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9
779회. 나 미친 늙은이 아니야
심통이 원망을 사지 않으려는 연적하를 향해 말했다.
“공자님. 본래 당하는 사람은 손가락 하나만 부러져도 두고두고 원망하는 법입니다. 무슨 그런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그런가?”
귀가 얇은 연적하는 심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지 중에 일부가 부러지거나 잘리고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렇다니까요. 그나저나 당가면 석경장과는 반대편인데 어떻게 할까요? 가모님을 생각하면 남궁세가로 가는 게 우선이지 싶은데.”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석경장에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아기를 낳으려면 남궁세가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 노인과 월아, 금아를 구하는 일이 늦어지게 된다.
‘어쩐다.’
대답을 기다리던 심통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몸은 좀 회복되셨습니까? 어제는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 하시던데.”
“몸은 풀렸는데 영기가 좀 더디네?”
“영기가 더디다고요?”
“어, 그곳에서는 반 시진(1시간)쯤 운기조식을 하면 회복이 됐는데.”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심통과 남궁연을 보았다.
왕들의 하늘에서는 반 시진이면 거뜬했는데 지금은 체감이 될 정도로 느렸다.
“여기서는요?”
“많이 느려. 답답할 정도로.”
“회복은 되는 게 맞습니까?”
“어, 운기조식을 하면 착실하게 회복은 돼. 심 노인도 그건 알아 둬. 그곳에서와 달리 영기의 회복 속도가 많이 느려. 일상생활 중에는 아예 회복이 안 되고. 마치 안 되는데 억지로 채워 넣는 기분이야.”
“왜 그럴까요?”
심통이 황망한 눈으로 연적하와 남궁연을 보았다.
곰곰 생각하던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영기라서 그런지 몰라요.”
“영기라서 그렇다고요?”
심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호의 ‘내력’보다 더욱 뛰어난 게 왕들의 하늘에서 터득한 ‘영기’인 까닭이다.
“이곳과 그곳의 주신(主神)은 달라요. 구주에서 옥황상제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그나마 가장 비슷했던 게 구전범천의 이명(異名)인 대자재천(大自在天)이었죠. 그 이명 외에 우리가 알 만한 신은 없었어요.”
“가모님, 그것과 영기의 회복이 더딘 게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영기란 영적인 기운, 즉 본질적으로 신의 영역에 속한 기운이에요. 만약 두 세계의 주신이 다르다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예요. 마치 한 사람이 음과 양의 내공을 수련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예에? 그럼 영기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운기조식으로 회복되었다니 원천적으로 막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뒤따를 거예요. 영기의 회복이 더디다든지 하는 식의.”
“휴우!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제는 영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문득 남궁연이 연적하를 보았다.
“적하야.”
“예?”
“구천검령은 괜찮니?”
“예, 기경팔맥과 신맥에서 이전과 같은 기운이 느껴져요.”
“다행이구나. 창조신의 축성(祝聖)이 너무 강해 구천검령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저도 그것 때문에 조마조마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검령의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연적하가 말을 흐렸다.
구천검령이 구주에 있을 때와 조금 달라서다.
“왜?”
“기운은 느껴지는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요.”
“감정이?”
검령이 없는 심통은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그와 달리 남궁연의 얼굴은 심각했다.
검령은 인격적인 존재로 신비지경에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다 마침내 검령과 하나가 되면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바뀐다.
연적하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소통의 단절’을 의미했다.
“공자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검령을 몸에 받아들이면 희로애락(喜怒哀樂) 같은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거든. 그런데 그게 느껴지지 않아. 누님은 어때요?”
그제야 남궁연은 급히 자신의 검령에 의식을 집중했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검령도 깊이 잠든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님도 그래요?”
“그러네.”
남궁연은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검령이 영적인 존재라서 그러는 걸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심통이 끼어들었다.
“그럼 이제 공자님의 그 검령을 못 보게 되는 겁니까?”
연적하와 심통의 시선이 남궁연에게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에게 남궁연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존재였다.
“그건 아닐 거야.”
“휴우!”
연적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에게 감정을 나누던 구천검령은 단지 신검(神劍)이 아니었다.
“언제쯤 검령과 다시 소통할 수 있을까요?”
“주신이 허락하면 될 거야.”
“옥황상제요?”
한때 무당파에 입문해 수련했던 연적하는 바로 옥황상제를 떠올렸다.
남궁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옥황상제든 누구든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신이 허락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 신’이라는 말에 연적하의 눈이 반짝였다.
“구천현녀도 될까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구천현녀에게 도와 달라고 빌면 되겠네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옆에서 심통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전 같았으면 웃었을지 모르지만 ‘왕들의 하늘’을 다녀온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아직까지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런데 공자님, 가모님,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마차를 몰아야 할 그는 그게 궁금했다.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운종술로 장거리를 갈 정도의 영기가 모이지 않은 지금, 영기는 물론 체력까지 고갈시켜 가며 단거리를 가느니 마차가 훨씬 나았다.
그럴 경우 남궁연과 당가 중 어느 하나를 먼저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아기는 마을의 의원에 들러서 낳아도 되니까, 당가 먼저 가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연적하의 생각은 달랐다.
어제 만난 백 의원은 ‘임부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녀의 경지가 높고, 마차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건 홀몸일 때의 이야기다.
작은 충격에도 배를 부둥켜안고 끙끙거리는 남궁연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심 노인.”
“예.”
“중양검문에 가서 당가는 사천무림 쪽이든 찾아가 내 말을 전하라고 해. 석경장 사람들을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어느 문파건 멸문시켜 버리겠다고.”
“예!”
자리에서 일어난 심통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남궁연은 단호한 연적하의 태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언법(言法)을 수련하는 그가 내뱉은 말이니 반드시 지킬 터였다.
아니, 언법이 아니더라도 그의 경지에서는 허튼소리를 하지 못한다.
말은 곧 의지와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꺾인 의지는 두 번 세 번 꺾이기 마련이므로 절대로 번복하지 않는다.
‘사천무림이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할 텐데…….’
하지만 당가가 석경장에 맞선다는 걸 알고도 손을 잡았다면 연적하의 경고 또한 무시할 가능성이 컸다.
사천무림에 피바람이 분다면 그건 그의 잘못일까? 사천무림의 잘못일까?
한숨을 내쉬던 남궁연이 연적하를 보았다.
“적하야.”
“예, 그런데 누님이 뭐라고 해도 이번 일은 내 뜻대로 할 거예요.”
그는 남궁연이 만류할까 봐 미리 선을 그었다.
그러자 남궁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다만 이것만은 명심했으면 해. 우리는 ‘왕들의 하늘’을 거치면서 살생에 무디어졌어. 생명을 해치는 일에 두렵고 떨리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마. 그걸 잊으면 너도 나도 ‘왕들의 하늘’에 있던 진신(眞神)들 과 다를 바 없게 돼. 나는 우리가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않기를 바라.”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는 말이죠?”
“그래.”
“명심할게요.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남궁연이 애틋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태풍이나 산더미같이 일어난 해일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그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날이 있으리라.
***
그로부터 사흘 뒤.
부산현.
초저녁의 어둠을 뚫고 작은 마차 한 대가 관도 위를 천천히 이동했다.
연적하 일행의 마차였다.
창밖을 내다보던 연적하가 마부석의 심통이 들으라고 소리를 쳤다.
“심 노인! 그래서 내가 그냥 쉬자고 했잖아! 벌써 해가 떨어졌는데 어쩔 거야!”
“분명히 부산현 십 리(약 4킬로미터)라는 표지목을 봤다니까요! 공자님도 그냥 가자고 하셨잖습니까!”
“그야 심 노인이 십 리 어쩌고 하니까 그랬던 거지. 십 리가 아니라 오십 리(약 20킬로미터)는 지난 것 같은데, 이대로 계속 갈 거냐고!”
“그럼 어쩝니까? 마을이 안 나오는데.”
“마을 찾다가 날 새겠네! 적당한 곳에 세우고 노숙을 하자니까! 누님이 힘들어서 식은땀을 흘린다고!”
“…….”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던 심통은 그제야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묘하게 적당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제길! 분명히 부산현 십 리라고 적힌 표지목을 봤는데. 왜 안 나오지?’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적당한 장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지 않고 들려오는 연적하의 악다구니 속에 심통의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러기를 일각(15분)여.
미친 듯 좌우를 살피고 있던 심통의 눈에 멀리 불빛이 들어왔다.
“공자님! 저쪽에 불빛이 보입니다!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닥치고 마차나 몰아! 누님 숨넘어가겠어!”
“예! 예!”
급한 마음에 심통이 고삐를 한차례 거칠게 흔들자 마차가 속도를 냈다.
쿠드드드-! 쿵-!
바퀴에 돌이라도 걸렸는지 마차가 한차례 뒤뚱거렸다.
순간 마차 안에서 역적하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누굴 죽이려고 그래? 조심해서 못 가?”
‘헉!’
깜짝 놀란 심통이 고삐를 당기자 마차 속도가 뚝 떨어지며 안정감을 되찾았다.
심통은 마차의 흔들림에 바짝 신경 쓰며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마차는 낡은 토지신묘 앞에 멈춰섰다.
토지신묘의 상태로 보아 사람이 돌보지 않은 지 꽤나 오래된 것 같았다.
심통이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짧은 거리를 오는 동안 어찌나 긴장했던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모두가 ‘누님 숨넘어간다’는 연적하의 말 때문이다.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쉬었다가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적하가 조용했다.
가모에게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심통은 훌쩍 몸을 날려 마차 문 앞에 내려섰다.
“공자님?”
그가 다급하게 부르자 문을 열고 연적하와 남궁연이 차례로 나왔다.
그런데 식은땀을 흘리니, 숨넘어가느니 하던 남궁연의 안색이 너무 멀쩡했다.
“심 노인,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 어디 아픈 데라도 있어?”
“가모님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제 아프다고 했어?”
“숨이 넘어간다고 하셨잖습니까?”
“아닌데? 나는 ‘숨이 넘어가겠어’라고 했을 뿐인데?”
뻔뻔한 연적하의 태도에 심통은 뒤늦게 그가 자신을 놀렸다는 걸 알았다.
남궁연이 멍하니 서 있는 심통을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심통은 그래도 가모의 상태가 괜찮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돌아섰다.
토지신묘 안에는 선객이 있었다.
모닥불에 뭔가 열심히 굽고 있던 노인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말했다.
“뭘 그렇게 봐? 나 미친 늙은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