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5
815회. 항장무검 의재패공(项主舞劍 意在祐公)
하남성.
개봉 포방(捕房).
석양 무렵, 한 청년이 개봉포방을 찾았다.
포화명 총기의 명으로 초포산을 인계받기 위해 온 금의위 소기 진우생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변복까지 하고 있었다.
괜히 금의위가 개봉 포방을 들락거렸다는 말이 나돌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진우생을 발견한 포졸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왔나?”
“이종인 포두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포두님? 잠시 기다려 보게.”
포졸은 진우생을 힐끔 쳐다보고는 안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포졸은 기골이 장대한 중년인을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분주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중년인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이종인일세. 나를 찾아왔다고?”
진우생이 이종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나는 금의위 소기네. 포화명 총기의 명으로 왔으니 죄인 초포산을 데리고 오게.”
포방에 속한 포두와 포졸은 무과를 통해 뽑힌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지방관에게 발탁되어 일하는 사람들로, 무과를 통해 관직에 오른 금의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신분상의 차이가 컸다.
금의위라는 말에 이종인은 급히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리. 지금은 사람들이 많으니 반 시진(1시간) 뒤에 다시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반 시진?”
“예, 그때면 퇴청을 해서 보는 눈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은 목격자가 많으니 피하자는 소리다.
진우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반 시진 후에 다시 오지.”
진우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방을 나섰다.
괜히 포두와 오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봐야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포방을 나온 그의 눈에 때마침 다관(茶館) 하나가 들어왔다.
‘흠! 싸돌아다니느니 다관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지?’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다관으로 들어갔다.
홀로 차를 마시던 진우생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최근 연적하로 인해 자신을 보는 금의위들의 시선이 전과 달라진 까닭이다.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대놓고 앞에서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북진만 그런 게 아니다.
도지휘사의 군대가 피해를 입은 뒤로 남진에서조차 자신을 꺼려 하는 눈치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잡무도 그것과 무관하다 보기 어려웠다.
‘하아! 이러다 내가 먼저 잡혀 들어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금의위는 그 어느 조직보다 뒷조사가 심하다.
권력의 최상부에 있는 만큼 자체적인 내부 감찰은 끔찍할 정도다.
당장 자신만 해도 북진의 비위에 대한 투서를 조사하던 중이 아니던가.
하물며 연적하의 일은 오해의 여지도 없다.
공공연하게 도지휘사의 군대를 격파했으니 대역죄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장 오늘이라도 반역에 일조했다고 숙청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은 요즘 ‘처와 갈라서라’는 말까지 했다.
집안이 처가로 인해 풍비박산(風飛善散) 나게 생겼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집안을 위해 혼인하라 하셨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우거지상으로 앉아 있는 진우생의 귓가로 설화인(说话人, 전문 이야기꾼)의 음성이 들려왔다.
“……초패왕 항우의 이야기를 하자니 갑자기 청성산이 떠오르는구먼.”
설화인을 따라다니는 여자아이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할아버지, 항우가 청성산에서 무슨 일을 했어요?”
“항우가 청성산에서 뭘 했다는 소리가 아니야. 돌아가는 상황이 영 수상해서 하는 말이지.”
청성산의 이야기가 나오자 진우생은 고개를 돌려 설화인을 보았다.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노인과 여자아이가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뭐가 수상한데요?”
“조금 전에 장량이 번쾌에게 ‘항장이 검무를 추는 의도는 유방을 죽이는 데 있다[项庄舞劍 意在流公]’고 했지?”
“네.”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를 멸하고 홍문루에서 연회를 열 당시 항우의 모사인 범증은 항우에게 ‘이번 기회에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간했다.
항우가 내켜 하지 않자 범증은 항우의 사촌인 항장에게 ‘검무를 추다가 유방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를 알아차린 항우의 백부인 항백이 검무에 동참해 항장을 막는다.
그때 유방의 모사인 장량이 유방의 부하인 번쾌에게 한 말이 ‘항장무검 의재패공’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목적이 다를 때 ‘항장무검 의재패공’이라 했다.
“이 할아비가 볼 때 청성산의 전투가 꼭 그렇거든.”
“왜요?”
“처음에 금의위와 한 개 천호소가 쳐들어갔다가 크게 당하지 않았더냐?”
“그랬죠.”
“금의위가 누구냐? 황상의 최측근으로 역도들을 추포하는 무관들이다. 그들이 당했으면 이미 연적하는 대역죄인인 거야.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금의위의 귀싸대기만 날려도 역적으로 몰려 고혼이 되는데, 하물며 금의위가 죽었어. 천호소 군사들도 된통 당했지. 그런데 아직 연적하를 대역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그게 이상하지 않으냐?”
“어? 할아버지 말을 들으니 이상하기도 하네요? 왜 그런 거예요?”
“그 뒤에 도지휘사와 사위(四衛)의 군대를 보내면서도 대역죄인이라는 말은 없었지?”
“네.”
“그러니 청성산의 전투를 눈에 보이는 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아! 그럼 연 대협은 역적이 아닌 거예요?”
여자아이의 말에 진우생은 귀를 쫑끗 세우고 설화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설화인은 대답 대신 연신 마른기침을 해 댔다.
“쿨럭! 쿨럭! 늙어서 그런가? 오래 말하지도 않았는데 목이 아주 찢어질 것 같구나. 이럴 때는 뭘 좀 마셔 줘야 하는데……. 차 한잔 마실 돈이 없으니…….”
설화인의 앓는 소리에 손님들이 동전을 내던졌다.
뒷말이 궁금해진 진우생도 손에 잡히는 대로 동전을 집어 설화인에게 던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화인이 인사를 하는 동안 여자아이가 돌아다니며 동전을 수거했다.
여자아이가 동전을 다 줍자 설화인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가만 있어 보자.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더라?”
“제가 물어봤잖아요. 연 대협은 역적이냐고요.”
“아! 그랬지. 험, 험. 연적하가 역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금의위와 위소의 군사를 죽이면 안 되는 거였어. 황실에서 연적하를 봐준다면 누가 금의위와 위소의 군사를 두려워하겠느냐? 그러니 황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연적하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게다.”
“조금 전에 ‘항장무검 의재패검’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 분명해.”
“할아버지는 숨겨진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내가 황제라면 이번 기회에 연적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무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할 게다. 누가 황실을 위하고, 또 누가 반골(反骨)인지 옥석을 구별하는 거지.”
“구별이 끝나면요?”
“그때 칼을 뽑아도 늦지 않지.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질질 끌고 갈 일이 아니거든.”
진우생은 씁쓰름한 얼굴로 설화인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항장무검 의재패검’ 운운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역적이란다.
뻔한 소리에 들떠서 설화인에게 집어 준 돈이 아까웠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역적 외에 달리 생각할 건덕지가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그의 귓가에 은은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초경(初更, 오후 7시-9시)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이종인 포두와 다시 만나 초포산을 인계받기로 약속한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생은 다관을 떠났다.
***
개봉 포방.
반 시진 만에 다시 돌아온 개봉 포방은 적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왜 안 오지?’
어둑어둑해지고 있으니 이제는 포졸과 마주치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야 한다.
은밀하게 초포산을 인수해 가려던 계획이 자칫 틀어질 수도 있었다.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진우생의 귓가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사람을 보던 진우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문우 백호와 북진의 소기들 사이로 이종인 포두가 보였다.
이종인 포두는 진우생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란 얼굴을 했지만 이내 외면했다.
진우생은 피할 틈도 없이 금의위 북진들과 마주쳤다.
주문우 백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우생을 보며 알은체를 했다.
“여어! 진 소기? 개봉 포방에 무슨 일로 왔느냐?”
“…….”
진우생은 다급히 변명거리를 찾았지만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주 백호님. 지나는 길에 뭘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주문우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것 봐라? 백호가 소기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데, 대답을 안 하네? 꼴에 너도 남진이라 이거냐? 남진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
대놓고 거는 시비에 진우생은 크게 당황했다.
남진과 북진이 외부에서 조우할 경우 가벼운 인사로 넘어가는 게 관례였다.
맡은 임무가 다르기에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한다고 욕하는 건 지나친 행동이었다.
하지만 북진의 소기들은 도리어 눈까지 부라리며 진우생을 압박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진우생은 ‘울컥’했지만 북진의 틈에서 그랬다가는 자신만 손해인지라 참았다.
“…….”
진우생이 끝내 침묵하자 주문우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백호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남진이든 북진이든 예우를 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비록 진우생의 소속이 다르다 해도, 그게 대단한 비밀이 아닌 이상, 자신의 질문에 소상히 답해야 했다.
“이 새끼 봐라?”
진우생에게 성큼 다가간 주문우가 손을 휘둘렀다.
‘찰싹!’ 하고 찰진 소리와 함께 진 우생의 머리가 한쪽으로 확 돌아갔다.
“개봉 포방에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
진우생은 이를 악물었다.
유득공 천호는 주문우 백호의 상관이다.
그 유득공 천호의 뒤를 캐기 위해 초포산을 인계받으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쭈? 연적하와 사돈지간이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백호는 눈에 안 보이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 새끼야! 이를 빡빡 갈면서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되냐?”
말과 함께 주문우는 주먹을 휘둘렀다.
백호 정도 되는 위치면 내외공의 고수다.
그런 고수의 주먹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맞으니 이내 피가 튀었다.
“윽!”
어디를 잘못 맞았는지 신음과 함께 진우생이 주저앉았다.
그래도 주문우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눈이 돌아간 주문우는 무자비하게 발로 짓밟았다.
“이 새끼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연적하는 끝났어 이 새끼야! 더불어 네 인생도 종쳤고! 북진 남진 가리지 않고 기어도 살지 말지 모르는 판인데, 주제를 모르고 감히 백호의 지시에 항명을 해? 연적하가 미쳐 날뛰니까 너도 같이 날뛰고 싶다 이거냐? 응?”
진우생은 몸을 웅크리고 버텼다.
주문우는 미친 사람처럼 쓰러진 진우생을 밟고, 걷어찼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개봉 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주문우의 발길질이 멈췄다.
하지만 그는 분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지 진우생에게 침을 뱉었다.
“퇫! 되먹지 못한 역적 새끼. 언제고 네놈의 목은 내가 딸 것이다. 그때까지 잘 달고 다니도록 해라. 가자.”
주문우가 쓰러져 있는 진우생을 지나쳐 가자 북진의 소기들이 초포산을 끌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종인 포두가 금의위를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 개봉 포방의 안뜰은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