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0
710회. 이것 역시 업이라면 업이다.
옥청 노조와의 대화 이후로 연적하는 구천검령을 자주 불러냈다.
검령을 갈고닦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천검령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엿새쯤 지나자 비로소 옥청 노조가 말한 ‘연결 고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백리하에 도착한 연적하는 선단으로 저녁을 해결한 뒤 선착장으로 나갔다.
얼마 전까지 목선과 철선으로 가득하던 선착장은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구천검령을 꺼내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해도 졌겠다 연적하는 구천검령 하나를 꺼내 백리하 위로 날려 보냈다.
야조(夜鳥)처럼 시원하게 강물 위를 날아가는 구천검령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궁금해졌다.
‘구천검령을 몇 개나 쓸 수 있을까?’
이기어검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를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쓰지도 못할 거라면 구천검령이라는 이름으로 아홉 개가 같이 다니지도 않았을 터.
신외지물을 다루는 이기어검과 심령이 이어진 검령은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연적하는 구천검령을 하나씩 추가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고……. 마침내 아홉 개의 검령을 모두 꺼냈다.
태을 존자에게 당한 뒤로 검령의 제어에 자신을 잃었는데 막상 꺼내 보니 다루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열 개의 손가락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손가락 같았다.
검령과 심령이 연결되어 있다더니 아홉 개의 검령은 신체의 일부처럼 편안했다.
막상 해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태을 존자에게 한번 당한 뒤로 몸을 사리는 통에 더 넓은 세계를 알지 못했다.
연적하는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수면 위를 날아가던 아홉 개의 검령이 독수리처럼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다시 두 손을 아래로 털자 아홉 개의 검령이 급전직하로 떨어져 내렸다.
아홉 개의 검이 백리하에 처박히기 직전 두 손을 앞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검들이 급격하게 방향을 꺾으며 달빛에 반짝이는 수면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검 끝에 닿았는지 물보라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빗살처럼 내리꽂히던 속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움직임이다.
연적하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대종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연적하는 즉시 구천검령을 거둬들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네 명의 노조가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서 있었다.
“뭔데요?”
처음에 말을 꺼냈던 명선 노조가 답했다.
“백리하를 건너야 하는데 사천포에 배가 보이질 않습니다. 상류와 하류를 살폈지만 배는 없었습니다. 선주들이 강 저편으로 피난을 간 것 같습니다.”
“유명산에서 나온 광명진천 일행이 갈 만한 다른 항구가 있나요?”
“이곳 사천포가 직선거리에 있으니 이리로 왔을 겁니다. 대종사님도 지난번에 사천포를 이용하시지 않았습니까?”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지난번 백리하를 건널 때 옥천항에서 출발해 사천포에 도착했었다.
“그렇다면 광명진천 일행도 여기서 도하를 했겠죠?”
“사천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선두에서 강을 건넜다면 배를 보내 줄 거예요. 그들도 진인들이 뒤처졌다는 걸 알 테니까요.”
“아!”
노조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신의 군세에 쫓기다 보니 단순한 이치를 깜빡했다.
대종사의 말대로 선두가 강을 건넜다면,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배를 보내 줄 터였다.
“정 안 오면 내가 먼저 건너가서 배를 물색해 보내도 되고요.”
그 말에 노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종사가 나서 주면 옥천항에서 배를 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노조들은 짐을 덜어 낸 얼굴로 잠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유명산에서 먼저 달아났던 노사와 방사 들이 하나둘씩 합류했다.
다음 날 아침.
선착장 주변은 몰려든 진인과 노사, 방사 들로 모처럼 북적거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배가 없어 다들 멀뚱멀뚱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이미 백성들의 피난이 끝났는지 일반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유명산에서 빠져나온 종문 고수들만 팔백여 명.
배가 오지 않으면 말 그대로 배수진을 치고 마신의 군세와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진인과 노사, 방사 들은 자력으로 강을 건너지 못하는지라 배가 와 주기를 기다렸다.
오전만 해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서편으로 기울면서부터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선착장에 모인 종문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마신의 군세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은 마물들이 당장에라도 사천포로 밀고 들어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필 그때 멀리서 야수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 종일 백리하만 바라보던 진인, 노사, 방사 들이 한순간 굳었다.
대낮에 야수가 놀랄 일이란 뻔하지 않은가!
진인과 노사, 방사 들은 불안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보다 못한 옥청 노조가 ‘걱정하지 마라. 끝내 배가 오지 않으면 대종사께서 건너가 배를 보낼 것이다’라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노조들은 연적하 대종사를 호위하듯 에워싼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신시 초(오후 3시) 무렵,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배가 오겠죠?”
그러자 옥청 노조가 답했다.
“대종사님께서 지난밤에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존자와 제군들께서 저희가 처한 상황을 아실 테니 늦지 않게 배를 보내 줄 겁니다.”
“그렇겠죠?”
연적하의 자신 없는 표정을 본 태상종의 적공 노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대종사님 너무 심려 마십시오. 진인은 종문의 허리이자, 미래를 짊어질 사람들입니다. 종문에서 진인을 포기할 리 없습니다.”
하루 만에 노조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어제만 해도 근심하던 그들이 오늘은 도리어 연적하를 위로했다.
최악의 경우 대종사가 강을 건너가서 배를 보내면 되니 생각이 유연해진 것이다.
노조들의 장담에도 연적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낙관함으로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늦어도 오늘 중으로 배를 태워야 해요. 유시 초(오후 5시)까지 기다려 보고, 그때까지 오지 않으면 옥천항으로 가서 배를 끌고 올게요.”
노조들도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멀리서 야수가 울부짖는 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인 건 사실이었다.
해가 완연하게 서편으로 넘어가면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진인, 노사, 방사 들이 연신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사천포에 도착한 지 오늘로 이틀째, 누가 봐도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백리하의 수평선을 응시하던 연적 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광명진천은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진인들이 사천포에서 오도 가도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꼭 천리안이 아니더라도, 뒤처진 진인을 위해 배를 보내는 건 상식이었다.
‘설마 진인들을 버린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떨쳐 냈다.
노조들의 말마따나 종문에서 진인들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문득 연적하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자신도 이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하는데 종문의 고수들은 오죽할까.
한순간 연적하의 눈이 번득였다.
‘오는군.’
수평선 끝에 먼지보다 작은 점이 어른거렸다.
목선이다.
세 척의 목선이 하얀 돛을 활짝 펼친 채 다가오고 있었다.
피식 웃던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청 노조가 급히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대종사님, 아직 시간이…….”
“배는 오고 있어요. 사천포 뒤쪽을 좀 살펴보려고요. 마물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서요.”
“아! 배가 오고 있습니까?”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걸음을 내디뎠다.
마치 축지술이라도 쓴 듯, 그의 신형이 노조들의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연적하는 야수의 포효가 들려 왔던 사천포 외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외곽의 산은 이미 마물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마물의 손에서 살아남은 야수들이 사천포 방면으로 조금씩 몰리고 있었다.
인간을 포식하던 야수들이건만 마물 앞에서는 먹이에 불과했다.
마물의 이동속도를 보니 그냥 두면 종문 고수들과 맞닥뜨릴 것 같았다.
품에서 청사를 꺼내 든 연적하는 대로 한복판에 버티고 섰다.
이쯤에서 일단 마물의 접근을 차단할 생각이다.
산에서 내몰린 야수들은 연적하를 보고는 다른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윽고 마물들이 대로에 출현했다.
그러나 연적하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눌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묘한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산에서 밀려 내려온 마물들에 선두의 마물들이 점차 앞쪽으로 내몰렸다.
급기야 인간의 앞까지 밀려난 마물들은 돌연 괴성과 함께 돌진했다.
“크아아!”
“캬아!”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으로 청사를 툭 던졌다.
순간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이무기가 대로 위에 등장했다.
덩치 큰 마물들도 이무기 앞에서는 작아 보였다.
이윽고 이무기와 마물들 간에 격렬한 전투가 시작됐다.
마물들이 이무기 몸체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었다.
무기가 없는 놈은 이빨로, 칼과 도끼를 든 놈은 칼과 도끼로 이무기를 공격했다.
마물들이 몸에 달라붙자 이무기가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이무기는 거대한 몸통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마물이 떨어져 나오면 집어 삼켰다.
콰드드득-! 콰득!
처음에는 분명 이무기가 우세했다.
마물들은 이무기의 몸통에 깔려 죽거나, 이무기의 먹이가 되었다.
그러나 마물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시간이 지나자 이무기는 마치 개미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펄떡거렸다.
싸움을 시작한 지 일각(15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이무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반면 마물들은 더 미쳐 날뛰었다.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연적하가 손을 내밀었다.
힘에 부쳐 헐떡이던 이무기가 단검으로 변해 연적하의 손에 빨려 들어왔다.
이윽고 청사의 검끝에서 진검강이 뻗어 나갔다.
진검강으로 청사를 삼 척 길이의 검으로 만든 연적하는 천산검영을 펼쳤다.
차라라라락-.
대로 위의 하늘이 ‘검의 화신(化身)’으로 가득 찼다.
위에서 전해지는 기이한 압력에 눈치 빠른 몇몇 마물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아래로 까닥였다.
순간 하늘에 떠 있던 ‘검의 화신’들이 빛살처럼 아래로 내리꽂혔다.
콰콰콰콱! 콰쾅! 쾅-!
‘검의 화신’에 직격당한 마물과 대로, 나무, 바위들이 폭발했다.
반신급의 생령으로 만든 ‘검의 화신’은 진검강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단 일검에 대로가 휑하니 비워졌다.
하지만 맞닿은 산에서 새로운 마물들이 꾸역꾸역 내려와 대로를 채웠다.
그 뒤로는 같은 일이 반복됐다.
새로 등장한 마물들은 본능적으로 싸움을 회피했지만, 마물이 포화 상태가 되면 돌격했다.
연적하는 이무기를 꺼내지 않고 천산검영으로 마물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마물들은 연적하와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마물들은 대로에서 멀어짐으로 연적하와의 싸움을 피했다.
마물들의 전진을 막아야 할 연적하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물들이 사천포로 가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연적하는 사천포를 지키기 위해 미친 듯 뛰어다니며 칼을 휘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휙 몰아닥친 서늘한 바람에 문득 정신을 차린 연적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게 타들어 가는 노을 아래 산처럼 쌓인 마물의 시체가 보였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호에서도 이렇게 싸운 적이 없는데, 아무 연고도 없는 구주에서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마물의 시체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종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업이라면 업이다.
뿌우웅-.
때마침 사천포에서 출항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가 들렸다.
연적하는 즉시 청사를 거두어들인 후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