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 Agent Reincarnated as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47)
547화. 캐스팅 오디션
끼익─.
문이 열리고 신우진이 호흡을 가다듬은 뒤 안으로 들어섰다.
뉴스를 통해서만 보던 리케 감독이 정면에 떡하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어우,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 양옆으로는 새별 미디어의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도 앉아 있었다.
가볍게 묵례를 하곤 오디션을 위해 마련된 간이무대로 걸어가는데 긴장 탓에 시야가 좁아져서 단순히 진행을 돕는 스탭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 연기하실 때 상대역으로 도와드릴 류연우입니다.”
심지어 그 옆에는 진유한까지 서 있었다.
‘아, 아니 여기 뭐야···?’
뭐긴 뭐야, 새별이지.
순간 멍한 기분에 가만히 서 있던 신우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곤 인사했다.
“아, 예예! 반갑습니다.”
그리곤 몸을 돌려 리케 감독과 새별 관계자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신우진입니다.”
***
신우진은 리케 감독의 차기작에 출연할 배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을 때 두 귀를 의심했다.
리케 감독이 류연우와 친분을 드러내며 한국에 입국해 「테세우스」를 촬영했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지만, 넷플렉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작이고 원래 류연우는 스타들 사이에서도 스타로 불리며 해외에서도 유명한 인물이기에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이곳에 서 있게 됐다.
처음엔 온 신경이 리케 감독에게로 향했지만, 지금은 눈앞에서 자신의 대사를 받아쳐 주기 위해 기다리는 류연우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 다르긴 다르네.’
배우들은 함께 연기를 해보면 안다.
상대방의 아우라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렇기에 촬영을 하면서도 상대 배역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쓴다.
눈앞에 있는 류연우?
신우진은 자신이 느낀 압박감에 오버를 한 스푼 보태서 묘사하자면 무대 위에서의 류연우는 그의 등 뒤로 무형의 기운이 마구 넘실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리케 감독은 눈을 빛내며 예의주시했다.
‘흐음, 그래도 기세에 완전히 눌리지는 않는군?’
「테세우스」를 촬영하면서도 카말 워더스푼이 류연우의 기세에 눌려서 프레임 안에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찍은 씬이 있었다.
종종 상대를 잡아먹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류연우였다.
반면에 진유한은 그 존재감을 정면으로 받아칠 수 있는 배우다.
이번에 감상한 뮤지컬 「인생의 회전목마」는 당연히 한국어로 공연되었기 때문에 리케 감독이 전체 내용을 실시간으로 알아듣기엔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을 느끼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정도로 강한 두 배우 사이에서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색으로 뚫어낼 수 있을지···’
리케 감독이 보려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한편, 오디션을 위한 대본을 다시 한번 검토한 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곤 신우진은 류연우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이고, 이런 데서 혼자 앉아서 뭐 하셔? 이 늦은 시간에?”
그러자 연우가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아저씨.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쓰면서 살아갈까요.”
류연우의 음색은 방금 전까지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넨 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울한 목소리였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신우진의 눈이 빛났다.
‘이야, 무슨 몰입력이···.’
겨우 일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사람이 홱 바뀌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기가 죽거나 놀라지 않고 신우진의 눈이 빛난 이유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막 절로 신이 나는 연기덕후였기 때문이다.
신우진도 지금 느끼는 긴장감과 생경함을 연료 삼아서 곧바로 몰입했다.
“거,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꼬박꼬박 아저씨라고 하면 솔직히 이 아저씨도 상처받지.”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곤 류연우의 옆에 철퍼덕 앉았다.
“왜 사느냐라. 흐음, 이거 뭐, 그 문제에 대답해 주려면 르트 형이나 체 형 정도는 데리고 와야 하지 않겠어?”
“르트 형? 체 형?”
“데카르트랑 니체 말이야. 아, 왜 요즘 소크라테스도 테스 형이라고 부르잖아.”
그 말에 연우가 힘없는 옅은 미소로 피식했다.
“이런 것 때문에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예요.”
“거, 참. 맘대로 해. 아저씨라고 치자고.”
그리곤 신우진은 대회의실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층고도 그리 높지 않은 천장이지만, 마치 밤하늘을 둘러보듯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사는 건 말이야. 누구든 자격을 갖춰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불가피하게 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 그래도 재밌잖아? 다음 산을 넘으면, 다음 골목길로 접어들면 새로운 지평이 있을지 모른다는 미지가 말이야.”
“······.”
잠시 생각하던 연우가 입을 열었다.
“그 말 아저씨가 만들었다기엔 지나치게 멋진데···.”
“뭐 인마, 내가 방금 지어냈다. 왜.”
“흐음, 분명 헬무트 두비엘의 책에서···.”
“에이씨, 다 알면서 떠보긴. 그래, 책에서 봤다. 거 책 좀 읽었나 보네.”
물 흐르듯 이어진 대사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리케 감독이 눈을 빛내며 바라봤다.
리케 감독은 실제로 본인이 쓴 대본이었으니 비록 배우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더라도 흐름상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이해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리케 감독이 주목하는 건 신우진이 아니라 연우의 분위기였다.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하던 류가 조금은 더 밝아진 느낌인데.’
비록 오디션을 위한 연기에 불과하지만, 배우 류연우는 그 안에 백퍼센트 몰입을 해낸다.
그러니 그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킨다면 그건 분명 상대 배우가 내뿜는 연기의 힘 때문이다.
연기가 마음에 든 리케 감독이 신우진의 약력을 살펴봤다.
‘오호, 실제로 다큐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 리케 감독이 손을 들었다.
“오케이. 수고했어요.”
예상보다 빨리 연기를 끝내자 신우진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리케와 관계자들이 앉아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 연우 씨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에 씨익 미소 지은 연우가 리케 감독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신우진을 보곤 대답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예? 아, 예.”
신우진은 헤어질 때 하는 인사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기에 고개를 갸웃하곤 머리를 긁적이며 퇴장했다.
신우진이 나가자 연우가 리케 감독을 바라봤다.
‘내가 느꼈다면 리케 감독님이 못 느끼셨을 리가 없겠지. 그냥 안상호라는 사람 그 자체인데?’
그리 생각한 연우가 문장 구성 요소가 모두 빠진 물음을 던졌다.
“맞죠?”
하지만 리케 감독이 무슨 물음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하. 뭐, 자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는가. 직접 연기합을 맞춰봤으니 말일세. 아마 지켜본 미스터 진도 그렇게 느꼈을 텐데?”
리케 감독의 말에 진유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뵌 배우분들 중에 연기를 가장 잘하느냐고 물으시면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안상호 역할과 누가 가장 어울리냐고 물으시면 방금 나간 분이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진유한다운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리케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캐스팅이란 건 원래 누가 더 연기를 잘하느냐를 겨루는 게 아니니까 말이네. 애초에 그 배역을 할 운명인 사람을 찾는 과정인 게지.”
***
신우진은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미뤄왔던 분리수거도 하고 이불도 돌돌 말아서 집 근처 코인 세탁실을 찾았다.
요즘 들어 제작이 무산되는 작품도 많았고, 배우 업계에 불황이 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신우진도 마찬가지로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는커녕 극단조차 놀고 있었기에 버는 돈 없이 모아놓은 돈만 까먹으며 지내는 중이었다.
집 현관을 깨끗하게 하면 돈이나 복이 들어온다는 미신이 있으니 혹시나 해서 샤머니즘에 기대어 보고자 대대적으로 집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아. 초대형 세탁기, 이불 빨래, 오천 원이면 오백 원짜리가 열 개지요오─.”
즉석에서 멜로디를 붙이며 흥얼거리듯 혼잣말을 하던 신우진은 세탁기의 앞에 ‘초대형’이라고 쓰여있는 스티커를 보곤 피식 웃었다.
“나는 아직도 초소형 배우인데 세탁기조차 벌써 초대형이냐. 하아, 언제쯤 초대형 배우가 되려냐.”
자연스레 어제 만났던 초대형 배우 류연우의 연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같이 연기하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몰입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극한의 동화력(同化力).
그게 신우진이 분석한 류연우의 연기력이었다.
보통 그렇게 부잣집 도련님 같은 외모를 가지면 멋있는 배역만 어울리기 마련인데, 어제의 처량하고 우울한 역할도 충분히 어울렸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비열한 연기조차 완벽히 소화할 것 같았다.
무슨 배역을 해도 신기하게 그 역할과 완벽히 동화되며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믿게 되는 힘.
그게 동화력이었다.
“만약 간첩이라도 됐으면 절대로 안 들키시겠어─.”
콧노래를 부르던 신우진의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혹시나 하고 반사적으로 코인 세탁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지역번호 02로 시작하는 번호라면 어제 캐스팅에 대한 새별의 연락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번호는 033으로 시작했다.
새별 사옥이 강원도에 있진 않을 것이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뭘 또 기대했냐.”
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속으론 한 줌의 기대를 버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 전문 기관에서 위탁받아···.
“아이고, 안 사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곤 이불 빨래의 세탁 버튼을 눌렀다.
그때 다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다시금 희망에 찬 눈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02로 시작하는 번호가 아니라 일반 휴대폰 번호였다.
“예에. 전화 받았습니다.”
– 아, 신우진 선배님 맞으신가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가 자신을 선배라고 칭하기에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대학교 동문회에서 장학금 모금을 하려고 전화했나 싶었다.
“예? 맞습니다만, 저를 선배라고 부르시는 후배님은 누구신가요?”
그러자 다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예, 어제 뵈었던 배우 류연우입니다. 지원하신 ‘안상호’ 배역에 신우진 선배님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연락드렸습니다.
“······.”
잠시간 정적이 일더니 신우진은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며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함성을 가까스로 제 손으로 입을 덮어 막았다.
“우아아악, 웁!”
웃기게도 지금 신우진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집의 현관을 치워놓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돈이나 복이 굴러 들어온 게 아니라 황금 동아줄이 천장을 뚫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