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29
3.
해가 정오를 알리며 솟아오를 무렵, 남궁세가에선 기마들이 퍼져 나갔다. 중원천하 각지로 보내는 무림첩이다. 동시에 전서구들이 날아올랐다. 인편으로 통보 할 수 없거나 불가피한 곳으로 보내는 무림첩이다.
무림첩의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이 혁리세가가 벌인 것으로 확실시 되는 흉악한 사건에 관해서다.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여인의 증언이 확보된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무당과 남악권사 등이 공정성을 담보한 상황이다.
물론 무당에서 확실하게 혁리세가의 범행이라고 단정 지어 공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한 혐의가 있고 의혹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터다.
그렇기에 혁리세가가 이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한 내용들이 무림첩에 들어 있다. 혁리세가를 압박하는 내용들이.
“남궁세가가 단단히 준비를 했군요.”
목계백은 엷은 미소로 말 했다. 건네줬던 무림첩의 내용을 읽고 난 후 나온 그 말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를 알기에 명세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전부터 작정했던 거야. 아주 오래됐지. 혁리세가가 항주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거지. 그 이름을 듣는 것조차도.”
다시 길 떠날 차비를 갖추고 있는 적호단의 모습을 보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곁에는 비격과 적호단주 모금량이 있었지만 다가가지는 않았다.
“호북 무한과 같은 제 삼지대가 아니라 항주로 곧장 간단 말입니까?”
“남궁세가주의 결정이다. 처음 거론됐던 무한에서의 무림대회가 의미 없다고 판단 한 거다. 어차피 혁리세가를 압박하기 위한 일, 그 가문의 앞마당에서 무림대회를 열겠다는 거지. 그들이 안 나올 수 없도록 말이다.”
“가면서 바람을 더 크게 불어보겠다는 계획이군요.”
“당연히, 첫째와 둘째를 남게 하고 남궁륜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서겠다고 했다. 셋째를 대동한 이 길에서 확실한 승부를 짓겠다는 작정인거지.”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겁니다. 혁리세가가 당하지 많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이 어떤 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미간을 모으고 묻는 명세기에게 목계백은 모호한 미소로 답했다.
“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기대가 무너져서인지 명세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따위 대답은 어린애도 하겠다.”
“그럼 뭘 원하십니까?”
“뭘 원하냐니? 네놈이 내게로 접근해온 이유가 뭐냐? 너와 내가 이렇게 한자리에서서 말을 섞은 이유가 뭐냐? 이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네놈이 말한 대로 나와 대동보에 이득이 되기 위해서 아니냐? 그렇다면 그럴만한 것이 있어야지. 겨우 그 따위 소리냐?”
목계백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뭘 착각하고 계십니다.”
“뭐라 착각? 이놈이?”
“저는 신산귀계를 만들어 내는 제갈공명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아니 그건……”
“기회를 볼 줄 알고 행동 할 줄 아는 자일뿐입니다. 전체를 볼 줄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미간을 찌푸린 명세기에게 목계백은 담담하지만 단단한 음성을 거듭 던졌다.
“상통천문 하달지리, 천이통, 천안통, 그런 건 제게 없습니다.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판단하고 대응함이 조금 더 나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한발 앞설 수 있고 불리한 위치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내천자를 그리며 숨을 내쉬는 명세기의 눈빛변화를 향해 목계백은 남은 말을 했다.
“그런 제 눈으로 본 혁리세가의 반응이 어떠할 것 같냐라고 물으신다면, 역시 같은 말입니다. 가서 겪어봐야 알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람이 어떻게 불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서 불지는 알지요, 보주님도 아십니다. 그 바람, 혁리세가의 바람이 남궁세가의 이름에도 상처를 남길 겁니다.”
명세기는 미간을 단번에 펴며 눈을 부릅떴다.
‘남궁세가의 이름에도 상처를 남긴다?’
무슨 의미인지 헤아려진다.
이번 싸움, 이 전쟁, 남궁세가와 혁리세가의 분쟁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되진 않을 거다.
이기고 지는 쪽이 나오겠지만, 이긴 자에게도 깊고 무거운 상처가 남을 거다.
그걸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의 시간은 대동보에겐 기회가 된다.
명세기가 무거운 숨을 내쉬며 눈빛을 번득이는데 누군가 불렀다.
“거기들 있었군.”
남악권사 무천룡이다. 그가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공손히 맞는 명세기를 향해 미소를 던진 무천룡은 목계백에게 말을 걸었다.
“일격탄 이격살, 대동보의 숨은 맹호가 이제 더 무엇을 놀래키려는가?”
목계백은 엷은 미소만 지었고 명세기가 물었다.
“일격탄 이격살 이라니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 아직 보주는 모르나? 춘추검 오세명이 이 놈을 그렇게 불렀다던데?”
“춘추검이요?”
“그래, 비금도에서 그랬다며? 이놈이 한반 받아친 후에 두 번째엔 죽였다고. 영락없었다던데? 자전도객과 그 제자놈에게도 그렇게 했지 않았나?”
“그래서……”
“그래, 별호가 생긴 거지. 일격탄 이격살.”
남악권사와 명세기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목계백은 그녀를 봤다. 소리 없이 제 부친의 뒤에 서 있는 여자. 여전히 방갓을 쓴 무천룡의 딸.
‘이 여인, 생각보다 더 간단치 않겠는 걸?’
여자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하며 목계백은 은근히 투기를 발산했다. 여자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너랑 당장 붙어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만들 둬라.”
남악권사가 끼어들어 투기의 마찰은 흩어졌다.
“쓸 데 없는 기력낭비하지 말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준비들이나 해. 우린 혁리세가의 안방으로 가는 길이다. 그들이 환영해 주지 않을 길이지.”
목계백은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다.
* * *
다시 절강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이번엔 떠나온 곳이 아닌 북쪽의 항주를 향해서다.
그 길의 목적과 내막을 알기에 적호단 무사들은 대비를 투철히 했다.
은천장의 무사들 이십여 명도 특별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그 행렬에 남궁세가의 인원들이 합세한 행렬은 장대했다.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널린 알린 요인 중의 하나인 창룡대(蒼龍隊) 무사 삼백 명이 진군하는 모습은 장관이라 할만 했다.
특유의 남의무복에 붉은 허리띠를 매고, 검과 그 밖의 병기들을 지닌 채 말을 타고 가는, 압도적 기세다.
행렬의 중심에는 남궁세가주 남궁륜과 남악권사 무천룡, 무당 도사들이 탄 마차가 있었다.
그 뒤로 부상 때문에 타고 왔던 은천장주의 마차가 따랐다.
황산대협 갈홍은 무거운 얼굴로 말을 타고 따랐고 남궁세가의 셋째아들 남궁여립과 명세기도 각자의 위치에서 수하들을 독려했다.
목계백은 남궁세가의 병력과 물자들을 실은 마차와 수레를 보며 생각했다.
‘이정도로 혁리세가를 도모 할리는 없을 터, 후발대가 필히 있을 것이고 각지에 거점이 있을 거다. 항주까지 가는 길에 이미 그런 거점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야. 거기에다 강호인들의 합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터, 항주에서의 무림대회란 사실상 혁리세가를 규탄하는 강호의 대회합. 혁리세가가 어찌 나올지 모르지만 이미 남궁세가가 승기를 잡았다.’
문득 웃음소리가 목계백의 생각을 흩어 놨다.
행렬의 중앙, 남궁세가주가 탄 마차 안에서다.
남궁륜과 남악권사 무천룡과 그의 딸, 무당 태현자와 그의 두 제자가 타고 있는 곳이다.
저 웃음만 들으면 들놀이 행렬 같다.
‘남궁세가주 남궁륜, 과연 무서운 인물이다. 그런데 그와 마주 앉아 도호만 읊어대는 자들, 무당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번 일에 나선 것인가?’
의문을 씹는 동안 행렬은 쉬지 않고 길을 주파했다. 해는 어느새 기울어지고 있었다.
* * *
온 길을 거슬러 동향 인근 천하루에 다시 들렀을 때는 선객들이 있었다.
소식을 듣고 항주로 간다는 강호무림인들이다.
대부분 그렇고 그런 자들이지만 그중에 제법 이름 있고 명망 있는 인사들이 끼어 있었다.
무시 할 수 없는 그들과 남궁세가주와 핵심인물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더욱이나 이 행렬의 목적이, 항주로 가는 이유가 있기에 짐짓 반색했다.
해가 기울어 밤이 이슥해졌지만 천하루의 웃음과 말소리들은 끊이지 낳았다.
‘쉬지 않고 떠들어들 대는 군.’
이미 남궁세가주를 비롯해 남악권사 무천룡과 무당인물들, 대동보주와 은천장주 등이 천하루에서 급히 마련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건만 남은 자들은 그러질 않았다. 잔칫집을 찾아온 거지떼들처럼 쉬지 않고 먹고 마시며 떠들어댔다. 내용은 이번일과 관련한 것이지만 그냥 떠듦이다.
‘결국 야숙인가?’
야숙을 준비하는 남은 인원들을 보며 목계백은 주변을 거닐었다.
모두가 분주했다.
대규모의 인원이라 인근 객잔 등에 숙소를 분산했지만 여전히 인원의 대부분은 잠자리를 찾지 못한 상황, 결국 천하루를 중심으로 야숙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인원 중에 대동보와 은천장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
적호단 무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비격과 적호단주를 힐긋 본 목계백은 천하루 뒤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숲을 가로질러 한참을 더 가서 거의 산자락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목계백만이 아니었다.
뒤돌아 선 목계백은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를 던졌다.
“밤이슬이 찹니다.”
수풀의 음영과 어둠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그림자가 달빛 아래로 나왔다.
“겨룹시다.”
밑도 끝도 없고 앞뒤 없이 겨루자는 말을 한 인물, 달빛아래 미동 없이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남악권사의 딸이었다. 그녀가 방갓을 벗었다.
얼굴을 가렸던 방갓을 벗자 진면목이 드러났다.
눈은 크고 갸름한 턱 선을 가졌으며 분을 바른 것처럼 피부는 희다.
한눈에 보고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미인의 얼굴이다.
그런데 냉막하다. 눈동자가 차갑고 전신에서 분노와 같은 살기가 퍼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흠칫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이마를 타고 내려온 칼자국이다.
여인, 남악권사의 딸은 이마부터 뺨까지 가른 칼자국을 꿈틀하며 다시 말했다.
“선공하겠소.”
그 말을 던지고 여인은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도리 없군.”
나지막한 한마디를 흘려낸 목계백은 여인의 공격을 향해 마주 움직였다.
남악권.
무천룡의 이름을 강호에 드날린 절기가 여인의 손을 통해 터져 나왔다.
일권에 산을 허물 듯한 힘과 기세를 담은 권력이 하얀 섬섬옥수와 어울리지 않게 폭발했다. 그 힘을 목계백은 용악권으로 마주 받아쳤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쾅, 하는 타격음과 울림이 목계백과 여인의 사이에서 터졌다.
즉시 몸을 휘돌려 충격을 털어낸 두 사람은 다시 이권을 펼쳤다.
여인의 주먹은 명치를 노리며 들어왔고 목계백의 권은 상대의 미간을 노려 나갔다.
피하거나 맞더라도 상대를 가격함을 결정해야 할 상황.
두 사람은 동시에 권을 멈췄다.
목계백의 주먹은 여인의 미간 앞에서, 여인의 주먹은 목계백의 명치 앞에서.
그 짧은 정지의 순간 두 사람은 벼락처럼 물러났다.
목계백은 발끝으로 바닥에 팔극을 밟으며 휘돌았고 여인은 오행의 방위를 밟으며 휘돌았다.
그러더니 둘 다 다시 나왔다.
맹렬한 기세로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은 한순간 수많은 주먹을 뻗어냈다.
마치 천개의 팔이 달려 있어 그걸 휘두르는 듯한 두 사람, 상대가 내민 주먹을 주먹으로 막고 수도를 장으로 받아치고, 권배를 장근으로 쳐올리는 공방, 그 무시무시하고 숨 막히는 접전은 역시 한순간에 끝이 났다.
팡, 소리와 더불어 여인이 휘청휘청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한쪽 어깨를 부여잡은 모습이다.
여인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목계백은 내밀었던 주먹을 펴며 서서히 몸의 기세도 풀었다.
두 다리를 모아서서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병기로 하겠소?”
목계백이 묻자 여인은 등에 멘 검자루를 반사적으로 잡았다. 하지만 뽑지 않았다. 그냥 목계백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당신, 자전도객을 상대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
두 손을 자연스럽게 내린 목계백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난 누구를 상대하나 마찬가지요. 최선을 다하오.”
칼자국이 가로지른 얼굴을 일그러뜨린 여인은 익, 하며 검을 뽑으려 했다.
그때 목계백이 남겨뒀던 한마디를 던졌다.
“칼을 뽑으면 죽고 죽이는 거요.”
여인은 움직임을 멈췄다. 손을 바르르 떨며 목계백을 노려봤다.
“당신, 누구야?”
모호한 말이면서도 정확한 말이다.
너 같은 자가 왜 대동보에 있느냐는, 명세기 같은 자의 아래에 있느냐는, 거기서 뭘하느냐는 질문이다.
표정을 풀며 미소를 문 목계백은 대답했다.
“나는 칼잡이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목계백은 온 길을 되돌아갔다.
뒤에서 여인이 소리쳤다.
“내 이름은 무금(茂琴)이다! 나와 다시 겨루게 될 것이야!”
걸음을 옮기며 목계백은 생각했다. 왜 저 여인이 저러는지를.
이유는 하나다.
‘승부를 갈망하는 여인이야. 강해지려고 하는. 눈에 든 원한이 답이겠지.’
달빛 속을 걷는 목계백의 등을 여인 무금이 무섭게 노려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