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0
840회. 하여간 장사꾼들이란!
이틀 전.
하남성 낙양.
금와상방.
노규 행수는 상단 호위대 구성이 어려워지자 곽양인 대행수를 찾아갔다.
“대행수님. 제발 금린대의 구 대주를 설득해 주십시오. 하남성 분위기가 흉흉하다며 이번 이월 상행에서 빠지겠다고 합니다.”
노규의 말에 곽양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구명현은 금린대 대주이지만 동시에 방주의 셋째 아들이기도 했다.
“구명현이 그런 소리를 했다고?”
“예. 다른 사람을 대주로 세우라고 하는데, 금린대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구 대주를 대신할 다른 사람은 있고?”
대행수마저도 구명현의 뜻에 따를 듯하자 노규가 소리를 빽 질렀다.
“대행수님!”
“소리를 좀 낮추게. 나 귀 안 먹었네.”
“대신할 사람도 없거니와 금린대의 사기는 어쩌라고 다른 사람을 찾습니까?”
그러자 곽양인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이보게. 우리 솔직하게 말해 보세. 자네나 나나 방주님의 명을 받드는 처지 아닌가? 그리고 구 대주는 방주님의 총애를 받는 셋째고. 방주님도 구 대주의 고집을 꺾지 못하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를 상행에 내보낸단 말인가?”
“방주님께 말씀을 드리셔야지요.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지 않습니까? 금와상방은 대륙의 십대상방입니다. 남들이 알까 부끄럽습니다.”
“구 대주의 고집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네.”
“그래서요? 방주님께 말씀 올리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아니지. 방주님께 말씀드려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세. 내 말이 맞다는 것에 돈을 걸 수도 있어.”
“하아! 대행수님. 상단 출행 일이 며칠 남지도 않았습니다. 구 대주가 아니면 저는 못 갑니다.”
“어허! 왜 꼭 싫다는 사람을 앞세우려고 그러나?”
“싫다니요? 금린대 대주가 싫다는 이유로 상행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그런 개 같은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방주님의 아들이라도 그렇지, 호위대 대주가 상행을 거부하다니요?”
“어허! 이 사람 흥분했구먼. 구 대주가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방주님의 아들이네. 그렇다면 아랫사람인 우리가 적당히 덮어 줄 줄도 알아야지, 누군 성질이 없어서 참고 있는 줄 아나? 자네가 구 대주를 욕하면 결국 자네에게 손해일세.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러는가?”
노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대행수가 말하는 걸 보니 구 대주를 상행에서 제외할 모양이다.
“대행수님, 다 좋습니다. 그런데 구 대주가 빠진 걸 알면 금린대의 호위들이 상행에 나가겠습니까?”
“안 나가면? 상방에서 일도 안 하는 호위들에게 월봉을 줄 것 같은가? 이 한겨울에 잘도 먹고살겠군.”
“예,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나가기야 하겠지요. 하지만 대행수님도 아시다시피 이 흉흉한 시기에 호위들의 사기마저 바닥을 치면, 상행이 잘되겠습니까?”
“구 대주보다 더 뛰어난 고수를 대주로 세우시게.”
“그런 사람을 지금 당장 어디에서 구합니까? 그런 사람을 고용하려면 거금이 들어갈 텐데, 그건 누가 감당하고요?”
뭔가를 생각하던 곽양인이 서탁의 서랍을 열고 뒤적였다.
잠시 후 그는 차용증 한 묶음을 꺼내 서탁 위에 올려놓았다.
“뭡니까?”
“보면 모르나? 차용증이지.”
“그게 지금 도움이 됩니까? 그 돈을 받아서 보태라는 뜻입니까?”
“그건 하책(下策)이고. 이 차용증은 정주의 중원상방을 인수할 때 넘겨받은 것들이네.”
“그런데요?”
“이 차용증 중에 눈여겨 봐 둔 것이 있었네. 어디 보자……. 찾았다. 이걸세.”
곽양인이 차용증 한 장을 노규에게 내밀었다.
노규는 차용증을 받아 살폈지만 평범한 오백 냥짜리 차용증에 불과했다.
“백미주에게 오백 냥을 받아서 보태라는 겁니까?”
“쯧쯧! 머리하고는. 거기 백미주 이름 아래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게.”
“와룡장요? 하지만 와룡장은 오래 전에 망하지 않았습니까?”
“망했지. 하지만 이 년쯤 전 와룡장의 장주가 낙양 인근 맹진현에 무관을 세웠네. 자네도 이름은 들어 보았을 텐데. 와룡검객 연무백이라고.”
“아! 한때는 유명한 후기지수였지요. 남궁세가에서 십 년간 무공을 익힌 고수가 아닙니까?”
“맞네. 그 차용증으로 와룡검객을 고용하게. 금린대의 호위들도 구명현 대신 와룡검객이 대주로 간다면 오히려 더 좋아할 걸세. 금린대에 그의 제자가 하나 있을 게야. 그를 앞세워 와룡검객을 만나 보게.”
“백미주가 빌린 돈인데……. 연무백이 우리 뜻에 따르겠습니까?”
“무림의 고수들은 체면에 목숨을 건다네. 이 차용증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공개된 이상 그는 반드시 빚을 갚으려 할 걸세. 백미주가 수결했지만 와룡장의 이름으로 빌린 돈이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네부터 이 차용증의 힘을 믿게. 그럼 연무백은 자네의 뜻에 따르게 될 걸세.”
노규는 차용증을 곱게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
그걸 본 곽양인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처박아 두었던 차용증 하나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낸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래서 ‘세상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나 보다.
***
그리고 현재.
낙양.
맹진현 연가무관.
노규 행수가 돌아가자마자 연무백은 그의 처 양이화와 동생 연승백을 불렀다.
“승백아.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연가무관의 운영은 네가 맡아서 해야겠다.”
“왜요? 금와상방에서 행수가 찾아왔다고 하더니 상방의 일을 돕기로 한 겁니까?”
“그렇게 됐다. 겨울 동안 네가 제자들을 가르치거라.”
“예에?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겁니까?”
연승백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길어야 며칠이려니 생각했는데 겨울 동안이라니?
“이달에 출발해서 남직례성까지 가는 상단의 호위를 부탁받았다.”
“요즘 하남성이 정체불명의 도적 떼로 난리인데 갑자기 상단 호위를 한다고요? 더구나 금와상방이면 호위대가 제대로 갖춰져 있을 텐데, 왜 형님에게 찾아왔대요?”
“그 도적 떼가 두려워서 호위대주가 상행을 안 가겠다고 했단다.”
“뭐 그런 놈이 있답니까? 십대상방에서 잘도 그런 놈을 데리고 있었네요?”
“방주의 셋째 아들이다. 그러니 급하게 그를 대체할 사람을 구하러 온 거지.”
“대주를 하던 놈이 위험하다고 피하는 일을 왜 형님이 합니까? 급전이라도 필요한 거예요?”
“하아! 실은…….”
연무백은 어머니의 수결이 찍힌 은자 오백 냥짜리 차용증에 대해 털어 놓았다.
“……차용증의 날짜를 보니 궁장에 와룡장을 세울 때였다. 여하튼 그 차용증은 금와상방으로 넘어갔고, 노규 행수가 그걸 나에게 청구했다. 이번 상행의 호위를 맡아 주면 차용증을 돌려주겠다는구나.”
“…….”
연승백이 착잡한 눈으로 형을 보았다.
책임감 강한 형이 노규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으니 결국 호위를 떠맡게 될 게다.
동생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하자 연무백은 자신의 처 양이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정이 그렇게 됐소. 미안하지만 당신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소.”
“나도 당신이 그 차용증에 대해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양이화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연무백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줬다.
비록 그 일로 발목이 잡혔지만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시어머니가 사치를 부리기 위해 돈을 끌어다 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와룡장을 좌지우지하는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녀만큼 와룡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도 없었다.
그날 오후, 연무백은 백미주의 수결이 찍힌 차용증의 회수를 위해 금와상방으로 떠났다.
***
하남성.
정주.
중모현.
신시 정(오후 4시).
등원용 대행수가 이끄는 금인상방의 상단이 중모현 초입에 들어섰다.
선두에서 이끌던 태산검 하후찬이 말을 몰아 등원용에게 다가왔다.
“대행수님. 이 속도로 중모현을 통과하면 해질 무렵 가노하(賈魯河)에 도착할 겁니다. 해가 지면 가노하를 건너기 어려울 텐데, 어찌할까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중모현에서 쉬든지, 가노하 강변에서 노숙해야 한다는 소리다.
밝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등원용이 짧게 말했다.
“가 보세.”
정주에서 개봉까지는 이틀 거리.
사실 넉넉잡고 이틀이지 서두르면 하루 반나절에도 가능했다.
무인인 하후찬과 달리 장사꾼인 등원용에게 반나절은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하후찬은 등원용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그대로 말 머리를 돌렸다.
그냥 가면 노숙이 뻔한데 왜 저렇게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
‘등원용도 어쩔 수 없는 장사꾼이군.’
요즘처럼 위태로운 시국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단을 몰아붙이다니.
상단의 이동속도를 생각하면 가노하에 도달할 즈음이면 어둑어둑해질 게 분명하다.
그럼 강변에서의 노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쯧! 호위대만 피곤해지겠군.’
하후찬은 상단의 후미로 말을 몰았다. .
이동속도를 높이기 전에 짐마차나 짐꾼 들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잠시 후 연적하와 심통이 탄 짐마차가 나타나자 그는 마차 가까이로 말을 몰아갔다.
그는 짐 위에 길게 드러누운 연적하를 힐끔 보고 심통에게 말했다.
“심 대협. 대행수께서 중모현을 그냥 지나쳐 가라 하셨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노하를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둘러 보려 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 주십시오.”
“서두르면 건널 수는 있고?”
“마차만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짐꾼들 때문에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못 건넌다는 소리네?”
“허허. 해 보기 전에는 모르니까요. 대행수님께서는 건너가기를 바라십니다.”
“자네 생각에는 가능한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과 마차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대행수도 그걸 알 텐데? 왜 중모현을 그냥 지나치자고 하는 건가?”
하후찬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눈치 빠른 심통은 더 묻지 않고 그만 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하후찬은 심통과 연적하를 향해 묵례한 후에 상단 후미로 빠르게 이동했다.
잠시 후 상단의 이동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갑자기 몸이 좌우로 끄덕거리자 연적하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심 노인! 무슨 일이야?”
“앞에 보이는 중모현을 빠르게 통과하겠답니다. 대행수가 쉬는 꼴을 못 보겠나 봅니다.”
“하여간 장사꾼들이란! 남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지? 그래서 개봉에는 언제쯤 도착한대?”
“내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빠르면 오전이고, 늦어도 저녁이면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칠리하촌에 있는 호천맹을 그냥 지나쳤네?”
“왜요? 호천맹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있겠어?”
“없죠.”
“알면서 왜 물어?”
“공자님이 하도 아쉬워하니까 해 본 소립니다.”
“누가 아쉽대? 그냥 천지맹 때 생각이 나서 그러지. 그 사람들 요즘 뭐하고 지내나 모르겠네?”
“그 사람들요? 혹시 칠파일문을 말하는 거라면 죄다 쥐 죽은 듯 지내고 있습지요.”
“그 사람들은 대의와 명분을 엄청 따지는데, 가만 보면 자존심은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렇게 유명교에 절절매는 거겠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 년 전까지 죽기 살기로 싸우더니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창 칠파일문의 뒷담화에 빠져 있을 때다.
속도를 올리던 마차가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곧이어 선두에 있던 호위 하나가 빠르게 말을 몰아 달려왔다.
“대협! 녹림입니다!”
녹림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황망한 얼굴로 심통을 보았다.
깊은 산중도 아니고 사람들 북적거리는 중모현 초입에 무슨 녹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