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24
924회. 하지만 그는 아니야
‘너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냐?’는 유자양의 말에 금향은 흠칫했다.
어째 느낌이 싸했지만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되물었다.
“훗! 아까부터 물처럼 술을 드시더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어요?”
그러자 유자양이 삐딱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네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들었다. 눈 맞은 사내가 없다면 어째서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냐?”
“사내는 없어요. 다만 웃음이라면 모를까? 몸은 팔고 싶지 않아서……. 어멋!”
금향은 뾰족한 소리와 함께 가슴으로 파고드는 유자양의 손을 뿌리쳤다.
순간 유자양이 금향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은 금향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씨벌! 기녀 주제에,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서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내 오늘 너에게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골고루 보여 주마.”
말과 함께 유자양이 금향의 치마를 풀어 헤치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때 매실 앞에서 추여몽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 대협, 유 대협을 찾아오신 분이 계신데 안으로 모실까요?”
“됐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으니 가라 해라.”
대충 둘러댄 유자양이 허겁지겁 바지를 내릴 때, 갑자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뭐야!”
버럭 소리치던 유자양은 자신이 독무에 밀어 넣은 청년을 보고 얼음처럼 굳었다.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간 연적하가 유자양에게 다가갔다.
깜짝 놀란 유자양은 바지를 올릴 겨를도 없이 네발로 기어 물러났다.
“대, 대협. 오해십니다! 소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다가 대협과 부딪쳤습니다!”
연적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유자양이 앉아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뒤늦게 유자양이 바지를 올리려 할 때 연적하가 말했다.
“동작 그만.”
“…….”
유자양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뭘 하더라도 일단 헐벗은 아랫도리를 가리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연적하의 차가운 눈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추여몽이 기절한 금향을 안으며 구시렁거렸다.
“아이고! 고운 얼굴에 이 멍 좀 봐. 우리 금향이가 밤 시중은 안 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악하방 사람이 천화각에서 기녀를 개 잡듯 하다니……. 이게 무슨 진상이냐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청년과 유자양을 힐끔거렸다.
‘악하방의 유자양이 꼼짝도 못 하는 걸 보니 굉장한 고수인가 보구나.’
때마침 금향이 정신을 차렸다.
“아! 추 태태(太太)?”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이내 상황을 짐작했는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폭군처럼 굴던 유자양이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로 전전긍긍하는 게 너무 낯설었다.
‘저 사람이 성주의 아들이라도 되나?’
그녀는 병장기를 소지하지 않은 일반인을 유자양이 두려워하자 그렇게 오해했다.
문득 연적하가 술병으로 손을 뻗자 금향이 재빨리 나섰다.
그녀는 조신하게 비어 있는 잔에 술을 채웠다.
묵묵히 술잔을 들어 입에 댔던 연적하가 쩝쩝거리며 내려놓았다.
추여몽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리, 술이 입맛에 맞지 않으시나요?”
“쓰네요.”
“아! 그보다 단 향설주도 있는데……. 내올까요?”
“됐어요. 내가 술 마시러 온 것도 아니고. 다들 나가 봐요.”
연적하의 축객령에 추여몽과 금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연적하가 안주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유가야.”
“예?”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말해 봐.”
“오해십니다.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개소리는 그만하고. 등짝을 아주 제대로 밀던데, 왜 그랬냐?”
“사, 살려 주십쇼.”
넙죽 엎드린 유자양은 방바닥에 이마를 ‘쿵!’ 소리가 나도록 박았다.
“그럼, 고통 없이 죽는 것과 아프게 사는 것 중에 하나 택해 봐.”
“아프더라도 살고 싶습니다.”
유자양은 자신의 귀나, 사지 중 하나를 내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 식으로 은원을 정리하는 무림 고수들이 적지 않아서다.
“알았어. 그럼 이제 말해 봐.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
유자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랬습니다.”
“화가 났다고?”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독무에 도착할 때까지 유자양과 자신의 관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협께 욕을 먹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하! 내가 욕을 해서 죽이려 했다?”
“송구합니다. 순간의 노기를 이기지 못해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말에 유자양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어째 말만 들어서는 용서라도 해 줄 분위기다?
하지만 그건 유자양의 착각이었다.
대뜸 연적하가 손을 휘둘러 유자양의 혈도를 점했다.
퍼퍼퍼퍽-!
격공점혈의 반동으로 유자양의 상체가 들썩거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유자양이 얼떨떨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유자양의 몸이 천천히 길게 펴졌다.
유자양은 시야가 막히자 머리를 곧추세웠다.
그 와중에도 목은 점혈당하지 않았는지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대협?”
“이제 가도 돼. 참고로 일어날 생각은 하지 마. 남은 평생은 배로 기어 다녀야 할 거야.”
“대협! 살려 주십쇼!”
“살려 줬잖아. 뱀처럼 배로 다니라고. 괜히 허파에 바람 들어가서 사람처럼 걸어 다닐 생각은 하지 말고. 화타나 편작이 와도 못 고쳐.”
“사, 살려 주십쇼! 잘못했습니다!”
“왜? 그렇게는 못 살겠어? 그럼 죽여 줄까?”
연적하가 차가운 눈으로 유자양을 보았다.
죽여 달라면 바로 죽여 줄 기세다.
유자양은 빈말로라도 죽여 달라지 못했다.
‘참자. 참아. 그래 봐야 점혈일 뿐이다.’
그는 청년이 막은 혈도를 풀어 줄 고수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었다.
“가 봐.”
연적하의 말에 유자양은 정말 뱀처럼 꿈틀꿈틀 배로 기어 매실을 떠났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나, 추여몽과 금향은 새로 준비한 술상을 들고 매실로 향했다.
매실 앞에 선 추여몽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대협. 품질 좋은 향설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가타부타 응답이 없었다.
“대협, 안에 계신가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추여몽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어?”
언제 나갔는지 방이 텅 비어 있었다.
어깨 너머로 방 안을 들여다보던 금향이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셨나 보네요. 제 얼굴의 멍 때문일까요?”
“그럴 리가. 그런데 누구실까? 유자양을 그렇게 만든 걸 보면 무림의 고수 같은데.”
“그러게요. 그나저나 악하방에서 뭐라고 하면 어쩌죠?”
“어쩌긴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느냐? 유자양이 원수를 만나서 그렇게 된 걸.”
그제야 금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이번 일의 전후 사정을 알면 악하방주도 뭐라 못 할 터였다.
‘그분은 누구실까?’
그러고 보니 자신을 구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나를 염치 없는 계집이라 생각하실지도 몰라.’
그녀는 정체불명의 청년과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날에는…….
유자양의 말처럼 허파에 바람이 든 금향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악양에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그 하나는 산월신당에서 생긴 신비한 자연현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군자산에 불이 나서 독무를 다 태웠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면 신비한 일이라고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이 독무를 다 태우자 이번에는 폭우가 쏟아져 불을 다 껐단다.
군자산 인근의 백성들은 ‘하늘이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독무와 함께 사람들을 괴롭히던 괴질 또한 사라진 까닭이다.
다른 하나는 악화방의 유자양이 뱀처럼 배로 다니게 된 일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유자양이 원수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유자양의 악랄한 성품을 고려하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방에서 흘러나온 말로 유자양의 일은 신비스러운 사건으로 변했다.
-유자양이 그날 마차를 타고 산월신당에 다녀왔다.
-뇌신의 저주를 받았다.
그러던 중 유자양을 진맥한 의원들이 ‘점혈이 아니다’라고 하자 저주로 굳어졌다.
‘산월신당의 신비한 자연현상’과 ‘뇌신의 저주’는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
남직례성.
남경.
봉천각.
금의위의 집무실인 봉천각에 사십 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금의위 남진무사 원화평과 천호 사마랑이다.
사마랑 천호가 말을 이었다.
“군자산의 산불은 산월신당에서 일어났습니다. 산불이 독무를 다 태우고 인근으로 더 번져 나갈 때, 돌연 폭우가 쏟아져 산불을 껐다고 합니다.”
“누군가 불로 독무를 태우고, 또 비를 내리게 해서 불을 껐다는 건가?”
“그것이 불을 질러 독무를 태우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한 일입니다만……. 비를 내리게 했다는 것은 좀 지나친 억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을 지른 것은 가능하지만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습니다. 어찌어찌 불로 독무를 태울 수는 있습니다만……. 사람이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허면 불을 지른 것은 사람의 소행이 맞는가?”
“산월신당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운 좋게 군자산이 불타기 전에 비가 내렸고?”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가와 백독문에서도 포기한 뇌신의 독무를 뚫고 들어가 불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은?”
“당가의 은거 고수라면 가능합니다.”
“당가를 더 조사해 보게.”
“알겠습니다. 그자를 찾으면 어떻게 할까요?”
“누군지만 확인해 두게. 누가 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해서야 금의위 체면이 서질 않으니까.”
머뭇거리던 사마랑 천호가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저어, 산월신당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누군가?”
“남천 대협이라면 뇌신의 독무를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흠! 남천이라. 구름을 타고 다니는 반신(半神)이니 호풍환우(呼風喚雨)도 가능하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니야.”
“아닙니까?”
사마랑 천호가 애매한 눈으로 원화평 남진무사를 보았다.
“대인, 당가의 은거 고수는 조사해 보라고 하셨는데, 남천은 왜 아니라고 하시는지.”
“내가 지금까지 남천을 몇 번 만난 줄 아나? 그는 호천맹과 남맹의 싸움으로 분노하고 있네. 유명교의 유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그가 산월신당에 갔을 거라 생각하나?”
“그건 또 그렇군요.”
사마랑 천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천은 비록 ‘대협’이라 불리고 있지만 정파의 대협객이 아니다.
대협객들처럼 황실과 백성을 생각했다면 진즉에 유명교를 끝장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산월신당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호천맹과 남맹의 분쟁은 핑곗거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마랑 천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천이 뭉그적거리는 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다른 이유?”
“그는 녹림 출신 아닙니까? 녹림의 탐욕이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마랑 천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원화평 남진무사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