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4
834회. 다 뭐 해 먹고 사는지 진짜 궁금해
연적하는 잠든 소녀의 상태를 다시 확인한 후에 미련 없이 돌아섰다.
영기를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통천안은 정확했기에 그녀가 치유됐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하원 방주가 급히 그를 따라붙으며 말했다.
“대협. 또다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요?”
연적하는 잠시 멈춰서 그를 돌아보았다.
악귀에 씐 것은 일반적인 병과 다르다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따님을 괴롭히던 악귀는 다시 오지 않아요. 그건 사람이 벼락을 두 번 맞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에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예.”
그제야 유하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단호한 연적하의 태도를 보니 딸에게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아!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는 급히 품에서 전표를 꺼내 연적하에게 내밀었다.
“뭐예요?”
“저의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대협께서 베푸신 은혜에 미치지 못하는 돈입니다만, 받아 주십시오.”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고 전표를 받아 품에 갈무리했다.
돈을 벌기 위해 상행까지 따라나선 마당에 무슨 인사치레란 말인가.
연적하가 객점으로 들어가자 차를 마시고 있던 심통이 손을 흔들었다.
“공자님.”
“청승맞게 혼자 뭐하고 있어? 들어가서 쉬지.”
연적하는 심통의 맞은편에 털썩 걸터앉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통을 보니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했다.
“객지에서 공자님이 출타 중인데 어떻게 쉽니까? 유 방주의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
“악귀인지 뭔지 쫓아 줬어. 지금 자.”
“그 사람 딸 바보로 소문이 났던데 잘됐군요. 그런데 정말 고서 때문에 그랬던 겁니까?”
“고서와 관계된 건 맞는 것 같아. 책에 있는 내용을 말하더라고.”
“거참 신기하네요. 살다 살다 책 귀신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혹시 그 어린 계집애가 미친 척 한 건 아니었을까요?”
“그건 아니야. 나한테 대종사라 하더라고.”
“허! 그렇다면 정말 귀신의 짓이 맞네요.”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석경장 식솔들을 제외하면 현세에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하다고 유 방주가 전표를 주던데……. 어디 보자. 얼마나 되려나.”
연적하가 주섬주섬 품에서 전표를 꺼내들었다.
“은자 오백 냥이네? 와아! 퇴마 한 번 해 주고 상행한 것만큼 벌었다.”
“흐흐, 공자님. 상단보다 그쪽이 더 좋은 것 같은데요? 방향을 바꿔 볼까요?”
“안 돼. 이건 그냥 적선(積善)을 하다가 얻어 걸린 부수입이야. 돈 벌려고 하면 수행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에이, 도사들도 부적을 만들어 팔지 않습니까? 그게 다 돈벌려고 하는 짓인데.”
“그래서 나더러 그런 돌팔이 도사가 되라는 거야?”
“순수하게 돈만 벌자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상단 일 돕고 있잖아.”
“쩝! 공자님은 너무 고지식하십니다. 도사들도 공자님처럼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심보로 사니까 심 노인이 개고생을 하는 거야.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목숨이 오락가락하잖아.”
그러자 심통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공자님. 광명진천 같은 자가 작정하고 작업을 걸면 누구라도 넘어가 게 돼 있습니다.”
“난 안 넘어갔는데?”
“그거야……. 끙!”
뭐라고 되받아치려던 심통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손에서 놀아난 자신과 달랐기 때문이다.
본전도 못 찾겠다고 생각한 심통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공자님. 얼마 전 봉황산에서 만났던 녹림 애들 있지 않습니까?”
“봉황산채?”
연적하가 심드렁한 얼굴로 심통을 보았다.
며칠 전 서안 남쪽의 봉황산을 지날 때 봉황산채의 녹림도들과 만났었다.
그때도 심통이 나서서 해결했는데 다 지난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모르겠다.
“예, 채주가 앓는 소리를 하더군요. 요즘 경쟁이 너무 심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겨울이라 그런 게 아니고?”
“아닙니다. 분명히 경쟁이 심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한겨울에 경쟁이 심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네.”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겨울에는 산채들도 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정말 굶어 죽을 정도가 아니면 산행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니 경쟁이 심하다는 건 좀 의외였다.
“생각해 보면 죽산에서 상단을 털어 가려고 했던 놈들도 녹림은 아니었잖습니까?”
“그렇지.”
“어떤 놈들이 녹림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걸까요?”
“풋! 녹림이 뭐 대단하다고 녹림 행세를 해? 그냥 도적질을 하는 거겠지.”
“그, 그렇죠? 여하튼 녹림이 위기를 느낄 정도로 도적 떼가 늘어난 건 사실 같습니다.”
“도적 떼야 항상 있었잖아.”
“하지만 상단을 털어 갈 정도의 도적 떼가 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도적 떼라면 녹림의 일원이 되었을 터였다.
“녹림에 버금가지만, 녹림은 아닌 도적 떼가 생겨났다는 건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총채주님이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거대한 세력이 도적질에 나선 건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힘이 있으면 그냥 강호에 진출을 하지 뭐하러 숨어서 그러나 몰라.”
“그러게요.”
잘 나가다가 이야기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연적하의 잔머리와 평생 녹림에서 굴러먹은 심통의 식견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
다음 날 오전.
객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적하에게 유하원 방주와 그의 딸이 찾아왔다.
“대협. 제 여식이 대협께 감사 인사를 드리게 해 달라 졸라서 데리고 왔습니다. 인혜야, 남천 대협께 인사 올리거라. 남천 대협, 제 여식입니다.”
유인혜가 머리를 조아렸다.
“남천 대협, 유인혜라고 합니다. 평생 대협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하하. 몸은 좀 어때요?”
유인혜의 극진한 태도에 뻘쭘해진 연적하는 그녀의 몸상태를 물었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하고 좋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해요?”
머뭇거리던 유인혜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예.”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말인데 악귀에 씐 때를 기억하고 있다니?
“말해 줄 수 있어요?”
연적하는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본 악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유인혜는 남천 대협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한다는 말은 상당히 부끄러운 고백이었다.
그건 자신의 모든 언행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남천 대협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유인혜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호기심에 아버지가 모은 고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불이문(不二門)을 보는데, 잠이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비몽사몽?”
“네, 몸은 내 것인데 내 뜻대로 할 수 없었어요.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답니다. 그때부터는 몸도 입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어요.”
“가위 눌림이라…….”
“그러다가 대협의 음성을 듣는 순간 오랜 가위 눌림에서 풀릴 수 있었어요.”
“그랬군요.”
“가위 눌림에서 풀리니 갑자기 잠이 쏟아졌어요. 오랜만에 정말 깊게 잠들었던 것 같아요.”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악귀에게서 풀려난 유인혜를 보니 왜 무당파에서 적선수행을 강요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
신시 초(오후 3시) 무렵.
하루 반나절 동안 짐을 재정비한 상단이 다시 상행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칠 일 후, 상단은 낙양에 도착했다.
짐마차 위에 앉아 도시를 둘러보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낙양은 언제 와도 번화하네. 이 추운 겨울에 사람들 북적거리는 거 봐.”
그러자 마부 옆에 앉아 있던 심통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촌구석에서 살다가 도시를 처음 본 사람처럼 왜 그러십니까?”
“나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뭐 해 먹고 사는지 진짜 궁금해.”
“뭐라도 하겠지요.”
“하여튼! 딱딱한 사람이야. 감수성이 없어. 뭐라도 하겠지요라니? 그게 말이야 방귀야?”
“아이고! 이런 도시에서 감수성 찾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습니다. 당해 보시고도 그러십니까?”
“아니, 지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가만, 그러고 보니 낙양에 창해무관이 있지 않았어?”
“지금도 있을 겁니다.”
창해무관은 과거 철혈방과 싸울 때 연적하와 심통을 호위로 고용했던 무관이다.
“그 사람들 다 뭐하나 몰라?”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겠지요.”
“쯧쯧! 저 말본새 하고는. 하여튼 무슨 말을 못 해. 심 노인은 추억이라는 게 없어?”
“왜 없습니까? 저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거 딱 하나만 말해 봐.”
“제가 처음으로 산행을 나갔을 때 말입니다.”
“누가 도적질하던 얘기가 궁금하대? 그런 거 말고. 듣는 사람이 흐뭇해지는 거 없어?”
“도적질이라고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게 아닙니다. 멀리서 보면 나쁜 짓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습니다.”
“풋! 멀리서 보면 도적질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야? 누구 앞에서 약을 팔아?”
연적하가 한창 심통을 타박할 때다.
선두에서 상단을 이끌던 하후찬 호위대주가 다가왔다.
“대협, 객점에 들어가기 많이 이른 시간인데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다뇨?”
“지금 여기를 그냥 지나치면 자칫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몰라서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러시다면 상단이 낙양을 그냥 통과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에이, 알아서 해요. 내가 뭐라고 그런 걸 물어요.”
죽산의 도적 떼를 만나고 난 뒤로 하후찬은 전보다 더 눈치를 봤다.
그래서 지금처럼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연적하의 의견을 구했다.
“그럼, 그냥 통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후찬은 마치 상관에게 보고하듯 말한 뒤, 연적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선두로 돌아갔다.
상단의 짐마차와 상인, 짐꾼 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마흔다섯 대의 짐마차와 수백 명의 짐꾼과 상인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번화한 거리에 들어서자 호객꾼들이 연신 불러 댔지만 누구하나 호응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과거를 떠올렸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창해무관 사람들과 철혈방이 하나씩 생각났다.
그동안 아예 잊고 살았는데 낙양에 오니 하나씩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그가 추억에 잠겨 있을 때다.
멀리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오라버니!”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시와 상단이 만들어 낸 소음도 컸지만,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연 오라버니!”
두 번째 소리에 연적하는 벌떡 일어났다.
마부 옆자리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심통도 뒤쪽으로 상체를 돌렸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연적하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막내야?”
오봉산채에서 맺은 의형제의 막내 하소백이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그런데 초췌한 몰골과 얼굴에 붙은 피딱지를 보니 크게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