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1
781회. 수월문 멸문 예약
중양검문의 문주 중양일검 양진홍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직접 사천성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막상 사천성에 도착한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악마로 알려진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만큼이나 당가도 끔찍한 상대인 까닭이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두 고래(석경장과 당가) 사이에 낀 새우와도 같음을 알았다.
자신은 소악마나 구천노도와 다르다.
괜히 당가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한 줌 핏물이 되고 말 것이었다.
하루를 쉬면서 고민하던 그는 청성파로 찾아갔다.
유명무실하니 어쩌니 해도 청성파는 호천맹의 일원으로 사천성에서 명성이 높았다.
청성파 등운정.
청성파의 장로 자운산인이 웃으며 멀리서 왔다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접대를 맡고 있는 자운산인이라 합니다. 멀리 산서성에서 오셨다고요?”
자운산인이라는 말에 양진홍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청성파를 대표하는 고수 다섯을 청성오수(靑城五手)라 하는데 자운산인은 그들 중에 하나였다.
“청성오수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중양현에 있는 중양검문의 문주인 양진홍이라 합니다. 여량 일대에서는 중양일검으로 불리고 있지요.”
“이제 보니 양 문주님이셨군요. 중요한 일로 우리 청성파를 방문하셨다고 하셨는데, 제가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정중한 자운산인의 말에 양진홍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오수 정도 되는 위치라면 들을 자격이 있었다.
그는 구천노도 심통의 말을 전했다.
미소 짓고 있던 자운산인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일각(15분)에 걸친 양진홍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운산인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석경장의 연 대협이 당가와 사천무림에 ‘석경장 사람들을 건드리면 멸문시키겠다’고 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당가든 사천무림이든 그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가로 가려 했지만 좋은 이야기가 아닌지라 청성파를 찾아온 것입니다. 청성파에서 당가와 사천무림에 연 대협의 말을 전해 주십시오.”
“흐음!”
자운산인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사천무림과 강남무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연적하의 경고는 풍파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았다.
“알겠습니다. 사천무림의 안녕과 관계된 일이니 청성파가 나서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청성파를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양진홍은 읍(揖)을 해 보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자운산인은 양진홍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바람처럼 사라지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시월 스무날.
사천성.
성도.
정오 무렵.
연적하 일행이 탄 작은 마차는 상인들 무리에 섞여 성도로 들어갔다.
심통은 번화가 앞에서 잠시 마차를 멈춰 세웠다.
앞서가던 마차가 멈추자 뒤따르던 상인들이 투덜거리며 마차를 빙 둘러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통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공자님, 청성산까지 백칠십 리(약 66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객잔에서 쉬고 아침에 가시겠습니까? 대충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할까요?”
혼잣말을 하듯 작게 중얼거렸지만 마차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대충 먹고 가.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아기가 먼저 나오면 안 되잖아.”
“가모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심통은 출산이 임박한 남궁연의 상태가 걱정됐다.
“난 괜찮아요. 적하 말대로 해요. 천제(天祭)를 지내는 게 우선이에요.”
“예.”
대답하는 심통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천제를 지내는 게 우선이라고 하는 걸 보면 가모의 상태가 어떤지 알 것 같았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
이십여 일 동안 마차를 탔으니 몸에 무리가 오지 않으면 이상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왕들의 하늘’을 생각하면 연적하와 남궁연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마차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차를 반점 앞에 세운 심통은 괜히 마음이 앞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마차로 다가가기도 전에 먼저 마차 문이 열렸다.
연적하가 튀어나와 조심조심 남궁연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산달이 된 남궁연의 배는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중 나온 어린 점소이의 시선이 남궁연의 그린 듯한 얼굴과 터질 듯한 배를 오락가락했다.
심통이 점소이의 뒤통수를 툭 치자 그제야 점소이가 소리쳤다.
“어서 옵셔! 저희 정원반점에 오신…….”
“됐고, 말에게 물을 주고 콩과 건초를 배불리 먹여 놔라. 말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놈을 먹이로 줄 테니 그리 알고.”
“예? 예, 예.”
어린 점소이는 인상이 고약한 노인의 협박에 머리를 격하게 끄덕였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반점의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한 걸음 늦게 들어온 심통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반점에는 세 사람이 전부였다.
남궁연이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자 연적하가 물었다.
“누님, 몸은 좀 어때요?”
“아직은 견딜 만해. 내 걱정은 말고 천제를 지내는 것만 생각해.”
“생각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가서 절이나 하면 되지.”
연적하는 오룡궁 출신임에도 제사에 어두웠다.
남궁연은 그가 제사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듯 말했다.
“청성파 도사들에게 부탁하면 도와줄 거야.”
“누님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하고 구천현녀 사이에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런 게 뭔데?”
“예의, 격식 같은 거요. 진심 하나면 돼요.”
“그래도 격식을 너무 무시하지 마. 격식은 진심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니까.”
“예, 예.”
셋이서 천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탁자 위에 하나 둘 차려졌다.
탁자 위의 음식을 절반쯤 먹었을까?
하나 둘 손님이 들어와 반점의 빈 자리를 채웠다.
손님들 중에는 도검을 소지한 무인들도 적지 않았다.
사십 대 중년의 무인이 발끝으로 맞은편 동료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왜?”
중년의 무인, 신이수가 턱짓으로 이진상의 뒤쪽을 가리켰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이진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창가 쪽에 그림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
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여인을 훔쳐 보던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쩝! 경국지색의 미모인데 임자가 있나 보군.”
신이수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임자가 없어도 너에게는 그림의 떡이야.”
“제길, 오늘은 마누라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네. 이화루 어때?”
“네가 가자고 했으니 돈도 내는 거지?”
“이런 젠장! 조장은 너고 나는 조원에 불과한데 왜 내가 돈을 내야 하지?”
“그야 네가 먼저 가자고 했으니까.”
“알았어. 이번에는 내가 아쉬우니 그렇게 하지. 꿩 대신 닭이라고, 오늘은 기녀들이라도 안아 봐야겠다.”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 조만간 금주령이 내려질 것 같으니까.”
갑작스러운 금주령 소리에 이진상이 눈을 끔뻑였다.
“금주령? 왜?”
“석경장의 연적하가 어디 처박혀 있다가 이제 돌아온 모양이야.”
“그 소악마가?”
“그자가 사천무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군.”
“선전포고?”
“응, 석경장 사람들을 건드리면 죄다 멸문시켜 버리겠다나? 또라이 새끼.”
“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직접 찾아와서 그런 건 아니고. 청성파에서 사람을 보냈더라고. 산서성의 무슨 검문에서 사람이 찾아와서 그자의 말을 전하고 갔단다.”
“석경장 사람들을 건드리면 멸문시킨다?”
“그래. 우리 사천무림을 강남의 무가(武家)들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한 거지. 그게 아니라면 감히 그따위 망발을 할 리가 없잖아?”
“강남의 무가들이 왜 나와?”
“기억 안 나? 복수랍시고 녹림을 동원해서 강남의 무가 세 개를 박살 냈잖아.”
“아! 삼장불립?”
“그렇지. 그때 한번 재미 보더니 사천무림을 향해 똑같은 소리를 한 거야.”
“미친놈이네. 우리 사천무림을 뭘로 보고.”
“여하튼 그놈이 강남무림을 이끌고 쳐들어올지 모른다고 위가 발칵 뒤집혔어. 조만간 사천무림에 금주령이 내려질 거야.”
“그럼 오늘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야겠네?”
“그렇지. 마시고 죽자고.”
곧이어 두 중년의 사내들이 이화루의 기녀를 두고 시시덕거릴 때다.
옆에서 젊은 음성이 들려왔다.
“여어! 오늘 이화루에 가신다고?”
신이수와 이진상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미녀와 나란히 앉아 있던 청년이 언제 왔는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배가 아팠던 이진상이 삐딱한 시선으로 청년을 살폈다.
무장을 하지 않은 걸 보니 일반인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이 저런 여자를 취했다니 속이 더 쓰렸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라고 묻느냐? 왜? 너도 한자리 끼고 싶으냐? 하기야 여자가 저 모양이니 쌓일 법도 하……. 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진상이 얼굴을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청년이 다짜고짜 손을 쓰자 신이수는 벌떡 일어나 살짝 거리를 벌렸다.
“우리는 수월문의 사람들이다! 너는 누군데 감히 우리 수월문에 손을 쓰느냐!”
“뭘 그렇게 놀래? 코가 삐뚤어지고 싶다고 해서 도와준 건데.”
청년의 말에 신이수는 이진상을 보았다.
비칠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진상의 코가 정말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겨우 일어난 이진상은 얼얼한 안면 부위를 매만지다 뒤늦게 자신의 코가 삐뚤어져 있음을 알았다.
“이 미친……. 악!”
욕을 하던 이진상이 다시 뒤로 나뒹굴었다.
신이수는 덜덜 떨며 청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의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다.
‘헉! 무림의 고수였구나!’
처음 이진상의 코뼈가 부러질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렇다 치자.
두 번째는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상이 나뒹군 뒤에야 그가 손을 썼다는 걸 알았다.
만약 그의 손에 날붙이가 있었다면 왜 죽는지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누, 누구십니까?”
뒤늦게 신이수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연적하가 끙끙거리며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중년인에게 손을 뻗었다.
쓰으윽-
이진상의 몸이 청년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헉! 허공섭물!’
무릎의 힘이 풀린 신이수는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탁자를 짚었다.
허공섭물로 중년인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연적하가 뭉개진 중년인의 얼굴을 일행인 사내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코에 불만이 많은 것 같아서 원래대로 세워 줬는데, 어때요? 제대로 된 것 같아요?”
머릿속이 하얗게 된 신이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안 됐다고요? 그럼 다시.”
말과 함께 연적하가 잡고 있던 중년인의 얼굴을 탁자에 처박았다.
콰앙!
탁자 위의 음식이 튀고 난장판으로 변했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는지 이진상의 머리가 맥없이 덜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신이수가 황급히 소리쳤다.
“제, 제대로 됐습니다! 더는 손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 친구도 만족해 할 겁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중년인을 내려놓았다.
“자아, 이 사람의 소원은 들어줬고. 그쪽도 뭐라고 했는데……. 마시고 죽자고 했나?”
“아닙니다! 그, 그건 그냥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시자는 소리였습니다!”
“아하! 정신을 잃고 싶으시다?”
“헉!”
신이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연적하의 주먹이 빨랐다.
‘퍽!’ 소리와 함께 신이수의 몸은 동료이자 친구인 이진상 위에 포개졌다.
연적하는 안면이 뭉개진 중년인의 코에 손가락을 넣어 피를 적신 뒤, 엎어진 사내의 등판에 한 자 한 자 정성껏 글자를 적었다.
[수월문 멸문 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