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7
707회.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다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천뢰종 종산 유명산.
이른 아침 벽력궁 앞마당.
태상종, 천지종, 천뢰종의 고수들이 종문의 깃발 아래 대오를 갖춰 서 있었다.
구백여 명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낙일현 현청에서 유명산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닿는 거리다.
자연히 종문 고수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잠시 후 광명진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문 고수들은 광명진천이 한마디 할 줄 알고 귀를 쫑끗 세웠다.
모두 광명진천의 입만 보고 있을 때 곡분조 노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광명진천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마신의 군세가 오십만에 달하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백리하를 건너가 대책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백리하가 한산주에 있으니 한산주까지 후퇴하겠다는 소리다.
다 죽어 가던 종문 고수들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았다.
천뢰종의 광성 존자가 대종사 연적하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본래 저런 말은 대종사가 하는 게 맞았다.
광명진천이 시키더라도 대종사를 내세웠어야 하거늘 참 눈치 없는 사람이다.
‘쯧쯧! 저러니 대종사님에게 한 소리를 듣지.’
곡분조 노조가 처신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저건 아닌 것 같다.
광명진천은 구주를 떠날 테지만 대종사와는 평생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광성 존자는 대종사에게 슬쩍 다가갔다.
“대종사님. 백리하를 건널 때쯤이면 종문들의 의견이 모아지겠지요?”
“그렇겠죠.”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영물 천리구(千里鳩)로 소식을 전했다니, 지금쯤이면 웅천주와 수약주에 집결한 종문들도 광명진천의 요구를 알았을 터였다.
천뢰종 종산에서 백리하까지 칠 일쯤 걸린다.
천리구의 이동 속도를 생각하면 백리하를 건너기 전에 답을 받아 볼 가능성이 높았다.
“저는 천문의 문제만큼은 대종사님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성 존자는 연적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건 단지 아부를 위해서 한 소리가 아니었다.
사벌주의 법요종과 황천주의 광염종을 제외하면 모두 연적하를 대종사로 받아들였다. 그건 천문의 소유권이 연적하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적하 역시 광성 존자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지원 발언은 지금 상황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광명진천이 종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
광성 존자는 멈칫했다.
곡분노 노조라면 여기서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시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성 존자는 침묵함으로 나름 중용을 지켰다.
연적하는 대답을 독촉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세상은, 아니 우주는 공평하지 않다.
이 세상이든 하계는 결국은 힘 있는 자의 말이 법이다.
이 포악하고 이기적인 세계에서는 광명진천의 말이 곧 법이었다.
문득 천문이 지금껏 열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광명진천 같은 존재가 더욱 큰 힘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안 되지.’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야 창조신의 고뇌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오죽하면 천문을 세워 준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열어 주지 않았을까!
광명진천이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특별히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신형이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세 개 종문의 고수들이 각각 신행부, 어검비행, 운종술 등으로 그 뒤를 따랐다.
연적하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진인 두 사람이 들것에 심통을 싣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 곁에 옥청 노조가 바싹 붙어 있는 걸 보니 그가 시킨 모양이다.
연적하는 심통을 옮기는 진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광명진천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존재가 아니다.
산 중턱까지 내려갔던 그는-굳이 산 아래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지-돌연 허공으로 도약해 건너편으로 넘어가 버렸다.
운종술과 어검비행으로 따라가던 고수들도 광명진천을 따라 산을 넘어갔다.
하지만 신행부를 붙이고 달려가던 진인과 노사, 방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진인과 노사, 방사들만 산 아래로 내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옥청 노조와 세 명의 노조가 그들을 인솔해 산 아래로 내달렸다.
연적하는 두 무리의 갈림길에서 혀를 찼다.
계곡 위를 날아가지 못해 개미처럼 줄지어 내려가는 고수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어느 세계건 약자는 고달프다.
심통이 건강했다면 자신도 뒤돌아보지 않고 선두를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들것에 실려 가는 그를 지켜봐야 했다.
위험한 일이 닥치면 누구라도 제 목숨부터 돌보게 되어 있으니까.
윗분들과 달리 진인, 노사, 방사에게 마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연적하는 진인, 노사, 방사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연적하의 선택은 옳았다.
유명산을 내려간 종문 제자들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산 아래는 어느새 마물들 천지였다.
하기야 어제 낙일현이 점령당했으니 지금이면 빠른 것도 아니다.
마물들은 마신의 군세답게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사자의 머리에 키는 일 장(약 3미터)이나 됐는데 손에는 녹이 잔뜩 슨 도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어른의 머리통만 한 도끼는 스치기만 해도 절단이 날 것 같았다.
“크허허엉-!”
인간을 발견한 사자 머리가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포효했다.
순간 인근에 있던 사자 머리 마물들이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마물들은 나무는 도끼로 쳐 내고, 잡목은 그냥 발로 짓밟았다.
크기에 걸맞게 마물들이 지나간 자리로 없던 길까지 뚫렸다.
사자 머리를 확인한 노조들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옥청 노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대부사자(大斧獅子)는 은급 마물이다! 노사와 방사들은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백리하 방면으로 몸을 피하도록 해라!”
은급을 죽이려면 최소한 노조는 돼야 가능하다.
그것도 한 마리 은급이 그렇다는 거다.
지금처럼 은급 마물이 떼거리로 몰려오면 노조도 힘을 쓰지 못한다.
진인은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으나 노사와 방사 들에게 은급 마물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은급이라는 말에 혼비백산한 노사와 방사 들이 서쪽 방면으로 달아났다.
대부사자들은 달아나는 인간을 쫓지 않았다.
그보다는 마치 몰이라도 하듯 산에서 내려온 인간들을 에워싸며 전진 했다.
이윽고 선두의 노조들과 대부사자들이 맞부닥쳤다.
옥청 노조는 처음부터 상급 검공인 천지뢰행(天地雷行)을 펼쳤다.
은급 마물을 상대로 얕은 수는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주변의 다른 마물들에게 반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으니 일검에 척살을 해야 했다.
우르르릉- 꽈광!
마른하늘에서 벼락처럼 진검강이 떨어져 내렸다.
옥청 노조의 앞에 서 있던 대부사자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뒤로 널브러졌다.
일격에 즉사한 것이다.
은급 마물을 일격에 죽였으니 실로 대단한 검공이었다.
사람 같았으면 기가 죽었을지 모르나 주변에 있는 대부사자들은 마물이다.
옥청 노조의 검공은 도리어 대부사자들의 흉심을 자극했다.
저 인간의 검공은 강하지만 고작 하나가 죽었을 뿐이다.
자신들은 수백이니 겁먹을 게 없었다.
“크허허헝-!”
“크르릉!”
대부사자들이 개떼처럼 옥청 노조에게 덤벼들었다.
세 명의 노조들이 옥청 노조의 좌우에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싸움이 시작되자 대부사자들의 덩치에 가려 네 명의 노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대부사자들의 포효 사이로 ‘쩡! 쩡!’ 하고 쇠붙이 맞닿는 소리만 들려왔다.
노조들 넷으로는 한계가 있다.
원영 칠 성 이상의 진인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들의 뒤를 받쳤다.
원영 칠 성 이상의 진인들 중에는 검령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윽고 형형색색의 검령들이 대부사자들 머리 위로 솟구쳐 올랐다.
들것을 들고 있던 이산 진인과 정청 진인은 원영 삼 성과 사 성에 불과했다.
그들은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 막히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두 사람 주변으로 원영 칠 성 미만의 진인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 풍학 진인이 말했다.
“은급 마물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소.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고 말 거요. 각자 살길을 도모하였다가 백리하에서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십시다.”
하지만 이산 진인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하자는 말인데 들것을 들고서 가능한 일이 아닌 까닭이다.
“이보시오. 심통 진인은 어쩌고 각자 살길을 도모하자는 거요?”
풍학 진인은 듣지 못한 듯 딴청을 했다.
마물들의 포효가 더욱 커지자 풍학 진인의 의견에 찬성하는 진인이 늘었다.
그러자 풍학 진인이 그들을 규합하여 진인들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멀찍이 숨어서 진인들의 하는 짓을 구경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렇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래도 심통을 버리지 않은 두 진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도 큰 소득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도 이타심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보다.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할 때다.
진인 절반이 샛길로 달아나자 이산 진인과 정청 진인도 들것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어? 어? 안 돼. 그러지 마.”
연적하는 구주의 인간들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다.
이산 진인과 정청 진인의 몸이 슬금슬금 들것에서 멀어졌다.
더 이상 추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연적하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익-!”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휘파람 소리가 유명산을 태풍처럼 쓸고 지나갔다.
난폭하게 도끼질을 하던 대부사자들이 흠칫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대부사자들의 주의가 흐트러진 틈에 노조와 진인 들은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연적하가 허공으로 도약하며 운종술을 펼치자 그의 발밑에 하얀 구름이 깔렸다.
운종술로 날아가던 연적하가 하늘로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허공을 가르며 붉은 몸체의 구천검령 한 자루가 현현했다.
연적하가 검결지로 아래를 가리키자 구천검령이 독수리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쓰아아아아-!
구천검령은 검신의 폭이 일 장(약 3미터), 길이도 무려 십 장(약 30미터)에 달하는 검이다.
구천검령이 지나간 자리마다 마물이건 나무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검의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한 대부사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뛰어 달아났다.
구천검령은 진인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안개처럼 스르륵 사라졌
뒤이어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심통의 옆에 내려앉았다.
달아났던 진인과 달아나려던 진인들이 한달음에 대종사의 주위로 몰려왔다.
그들 중에는 이산 진인과 정청 진인도 있었다.
구사일생한 옥청 노조가 허겁지겁 달려와 대종사 앞에 머리를 숙였다.
“대종사님.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종문의 진인들을 구해 주었으니 감사는 내가 해야지요. 고생들 하셨습니다.”
연적하는 노조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인생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진인들을 구하기 위해 은급 마물들에 맞서 싸우는 노조들이라니.
심통을 두고 달아난 진인들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조금 치유되는 느낌이다.
“더 늦기 전에 출발하죠.”
연적하의 말에 노조들은 즉시 함께 싸우던 진인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대부분이 자잘한 부상에 그쳤다.
대부사자들의 무지막지한 도끼질을 생각하면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옥청 노조의 지휘 아래 진인들은 다시 서쪽으로 달려갔다.
노사와 방사를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지 이동 속도는 어검비행 못지않게 빨랐다.
그들이 떠나간 직후 각양각색의 마물들이 밀물처럼 유명산으로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