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7
2.
안개는 살아있는 짐승처럼 바다 위를 출렁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출렁거림이 느껴졌다. 그건 마치 위험한 짐승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소리만 들리는 바닷물의 움직임은 그에 편승에 긴장을 고조시켰다.
뱃전에 우장을 입고 앉은 목계백은 장도를 무릎 사이에 세우고 지그시 움켜쥐었다.
새로 받은 칼의 신선한 느낌과 묵직한 도신의 감각이 만족스러웠다.
칼 손잡이에 맺힌 안개가 물방울로 흘러내리는 것도 그랬다.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구나.’
그 느낌이다.
도병을 타고 흘러 손아귀로 스며드는 물방울은 영락없이 피의 흐름이다.
사람을 베고 또 베어 혈귀처럼 피를 뒤집어썼을 때, 칼과 손에 흐르는 피의 느낌이 꼭 이렇다.
그래서 이건 마치 예언처럼 인식된다.
‘비금도.’
안개 속을 응시하며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른 목계백은 뱃머리의 선 수부를 봤다.
그가 손을 들어서다.
그에 따라 뒤로 수신호가 이어지고 열 한 척의 배는 긴장으로 팽배했다.
각 배와 배의 사이는 겨우 한길, 밧줄로 이어진 상태다.
배 한 척에는 20명씩의 인원이 탔다.
지금 목계백이 탄 선두의 배만 서른여섯 명의 인원이 타고 있다. 은천장의 인원과 대동보주, 비격과 목계백, 물길을 안내하는 수부까지 합한 숫자다.
“암초지대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비격이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속삭였다. 시선을 돌리자 그가 안개 속을 가리켰다.
“이제부터 비금도 앞바다야. 안개가 끼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암초들의 위치만 알면 아무 문제가 없지. 길을 인도하는 자는 이곳 물길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자다. 보주께서 저 자를 찾느라 고생하셨지.”
의문을 드러내는 목계백의 미간을 응시하며 비격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이야기를 이었다.
“뱃길은 인도하는 저 자, 손정방이라는 자다. 본래 조부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던 자였지. 그런데 정쟁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린 끝에 오체분시를 당하고 말았다. 그 아들이 겨우 목숨만 부지해 절강 벽지로 숨어든 거지.”
시선을 돌려 수부를 바라보는 목계백의 귀에 이야기는 계속 들어갔다.
“여기서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비금도로 들어간 거다. 저 자는 바로 그 아들이야. 평생을 그 섬에서 어부로 자란 자다. 그렇지만 아비에게서 학문을 배워서 남다른 데가 있기는 한 자야. 그래도 별수 없이 어부지.”
비격은 얼굴에 흐르는 안개 물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뒷말을 했다.
“저 자는 그 섬을 악적들에게 빼앗기고 고기밥으로 던져졌다. 기구한 인생이지. 하지만 목숨이 질겨서인지 나무토막 하나를 잡고 뭍으로 살아나왔지. 후환이 두려워 숨어 살았지만 섬을 그리워하고 빼앗긴 것을 원통해 하여 소문이 은밀히 났지. 그 소문을 추적해 저자를 찾아낸 거다.”
“저자가 길 안내를 흔쾌히 수락한 건가?”
“아니, 무조건 거부했지. 죽음을 딛고나온 기억이 끔찍했을 테니까 당연한 반응이지. 하지만 보주께서 삼고초려 해 오늘을 만들었다. 저자에게 복수할 기회라고,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내보인 결의와 진심이 통한 것이야.”
흡족한 표정을 짓는 비격의 얼굴엔 보주 명세기를 향한 존경이 가득했다.
“그런 거로군.”
고개를 주억거린 목계백은 다른 걸 물었다.
“비금도주 운악과 칠주해룡(七柱海龍)들에 대해서 아나?”
비격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뭐가 궁금한데? 그들에 대해서 모르는 자가 있나? 온주는 물론 절강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걸? 그들이 얼마나 잔악한 자들인지, 그들이 귀신처럼 뭍으로 나와 자행한 살인과 약탈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런 것 말고. 그들의 출신과 성명 같은 것.”
“출신성명?”
좁힌 미간을 더욱 좁힌 비격은 생각하는 얼굴이다가 목계백을 응시했다.
“그런걸 아는 사람은 없을 걸?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문득 궁금해서.”
“궁금해? 뭐가?”
“궁금하지 않나? 그들이 어디서 뭐하던 자들인지 말야? 어떻게 비금도라는 곳으로 흘러들어와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었는지, 목숨 걸고 섬으로 찾아드는 악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통제하고 부리는 지, 다 궁금하지.”
“그건……그렇군.”
비격의 얼굴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안 목계백은 섬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하게는 안개만 뭉클거리는 뱃머리 앞이다.
그곳에서 손정방이라는 자는 눈을 부릅뜬 채 뱃길을 인도하고 있다.
그 눈에 든 것은 복수심이다.
저자에게 그 마음을 불어넣은 것이 다름 아닌 대동보주 명세기다.
‘처음 판단과는 다른 자, 효웅이다.’
목계백은 명세기에 대한 판단을 그렇게 내렸다.
처음 봤을 때엔 별다른 예측을 할 수 없는 자였다.
제법 권모술수를 부릴 줄 알고 시류를 보는 눈이 있는 자, 대동보라는 규모의 조직을 이끌기에 모자람이 없는 자 정도로만 판단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수정 할 필요가 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 같은 이 출정의 계획과 추진을 함에 있어 허점이 없다.
‘모든 계획에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허점을 본인이 메우고 있다.’
명세기는 허술한 듯 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자다.
은천장을 이용하는 것은 그럴 듯 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손정방이란 자를 찾아낸 것은 다르다.
비단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끌어들여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공포에 떨던 자에게 복수심을 불어넣고 움직이게 만든 다는 것.
그것은 신산귀계만으로 되지 않는다.
정말로 진정이 있어야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소리. 그건 아무나 할 수 없지.’
비격의 마음을 충성과 존경으로 옭아매고 있는 자가 명세기다.
손정방이란 자도 그 마음을 사로잡았다.
적호단과 백사단무사들은 무한한 경외로서 명세기를 보고 대한다.
이런 충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엄정한 규율과 단호한 집행, 조직의 자금력을 넘어서는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수령의 자질, 그것이 명세기에겐 있다.’
손정방의 바로 뒤에서 안개를 맞으며 우뚝 서 있는 자.
대호검 명세기의 등을 응시하며 목계백은 판단을 더 공고히 했다.
저 위세 때문이다.
출정하는 열한척의 배 가운데 선두에 타고, 길안내를 하는 손정방의 바로 뒤에서 호위하듯 서 있는 모습, 저것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손정방이 두 팔을 활짝 펴 드는 걸 보고 목계백은 상념을 털어냈다.
“암초지대를 벗어났다.”
비격은 날선 음성을 속삭이고 일어나 명세기의 뒤로 가 섰다.
목계백도 천천히 일어나 비격의 옆으로 붙어 섰다.
하지만 명세기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동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후 보직을 준 것도 아니고 따로 임무를 부여한 것도 아니다. 그냥 비격으로 하여금 출정을 따르게 했다.
지금 형국으로만 본다면 비격과 동급으로 호위무사 같은 꼴이다.
하지만 그러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명세기는 목계백이란 자를 이번 출정에서 시험하고자 함이다.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품기에 곤란한 것은 아닌지.
손정방이란 길잡이는 들어 올렸던 두 팔을 느릿하게 내리며 좌우로 펼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열 한 척의 배는 좌우로 벌려서기 시작했다.
서로 연결했던 밧줄을 풀고 거리를 벌려 일제히 전진했다.
안개는 배 뒤로 밀려났고 섬과 해변의 모습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소리 없이 접근했다.
진동과 함께 마침내 배가 멈췄다.
손정방은 뒤돌아 명세기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받은 명세기는 손정방의 두 손을 잡고 뜨거운 시선을 던졌다.
그건 마치 잘해주었소, 이제부터는 우리가 할 터이니 맡겨주시구려, 하는 것 같았다.
비격의 수신호로 하선이 시작됐다.
거의 동시에 은천장무사들과 백호단 적호단 무사들이 해변에 내려섰다.
배를 고정하고 무장을 빠르게 점검한 그들은 배에 올라탔던 편제대로 움직였다.
단장의 지시를 받은 조장들의 이끎으로 무사들은 전진해 나갔다.
잎이 넓고 우거진 남녘 섬의 수풀들 사이로 파고든 목계백은 호흡을 골랐다. 숨이 차서가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다.
조직적이고 정연한 전개로 비금도 안으로 진입하는 대동보의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앞서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경비가 견고하지 못한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섬을 울리는 경고의 소리는 안개마저 흔들어 놓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안개는 정말로 옅어지고 있었다.
이유라면 당연히 시간이 지나서다.
그런데 벌써 발각당하고 말았으니 기습의 묘는 반감된 것이나 같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움직여야겠군.’
수풀을 헤치고 나온 목계백은 섬 중심을 향해 달렸다.
손정방이란 자가 말한 것을 토대로 사전에 전달받은 내용대로라면 수채(水寨)가 섬 중앙에 있다.
본래 손정방 가족들이 살던 곳이다. 그 곳이 도적소굴로 변한 것이다.
수적질을 해야 수채지만 비금도란 지형상 사람들은 수채로 부른다.
게다가 이곳 악인들은 수적질 산적질 가리지 않는 놈들이다.
나무들 사이로 언 듯 목조가옥들을 보고 목계백은 전력 질주했다.
“이노옴!”
호통과 함께 좌측나무위로부터 도끼가 내려왔다.
정확히 도끼를 내려치는 비금도의 악한이다.
승리를 확신하는 놈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자신이 기습적인 일격은 그야말로 절묘했고, 내려치는 도끼날이 침입자의 머리통을 두 조각내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만드는 광기의 환희다.
목계백은 장도를 뽑아 위로 올려쳤다.
도끼와 장도가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무게가 25근(15kg)에 달하는 중량의 장도다. 도신의 두께는 보통 칼의 두 배가 넘고 길이는 다섯 척이다.
그 자체의 형상이 내는 힘에 목계백의 힘이 더해져 파괴력을 낳았다.
쾅하고 도끼는 튕겨나갔다.
제 주인의 손을 떠났다.
그것이 휙휙 돌아 나무아래 박히는 순간, 착지한 놈은 경악과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비금도의 악한이 두 번째 말을 토하기도 전에 목계백은 장도를 내리쳤다.
정수리가 쪼개지고 가슴중간까지 갈라진 비금도 악한의 몸은 부들부들 경련했다. 그 가슴에 박힌 칼을 그대로 힘주어 내린 목계백은 그 자리를 떠났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몸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목계백은 앞만 노려봤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화끈한 느낌으로 목옆을 지나가는 화살, 그것의 발사 위치를 목계백은 바로 찾았다.
수채가 분명한 곳의 울타리 안이다.
그곳에서 비금도의 악한들이 화살을 발사하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대동보 무사들이 보였다. 수풀 속에 숨어 있던 비금도놈들과 일장혈투를 벌이며 다가오고 있다.
두 번째 화살을 장도로 가른 목계백은 울타리를 향해 달렸다.
울타리를 비호처럼 넘어가며 비도를 던졌다.
화살을 발사하던 놈의 미간에 비도가 박혔다.
가슴높이의 울타리는 단번에 넘었지만 덤벼드는 비금도 놈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섬이라는 지형으로 기습이라는 상황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놈들의 분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울타리 높이가 이럴 까닭이 없고 경비가 이렇게 허술할 수가 없다.
‘자만했구나.’
안개와 천혜의 지형을 과신한 탓이다. 그걸 대동보주 명세기는 역이용했다. 오늘의 격전은 이미 승패가 난 것이나 같다. 비금도는 이제 사라진다.
좌우에서 덤벼드는 놈들의 칼을 동시에 받아친 목계백은 정확히 한칼씩을 안겨줬다.
우측 놈은 어깨가 갈라져 쓰러졌고 좌측 놈은 허리가 쪼개졌다.
그러나 승냥이 떼처럼 달려드는 비금도 놈들의 숫자는 많았다.
사방에서 휘갈겨 오는 창칼을 보며 목계백은 정확한 움직임으로 대응했다.
옆구리를 찔러 들어오는 삼지창의 날을 피해 반보를 이동해 돌며 받아쳤고, 창대가 들리는 순간 전진하며 칼을 올려쳤다.
창수의 팔과 턱이 갈라지는 순간 등을 찌르는 검을 비껴서는 반걸음으로 피하고, 그대로 휘돌며 검을 내리쳤다.
검신이 부러지는 순간 접근하며 장도를 뻗었다.
장도에 머리통을 관통당한 놈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왼쪽 눈을 뚫고 들어간 장도는 뒤통수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걸 본 다른 놈들이 주춤거렸다.
싸늘한 살기를 담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본 목계백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너희들을 상대하러 여기 온 게 아니야.”
목계백은 장도를 옆으로 후렸다.
머리가 갈라지며 칼날이 빠져나왔다.
부들거리고 서 있던 놈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 순간 목계백의 장도는 다시 칼바람을 일으켰다.
공격하는 놈의 병기를 받아치고 이격을 내려치고, 도망가는 놈의 등판을 가르고 주저앉는 놈의 머리통을 쪼개버리고.
살인을 몰고 온 태풍처럼 휘몰고 나가던 목계백은 움직임을 멈췄다.
대동보의 병력이 울타리 안으로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적호단과 백사단은 무서운 기세로 비금도의 악한들을 몰아쳤다.
그 속에 은천장의 고수들이 섞여 분노를 표출했다. 삽시간에 시체가 쌓이고 피는 내처럼 흘렀다.
‘여기엔 그놈들이 없다.’
목계백은 격전의 현장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비금도주 운악과 칠주해룡들이다.
그놈들이 이곳의 실질적인 전력이다. 나머지 잔챙이들이야 머리수만 채우는 놈들이다.
그동안 제법 위명을 떨친 흉적들이 들어왔다지만, 제일 강한 자들은 그자들이다.
주변을 빠르게 살핀 목계백은 격전장에서 뒤로 빠지는 놈들을 찾아냈다.
슬그머니 물러나는 놈들은 제법 강한 놈들이다.
수뇌부란 소리다.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놈들을 살길을 찾아 움직이는 거다.
그놈들 뒤를 쫓아갔다.
제법 그럴듯하게 지은 목옥 안에서 재물을 챙긴 놈들은 섬 반대편으로 달렸다.
어느새 안개는 거의 걷혔고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냥은 못 간다.”
비구 안에서 비도를 꺼낸 목계백은 도망치는 놈들 중에서 한 놈을 겨냥해 던졌다. 시린 빛을 허공에 남긴 비도는 정확하게 허리를 파고 들어갔다.
쓰러진 놈에게 달려가는 목계백을 같이 도망치던 놈들이 공격했다.
박도와 대도를 휘두르는 놈들의 공격을 차례로 받아친 목계백은 이격을 후렸다.
정확하고 냉정하며 번개처럼 빠른 두 번째 칼은 두 개의 머리를 날렸다.
비도를 맞고 쓰러진 놈의 허리, 박혀 있는 비도를 목계백은 밟았다.
“으어억!”
자루가 보이지 않게 비도가 파고들자 놈은 경련을 했다. 그 뒷덜미를 잡고 목계백은 물었다.
“비금도주 운악과 칠주해룡은 어디 있지?”
입에 피거품을 문 놈은 얼굴을 부들거리면서 섬의 중심에 우뚝 솟은 산을 가리켰다.
“그, 개자식들은, 사, 산에……”
“개자식들? 명색이 수령인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
“우, 우리가 이 꼴인데, 보,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무, 무슨……”
“그렇군.”
뒷덜미를 놓아주고 일어선 목계백은 장도를 내리쳐 목을 잘랐다.
“산이란 말이지?”
섬 중앙의 산을 향해 목계백은 움직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