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32
2.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총관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에 의해 매몰차게 치워졌다. 그 광경을 본 비격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일반인은 상관없다지만 독을 먹은 자인데……”
너무한 처사라는 비난이다. 그걸 들은 적호단주 모금량이 역시 작게 말했다.
“쓸 데 없는 소리 마라. 남궁세가에서 하는 일이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눈빛을 얽는 사이로 목계백이 끼어들었다.
“남궁세가가 진행하는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야.”
비격과 적호단주 모금량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뭐? 전략?”
“그게 무슨 소리야?”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눈빛을 받아내며 목계백은 말했다.
“보라고. 상황이 아주 극적이다. 흥분한 군웅들이 보이지? 저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어. 하마터면 오독문의 무형산공독이 든 물을 마실뻔 했으니까.”
적호단주 모금량이 미간에 힘을 주며 반응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나도 같은 심정이니까. 만약에 중독된 상황에서 공격이라도 받았다면 어땠겠나?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을 게 아닌가?”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됐겠지. 바로 그 점을 남궁세가가 부각시켰어. 독을 푼 자들, 혁리세가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가문을 지목하고 있지.”
목계백은 군웅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들을 봐라. 분노와 증오가 팽배하고 있다. 처음엔 작았던 것들이고 옅었던 것들이지. 그런데 이제는 달라. 이젠 당사자가 됐으니까. 때문에 이건 당연한 분노인거야. 이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의 분노와 가차 없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인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비격이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을 꺼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그러한 연출효과를 노리는 거다?”
“보고 있는 그대로다.”
목계백의 짧은 말처럼 남궁세가 무사들은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여립의 지시를 받은 창룡대 삼백무사들, 그들이 남하객잔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른 함정이나 독 등을 찾아내기 위한 행동이다. 그 행동에 군웅들은 함성을 지르고 지지하는 소리를 내며 동조하고 있었다.
“결국 물은 직접 떠와야겠군.”
아쉬운 말이지만 아쉬운 감정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목계백의 목소리 뒤로 비격이 물었다.
“간자를 찾아낼 것이라고 보나?”
적호단주 모금량도 눈을 반짝이며 시선을 목계백에게 고정했다.
목계백은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미간에 가득 모은 비격은 작은 소리로 숙의 하고 있는 남궁세가주 남궁륜과 남악권사 무천룡, 무당의 태현자를 응시했다. 간자라는 말로 군웅들을 흥분시키고 창룡대로 하여금 객잔을 들쑤시게 만든 후의 모습이다.
“정말로 그럴까? 쉽지 않아 보이는데?”
적호단주 모금량도 동의했다.
“어렵지 않겠어? 혁리세가가 이렇게 치밀하게 손을 쓴 마당에 간자를 침투시켰다면 누군 줄 알겠나? 그러니까 저렇게 숙의들 하는 거겠지.”
목계백은 간간하게 그 말을 부정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남궁세가에선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지. 여기까지 와서 간자가 행동하도록 기다린 것뿐이야.”
모금량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비격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여기까지 와서? 기다렸다? 결국 유인했다는 거냐? 이렇게 연출하기 위해서? 그게 아니면…… 모종의 상황발생을 예상하고서 있다 이용하는 거다?”
대답대신 목계백은 질문을 던졌다.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건……”
비격과 달리 모금량은 계속 부정했다.
“그건 너무 억측이야. 혁리세가가 치밀하게 일을 꾸미긴 했지만, 간자를 침투시켰다면 중간에 합류한 강호무림인들일 테지. 저들이 제일 유력해. 하지만 저들 중에 누가 간자인지,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어찌 파악하겠나?”
그렇다, 합류한 강호무림인들의 숫자는 이제 칠백여명을 넘어갔다.
목계백은 그 말을 또 부정했다.
“말했잖아. 남궁세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비격이 그 말에서 깨달음을 잡아챘다.
“처음부터 라는 건…… 우리가 남궁세가로 들어선 때나 그 전후를 말함이냐? 그즈음이라면 우리와 은천장사람들과 황산대협과 자전도객 밖엔……”
되짚어 말하던 비격은 눈을 치떴다.
“설마, 황산대협?”
적호단주 모금량이 놀란 얼굴을 만들었지만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될 거야.”
그가 맞아가 아니고 그자가 될 거다, 라는 목계백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그건 마치 갈홍이 간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될 거라는 말 같았다.
“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비격과 모금량의 표정과 반응을 향해 목계백은 답을 내줬다.
“내가 온주로 오기 전에 항주에 들렀었다. 그때 황산대협 갈홍이 혁리세가의 식객으로 드나든 다는 풍문을 들었다.”
모금량은 겨우 그거 가지고 그러냐는 식으로 반박했다.
“그거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황산대협은 원래 그런 사람이잫나?”
하지만 비격의 생각은 달랐다.
“온주에서 우리가 주체가 된 일이 벌어지고, 그 일이 커져 남궁세가와 혁리세가가 부딪히려는 시기에…… 황산대협 갈홍이 우리의 노정에 우연히 합류하고, 결국은 이 행렬에 참여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래, 유난히도 혁리세가를 두둔하는 듯한 말을 했었지. 공평무사한 것처럼.”
다시 확 미간을 좁힌 모금량은 숙의하는 수뇌들을 돌아보고 다시 목계백을 봤다.
“정말로 남궁세가에선 다 알고 있었다는 거냐? 황산대협이 접근한 저의를?”
엷은 미소를 지은 목계백은 남궁세가주 등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내가 아는 걸 저들이 왜 모르겠나?”
그렇다, 저들은 남궁세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 그럼, 이제부터 황산대협 갈홍의 정체를 밝힌다는 거냐?”
제법 놀람이었는지 말까지 더듬는 모금량과 달리 비격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겠군, 증거가 있는지는 몰라도 혐의만으로 충분할거야. 아니, 섣부른 혐의는 역공을 받을 수 있을 테니 그에 대한 대비를 했겠지.”
목계백은 가만히, 그 자신만이 느낄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런두런 낮은 소리로 숙의 하던 남궁세가주와 무천룡, 태현자는 군웅들을 향해 돌아섰다. 형형한 안광으로 무천룡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무림동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겠소이다!”
웅성거리고 술렁거리던 칠백여 무림인들은 남악권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우리는 흉악한 흉계의 전말을 보았소이다! 우리가 항주로 들어가려는 걸 막고, 정의를 위해 불의를 혁파하려는 우리의 행보를 저지하려는 적의 소행입니다! 독을 사용한 이 일은 대단히 교활하고 추악한 암계로서, 남궁세가를 주체로 한 본래의 행렬 외에 강호동도 여러분들마저 노린 극악한 암습이었소이다! 이는 절대로 묵과 할 수 없는 일이외다!”
군응들 속에서 옳소, 죽여라! 혁리세가를 때려부수자, 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그 기세에 편승하여, 그 소리들을 압도하며 무천룡이 외쳤다.
“이제 간자를 색출해 처벌하고자 하오이다!”
군웅들은 바로 반응하며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는 남하객잔주변을 울리며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무천룡은 또 소리쳤다.
“간자는 혁리세가와 내통한 황산대협 갈홍이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함성 지르던 군웅들은 소릴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못 믿을 일에 마주친 얼굴이 된 그들의 시선은 황산대협 갈홍에게로 모였다.
당황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갈홍이 소릴 질렀다.
“그,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립니까? 당치 않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그 말 밖에 하지 못하겠다는 듯 갈홍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군웅들의 눈에는 정말로 기가 막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지목당한 자는 다름 아닌 황산대협인 것이다.
겨우 입을 여는 것처럼 갈홍은 거듭 외쳤다.
“평생을 협의를 좇아 살았다고 자부하오이다! 오지랖이 넓어 강호의 분쟁에 끼어든 적이 수도 없으나, 언제나 공평과 의로움을 행하려고 애쓰고 노력했소이다! 그 덕에 얻은 별호가 바로 황산대협이오! 과분한 별호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바이오! 강호동도들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오!”
갈홍은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뒷말을 터트렸다.
“그러한 내게 간자의 누명을 씌우다니! 남궁세가는 모략을 즉각 중단하시오!”
남악권사 무천룡 대신 남궁세가주 남궁륜이 나섰다.
“황산대협이란 별호는 참으로 값진 별호지.”
혼잣말 하듯 그렇게 말을 뱉어낸 남궁륜은 군웅들을 향해 정중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우리는 우리를 공격한 흉수가 누구인지 지적해 말 한 적이 없소이다. 하지만 우미 모두가 다 알고 있소이다. 마지막에 그 이름을 거론했지만, 우리가 지목하고 확신하는 흉수는 혁리세가외다. 그들과 내통해 우리의 행렬에 참여한 자가 결국 독으로 공격하기에 이르렀소. 참으로 추악하고 더러운 짓이오. 그러나 그보다 더 더럽고 추악한 것은 그들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자들이오. 바로 그러한 자가 지금 내 눈앞에 있소이다.”
남궁륜의 시선은 갈홍에게로 돌아갔고 갈홍은 안면을 부들거렸다.
“남궁세가주께선 말씀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그 무슨 증거로 이리 모략하시는 겝니까!”
남궁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라고 했나? 그래, 보여주지.”
한쪽으로 내민 남궁륜의 손에 남궁여립이 문서 봉투를 공손히 넘겼다. 그걸 받아 안의 문서를 꺼낸 남궁륜은 천천히 펼쳐 군웅들에게 들어보였다.
“이건 항주전장에서 발행한 환(換)이외다.”
군웅들의 시선이 모여들었고 갈홍의 표정은 경직했다.
“일종의 전환전표로서 명목금액이 은자 일만냥의 거액전표외다. 이것은 환전하고자 할 때 제시자가 수결을 하여야 하는 절차가 있소이다.”
남궁륜은 전표의 뒷면을 보였다.
“여기에 갈홍이란 성명이 수결되어 있소이다.”
군웅들 속에서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 직후 작은 욕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더 커지더니 갈홍을 죽여라 하는 소리로 변했다.
갈홍이 당황과 충격을 삼키며 변명했다.
“그, 그것은 항주전장과 개인적인 금전거래였을 뿐이오!”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강호인들이라면 다 안다. 항주전장이 혁리세가의 것이라는 걸.
그곳에서 발행한 일만 냥 이란 거금의 전표를 갈홍 같은 자가 소지하고 있다가 수결할 일이란 실상 거의 없다.
분명히 모종의 대가로서 받은 돈이다. 그걸 수결해 다른 전장에서 환전한 증거물이다.
“이, 이건 모함이오! 계략이오!”
거듭 외치는 갈홍에게 남궁륜이 엷은 미소로 남은 말들을 던졌다.
“우리도 힘겹게 얻은 전표라네. 항주전장으로 회수되어 들어가야 마땅했을 것이지만, 우리의 노력과 행운이 겹쳐 손에 넣게 되었지. 자네에게는 불행이고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모두가 뿌린 대로 거두는 법. 혁리세가의 식객노릇을 하다가 내 집에 찾아온 자네를 반겨주었지만 자네는 간자로서 왔지. 그러한 흉계와 흑심을 내 어찌 고맙다고만 하겠나.”
남궁륜의 뒤에서 태현자가 나지막하게 도호를 암송했다. 그리고 남악권사가 다시 나섰다.
“갈홍! 네놈을 천참만륙을 내도 시원치 않을 것이지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네 죄를 인정하고 혁리세가의 비리를 밝히는데 일조한다면 목숨만은 보존하리라! 만일 그렇지 않겠다면 이 자리에서 참수를 할 것이다!”
부르르 안면을 떨던 갈홍은 군웅들을 향해 호소하듯 외쳤다.
“이건 모함이오! 남궁세가에서 날 목적물로 삼아 혁리세가를 치려는 더러운 협잡이오! 전표하나를 가졌다고 해서 내가 혁리세가와 내통했다는 증거가 되오이까? 그 내막도 묻어버린 채 간자로 모는 저의가 무엇이겠소이까? 남궁세가는 항주를 차지하기 위해 이 음모를 벌이고 있는 것이오!”
발악하듯 소리친 갈홍의 말 뒤로 남궁여립이 나섰다.
“그것이 혁리세가가 주장하는 말이로구나? 그만큼 지껄였으면 됐다. 이젠 목을 내놓아라.”
남궁세가의 세 용중 한명, 남궁삼룡 남궁여립이 나서자 군웅들은 침을 삼켰다. 눈앞에서 남궁세가의 검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이를 악문 갈홍이 검을 뽑아들던 그때였다.
“대동보의 맹호가 마무리 하게 해라.”
남궁륜이 지시했다. 모두의 귀를 파고드는 이상한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남궁여립이 멈춰 섰고, 검을 뽑아든 갈홍은 눈을 부릅떴다.
군웅들은 웅성거렸다.
“대동보의 맹호라면 그자 아닌가?”
“맞아, 자전도객을 베어버렸다는 그자야.”
“일격탄 이격살!”
어느새 풍문으로 퍼져버린 별호, 그것을 외치는 군웅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때문에 대동보주 명세기는 목계백을 찾아서 말없는 시선을 던졌다.
시릿한 눈빛을 순간적으로 뿜었던 목계백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섰다.
대동보주 명세기에게 목례하고 당당히 걸음을 내딛었다.
호명한 남궁세가주나 다른 인물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게 더욱 당당하게 보였다.
갈홍이 다가오는 목계백이 아닌 남궁세가주에게 소리쳤다.
“남궁륜! 당신의 더럽고 추악한 욕심을 삼판을 받을 것이다!”
검을 고쳐 잡은 갈홍은 침을 삼켰다. 걸음을 멈춘 목계백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아니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올바름을 봐야 하는 거다. 이 일은 잘 못됐다. 애초부터 남궁세가의 욕심이 개입된 일인 거다. 너 같은 젊은이는 소모품으로 희생될 뿐이다. 창창한 미래를 저런 자들에 의해 버릴 수는 없지 않겠나? 지금이라도 나를 도와 이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면 혁리세가의……”
목계백은 갈홍의 말을 잘랐다.
“알아.”
꿈틀 미간을 경련하는 갈홍에게 목계백은 뒷말을 던졌다.
“혁리세가와 남궁세가, 다를 게 없지. 그래서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척장도를 뽑아 세운 목계백은 남은 말을 미소와 함께 뱉었다.
“너 같은 놈들을 죽이는 게.”
갈홍은 부르르 안면을 떨다가 튀어나왔다.
전광석화과 같은 그 공격, 검 끝이 목계백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목계백의 장도가 그걸 받아쳤다.
캉, 하고 갈홍의 검이 동강 나는 순간, 목계백의 장도가 이격을 뿌렸다.
번쩍하는 도광이 지나간 갈홍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