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39
4.
짧은 시간 동안에 흑호단은 완전한 휴식에 몰입했다.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목계백이 가르친 대로 의식을 닫지 않은 채 든 명상 속에서의 휴식이다.
심신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머리카락 한올까지 이완을 시킨 상태로 전투 시의 행동만을 반추하는 일이다. 그 시간이 한 시진을 넘어간 후 잠을 청했다.
새벽별이 스러지기 직전에 목계백을 필두로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출발 준비시켜라.”
태웅에게 지시한 목계백은 객잔 우물의 찬물을 마시며 남쪽 하늘을 바라봤다. 분명한 추적의 예감이 곤두섰다. 장문을 필두로 한 혈천 지군이 턱밑까지 쫓아온 느낌이다. 그러도록 시간을 끌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부턴 속도전이야.’
흑호단도 모두 말을 구했다. 혈천도 말을 타고 추적해 올 터다. 관도를 따라왔으니 흔적이랄 것도 없지만 지울 것도 없었다. 이 객잔에서 밤을 보냈으니 곧 잡힌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종패, 여전히 그냥 따라다니고만 있는가?’
녹림신군 종패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쪽 하늘의 여명을 응시하던 목계백은 태웅의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출발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조반은 이동하면서 해결하도록 하자.”
태웅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혈천 추적대를 감당하기 힘들 걸로 판단합니다만.”
목계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우리가 몰살당하겠지. 그런데도 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를 추적하는 혈천지군의 추적대는 일천에서 삼천 사이의 기마대다. 말들을 생각하며 그래. 그중에 장문을 비롯한 정예들이 먼저 달려올 것이다. 분노와 수치와 자신감에 찬 그들로선 당연한 반응이야. 부관승의 목을 치고자 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급하고 커지겠지.”
“그들의 그런 마음을 이용한다고 해도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큽니다.”
“분명히 그렇다. 장문은 혈천 천군에 연락을 취해 우리의 도주로를 차단코자 할 것이다. 쉬운 일이지. 이대로 관도를 따라 북상하면 정주(鄭州)에 닿게 되니까. 그래서 시간과 결정적 기회의 싸움이다. 그들이 먼저냐 우리가 먼저냐인 거지. 그 기회를 이끌어내며 가야 하는 게 우리다.”
“굳이 우리가 이런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는……”
“있다. 여기서 도망칠 게 아니라면 해야 한다. 이제 백혈맹은 좌군이 무너지고 우군만 남았다. 이 전쟁의 추가 한쪽으로 확 기울었지. 그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명심해라. 우리에겐 아군도 적군도 따로 없다는 걸.”
태웅이 마음을 다스리며 고개 숙였다.
“주제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목계백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예?”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는 놈은 바보다. 제 생각을 만들고 키우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리를 이끌고 큰일을 해낸다. 네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자라난 거다. 수령으로서의 자질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지.”
“저는……”
“출발하자.”
목계백의 미소와 함께 대화는 끝이 났다.
태웅은 돌아서서 흑호단에게 돌아가 출발을 지시하면서 생각했다. 저 젊은 대주의 생각은 대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를, 도대체 어떤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것인지를.
“출발!”
조승의 출발호령과 함께 흑호단은 마차를 중심에 두고 객잔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 * *
아침 해가 막 떠오르려고 할 무렵 신양객잔에 혈천의 기마대가 들이닥쳤다. ‘혈천(血天)’이라고 쓴 붉은 깃발을 앞세운 그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객잔주인과 종사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묻는 말에 답해야 했다.
“유, 유시초(酉時初, 새벽 5시)에 출발했습니다요.”
두려움 때문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객잔주인에게 장문은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들이 의원을 들였느냐?”
“그, 그러했습니다요.”
하늘과 해를 보고 시간을 가늠한 장문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의원을 잡아와라.”
말 탄 혈천 무사들 몇이 즉시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살기 어린 눈빛을 뿌리던 장문은 녹림신군 종패와 시선을 부딪쳤다. 무심한 표정으로 무거운 눈빛을 던지는 종패, 그의 존재감이 계속해서 불편을 가중시켰다.
‘저자의 소용이 다 하는 날 문주께서 결론을 내리실 테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살기를 억제하며 장문은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하늘을 보며 시간과 거리를 가늠했다. 관도를 따라 도주한 맹호의 흑호단과 벌어진 거리다. 이대로라면 한 시진 안에 따라잡을 수 있다.
놈들은 부관승의 부상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었다. 곧 놈들을 잡아 목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가다듬던 잠시 만에 의원이 잡혀 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소인은 죄가 없습니다!”
양팔을 잡혀 온 의원은 장문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사색이 된 얼굴로 그는 거듭 소리쳤다.
“상처 입은 사람을 돌봤을 뿐입니다! 의원의 당연한 도리를 행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잘못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장문은 표정없는 얼굴로 알고자 하는 걸 물었다.
“부상 입은 자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상세히 말해라.”
눈동자를 격하게 흔들며 주변을 살핀 의원은 바로 시선을 깔고 대답했다.
“어, 어깨의 부상이 심각했습니다만, 제대로 봉합하고 치료를 했습니다. 정양만 잘하면 다시 팔을 쓰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문제는 내상이온데…… 소인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포기하였습니다.”
“손대지 않았다는 말이야?”
“예.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 가닥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장문은 갑자기 다른 소릴 했다.
“세상을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고개를 슬쩍 든 의원은 무슨 소린지 몰라 시선만 불안하게 흔들었다.
“청천벽력, 그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소인은……”
장문의 쾌검이 의원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벼락처럼 잘려버린 머리는 의원의 무릎 아래로 떨어졌다. 부릅뜬 그 눈을 향해 장문이 말했다.
“이게 바로 그런 일이다.”
검을 갈무리 하고 돌아서며 장문은 중얼거렸다.
“우리도 그런 일을 당했지. 세상으로부터.”
종패의 바위 같은 시선을 보란 듯이 응시한 후 장문은 명령했다.
“출발한다!”
* * *
시간은 물처럼 흘러 해가 벌써 동녘 산마루를 벗어나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객잔을 떠난 지 한 시진이 넘어갔다.
쉬지 않은 주파 때문에 슬슬 말들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쉴 수는 없었다.
목적한 확산(確山)까지는 가야 한다. 그래야만 계획대로 되기를 기대할 수가 있다.
“전방에 확산입니다!”
하대구의 외침대로다. 관도 저편 앞에 산이 보인다.
쉴 수 있는 장소다. 동시에 적의 예봉을 꺾어놓을 수 있는 곳이다.
저곳에서 승부수를 써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 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산을 노려보며 목게백은 외쳤다.
“달려라! 이젠 시간이 없다!”
목계백과 흑호단은 전력으로 확산을 향해 달렸다.
정말로 이젠 시간이 없어서다.
부관승의 치료와 전체의 휴식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장문을 필두로 한 혈천추적대를 유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던 시간 끌기는 다했다.
목계백을 선두로 일백의 혹호단과 마차는 확산 안으로 드디어 진입했다.
산의 형세는 부관승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 초입에 성문의 두 기둥처럼 양쪽으로 둔덕이 갈라져 있다. 그게 이어져 협곡을 이룬다. 그사이로 길이 나 있다. 산 안쪽의 분지에 조성된 마장으로 이어지는 외길이다.
강남상련이 강북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다 폐쇄한 마장이라 했다. 말들이 병에 걸려 폐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놓았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운영하기 위해 봉쇄한 곳으로, 길은 들고가는 외길뿐이며 농성전을 펼치기에 적합하다 했다.
‘외길인 건 상관없어.’
협곡 사이의 길을 달리며 목계백은 산의 형세를 유심히 살폈다.
여기서 농성전으로 시간을 끌어야 하지만, 최악의 경우엔 산을 넘어가면 된다.
이미 그런 경험이 있고 현재의 흑호단이라면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연 들은 대로군.’
말을 달리며 앞을 본 목계백은 초지 뒤로 산의 경사를 따라 이어진 마장의 전경을 눈에 넣었다. 한눈에 봐도 위에서 막으며 아래서 침범하기 힘든 구조다. 반면에 마장의 건축물들에서 아래를 보면 장애물 없는 초지다.
목계백은 초지 앞에서 말을 멈춤과 동시에 명령했다.
“이제부터 준비한다! 혈천에게 화끈한 환영인사를 해주자!”
* * *
해가 어느새 머리 위로 거의 올라갔다. 말들도 지쳐서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다.
하지만 장문은 멈추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놈들을 따라잡을 때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다.
화가 난다. 맹호란 놈을 어서 잡아 목을 비틀고 싶다. 녹림신군 종패에게 그 결과를 보여주고 비웃어 주고 싶다.
‘산도적 놈이 가당찮게.’
종패는 뒤로 처졌다. 신양의 객잔에서 의원의 목을 치고 난 다음부터다.
어차피 계속 마주 보고 싶은 생각도 없던 터이고, 그가 있다고 해서 맹호를 잡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잘됐다 했다.
그가 뒤로 처진 이유는 불만의 표출이다. 쓸데없이 사람을 죽인다는 소리다.
‘쓸데없는 일이 어디 있나. 필요해서 하는 일이다. 우리 해남파를, 혈천을 다시는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함이야. 그걸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다.’
종패와 같이 뒤로 쳐진 병력의 수를 가늠해보니 약 일천이다. 대부분 그의 녹림수하들이다. 걸리적거리지 않고 잘된 일이다. 그가 후행해 오는 지군병력을 인솔하고 오길 기다리면 된다. 물론 그 이전에 맹호의 목을 따야한다. 남은 이천병력이면 충분하다. 천군에서도 지원이 올 것이다.
‘현재 병력이 약 오백.’
장문 자신과 같이 선두로 치고 나온 숫자다. 약 일각 거리로 남은 기마대 천오백이 따라오고 있다. 결과는 결정 난 것이다. 맹호를 따라잡기만 하면 된다. 놈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이번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살기 가득한 미소를 물고 달리던 장문은 관도 저편에 나타난 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다. 하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그런데 산의 초입에 다다라서 멈춰야 했다. 발자국 때문이다.
‘이놈들 봐라?’
흑호단의 흔적이다. 마차바퀴자국도 선명하다. 놈들은 관도를 따라 계속 북상하지 않았다. 이산으로 들어갔다. 숨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랬다.
‘뭐지 이건?’
미간을 가득 좁힌 채 생각하던 장문은 결론을 내렸다.
‘시간을 벌겠다는 거냐? 백혈맹 우군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야? 좋다. 종국에는 시간 싸움이지. 너희가 먼저냐 우리가 먼저냐, 그러나 내가 먼저지.’
검을 뽑아든 장문은 수하들에게 외쳤다.
“놈들이 이 산에 있다! 혈천의 무서움을 죽음으로 알려줄 때가 왔다!”
장문을 필두로 오백무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산 안쪽을 향해 달렸다.
* * *
조승이 날 선 눈빛을 뿜어내며 작게 말했다.
“옵니다.”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이고 단궁을 잡아당겼다. 동시에 흑호단 서른 명도 활을 당겼다. 건너편 협곡의 위에서도 서른 명의 흑호단이 활을 당겼다. 모두가 숨죽인 채 혈천 추적대가 협곡 길로 질주해오는 것을 기다렸다.
성문처럼 양쪽으로 둔덕이 있는 곳을 지나 달리던 장문은 협곡 길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매복하기에 적당한 장소여서다. 하지만 협곡의 형세가 바위 등을 굴리기엔 지나치게 완만하고 부드럽다. 산의 형세를 보니 바위나 돌덩이 등이 보이지 않는 육산(肉山), 흙 산이다.
‘매복이 있다고 해도 결국 뚫고 들어가는 수밖엔 없는 지형, 돌파하자.’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 장문은 수하들에게 외쳤다.
“매복을 경계하라! 돌파한다!”
말 배를 차며 장문은 협곡 길로 달려 들어갔다. 지친 말은 거품을 물면서 주인의 명령을 따랐다. 그 뒤를 오백기마대가 밀물처럼 따라 달렸다.
목계백은 조승에게 작은 소리로 명령했다.
“말을 노려라.”
명령과 함께 시위를 놓았다.
힘을 머금었던 화살은 벼락처럼 날아가 선두무리의 말을 맞췄다.
사람보다 큰 체구의 말은 맞히기도 쉽고, 지쳐있는 상태라 더욱 효과적이다.
목계백처럼 조승과 혹호단 전부가 그렇게 했다.
삽시간에 혈천추적대의 선두는 말과 사람이 고꾸라지며 행렬이 무너졌다.
뒤따라 달리던 자들이 급히 피하긴 했지만 넘어진 자들과 충돌을 다 피하진 못했다. 그 여파가 연쇄적으로 커지는 위로 화살은 계속 날아갔다.
“일어서라! 동료들을 피해 나와라! 협곡만 나가면 된다!‘
소리친 장문은 협곡 너머 초지와 그 위쪽의 마장 건축물들을 보며 말을 달렸다. 그 뒤로 충돌을 피해 나온 추적대가 핏발 선 눈으로 따라 달렸다.
“이동한다!”
단궁을 거두고 일어선 목계백은 협곡 능선의 수풀을 이용해 달렸다. 양쪽 협곡 위의 흑호단 육십 명은 즉시 화살 공격을 멈추고 마장을 향해 질주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