 시간 또한 줄어들 게 뻔해서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노조와 진인들이 고생하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삼환각.
객청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광명진천이 연적하를 발견하고 손을 까닥였다.
“늦었구나.”
“어제처럼 휴식 시간에 청명신주를 암송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늦었다는 지적에 대한 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광명진천은 그걸 알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닷새 후면 연적하는 자신을 숭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외우라는 듯 손가락을 재차 까닥였다.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앞에 서서 청명신주를 암송했다.
“나는 스스로 삼가며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광명진천의 눈을 직시했다.
어제만 해도 태양처럼 빛나던 그의 눈알이 유리구슬을 보는 듯했다.
왠지 신비로움이 한풀 꺾인 느낌이다.
천둔검에 대한 깨달음이 자신의 경지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일까?
유리알처럼 빛나는 광명진천의 눈을 보니 뒷골이 땅기며 어딘지 찜찜했다.
연적하는 암암리에 통천안(通天眼)을 시전했다.
“내가 눈으로 본 것에 현혹당하지 않을 것이며…….”
순간 그의 눈에서 뻗어 나온 은빛 실이 보였다.
마치 거미줄처럼 보이는 은빛 실은 자신의 눈동자에 닿아 있었다.
‘헉!’
광명진천이 수작을 부린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이런 식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급한 마음에 그는 천둔검을 떠올렸다.
도(道)란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으뜸이 되는 기운[祖氣]이라 하지 않던가.
‘도! 도! 도!’
번쩍!
광명진천과 연적하의 사이에서 빛이 번득였다.
순간 바른 자세를 유지하던 광명진천의 상체가 거칠게 뒤로 튕겨 났다.
그 충격으로 의자가 한차례 덜컥거렸다.
“……진리에서 어긋난 것을 내 마음에서 지울 것이다.”
연적하가 광명진천을 빤히 보며 말했다.
“잘 못 들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한 번 더 외울까요?”
그러자 광명진천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되었다. 종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냐.”
자리에서 일어난 광명진천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너는 혹시……. 아니다. 먼저 가라.”
“예.”
연적하는 재빨리 돌아서 객청을 떠나갔다.
광명진천이 지금의 일로 다른 조건을 제시할까 신경이 쓰여서다.
전각에서 나온 광명진천은 아무런 말도 없이 축지법으로 쭉쭉 나아갔다.
연적하와 진표 존자, 태상종 제군들이 운종술로 그 뒤를 따랐다.
씁쓰름한 얼굴로 진인들을 둘러보던 노조들도 운종술로 날아올랐다.
진인들은 올 것이 왔다는 얼굴로 어검비행을 펼쳤다.
그렇게 동쪽으로 한 시진(2시간)쯤 날아갔을까?
진인들이 조금씩 대열에서 뒤처질 즈음, 선두의 광명진천이 멈춰 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붙던 진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광명진천은 마지막 진인까지 도착하자 무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제는 너희들의 수준을 몰라 조금 무리를 했다. 오늘부터는 한 시진마다 쉬어 갈 것이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던 노조와 진인 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광명진천은 산 정상의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동쪽 하늘을 응시했다.
천리안으로 영천주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다.
잠시 후 그는 대기하고 있던 곡분조 노조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예.”
“대종사를 불러라.”
“예.”
시원한 대답과 달리 돌아선 곡분조 노조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대종사가 광명진천의 부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다.
하지만 지엄하신 광명진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바람처럼 연적하를 향해 달려가 광명진천의 말을 전했다.
“대종사님, 광명진천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또, 왜?”
“그건 저도 잘…….”
“잘 뭐? 옆에서 계속 지켜봤을 거 아냐? 졸졸 따라다니더만.”
“그게, 동쪽 하늘을 오래 보시다가, 갑자기 대종사님을 찾으셨습니다.”
“동쪽? 거기에 뭐가 있다고?”
“신들은 천리안으로 먼 곳까지 보시지 않습니까? 아마도 영천주를 살피신 것 같습니다.”
“영천주를 봤다고? 여기서?”
“예, ‘삼천의 신’들께서 마음먹으면 구주의 일을 아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영천주에서 일어난 일로 나를 부른다는 거네?”
“제가 어찌 감히 광명진천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그저 제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제야 연적하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객청에서 있었던 일로 찾는 게 아니라면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앞장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연적하는 굳이 곡분조 노조를 앞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