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2
762회. 유언비어가 많아서 잘 새겨 들어야 된다니까
조양성에서 혈사자 바르마스를 죽인 연적하는 남은 마물 토벌을 천족과 종문에 맡기고 천지종으로 향했다.
사실 수약주의 마물 토벌은 세 개 종문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부군 사령관인 바실리오 엘다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겠다며 마물 토벌에 앞장섰다.
물론 그건 남부군 사령관의 책임감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사실 그녀는 대종사와 동행하려 했지만 참모들의 만류로 그냥 남았다.
참모들이 만류한 이유는 간단했다.
천족이 구주의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천문(天門)을 양도받기로 했는데, 정작 그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대종사였다.
참모들은 그런 상황인 만큼 마무리라도 천족이 지어야 한다고 남부군 사령관을 설득했다.
여하튼 남부군 덕분에 연적하는 홀가분하게 조양성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남부군이 보유하고 있던 철선을 타고 무량하를 거슬러 올라갔다.
최북단 웅천주의 북부대수림에서-영천주를 가로질러-수약주의 조양성까지 쉬지 않고 날아온 일로 피로감이 느껴져 그냥 배에 몸을 맡긴 것이다.
거대한 철선에 선객은 연적하 하나뿐이었다.
조양성에서 출발하고 사흘 정도 지나자 철선은 영천주로 접어들었다.
정오 무렵.
선수(船首)에 늘어져 있던 연적하는 근처를 지나던 선원을 불렀다.
“예, 대종사님.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뭐 좀 물어보려고요. 한산주의 이포진까지 얼마나 걸리죠?”
“선장님이 쉬지 않고 운항을 하고 있으니 보름 후면 도착할 겁니다.”
“보름이라. 빠르네요?”
“예, 예. 본래는 한 달 이상 걸립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약주의 조양성에서 한산주의 이포진까지 가는 데 십팔 일이면 정말 빠른 속도였다.
물론 자신은 운종술로 그보다 먼 거리를 닷새 만에 왔지만 말이다.
벌써 구월 십 일.
보름 후에 도착이면 구월 이십오 일이니 조금 늦는 감이 있다.
‘이대로 쭈욱 갔으면 좋겠는데…….’
철선이 빠르다 해도 자신의 운종술에 비교할 수 없으니 곧 떠나야 할 모양이다.
“더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선원이 곁눈질로 조심스럽게 대종사를 보았다.
마신과 마왕에 이어 혈사자 바르마스까지 일검에 쳐 죽였다던가?
소문이 자자한 구주 종문의 대종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천족들도 어려워하는 걸 보면 소문이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겉모습은 의외로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양새다.
“없어요. 가서 일 보세요.”
“예, 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아무 때라도 불러 주십쇼.”
선원은 몇 번이고 굽실거리다가 아쉬운 얼굴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아! 좋구나.”
이게 얼마 만의 여유인지 모르겠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배에 있으려니 지나온 날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고, 은원을 맺었다.
현천문의 공지섭과 공지유 남매, 소요종의 입문 동기들, 소격각의 사람들, 그리고 비경에서 구해 준 진인들과 자신의 손에 죽은 존자와 제군, 진신(眞神)들까지.
돌이켜 보면 강호에서보다 더 많은 은원을 맺었고,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죽이기도 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게 ‘뒤틀린 욕망’이라 그런지 매사가 극단적이었던 것 같다.
욕망이 삶을 지배한다고나 할까.
그래, 그게 맞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에 비하면 오봉산의 녹림도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정도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는 운종술의 주법을 읊조렸다.
그의 발아래에 하얀 구름이 자욱하게 몰려들었다.
사흘간 푹 쉬었으면 충분하다. 이젠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윽고 철선에서 구름 한 덩어리가 둥실 날라올랐다.
솜털처럼 하얀 구름은 무량하를 따라 서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
철선을 떠난 지 사흘 뒤.
한산주 호암성.
소곡진.
석양 무렵.
운종술로 무량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마치 겨우내 말라 있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언제부터인지 강변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리하 서편으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영천주 끝에서부터 하나 둘 보이더니 한산주에 이르러서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해낸 것 같아 흐뭇했다.
‘가만! 이제 음식점도 열었겠는데?’
더 이상 선단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였다.
선단만 먹은 지도 벌써 사흘째.
철선을 떠난 뒤로 일반 음식은 냄새도 맡지를 못했다.
구름 위에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연적하는 즉시 방향을 강변으로 틀었다.
잠시 후 연적하는 사람이 없는 숲 한가운데로 깃털처럼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숲을 헤치고 길로 나가니 소곡진이라는 표지목이 보였다.
조금 전 구름 위에서 내려다본 강변 마을이 소곡진이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에 섞여 조금 걷다 보니 높게 솟은 목책이 나왔다.
소곡진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그러나 소곡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보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머리와 등에 이고 진 짐을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주변에 산이 없으니 무리해서 길을 가는 것이다.
산이 없다고 야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동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연적하는 안쓰러운 눈으로 사람들을 보다가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
소곡진은 하늘 위에서는 고만고만하게 보이더니 의외로 규모가 컸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항구도시가 다 컸던 것 같다.
배를 통해 드나드는 사람과 물류가 많다 보니 내륙의 마을보다 큰 것이리라.
마을 중앙에 이르러 보니 거리 좌우편의 점포가 대부분 문을 열었다.
백리하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복구도 빨랐다.
그는 가장 손님이 많은 음식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이 어린 점원이 쪼르르 다가왔다.
“무엇을 드릴까요?”
“뭐 뭐 되는데?”
연적하가 묻자 점원이 한쪽 벽에 적혀 있는 이십여 개의 요리 이름을 가리켰다.
“저기 적혀 있는 요리 전부 다 돼요.”
“저게 다 된다고? 재료가 다 있어?”
“주인 어르신이 부지런하세요. 새벽부터 천지사방을 다니면서 재료를 사 오시거든요.”
“그래? 음, 뭐가 맛있냐?”
“닭구이, 돼지볶음, 소곱창, 어탕요. 달걀 볶음밥도 괜찮아요.”
“다 줘.”
“전부 다요? 혹시 일행이 계세요?”
“혼자 먹을 거야.”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남으면 싸 가지 뭐.”
“아, 예. 그럼 주문하신 요리 가져올게요.”
어린 점원은 기분이 좋은지 생글거리며 식당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사라졌다.
땅거미가 뉘엿뉘엿 지자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음식을 기다리는 연적하의 귓가로 손님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주로 종문과 천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 대부분은 종문의 대종사가 이룬 업적과 천족에 대한 감사였다.
“종문의 대종사가 마신을 죽여서 마천이 깨갱 하고 물러나는 거라면서?”
“그렇지. 대종사의 키가 십 척(약 3미터)이래. 마신을 아주 찍어 눌렀다는구먼.”
“이야! 십 척이면 마물의 크기네? 사람 맞아?”
“수련만 만 년을 했다니까 사람은 아니지.”
“만 년? 그럼 진신(眞神)이겠네. 소요종 출신에서 진신이 나온 게 얼마 만이지?”
“이 사람아. 그걸 누가 세고 살아?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사는 거지.”
“자네는 어디서 들었는데?”
“천중협에 있을 때 옥천항에서 대종사를 봤다는 사람과 만났거든. 양하선박의 손문정이라고. 자네도 몇 번 오가며 봤을 텐데?”
“아! 그 사람? 그이가 옥천항에 있었어?”
“거 왜 종문에서 한창 백리하의 배를 징발한 적이 있잖는가. 그때 배를 가져다주면서 봤다는구먼.”
“그럼 사실이겠네. 요즘은 워낙 유언비어가 많아서 잘 새겨들어야 된다니까.”
창밖을 보며 한 귀로 흘려듣던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강호나 이곳이나 소문은 정말 믿을 게 못 된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키가 십 척이네, 만 년간 수련을 했네’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연적하는 사람들의 헛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연신 손을 놀렸다.
오랜만에 사 먹는 음식은 정말 꿀맛 같았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뒤 품을 더듬던 연적하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차차!’
계산을 하려고 보니 돈이 없다.
종문의 제자가 돼서도 한동안은 습관처럼 돈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남궁연을 만날 때까지만이다.
비경에서 그녀와 재회하고 난 뒤로 돈과 거리가 멀어졌다.
더 이상 필요가 없어 신경 쓰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항상 대접받으며 살다 까마득히 잊었다.
그러다 돈을 낼 때가 되어 찾아보니 이게 웬걸?
품 안에서 나온 건 선단(仙丹)이 든 주머니가 전부였다.
식사를 마친 연적하가 혼자서 오두방정을 떨자 이번에는 주인이 다가왔다.
“손님, 뭐 더 필요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아, 예. 그러시군요. 혹시 지금 가실 거면 계산 도와 드리겠습니다.”
정중한 말이지만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엄정한 태도가 무전취식자를 많이 경험한 모양이다.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돈주머니를 깜빡 잊고 나와서 그러는데, 혹시 다른 것으로도 계산이 될까요?”
“물론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됩니다.”
주인, 서동주는 평정을 잃지 않았다.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조금 넘치게 받으면 그뿐이니 화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무전취식자들에 비하면 꽤나 양심적인 청년이었다.
“그런데 얼마를 드려야 하죠?”
“은자 세 냥 하고 스무 푼입니다만 스무 푼은 깎아 드리지요. 은자 세 냥만 주십시오.”
“은자 세 냥이라…….”
중얼거리던 연적하는 선단 주머니에서 세 알의 선단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노련한 서동주는 바로 선단을 받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종문의 선단이에요. 그거 한 알이면 못해도 금 한 냥은 될걸요?”
서동주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나가 금 한 냥은 된다면서 세 개나 줍니까? 이거 정말 종문의 선단이 맞습니까?”
“선단 맞고요. 세 개를 준 건 하나만 주면 정이 없어 보여서랄까?”
‘이 사람이 어디서 되지도 않을 소리를…….’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서동주는 일단 청년에게서 선단을 넘겨받았다.
이게 정말 금 한 냥의 가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받아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친이 약제사니 보면 바로 그 가치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왜요? 그거 선단 맞아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연적하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손님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웃는 게 영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동주는 아들을 불러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라 했다.
어린 점원이 다람쥐처럼 뒷문으로 사라지자 연적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하. 아들인가 봐요? 아주 똘망똘망하게 생겼네요.”
서동주는 피곤한 얼굴로 선단만 내려다볼 뿐 뭐라 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어린 점원이 노인과 함께 뒷문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손님이 식대를 대신해 선단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이게 정말 선단인지 좀 봐주세요.”
서동주가 부친에게 간단히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선단을 건넸다.
약제사인 서원정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손톱으로 선단을 긁어서 입안에 넣었다.
싸아아아-.
가루가 혀 끝에 닿자마자 청량한 기운이 해일처럼 일어나 뒷골을 관통했다.
‘헉! 이, 이건…….’
서원정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세속에 흘러나온 선단에도 상중하가 있건만, 이건 그것마저도 초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