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8
778회.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심통은 심화전장에서 금 부스러기를 은자로 바꾸자마자 급히 객잔으로 돌아갔다.
연적하에게 당가가 석경장을 멸문시켰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객잔으로 들어선 심통은 마침 식당에 나와 있던 연적하와 남궁연을 보고 소리부터 내질렀다.
“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심통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한 연적하가 시큰둥한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 이젠 나잇값을 할 때도 됐잖아?”
“지금 나잇값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젠데?”
“전장에서 방금 들었는데 당가 놈들이 석경장을 멸문시켰다고 합니다.”
“당가가 뭘 어떻게 했다고?”
너무도 뜻밖의 말에 연적하는 분명히 듣고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가 놈들이 석경장을 멸문시켰답니다. 그 일로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은 원수지간이 됐고요.”
“…….”
연적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차갑게 굳어 마침내 한기가 뚝뚝 떨어졌다.
“당 노인과 월아, 금아는?”
그제야 심통은 ‘아차!’ 싶은 얼굴로 답했다.
석경장이 멸문됐다는 말에 놀라고 기가 막혀 정작 중요한 걸 깜빡 잊었다.
“끙!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 부분은 미처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근처의 무림 방파에 가서 알아봐. 당 노인과 월아, 금아가 어떻게 됐는지. 석경장이야 다시 지으면 그만 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잖아.”
“예.”
중양검문의 호위들을 떠올린 심통은 다시 객잔 밖으로 튀어 나갔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당 노인과 월아, 금아는 죽지 않았을 테니까.”
“정말요?”
“당연하지. 당 노인과 월아, 금아는 당가 고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해. 분명히 손쉽게 제압당했을 거야.”
“당가에서 그들을 잡아갔을까요?”
“아마도. 당세호는 우리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손대지 못할 테고.”
“그러니까 아직은 안전하다?”
“내 생각은 그래.”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에서 석경장의 주력을 없앴다면 모를까?
말단만 몇 명 잡아 놓고 마치 싸움이 끝난 것처럼 포로를 처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중양검문.
오전 연공 시간임에도 중양검문은 조용했다.
저 유명한 구천노도 심통이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화전장에 나가 있던 무사들의 말에 의하면 허공섭물은 기본이요,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금까지 녹인다던가!
중양검문의 제자들은 행여나 발소리라도 날까 싶어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녔다.
객청.
염소수염의 노인 앞에 초로의 남자 셋이 앉아 있다.
심통과 중양검문의 문주 중양일검 양진홍,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다.
“노부가 조금 전 심화전장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중양검문의 호위가 그러더군. 당가에서 석경장을 멸문시켜서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이 원수지간처럼 지낸다고. 그게 사실 이냐?”
심통의 말에 양진홍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게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멸문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고, 이 년 전에 당가에서 석경장을 잠깐 점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멸문은 아니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아무리 당가라고 해도 석경장 뒤에 남궁세가와 녹림이 있는데 멸문이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제가 여량검문의 문주님에게 듣기로 당가에서 공격했을 때 석경장이 거의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때 석경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다고 하더냐?”
“당가에서 석경장의 장주와 담판을 지으려고 했지만 장주가 오지 않아 철수를 했는데, 그때 석경장에서 당가의 반도 하나와…….”
양진홍이 말을 끊고 슬쩍 심통의 눈치를 봤다.
심통이 계속 말하라는 듯 턱짓을 하자 양진홍은-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고개를 숙였다.
“심 대협의 제자 둘을 당가로 잡아갔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심통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양진홍과 그의 형제들은 머리털이 쭈뼛서는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당가에서 끌고 간 석경장 사람들에 대한 다른 소식이 있느냐?”
“남궁세가에서 지난 이 년 동안 지속적으로 풀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만 당가에서 거절했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은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의 분쟁으로까지 발전한 상황입니다.”
“사천 지역의 무림 방파들이 당가의 편에 섰던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니까요. 사천 지방에서 당가의 위치는 독보적이지 않습니까.”
“호천맹은? 그들은 구경만 했느냐?”
호천맹은 칠파일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파의 연합단체다.
당가는 정사지간이라 불리지만 근 본은 정파였으니 호천맹의 지휘를 따라야 했다.
“호천맹은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요즘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에서 독자적인 맹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쳤군. 유명교는 완전히 잊은 모양이야?”
심통은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사파가 힘을 합쳤어도 막지 못한 유명교를 두고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으로 분열하다니?
“저어, 대협. 유명교는 이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삼년지약도 일 년밖에 남지 않았을 텐데 왜 못 건드려?”
“소식을 못 들으셨나 봅니다? 유명교는 황실에서 인정한 유일한 호국(護國)의 종교로 모든 종파가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뭐라고? 황실에서 인정한 유일한 호국의 종교라고?”
“모르셨나 보군요? 팔황신모는 나라의 대법사 자리에 올랐습니다. 호천맹이 유명무실해진 것도 그 때문이고요. 황제가 인정한 호국의 종교를 상대로 싸웠다가는 반역죄를 뒤집어쓰니까요.”
“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먼. 유명교가 유일한 호국의 종교라니?”
심통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이 ‘왕들의 하늘’에서 머무르던 이 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중양검문의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심통을 힐끔거렸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기에 세사 돌아가는 걸 저리도 모른단 말인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듣고 있던 심통이 물었다.
“허면 삼년지약이고 나발이고 이젠 따지는 사람도 없겠구나?”
양진홍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예, 유명교를 욕하면 금의위가 잡아가는 세상입니다. 대협께서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라? 무림인이 언제부터 관인을 두려워했다고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심통이 불쾌해 하자 양진홍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오, 오해이십니다. 혹시라도 밖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누군가 보고 대협을 고발하면 불편해질 수 있기에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쯧쯧! 무인이 줏대가 그리도 없어서야.”
심통은 마음이 착잡했다.
무엇보다 유명교에 반대하면 역적 소리를 듣는 시대라니 기가 막혔다.
씁쓸한 얼굴로 양진홍을 보던 심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돌아서 나가려던 그가 문득 양진홍을 돌아보았다.
“너는 유명교가 호국의 종교가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같은 무인이 뭘 알겠습니까? 위에서 시키면 그러려니 하고 따르는 거지요.”
“너는 정의맹이나 천지맹에서 활동한 적이 없느냐?”
호천맹은 몰라도 정의맹이나 천지맹에서 유명교와 싸웠다면 저런 소리는 못 할 터였다.
“대협, 그런 큰 단체는 저희 같은 문파들이 낄 자리가 없습니다.”
“너희가 어때서?”
심통은 기가 막혔다.
녹림의 도적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싸웠는데 낄 자리가 없단다.
“저희처럼 작고 이름 없는 문파들은 강호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불러 주지도 않고요. 최소한 무림첩은 받아 봐야 알 텐데, 저희에게는 그런 게 오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유명교가 어떤 집단인지 정도는 알지 않느냐? 설마 그것마저도 모른다고 할 것이냐?”
“솔직히 저희 중양현에서는 유명교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소문에 불과한 일이라……. 그 부분에 대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냐.”
그 말을 끝으로 심통은 홀연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유명교를 호국 종교로 받아들인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
객잔으로 다시 돌아온 심통은 중양 검문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유명교가 호국의 종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 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금의위에 잡혀간다면서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연적하는 유명교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명교가 호국 종교가 되든, 팔황신모가 대법사가 되든 알아서 지지고 볶으라고 해. 우리는 당 노인과 월아, 금아에 집중하자고.”
“공자님은 유명교와 그렇게 싸우셔놓고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저는 십두마병과 백두마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립니다.”
제자들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심통은 마음에 여유가 있는지 유명교를 씹었다.
사실 그는 당가에 대해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연적하의 무위를 알기 때문이다.
“아휴! 저 몰인정한 늙은이. 제자들에게 잘해 주지 못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제자들 얘기는 꺼내지도 않네. 심 노인, 언제 사람 될래?”
그러자 심통이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당가가 어디 공자님의 상대가 돼야 뭐라고 말을 해도 할 게 아닙니까? 공자님이 방귀만 뀌어도 혼비백산해서 달아날 놈들인 걸 뻔히 아는데. 무슨 말을 하라고 하십니까?”
“아니, 그래도 입에 발린 말이라도 제자들 걱정을 좀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 예에, 그런 걸 바라신다면 해 드려야지요. 월아와 금아를 무사히 구해 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 걱정에 뭘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건 배고프다는 소리고.”
“아, 그렇습니까? 여하튼 그래서 공자님은 유명교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도 팔황신모에게 복수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심 노인.”
“예?”
“세상일은 뭐든지 순리대로 되게 되어 있어. 진인이나 되고도 아직 모르겠어?”
“대종사님께서 그 순리가 뭔지 어리석은 진인에게 좀 알려 주십쇼.”
두 사람의 대화를 웃으며 지켜보던 남궁연이 말했다.
“심 노인. 적하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그는 당장 자기가 발 디딜 한 걸음 앞만 보니 너무 보채지 말아요. 지금은 당가의 일로 정신이 없을 거예요.”
“아! 제가 너무 앞서 나갔던 거군요. 알겠습니다.”
심통은 뒤늦게 연적하가 당가의 일에 골몰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참 불필요한 고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연적하의 방식이라면 따를 수밖에.
조급한 마음을 비우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의 귓가에 남궁연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한 걸음만 가려고 하겠지만 세상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그것 또한 순리지요.”
그녀의 말에 심통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맞다.
연적하가 ‘왕들의 하늘’에서 돌아왔음을 알면 당장 팔황신모부터 달려올 게다.
그럼 연적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천하는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게 될 것이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심통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공자님,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천무림이 당가의 편에 서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뭘 어떻게 합니까? 조져 버려야지요.”
“말은 쉽지. 조진다는 것도 수위를 정해야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거야. 원망이 없게 하려면 형평성을 고려해야 돼.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연적하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오봉산채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가 나중에 원망을 많이 들었다.
석경장의 가주가 되어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그런데 원망을 사지 않으면서 조지는 방법이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