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67
3.
밤을 새운 이동은 신양을 지나 하남을 벗어났다. 호북 땅을 밟고 나간 행로는 동남하 하여 신현(新縣)을 지나 소계령(小界嶺)에 닿았다. 이곳에선 강이 흐른다. 장강의 지류 복전하(福田河)가 남행하여 본류에 닿는다.
시원하고 차가운 강물에 지친 행로의 피곤을 씻어낼 무렵의 시간은 진시 초(辰時 初 아침 7시)가 되어갔다.
어둠이 걷힌 강가에서 목계백은 지형을 살폈다.
강의 유속과 강폭, 주변의 야산들과 비탈과 들판, 무리가 들고나기 쉽고 어려운 곳, 공수에 유리하고 불리한 곳을 살폈다.
‘현재 자리가 가장 좋군.’
결론은 현 위치의 고수다. 이곳에서 진영을 설치하고 적을 기다림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강을 이용해 후퇴할 수 있는 위치다. 어디든 적이 다가온다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적 역시도 마찬가지다.
강변이기에 특별히 더 나은 장소는 없다. 현재의 유리함을 이용할뿐이다.
수하들에게 지시하던 종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목계백이 먼저 말했다.
“이곳에 진영을 설치하자.”
미간을 좁힌 종패는 목계백이 한 것처럼 주변 지형을 살피더니 확인하듯 물었다.
“여차하면 강을 타고 후퇴하자는 건가 본데, 애초 계획처럼 백혈맹이 뒤를 쫓아와 물어줄 거 같으냐? 당문의 등장으로 이제 상황이 달라졌잖나?”
“맞아. 달라졌지. 하지만 전쟁이 끝난 건 아니지. 끝나는 건 우리가 아는 방식이야. 싸우던 쌍방의 어느 한쪽이 죽거나 전투불능이 되는 거지.”
“죽거나, 전투불능……”
되풀이 해 목계백의 말을 음미하던 종패는 그를 입에 담고 중얼거렸다.
“방학천은 어떻게 됐을까……?”
목계백은 종패의 의문 어린 시선을 좇아 아침 하늘 저편을 응시했다.
밤을 새워 강행군해온 길이 있는 쪽이다.
습관적으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남은 자들의 궁금해서다.
종패처럼 방학천의 생사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더욱이나 그를 저지한 것이 당문이라는 것이 더욱 그렇다.
‘투항했다? 자신을 담보로 수하들의 안전을 요구했다?’
정탐조의 보고대로라면 그러하다. 당문으로부터 도주한 백혈맹의 무사들이 전한 소식이다. 장문인들이 피살당하는 현장에서 등 돌려 도망친 무당과 종남과 점창의 제자들은 남은 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한다.
과연 그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수하들을 살려줄 것을 요구한 혈천총사의 행동과 결단, 그것을 본 세 문파의 제자들은 저희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토록 인의도덕을 강조하고 자랑하던 구대문파는 어디로 간 것이냐?’
눈앞에 그들이 있다면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목계백은 당문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이유다.
그건 역시 흑혈섬이다.
정탐조의 보고대로라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 물었고 방학천을 당문으로 데려간다 했다 한다. 흑혈섬은 역시 당문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진영을 설치하라!”
녹림대호들에게 명령을 내린 종패는 목계백의 시선을 붙잡았다.
“당문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그 때문에 우리는 행로의 속도 조절이라는 애초 계획을 버리고 전속 행군했다. 당문의 얼굴을 우린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얼굴을 내민 이상은 언젠가 마주치게 될 거다. 그들이 당문으로 돌아간다 했다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사천을 나온 이유가 분명 있다. 그건 흑혈섬때문만이 아니야. 목적이 있음이다.”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흑혈섬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할 거야. 분명 그것에 대한 규명도 당문의 목적 중 하나이겠지만, 그것을 위해 그들이 혈천과 백혈맹이 전면전을 치르는 곳에 그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리 독과 암기의 조종이라고 하지만 십여 명으로는 이란격석이지.”
“사전에 준비한 거다.”
“맞아. 혈천도 백혈맹도 모르게 그들은 중원에 눈과 귀를 둔 거다. 모든 상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야. 임여진의 전황도 파악하고 있었겠지. 백혈맹이 입은 피해와 혈천 총사의 도주라는 현황을 흘려보내지 않은 거다. 도주로의 앞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손을 쓴 거다.”
“그래, 독을 미리 살포하고 기다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혈천의 무리 삼백여, 백혈맹의 무리 육백여 명을 동시에 중독시켜 그런 결과를 만들 순 없지. 분명 그 근방에 산공독을 대량으로 살포한 거다. 모두 말을 탄 자들이었으니 독가루가 비산하여 흡입할 것을 당연한 일, 성공한 거지.”
“그대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을 만들고 의도대로 결과 낸 것은 역시 당문이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이 무서운 것이겠지.”
미간을 좁히고 목계백은 말을 이어냈다.
“문제는 그들이 왜 중원에 얼굴을 내밀었냐는 것인데, 십 년 전의 제남회합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가문이야. 그런 자들이 나왔다는 건…… 백혈맹과 혈천의 전쟁을 기회로 삼아 중원제패를 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근리하기는 한데, 딱히 그것으로만 못 박기엔 석연치가 않아.”
검자루를 잡은 종패는 살기 어린 눈빛을 뿜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들이 중원에 뜻을 두고 있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맞아.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지.”
“준비?”
“독에 대한 준비.”
씩 웃는 목계백을 바라보며 종패는 검자루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 * *
숭산은 여름비바람을 맞아 수풀이 우겨졌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푸름은 사라지고 갈빛이 차지할 터이지만, 그래서 푸름을 더하겠다는 것처럼 한창이다.
억센 초목들의 가려버린 그 숭산의 비탈을 늙은 승려는 느릿하게 올라갔다.
머리 위로 뜬 정오의 해를 올려다보고 잠시 쉬며 화주병을 입에 대고 마시고 흥얼거리는 걸음이다.
그 발이 암굴 앞에 닿았다.
“아무려나 타불이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불호를 지껄인 늙은 승려는 주름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암굴 안을 응시했다. 대답이 없자 케헴 하더니 안으로 몸을 들였다.
“제기랄 거, 어둡구나. 늙은이 생각해서 불이라도 좀 밝혀봐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둠이 하등 불편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너스레를 떠는 것은 천성이기도 하지만, 암굴 안의 사질에 대한 작은 부담이다.
“광일아.”
늙은 승려가 부르자 암굴 안쪽 벽을 향해 앉아 있던 팔 없는 승려, 광일이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 등을 향해 다가간 늙은 승려는 앉았다.
등진 광일을 보고 앉은 늙은 승려는 다시 불렀다.
“광일아.”
하지만 광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돌부처가 되어버리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물결치던 어깨의 떨림도 천천히 가라앉아 사라졌다.
“광일아.”
다시 부르는 소리에 광일은 등 돌린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사숙, 돌아가십시오.”
사질의 반응을 얻어낸 늙은 승려, 공료대사는 주름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돌아앉아 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소림도 마찬가지야.”
광일은 불호를 읊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합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림도 그러합니다. 그것이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 손발을 들였습니다만, 더 큰 아픔만 가지고 이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과 소림, 소질은 이제 잊으렵니다. 소질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제 마음에 마귀가 들었던 탓이지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찌푸린 미간을 더욱 좁힌 공료대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물었다.
“맹호라는 자, 어떠하더냐?”
광일은 가라앉혔던 어깨의 경련을 다시 보였다. 한바탕 물결의 출렁임 같은 떨림을 흘려보내고서야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아직이다.
“맹호…… 그자는…… 강호의 숨통을 끊을 자입니다……”
그토록 힘든 말이었던가? 아니면 가슴에 파묻어뒀으니 꺼내지 못했던 말이었던가? 그래서 그걸 꺼내니 이처럼 흥분과 전율을 감추지 못하는가.
“강호의 숨통을 끊을 자라?”
되풀이해 말한 공료대사는 광일의 오른팔을 응시했다.
의생각의 치료를 받은 어깨에선 아직도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핏물보다 더한 것이 광일의 마음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안다.
광조와 광해 두 사형제를 잃었고 광현방장도 잃었으며 백팔나한이 죽는 자리에 있었다.
그들의 주검을 두고 돌아선 광일이다.
이곳에 앉기까지 어떠한 마음이었을지를 짐작한다.
아니 헤아리지 못한다.
죽지 않고 돌아온 광일의 마음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분명한 건 맹호가 돌아가게 뒀다는 것이다.
바로 그자에 대해 물었더니 광일은 전율하며 충격적인 말을 했다.
강호의 숨통을 끊을 자.
누가 있어 이러한 말을 듣겠는가?
누가 이러한 말을 귀 담아 듣겠는가?
전자도 없고 후자도 없다. 하지만 광일이 말했다. 확언했다.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 오욕칠정의 고리를 벗어던지고 돌아선 자가 한 말이다.
오래된 우물 속을 헤집어 옛 물을 끌어올리듯, 공료대사는 물음을 던졌다.
“그자가 무섭더냐?”
광일은 어깨를 흠칫했다. 하지만 다시 떨림을 보이진 않았다. 완전하게 평정을 찾은 건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일체의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무섭습니다.”
“그자가 그토록 강하더냐? 네 팔을 잘라버릴 만큼? 광조와 광해를 베어버릴 만큼? 정녕 네가 이길 수 없는 자더냐? 네 부상으로 인해서가 아니더냐?”
광해는 간단하게 답했다.
“그에게 광조와 광해가 죽었습니다. 사숙의 제자 유위명도 죽었습니다.”
공료대사는 주름진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듯 경직했고 광일은 말을 이었다.
“소질의 부상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누가 겨루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자는 강하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무서운 건 맹호 그자가 아닙니다. 세상입니다. 소림입니다. 변하지 않음입니다.”
입을 다문 광일의 등을 말없이 응시하던 공료대사는 불호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광일아. 너는 이제 돌아앉아 세상과 소림의 오욕을 보지 않고자 한다만, 그것으로 해결이 나진 않는다. 네가 사제들과 같이 나섰던 마음이 그러했듯이, 참여하고 손발을 담가야 함이 맞느니라. 그래 맞다. 소림은 되돌릴 수 없는 걸음을 내디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이 그러함이다. 우리는 출가인이나 강호를 버리지 못했음이다.”
공료대사의 아득한 시선은 암굴속을 더듬었다.
“소림의 기왓장 하나하나, 지나온 역사와 숨결 전부가 강호 안에 있음이다. 그 숨결을 마시고 살아온 우리가 소림이다. 세존의 법을 논하고 자비를 강론하는 것은 도리어 욕된 짓이다. 가면을 쓴 거짓이다. 소림의 정체성은 강호 안에 있다. 나는 일찌기 그것을 주장했고 실천했다. 법과 행의 충돌 속에서 많은 실수와 방황이 있었고 지탄도 받았지. 그러나 나이 백수에 가까이 이른 지금은 그 신념과 확신이 더욱 공고하다.”
공료대사는 남겨뒀던 말을 냈다.
“노구를 다시 세상에 세운 이유가 그것이다.”
침묵이 암굴 속을 휘감았다. 누군가 들어와 손가락이라도 댄다면 쩡하고 깨지는 소릴 낼 것만 같은 육중한 침묵, 그것은 광일의 목소리로 깨졌다.
“사숙은 맹호의 손에 죽을 겁니다.”
꿈틀, 주름 가득한 얼굴을 경직했던 공료대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하!”
소림 고승의 웃음소리는 숭산의 푸른 초목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 * *
강을 향해 신호를 보낸지 반 시진 만에 배가 나타났다.
근처의 나무들을 베어 임시진영을 설치하던 녹림대호들과 흑호단을 남겨두고 목계백과 종패는 배에 올라탔다.
날렵한 쾌속선은 복전하를 타고 내려가 장강본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부터 백사관에 도착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배가 워낙 빨리 움직여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장강수로채의 움직임은 종패를 놀라게 했다.
백사관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구불구불한 수로와 늪지대를 지나고 수적들의 매복을 살핀 후 백사관을 보고 감탄했다.
“천혜의 요새로구나.”
진심으로 감탄한 종패는 처음 본 장강수로채의 여기저기를 돌아봤다. 그사이 배에서 내린 목계백은 마중 나온 채주, 수룡왕 함윤과 인사를 나눴다.
“살아서 다시 보는구나.”
“죽은 얼굴을 보여줄 걸 그랬나? 섭섭해도 어쩔 수 없지. 그건 기회가 없을 거다.”
목계백과 함윤은 미소를 나눴다. 함윤의 미소가 더욱 짙었다. 그만큼 반가운 것이다. 무영사를 흑호단이 이탈할 당시 도움을 주고 여태 전황의 소식만 듣던 차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불안하던 참이다.
“덩치 좋은 자를 또 데리고 왔구나?”
전황을 파악하고 있다면 알고 있을 터인데도 함윤은 모르는 척 종패를 거론했다. 종패는 특유의 험악해 보이는 인상을 썼고 목계백은 말했다.
“녹림신군이다. 인사해라.”
함윤이 미소 짓던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제기랄. 듣던 것보다 더 무섭게 생겼구만.”
바로 포권하며 함윤은 첫인사를 먼저 했다.
“장강영웅채주 수룡왕 함윤이라 하오. 이렇게 상면하게 되어 반갑소.”
종패는 무뚝뚝한 얼굴로 마주 포권했다.
“녹림을 이끌고 있는 종패요. 만나서 영광이오.”
목계백은 함윤이 먼저 안내하기도 전에 채주전으로 향하며 말했다.
“당문이 출몰했다. 독에 대한 대비를 마련해야 해.”
누가 주인인지 모르게 목계백을 따라가며 함윤이 대꾸했다.
“독이라면 독으로 상대하는 게 맞지 않나?”
목계백은 눈을 반짝이며 걸음을 멈췄다.
“이독제독?”
종패도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빛냈고, 함윤은 또 한마디를 냈다.
“오독문은 당문에 원한이 많지.”
세 사람은 눈길을 얽고 뜨거운 안광을 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