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2
712회. 광명진천님의 뜻을 따르겠다.
웅천주.
센라성.
혈주종 종산 퉁룽챈녹의 천역(天域).
마족 오로보스는 천문을 더럽히기 위한 제물로 사람만 한 게 없다고 믿었다.
브로크(난쟁이)족이 단순히 육체적으로 더러운 걸 떠올렸을 때, 오로보스는 창조신을 가장 욕보이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건 사람을 제물로 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창조신에게 천문의 관리자로 선택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천문처럼 인간도 선별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야 말이 된다.
결과적으로 천문, 인간, 구주 이 셋은 창조신에게 선택받은 것들이다.
천문이 구주의 종문에 세워졌다는 게 그 증거다.
그러므로 창조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의 피를, 창조신에게 뿌라는 것보다 더 추악한 짓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건 오로보스의 착각이었다.
마족인 그는 구주에서 일어난 인신공양(人身供養)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
설사 알았다 해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오로보스의 지시로 마물들이 웅천주의 밀림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잡아 왔다.
일 남 일 녀를 본 브로크족의 우두머리 드베르그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인종인 그에게 인간은 브로크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물까지 제물로 바친 마당에 인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마족들이 브로크족을 마물의 먹이로 줄 것이 분명했다.
인간 남자가 난쟁이들이 들고 있는 쇠망치를 힐끔힐끔 보았다.
그는 난쟁이들이 왜 마족과 함께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주의 인간에게 난쟁이족은 엉뚱하고 재밌는 사람들인 까닭이다.
브로크족들이 머뭇거리자 드베르그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남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망치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빠각-!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고꾸라졌다.
“꺄악!”
숨죽이고 보던 여자가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뒤쪽에 서 있던 브로크족 하나가 시끄러운지 인상을 찡그리더니 망치를 휘둘렀다.
빡-!
여자도 남자 옆에 픽 쓰러졌다.
드베르그가 다른 브로크족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침통한 얼굴로 서 있던 브로크들이 남자와 여자를 천문 뒤로 질질 끌고 갔다.
잠시 후 그들은 거대한 항아리에 인간의 피를 한가득 채워 왔다.
인간의 피를 본 드베르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미안하오.’
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내 훌훌 털어 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보다 당장은 천문의 축성을 푸는 게 더 급했다.
축성을 풀지 못하면 자신도 인간 포로의 신세를 면치 못할 터였다.
드베르그는 인간의 피로 창조신이 분노하기를 바랐다.
그런 기대와 바람을 안고 바가지로 피를 퍼서 천문에 뿌렸다.
촤악-! 촥-!
천문이 피에 물든 순간 드베르그는 실패를 직감했다.
이번에는 그 기이한 검은 구름도 몰려오지 않았다.
구더기흑저의 피를 뿌렸을 때 일어난 일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피가 구더기흑저의 피보다 덜 더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나 천문 위의 하늘은 맑았다.
인간 남녀의 처참한 죽음이 덧없게 느껴질 정도로.
하늘을 힐끔거리던 브로크족 중에 하나가 바가지를 들고 와서 같이 뿌렸다.
천문의 하단부가 피로 흠뻑 젖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오로보스와 마족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황한 브로크들이 천문에 달라붙었다.
바가지가 없는 브로크 들은 맨손으로 피를 떠서 천문에 발랐다.
삼십여 명의 브로크들이 인간의 피에 물들었다.
이윽고 브로크들은 망치로 피에 젖은 천문을 두드리며 ‘오무아’를 불렀다.
‘오무아’는 브로크족이 쇠를 제련할 때 부르던 노래다.
‘오무아’를 부르다 보면 황홀경에 빠져 노동의 고통을 잊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인신공양에 따르는 정신적인 고통을 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살해한 뒤의 여파 때문일까?
본래 브로크족의 ‘오무아’는 정열적일 뿐 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점차 흥분한 브로크들은 인간의 피를 제 몸에 뿌리거나, 가지고 다니던 쇠못으로 자신의 몸을 찍어 상처를 내기도 했다.
급기야 ‘오무아’의 기이한 음률에 맞춰 자해를 하던 브로크 중에 하나가 제 목을 찔렀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황홀경에 빠진 브로크들은 옆에서 동족이 죽어 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제 목을 찔렀던 브로크가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체 좌우편에서 브로크들이 연신 쇠못으로 제 가슴을 그어 댔다.
마왕 천자마의 장자방(張子房)인 오로보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친…….’
평소에 그렇게 순하던 난쟁이들이 미쳐 날뛰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정신 나간 마족들이나 할 법한 짓을 난쟁이들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설마 창조신의 저주인가.’
저주로 난쟁이들이 미쳐 날뛰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왜 제 목을 쇠못으로 찔러 죽느냐 말이다.
문득 오로보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브로크들의 우두머리 드베르그가 눈에 들어왔다.
똑똑한 척하던 드베르그 역시 다른 난쟁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도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쇠못으로 가슴을 긁어 대고 있었다.
살거죽이 쩍쩍 갈라지고 피가 튀었지만 그의 동작은 점점 과격해졌다.
“저러다 다 뒈지겠군.”
중얼거리던 오로보스가 옆에 있던 마족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마족이 허리춤에서 칠흑처럼 검은 뿔나팔을 꺼내 힘차게 불었다.
뿌우우우-.
뿔나팔 소리는 단숨에 브로크들의 노래를 집어삼켰다.
황홀경에 빠져 자해를 하던 브로크족들이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췄다.
브로크족의 노래 ‘오무아’가 잦아들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정신을 차린 드베르그는 황망한 얼굴로 만신창이가 된 동족을 보았다.
브로크족 태반이 중상을 입었고, 몇은 벌써 죽어 있었다.
평소처럼 동족들과 열심히 ‘오무아’를 불렀을 뿐인데 이런 결과라니!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는 드베르그에게 오로보스가 다가갔다.
“미친 짓은 잘 보았다. 그래서 축성은 풀렸느냐?”
드베르그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지라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오로보스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다그쳤다.
“축성이 풀렸냐고 물었다.”
“아, 아직,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드베르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브로크족들이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는 망치를 말아 쥐고 피에 절은 천문으로 다가갔다.
콰앙-!
망치로 전해지는 반탄력과 가벼운 소리에 드베르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문의 축성은 그대로였다.
오로보스가 흠집도 나지 않은 천문을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축성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마물에, 인간에, 심지어 너희 난쟁이들의 목숨까지 바쳤는데 풀리지 않았다고? 허면 풀 수 없다는 소리가 아니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오로보스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천문을 옮길 수 없다는 말이로군. 맞느냐?”
“예, 그것은 저희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보시다시피 창조신의 축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천문은 천하의 그 누구도 옮길 수가 없습니다.”
“잘 알겠다. 옮길 수가 없다니 안됐구나.”
드베르그는 왠지 불길한 느낌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로보스가 드베르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
이윽고 오로보스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천역을 지키던 백여 명의 아브할(마귀종)들이 앞으로 나섰다.
사람의 몸에 도마뱀의 머리를 가진 아브할들이 입맛을 다셨다.
오로보스가 손을 아래로 내리자 아브할들이 개떼처럼 난쟁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살려 주십쇼!”
“악!”
폭발하듯 한차례 브로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쪼그리고 앉은 아브할들 사이로 ‘쩝쩝’하고 고기 씹는 소리가 요란했다.
오로보스는 탐식 중인 아브할들을 지나쳐 천문으로 다가갔다.
마물에, 인간에, 난쟁이의 피까지 덧칠해진 천문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천에도 이만한 흉상(凶狀)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흉한 몰골을 하고도 축성이 풀리지 않았다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오로보스는 난쟁이들이 흘린 무쇠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문 주변에 있는 바위를 툭 때렸다.
쾅!
폭발음과 함께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난쟁이들을 뜯어 먹던 아브할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연이어 오로보스는 망치를 들고 천문으로 다가가 힘껏 휘둘렀다.
콰앙-! 같은 바위이건만 천문에는 긁힌 흔적도 남지 않았다.
“허!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네…….”
마왕 천자마에게 ‘천문을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할 걸 생각하니 암담했다.
***
한산주.
삼채성 옥천항.
삼환각 객청.
광명진천의 숙소인 삼환각으로 연적하 대종사와 세 종문의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객청에 모인 종문 고수들은 직감적으로 그들이 천문의 문제로 불려왔음을 알았다.
모두가 연적하 대종사를 힐끔거렸다.
광명진천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연적하가 곡분조 노조에게 손짓을 보냈다.
곡분조 노조가 급히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예. 대종사님.”
“천리구(千里鳩)는 다 왔어?”
“예.”
순간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대종사인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예’란다.
자근자근 밟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곡분조 노조도 광명진천의 지시로 그랬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래?”
곡분조 노조가 막 답하려고 할 때 광명진천이 객청으로 나왔다.
세 종문 대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광명진천에게 예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곡분조 노조의 대답은 뒤로 미루어졌다.
상석에 앉은 광명진천의 시선이 곡분조 노조를 향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더냐?”
“대종사님께서 천리구의 결과에 대해 물으셔서 답하려던 참입니다.”
광명진천이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곡분조 노조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어제까지 여섯 종문의 회신을 받았습니다. 법요종, 광염종, 혈주종, 무극종, 천태종, 소요종에서는 ‘광명진천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지만 객청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태상종, 천지종, 천뢰종의 대표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대종사와 각을 세운 법요종, 광염종은 그럴 수 있다지만, 대종사 휘하의 네 개 종문이 ‘광명진천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한 것은 주제넘는 짓이었다.
태상종의 진표 존자가 연적하의 안색을 힐끔 살폈다.
자신도 광명진천의 제안에 따르자는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대종사를 통해서였다.
‘대종사가 아니라 광명진천님의 뜻을 따르겠다니…….’
자존심 강한 대종사를 대놓고 무시했으니 좋게 넘어가긴 틀렸다.
혈주종이야 노조들만 남았으니 중심을 잃고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극종, 천태종, 소요종의 존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답을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진표 존자가 천뢰종의 광성 존자를 힐끔 보았다.
광성 존자의 안색은 당사자인 대종사보다 더 좋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광명진천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여섯 종문의 답은 잘 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종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예 대놓고 연적하 대종사를 무시하는 처사에 객청의 분위기가 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