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4
864회.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배가 선착장에 정박해 있을 때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림인들은 미지의 적이라도 찾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눈알만 굴렸다.
그러다 배가 강 중심부로 나아가자 약속이나 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석경장 식솔들은 대부분 강호의 일에 이력이 난 사람들이라 선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연적하, 남궁연, 심통, 당운망은 물론이고 어린 월아와 금아까지도 그랬다.
사실 월아와 금아는 주루, 석경장, 당가를 거치며 쓴맛 단맛을 다 본 터라 애늙은이 같았다.
월아와 금아가 나누는 대화만 해도 이미 소녀들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들의 관심은 육아와 요리, 주루의 경영 따위에 있었다.
물론 무공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오갔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건 육아였다.
지금도 그랬다. 월아가 연적하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보며 물었다.
“장주님. 아기는 하루에 몇 번 정도 젖을 먹나요?”
“많을 땐 열 번도 먹는 것 같더라.”
연적하의 말에 금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엄청 자주 먹네요? 그럼 응가도 열 번 하나요?”
“아니. 여섯 번 정도?”
그러자 월아와 금아는 글공부라도 하듯 ‘하루에 열 번, 여섯 번’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어린 소녀들의 그런 모습에 연적하는 기분이 묘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그러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씁쓸하다고 할까?
“너희도 밖에 나가서 구경이나 하지 그러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지금 양자강의 풍광을 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친구들도 좀 사귀고.”
“괜찮아요.”
“풍광이야 거기서 거기죠.”
“게다가 갑판에 저희 또래는 보이지도 않는걸요?”
“맞아요. 한 사람도 없어요.”
월아와 금아가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그녀들의 뾰족한 음성에 아기가 자극받았는지 발길질을 하며 꾸물거렸다.
연적하는 아기가 울며 보채기 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기를 어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뱃머리다.
다른 데로 가려는데 신검문의 여제자 하나가 아기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기가 예쁘게 생겼네요. 딸인가요?”
“네.”
“몇 살이에요?”
“팔 개월 됐어요.”
“와아. 진짜 애기네.”
양미가 아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녀가 한창 아기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있을 때다.
신검문의 여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여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아기가 좋아서 보러 온 사람들을 밀어내기도 뭐하고 애매한 상황이다.
인형같이 예쁘장한 아기에게 푹 빠진 양미가 다시 물었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아직 안 지었어요. 장인어른께 부탁하려고요.”
“아하. 그럼 지금 아기 이름을 받으러 가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연적하는 대충 둘러댔다.
석경장도 남직례성에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처갓집이 가까운가요? 너무 멀면 아기가 힘들 텐데.”
“합비에 있어요.”
“와아! 엄청 멀리 가시네. 가족들은 저 안에 있죠?”
양미가 선실을 가리켰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눈썰미 좋은 여제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혹시 아까 선착장에 함께 있던 미녀가 부인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순간 신검문 여제자들의 입에서 ‘와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양미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무슨 재주로 그런 미녀를 부인으로 맞이했는지 모르겠다.
“초면에 실례지만……. 부인을 어디서 만났어요?”
“장인어른과 선친(先親)께서 친구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 집을 드나들다 만났죠.”
“아하! 그러셨구나. 그런 엄청난 미녀를 얻으시다니 복받으셨네요. 부인에게 잘해 주세요.”
“예, 예.”
연적하는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남궁연이 강바람을 쐬기 위해 월아, 금아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연적하에게 다가오자 신검문 여제자들이 비켜섰다.
그냥 물러서기 어색했던지 양미가 신검문 여제자를 대신해 말했다.
“우리는 신검문의 제자들이랍니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잠시 보고 있었네요.”
“아기를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
남궁연이 미소 지으며 연적하의 옆에 나란히 섰다.
범접하기 어려운 미녀의 출현에 신검문 여제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수에 있던 신검문과 신녀궁 제자들의 시선이 남궁연에게 집중됐다.
신검문의 여제자들은 아기를 본 뒤라 젊은 부부에게-미미하게나마-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신녀궁의 여제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선착장에서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끈 천하절색의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신녀궁의 제자답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못 본 척했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신검문 제자들을 힐끔거리자 남궁연이 물었다.
“뭘 그렇게 봐?”
“저 사람들 신검문이라고 했죠?”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오룡궁에서 술법을 배울 때 신검문의 제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놈 이름이 화 뭐라고 했는데.’
관심이 없다 보니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독되어 엉망이던 자신의 얼굴을 놀리던 놈은 분명 신검문 출신이었다.
“좋은 관계는 아니었나 보네?”
“오룡궁에 있을 때 알게 된 사람이에요. 당 노인의 독에 중독돼서 얼굴이 엉망일 때.”
“아하.”
남궁연이 피식 웃었다.
얼굴이 엉망일 때를 강조하는 걸 보니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모양이다.
“어쩌다 내가 옆에 앉으니까 왜 자기 옆에 앉냐고 지랄을 하더라고요. 그런 꼴을 보면서도 조용히 지낸 거 보면 내가 보살인 것 같아요.”
“그랬구나. 그래서 그를 찾아보는 거야?”
“그 녀석 또래의 사람들이 많으니까 혹시나 싶어서요. 어? 저기 있네?”
“정말?”
남궁연이 무심코 신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국지색의 미녀가 빤히 보자 신검문의 남제자들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사형, 저 여자가 이쪽을 보는데요?”
“정말?”
“혹시 우리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요?”
“설마. 남편이 옆에 있는데 그러려고.”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정말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저 여자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있을까?”
남자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함께 있던 여제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그러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데 팔 개월 된 아기가 있겠어요?”
“사형들. 그만 봐요. 실례라고요.”
남궁연은 신검문 제자들의 소란에 얼른 시선을 강변으로 돌리며 중얼 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네.”
“왜요?”
“그때 네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서. 만약 그가 너를 알아 봤다면 함께 가는 동안 꽤나 불편할 거야.”
“불편하면 다 내쫓으면 되죠.”
“안 돼. 아기를 위해서라도 남에게 비난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지.”
“누님은 몰라도 나는 이미 충분히 욕먹고 있다고요. 나는 틀렸어요.”
“풋!”
남궁연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확실히 연적하가 그의 바람과 다르게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과거에는 ‘소악마’였는데 요즘은 악마도 울고 갈 ‘대악마’로 불리고 있다.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들었다는 소문과 더불어 나쁜 소문도 크기를 키운 것이다.
월아와 금아는 연적하의 자조적인 말에 실실 웃었다.
세파에 시달린 그녀들은 사람들이 연적하를 두려워하는 게 싫지 않았다.
신검문 남제자들의 허튼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참고 있던 신녀궁 여제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선착장에서부터 벼르고 있던 진소월이 바로 한마디 했다.
“남편이 옆에 있는데 외간 남자들에게 한눈을 팔다니! 얼굴만 반반하지 속은 썩었구나.”
그러자 신녀궁의 여제자들도 한마디씩 비꼬는 말을 했다.
“남편이 팔푼이인가 보죠.”
“남편과 아기를 두고도 저러는 걸 보니 무섭네요.”
“남편이야 자기가 선택한 여자니 어쩔 수 없다지만, 아기가 무슨 죄래요? 아기가 안됐네요.”
“저렇게 아무 데서나 색기를 줄줄 흘리는 걸 보면 기루 출신의 여자일 거야.”
“기녀라고요? 어쩐지.”
신녀궁 여제자들의 질시는 십전무후 남궁연을 졸지에 기녀로 만들었다.
신검문 제자들은 신녀궁 제자들의 말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를 부부를 위해 신녀궁에게 싫은 소리를 할 사람은 없었다.
호광성에서 신녀궁의 위세를 생각하면 그건 당연했다.
그건 신검문의 사정이고, 신녀궁 여제자들의 망발에 발끈한 월아가 소리쳤다.
“당신들 지금 우리 가모님에게 뭐라고 했어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금아도 거들고 나섰다.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요!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줄 알아요?”
신녀궁과 신검문 제자들이 황당한 눈으로 두 소녀를 보았다.
지금까지 호광성에서 신녀궁 여제자들에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해 신검문의 양미가 나섰다.
“꼬마 아가씨들. 속상한 건 알겠는데 진정하고 얼른 잘못했다고 빌어. 저 여협들은 신녀궁의 제자들이야. 일이 커지면 아가씨들의 주인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어.”
그러자 월아가 냉소를 쳤다.
“흥! 그까짓 신녀궁이 뭐가 대수라고 그래요? 당장 우리 가모님에게 무릎 꿇고 빌어요!”
“어서 빌지 않고 뭐 해요! 정말 싹 다 죽고 싶어요?”
신녀궁 소리를 듣고도 소녀들이 펄펄 뛰자 양미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한편으로는 저 부부의 정체가 뭐길래 소녀들이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궁금했다.
그거 신녀궁의 여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신녀궁 제자라는 걸 알고도 저렇게 나오니 찜찜하기 그지없다.
결국 신녀궁 제자들의 인솔자인 해어화(解語花) 이진이 나섰다.
“어린 아가씨들의 입이 맵구나. 너희 가모가 누구이기에 신녀궁을 그처럼 낮추어 말하느냐? 우리 신녀궁은 호광성의 신비문파로…….”
금아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이진의 말을 끊었다.
“신녀궁인지 시녀궁인지 모르겠지만 당장 빌라고요!”
‘시녀궁’ 소리에 이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득달같이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어린 것의 입이 방정맞구나! 입이 화(禍)를 부른다는 것을 모르느냐!”
금아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병장기는 없지만 스승이 가르쳐 준 무공은 맨손으로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과 금아의 손이 허공에서 수차례 맞부닥쳤다.
파파파팟-!
이진은 어린 소녀가 자신의 공세를 막아 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뭐지?’
어린 여자아이의 무공이 이 정도인데 주인은 또 얼마나 강할까!
거기까지 생각한 이진은 소녀의 뒤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잡아먹을 듯 쏘아보는 남편과 냉막한 얼굴의 부인이 눈에 들어왔다.
‘좋지 않아. 좋지 않아…….’
일반인인 줄 알고 제자들의 엇나간 언행을 방치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더니, 갑자기 ‘둥! 둥!’ 하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수적들의 전고(戰鼓) 소리였다.
북소리에 놀란 선장이 타기(舵機, 배를 조종하는 키)를 잘못 건드렸는지 배가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