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1
821회. 삼정검문의 문주님이시다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있던 남궁연은 오라버니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남궁천은 ‘오늘날 무공이나 권력으로 유명교주를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말로 그의 본심을 슬쩍 내비쳤다.
서둘러 ‘적하 너는 예외로 하고’라 말했지만 그건 연적하의 자존심을 배려해서 한 말이리라.
구주에서의 경험담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허황되다.
그러니 연적하가 그곳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백번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적하야. 오랜만에 오라버니를 만났으니 성도에서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와.”
그러자 남궁천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연아야, 괜찮다. 식사 한 끼 먹겠다고 백이십 리(약 50킬로미터) 길을 가면 사람들이 웃는다.”
백이십 리면 마차로 왕복하는 데 이틀은 걸린다.
자신이 미식(美食)에 목숨을 건 사람이거나, 성도에 특별한 볼일이 있다면 모를까?
고작 식사 한 끼 하자고 한겨울에 그 먼 거리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정말 금방이라도 갈 것처럼 연적하가 반색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연 아우, 가만있어. 나는 정말 괜찮아. 이 정도 규모의 객잔이면 음식도 잘 나와.”
“에이, 그래도 성도와는 비교가 안 되죠.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그래. 아버지가는 빠지게 소식을 기다리고 계시는데. 내가 식사 한 끼 하겠다고 성도에 다녀온 걸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 거야.”
그건 과장 없는 사실이었다.
검왕 남궁벽은 남맹의 일로 합비를 떠나지 못했을 뿐 남궁연의 소식에 목말라했다.
“형님, 시간 얼마 안 걸려요. 일각(15분)이면 가요.”
“에이, 도강언이 일각이고. 성도는 마차로 가도 하루야. 더구나 지금처럼 눈이 쌓여 있을 때는 못해도 하루 반나절은 걸린다고.”
하루 반나절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벌떡 일어나 남궁천의 팔을 잡아끌었다.
“금방 가요, 형님. 일어나 봐요.”
“아, 진짜 안 된다니까 그러네. 여기서 대충 먹어도 돼.”
남궁천은 저항했지만 연적하가 잡아끄는 힘을 당해 내지 못했다.
연적하는 남궁천의 등을 떠밀어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 끌려 나와서도 남궁천은 좀처럼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연적하가 먼저 마당에 내려가 운종술로 구름을 만들어 냈다.
휘리리링-.
연적하의 발아래에 모인 구름을 보고 남궁천이 소리쳤다.
“연 아우! 그, 그게 뭐야?”
연적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답했다.
“형님,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다녔다고 하잖아요? 이것도 비슷한 거예요. 성도까지 일각이면 갈 수 있으니까 내려와 봐요.”
“정말 사람이 구름을 타고 갈 수 있다고? 괜히 장난하는 거 아니지?”
그러면서도 남궁천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신발을 꿰어 신었다.
“장난인지 아닌지는 내 옆에 서면 알게 될걸요?”
남궁천이 머뭇머뭇 연적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연적하가 구름에 처음 타는 그를 위해 간단하게 운종술을 설명했다.
“영기로 만들어진 구름은 우리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태예요. 그러니까 균형을 잃고 떨어질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돼요. 아, 물론 내가 직접적인 충격을 받기 전까지 그렇다는 거예요.”
“네가 충격을 받으면?”
“그때는 영기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되니까 물아일체도 풀리겠죠?”
“떨어진다는 말이네?”
“그렇죠.”
“겁나네.”
“형님, 나한테 충격을 주려면 태산 정도는 들어서 던져야 돼요.”
“그렇다면 좀 안심이고.”
굳어 있던 남궁천의 얼굴이 풀어지자 연적하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어! 어! 어! 진짜 뜬다! 떠!”
“말했잖아요. 제천대성이 타고 다니는 근두운 같은 거라고.”
남궁천은 어린아이처럼 발을 구르고, 손으로 구름을 만져 보기도 했다.
“이야! 발밑에 아무 느낌이 없는데 정말 안 떨어지네? 구름을 탄 느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잡으면 연기처럼 흩어지는데 어떻게 사람을 태울 수가 있지?”
남궁천이 연신 탄성을 내지를 때 어느새 발아래 도시가 나타났다.
성도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후 성도 외곽에 한 덩어리 구름이 스르륵 내려앉았다.
이윽고 구름에서 연적하와 남궁천이 내려왔다. 단단하게 뭉쳐 있던 구름은 이내 안개처럼 형체도 없이 흩어졌다.
“와아!”
남궁천은 깡촌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입을 쩍 벌리고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
물론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도시의 화려함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다.
조금 전까지 청성산에 있었는데 어느새 성도라니!
누이동생이 자신에게 했던 구주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연 아우. 언제 그 구천검령이라는 것도 좀 보여 줄 수 있어?”
“예.”
“그게 엄청 크다면서?”
“십 장(약 30미터) 정도 돼요.”
“무섭다. 그게 몸속에 들어 있다고?”
남궁천이 치뜬 눈으로 연적하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검사답게 어느새 그의 관심은 운종술에서 구천검령으로 옮겨 간 상태였다.
“아홉 군데의 혈맥에 들어 있어요.”
“그래서 구천검령이구나?”
“그런 셈이죠.”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번화한 거리가 나왔다.
미시 초(오후 1시)의 거리는 따사로운 햇살 덕분인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왕 성도까지 나온 김에 연적하는 가장 크고 화려한 반점을 찾았다.
때마침 삼천각(三天)이라는 현판을 건 요릿집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크기도 크지만 바글거리는 손님을 보니 맛도 뛰어난 모양이다.
연적하는 남궁천을 그리로 이끌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이십 대로 보이는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와 허리를 조아렸다.
“눈과 귀와 입이 즐거워지는 삼천각에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윽고 허리를 세운 점소이는 말을 걸 틈도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한 터라 연적하와 남궁천은 구석진 자리로 안내됐다.
두 사람이 뻘쭘한 얼굴로 앉자 점소이가 빈 잔에 차를 따르며 물었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남궁천을 대접하기로 한 연적하가 짧게 말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까, 이 집에서 잘하는 요리로 내와 봐요.”
“저희 삼천각의 모든 요리가 맛있습니다만, 오늘은 담담면(국수), 소룡포(만두), 구수계(닭냉채), 회과육 (매운 돼지고기 요리), 모채(매운 국물요리), 홍소우육(소고기), 단초반(계란 볶음밥), 탕초리어(잉어탕)를 추천합니다.”
역시나 대도시의 점소이답게 주문을 받는 과정도 꽤나 세련됐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호탕하게 말했다.
“다 가져와요!”
“예, 그러시면 담담면, 소룡포, 구수계, 회과육, 모채, 홍소우육, 단초반, 탕초리어를 곧 올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점소이는 허리를 깊숙이 조아려 보인 후 돌아갔다.
연적하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 본 점소이 중에 최고네요. 무림인으로 치면 천하십대고수쯤 되겠어요.”
“그러게. 그나저나 우리 둘밖에 없는데 너무 많이 시킨 것 아니냐?”
“하하! 형님께서 먼 길을 오셨는데 이 정도는 대접해야죠. 그러려고 모시고 나온 건데.”
연적하가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구주에서 대종사씩이나 한 몸인데 저 정도 요리가 뭐 대수라고!
잠시 후 식탁 위로 주문한 요리가 올라왔다.
시키지도 않은 채소들까지 나와 탁자가 형형색색의 음식으로 가득찼다.
‘눈’과 ‘귀’와 ‘입’이 즐거워지는 삼천각이라고 하더니 정말 보기에 그럴싸했다.
연적하와 남궁천이 한창 요리를 먹고 있을 때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연적하는 닭냉채를 입에 문 채로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이 층 중앙에서 미모의 아가씨가 칠현금을 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귀를 즐겁게 해줄 모양이다.
거문고 소리가 울리자 왁자지껄 떠들던 손님들도 목소리를 낮췄다.
남궁천이 탄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우, 합비에도 이 정도 요릿집은 있는데 칠현금을 연주하지는 않아. 진짜 대단하다.”
연주가 끝나자 아가씨는 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천각의 점잖은 분위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중년인들 중에 하나가 점소이에게 손짓했다.
“예, 나리.”
“우리 문주님께서 저 아가씨를 보자고 하신다. 데리고 오거라.”
“저어, 대협. 송구하나 상엽 소저는 저희 삼천각의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
“금 연주만 하기로 되어 있어서 손님들 자리에는 오지 않습니다.”
“이 새끼 봐라? 너 이름 뭐야?”
중년인, 곽삼고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마원이라 합니다.”
마원은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도 상엽 소저의 미모에 홀린 손님 때문에 피곤해질 모양이다.
“어이 마원이. 우리 문주님이 누군지 알아?”
“…….”
마원은 눈을 내리깔았다.
손님이 얼굴에 쓰고 다니지 않는 한 그걸 알아낼 도리가 없지 않은가.
“오늘부로 이곳 금각로 일대를 관리하게 된 삼정검문의 문주님이시다.”
마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금각로는 삼천각이 자리한 거리의 이름이다.
그러니 사내의 말대로라면 삼천각은 삼정검문의 관할하에 속했다.
“알아 처먹었으면 냉큼 뛰어가서 데리고 와. 이 새끼야!”
하지만 마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삼천각이 삼정검문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원이 버티자 곽삼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곳이 다 있지? 점소이 새끼가 삼정검문 문주님의 말을 대놓고 씹네?”
곧이어 곽삼고의 주먹이 마원의 얼굴에 박혔다.
‘악!’ 소리와 함께 마원이 나뒹굴었다.
쿠당탕-!
“하아!”
연주를 마치고 칠현금을 챙기던 상엽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칠현금을 가지고 연주를 하러 다니다 보면 저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럴 경우 보통은 점소이나 주인선에서 해결됐다.
하지만 상대가 삼정검문의 문주쯤 되면 그들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괜히 자신 때문에 맞은 점소이에게 미안했다.
저 정도로 난폭한 성정이면 만류하는 주인도 때릴 게 분명하다.
그녀는 비단으로 칠현금을 곱게 싸서 품에 안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대낮이니 옆에 앉아 말이나 좀 들어 주면 끝나겠지…….’
생각할수록 더럽고 역겨운 상황이지만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응?’
그런데 자신만 삼정검문에 용무가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일 층 구석에서 튀어나온 남자 하나가 창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상엽은 삼정검문을 향해 나아가는 남자를 힐끔 살폈다.
이십 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한 청년이다.
‘나를 돕기 위해 나선 걸까?’
잠깐 그런 생각도 했지만 청년의 복장은 무인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도 모르는 일. 혹시나 하는 기대에 그녀의 걸음이 느려졌다.
곽삼고는 주먹질만으로 분이 덜 풀렸는지 쓰러진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점소이면 점소이답게! 어! 이 새끼야!”
언성을 높이던 그가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때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거기까지! 더하면 허리를 접어 버린다.”
황당한 경고에 곽삼고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하나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