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5
835회. 구름 처음 봐요?
연적하는 급히 심통에게 말했다.
“심 노인! 호위대주님에게 전해. 먼저 가도 좋은데, 난 잠깐 낙양에 남는다고 해.”
“예!”
심통도 눈이 있는지라 이유를 묻지 않았다.
연적하의 성정상 상단보다 의형제를 챙기는 일이 우선일 게 분명해서다.
연적하와 심통이 거의 동시에 마차에서 내렸다.
연적하가 하소백에게 가는 사이 심통은 상단의 선두로 달려갔다.
호위대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도 낙양에 남으려 할 게 분명해서다.
“소백아.”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았다.
얼굴의 피딱지는 물론 상체에도 칼에 베인 흔적이 수두룩했다.
아무리 검진강호라 해도 실제로 이렇게 칼에 맞고 다니는 일은 흔치 않았다.
“무슨 일이야? 누가 이랬어?”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하소백이 연적하를 가까운 다관으로 이끌고 갔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하소백이 말했다.
“오라버니는 지금 청성산에 계시다면서요? 그동안 어디에 계셨어요? 얼마 전까지 오라버니가 죽었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어?”
“네. 유명교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오라버니는 갑자기 안 보이니 그런 소문이 났죠.”
“아니야. 어쩌다 아주 멀리 갔다 왔어. 강호에 돌아온 지 몇 달 안 돼.”
“그래서 그런 소문이 돌았구나. 연락이 안 될 정도로 먼 곳이었나 봐요?”
“어, 아주 멀어. 돌아온 것도 운이 좋았어.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된 거야? 누구랑 싸운 거야?”
“하아! 오라버니가 청성산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무슨 일인데?”
연적하가 재촉할 때 점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하소백은 점원이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저와 채연 언니가 태평상방에서 일하는 건 알고 계시죠?”
“알지.”
“지난해에 채연 언니와 철산 오라버니가 혼인을 했어요. 그해 여름에 채연 언니는 상방을 그만뒀고요. 아기를 가졌거든요. 그런 언니를 대신해서 철산 오라버니가 종종 상행을 도와줬어요.”
“철산이? 그 녀석은 천검문에서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어?”
“천검문이 태평상방과 호위 계약을 맺었거든요. 천검문 제자들이 전부 태평상방으로 넘어갔어요. 그래서 철산 오라버니가 가끔씩 도와준 거죠.”
“그랬는데? 태평상방은 무한에 있잖아. 왜 네가 낙양에 그런 꼴로 있는 거야?”
“예전에 철산 오라버니가 칠상문과 싸울 때 오라버니가 도와줘서 이겼잖아요? 그 뒤로 천검문과 태평상방이 엄청 유명해졌거든요. 상방이 발 전하면서 낙양에 분점까지 두게 됐어요.”
“설마 낙양으로 오다가 도적 떼라도 만난 거야?”
“네. 오라버니도 낭산 아시죠? 여양현에 있는.”
“알지.”
여양현은 오봉산에서 가까운 곳이라 자신도 그 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낭산을 지나다가 도적 떼를 만났어요.”
“낭산에 도적 떼가 있었다고?”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낭산은 산세가 작아 도적이 숨어지내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있더라고요. 사실 철산 오라버니와 저는 낭산을 만만하게 봤어요. 산이 작으니 큰 도적 떼가 없을 거라고. 좀도둑들은 우리 앞에 나타나 지도 못할 거라고.”
“철산이도 함께 있었던 거야?”
“네. 철산 오라버니가 호위대를 이끌었어요. 그러다 낭산에서 열 명쯤 되는 도적들을 만났어요. 호위대가 서른 명이니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위였죠. 그런데 너무 강했어요. 단 한 사람이 철산 오라버니와 호위 열 명을 일검에 쓰러뜨릴 정도로. 그걸 본 다른 호위와 상인들이 줄행랑을 쳤어요. 저도 기절한 철산 오라버니를 어깨에 메고 달아났어요.”
“그 녀석도 지금 낙양에 있어?”
“아뇨. 달아났던 사람들은 여양현에서 다시 모였어요. 다행히 철산 오라버니는 큰 부상 없이 일어났어요. 검기를 막으면서 내상을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지금 여양현에서 치료 중이야?”
“아뇨. 철산 오라버니는 여양현에 모인 호위들을 이끌고 다시 낭산으로 갔어요. 도적들이 물건을 어디로 빼돌리는지만이라도 알아야겠다고 하면서. 저에게는 낙양 분점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어요.”
“아니! 일검에 당했다면서 낭산에는 또 왜 갔대?”
“상인들이 눈앞에서 괴로워하니까. 호위대 책임자로 그냥 손 놓고 있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럼 철산이와 여양현에서 헤어진 거냐?”
“네. 분점으로 가던 중에 연 오라버니를 만난 거예요.”
“가자.”
연적하는 차에 손도 대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그건 하소백도 마찬가지였다.
“오라버니, 분점에 들러서 도와줄 사람들을 좀 모아요.”
연적하는 혼자서 가려고 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상방의 일이니 그들과 함께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
태평상방 분점.
“뭐요! 낭산의 도적들에게 본점의 물건을 죄다 빼앗겼다고요? 코딱지만 한 낭산에 무슨 대단한 도적들이 있다고 그 많은 물건을 빼앗깁니까?”
분점 책임자 송금행 행수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까지 낭산에서 사고가 터진 적이 없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소백이 변명처럼 말했다.
“행수님, 저희도 낭산에 도적들이 자리 잡은 걸 모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낭산의 도적들에게 호위 열 명이 당하고, 물건을 빼앗긴 건 사실이에요. 이철산 대주님께서 송 행수님에게 지원을 요청하라고 저를 보냈어요.”
“장일합 행수와 다른 상인들은 어딨소?”
“그분들은 여양현에서 대책 회의를 하고 계세요.”
“이런 제길! 낭산에 언제 도적들이 들어왔지?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인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송금행이 하소백을 돌아보았다.
“하 소저, 지금 남아 있는 분점의 호위라고 해 봐야 다섯 명 정도밖에 없소. 낭인들이라도 끌어모아야 할 텐데, 그만한 시간이 있겠소?”
“낭인들을 모을 시간은 없어요. 제 오라버니와 심 어르신이 도와주실 테니 분점의 호위들만 데리고 갈게요.”
송금행의 시선이 하소백의 뒤쪽으로 향했다.
야리야리하고 앳된 얼굴의 청년과 염소수염의 노인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런데 하고 다니는 행색이 어째 무인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분들은 무림인이오? 아니면 관인이오?”
그는 저들이 도검을 소지하지 않아 관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관인이라면 그나마 도움이 될 텐데…….’
그러나 전혀 예상치 않은 대답이 들려왔다.
“송 행수님은 제가 누군지 잊으셨나 보네요? 오라버니의 별호는 남천이에요.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구천노도시고요.”
순간 송금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남천은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절대고수인 까닭이다.
게다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구천노도까지!
저 둘의 무위라면 낭인을 대신하고도 남았다.
“헉! 저, 정말 남천 대협이십니까?”
뒤늦게 하소백이 오봉십걸의 일인이라는 게 떠올랐다.
운 좋게 낙양에서 남천 대협을 만났던 모양이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송 행수님이라고 했죠?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 얼른 호위들이나 모아요. 늦으면 나 혼자 가는 수가 있어요.”
“예, 예, 반각(약 7분)만 주십쇼. 분점에 대기 중인 호위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말을 마친 송금행이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송금행과 다섯 명의 호위가 나타났다.
하소백이 그들과 인사를 나눌 때다.
마당으로 내려간 연적하가 대뜸 운종술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발밑으로 하얀 구름이 뭉글뭉글 생겨났다.
송금행과 호위는 물론 하소백까지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그런 그들에게 연적하가 손을 까닥이며 말했다.
“얼른 와요. 구름 처음 봐요?”
***
하남성.
여양현.
해거름 무렵, 낭산 초입에 하얀 구름이 스르륵 내려와 앉았다.
이윽고 구름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다.
연적하와 심통, 그리고 하소백과 태평상방 낙양 분점의 호위들이다.
연적하와 심통을 제외하고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신선들처럼 구름을 타고 낙양에서 여양현까지 날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도적 중에 하나가 호위대주와 열 명의 호위를 일검에 날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정도 무위라면 절대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알아서 조심해요. 괜히 나대다가 다치면 자기 손해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연적하의 신위를 체험한 호위들의 목소리에는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곧이어 연적하가 심통에게 고개를 돌렸다.
“심 노인.”
“예.”
“잘 살펴봐. 물건이나 호위들의 흔적이 있는지.”
“예.”
심통이 긴장한 얼굴로 앞장섰다.
죽산에서 정체불명의 도적과 싸웠던 심통은 누구보다 조심스러웠다.
반 시진(1시간)쯤 지나 연적하 일행은 산 정상에 이르렀다.
그래도 명색이 산이라고 벌써 어두워져서 먼 곳은 보이지도 않았다.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심통이 다소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깨끗합니다. 물건은 물론 호위대의 흔적도 없습니다.”
“이상하네. 소백아?”
“네.”
“여양현에서 낙양까지 가는 거리와 낭산까지 가는 거리가 비슷하지 않아?”
“네, 비슷해요.”
“그럼 우리가 철산이보다 늦었다고 해도 한 식경(약 30분) 안쪽이잖아. 맞지?”
“그렇죠.”
하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이철산이 비슷한 거리를 이동했지만, 낭산에는 구름을 타고 한 식경 만에 왔다. 그건 이철산이 한 식경 정도 앞서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흔적도 인기척도 없지?”
중얼거리던 연적하는 즉시 양팔을 활짝 벌리고 사방으로 영기를 풀었다.
일 리, 이 리, 삼 리…….
그렇게 십 리(약 4킬로미터)쯤 영기를 방출하자 익숙한 기운이 걸려 들었다.
묘하게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연적하는 즉시 동쪽으로 내달렸다.
단숨에 산을 내려간 그는 황량한 겨울 들판을 가로질렀다.
익숙한 기운은 들판 끝의 거대한 잡목림에서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나오고 있었다.
다급해진 연적하는 한 걸음에 십 장(약 30미터)씩 앞으로 나갔다.
잡목림의 중간에 이르자 흐릿하던 기운이 칼로 자른 듯 툭 끊어졌다.
‘헉! 안 돼!’
연적하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하지만 한번 끊어진 기운은 더 일어나지 않았다.
다급하게 그대로 십여 걸음 더 전진하던 연적하가 우뚝 멈춰 섰다.
잡목림이 끝나 가는 지점에 스무 구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연적하는 그중 하나로 다가갔다.
검에 가슴이 꿰여 나무에 박혀 있는 사람은 오봉십걸의 일인인 이철산이었다.
그는 이승에 미련이 남았던지 두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연적하는 손바닥으로 이철산의 눈을 가렸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기운도 그렇고, 아직 차갑지 않은 걸 보니 금방 숨이 끊어진 게 분명했다.
문득 하소백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해에 채연 언니와 철산 오라버니가 혼인을 했어요. 그해 여름에 채연 언니는 상방을 그만뒀고요. 아기를 가졌거든요. 그런 언니를 대신해서 철산 오라버니가 종종 상행을 도와줬어요.
“씨발! 씨바알-!”
연적하의 피 끓는 외침에 잡목림 전체가 출렁거렸다.
이윽고 연적하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철산의 죽음과 관계된 것들은 다 죽인다. 하나 남김없이 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