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8
3.
대도를 휘두르는 놈들의 기세는 제법 흉흉했다.
두 놈이다.
정확하게 연환을 이루는 공격은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추고 수련을 한 자들이다.
이자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다.
절강 해안의 백호소(百戶所)를 지휘하던 백호(百戶)놈들이다.
방비하라는 왜구를 막지 않고 오히려 내통하여 재물을 착복하던 중, 결국 발각되어 수하들을 베고 도망친 놈들이다.
“칼부림이 아주 좋구나!”
호기롭게 소리치며 검으로 대도를 받아친 명세기는 대호검의 기예를 펼쳤다.
한 마리 성난 호랑이의 기세가 이러할까?
대동보주 대호검 명세기의 공세는 무시무시했다.
무게 열 다섯근의 중검이 만들어 내는 검영과 검풍은 두 자루 대도의 공격을 밀어부쳤다.
검과 대도가 부딪칠 때마다 나는 불꽃과 타격음은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비금도주 운악은 나서라!”
명세기는 외침을 터트리며 분영십사검(分影十四劍)을 펼쳤다.
열네 개의 검 그림자가 대도 두 자루를 연환세로 강타했다.
하나의 뒤를 또 다른 하나가, 그 뒤를 다른 하나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밀고 나가는 대호검의 기예가 허공을 난자했다. 그건 마치 호랑이의 앞발질 같았다.
“잡졸들은 물러가라!”
명세기의 외침에 물러나듯 대도를 잡은 두 인물은 땅바닥을 거칠게 밟으며 물러났다.
겨우 균형을 잡은 두 인물의 앞에는 발자국이 깊게 남았다.
“이놈 명세기!”
“죽일 놈이!”
대도를 고쳐 잡은 두 인물은 격노를 터트리며 다시 공격을 했다.
“네놈을 반드시 죽이리라!”
“뱃가죽을 갈라놓고 말테다!”
두 자루 대도가 풍차처럼 휘돌며 다가왔다.
“너희를 밟고 운악을 찾으리라!”
호기로운 호통을 치며 명세기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마주 나갔다.
그 걸음에 감히 상대를 경시하는 마음과 움직임은 품지 않았다.
군문의 무예가 분명한, 파괴적이고 효율을 중시하는 대도기예다.
좋은 경험이 되리라.
풍차처럼 휘돌아 나오던 대도 중 한 자루는 아래로 깔리며 하체를 베어왔다.
시릿하고 강력한 그 공격은 명세기의 정강이를 썽둥 잘라버릴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목을 노리고 돌아들어오는 대도는 뇌전처럼 빨랐다.
다리와 목을 동시에 노리는 대도의 공격 속에서 명세기는 도약했다.
위와 아래를 베는 두 자루 대도의 사이로 눕듯이 옆으로 휘도는 몸은 곡마단의 기예 같았다.
그걸 본 대도주인들이 눈을 치뜰 때, 대호검이 휘돌았다.
두 개의 머리가 날렸다.
두 자루 대도는 머리 잃은 주인들의 몸으로부터 떨어지면서 땅에 박혔다. 그 사이에서 휘돌아 멈춰선 명세기는 검에 묻은 피를 뿌리며 주변을 봤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격전.
비금도의 수채는 살육의 격전으로 지옥도가 되어갔다.
적호단과 백사단의 공격에 밀린 비금도 악인들은 악전고투를 벌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이유가 은천장과 함께 온 고수들의 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금도주 운악을 비롯한 칠주해룡이 없기 때문이다.
“악적들아! 너희들의 씨를 말리고 말리라!”
은천장주 은발야는 괴성에 가까운 분노를 터트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전검법인 은천삼십육검(銀川三十六劍)은 은천검(銀天劍)의 예기를 타고 뻗어 나왔다. 부딪치는 비금도 악한들의 병기와 육신이 다 갈라졌다.
명세기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대단하구나.’
은천장주 은발야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은천(銀川)이라는 장원의 명칭처럼 돈이 샘솟는 집안인 줄로만 생각했다.
충주의 알짜기업들을 다 소유했으니 당연하다. 그래서 무공은 허술히 봤다.
하지만 지금 본 저 모습은 그게 아니다. 절강십검의 아래가 아니다.
‘은천장주 은발야.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아무리 은천검이 명검이라 하지만, 그래서 저렇듯 부딪치는 자들의 병기와 육신을 조각내고 있다지만, 저건 단순히 병기의 이득만으로 만드는 결과가 아니다.
개발에 편자라,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명검도 소용없다.
그런데 은발야는 그게 아니다. 제 실력과 명검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물러가라 이놈!”
한소리 외침을 터트리며 은발야의 배후에서 검을 휘두른 자는 춘추검 오세명이다.
은발야의 등을 노리던 한 놈의 그의 검격에 가슴이 갈라졌다.
‘춘추검 오세명, 절강십검 중의 일인이지만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자.’
명세기는 시린 눈빛을 내며 오세명의 검공을 주시했다. 역시 절제되고 허점이 없는 검술이다. 특별한 기예가 아닌 삼재검과 오행검의 검로를 따르는 검, 타인은 특별함을 짚어낼 수가 없는 검, 그래서 더 특별한 검.
‘저 자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는 자야.’
오세명의 검술을 보며 명세기는 확신했다.
삼재검법과 오행검법만으로 비금도의 악한들을 베어 넘기는 저 유려하고 물결 같은 검공, 저 이상의 것이 분명히 있다고.
그래서 무섭다고.
자신을 낮추는 자가 제일 무섭다고.
그 순간 격전장의 저편에서 외침이 들렸다.
“산에 있답니다!”
비금도 악한들을 물결처럼 베어 넘기며 달려오는 자.
소리친 자는 파랑검 호일도다. 허리의 요대에서 뺀 연검은 낭창대는 검광으로 파도를 만들었다.
그 화려하고 눈부신 파랑의 검법에 걸린 자들은 여지없이 목이 잘렸다.
“비금도주 운악이 산에 있답니다!”
또 다른 절강십검의 일인이 외치는 소릴 듣고 눈을 치뜬 명세기는 섬 중앙의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옆으로 은천창주와 오세명과 호일도가 달려왔다.
“올라가지요!”
은천장주 은발야의 눈동자의 곤두선 핏발을 응시하며 명세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명세기는 비격과 적호단주와 백사단주를 향해 소리쳤다.
“비격과 적호단주와 백호단주는 들어라! 이 섬의 악적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명세기를 선두로 은천장주 은발야와 춘추검 오세명, 파랑검 호일도는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은천장과 함께 온 무인들이 따랐다.
* * *
섬 아래서 들려오는 격전의 소리는 동굴 속을 울렸다.
기름먹인 횃불을 걸어놓아 그렇기도 하지만, 동굴천정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있어 어둡지 않았다.
그런 동굴의 가장 안쪽 석대에 앉은 운악은 말했다.
“결정하자.”
머리카락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운악의 모습은 흉포한 괴수를 보는 것 같았다.
번들거리는 이마와 소매 없는 옷 사이로 드러난 어깨와 팔의 우람한 근육, 그 위로 수를 놓은 것 같은 수많은 흉터들은 숨이 막혔다.
누구라도 시선을 마주친다면 오줌을 지릴 것만 같은 안광은 무서웠다.
결정하자는 운악의 말이 나오자 그 앞에 둘러앉은 칠 인의 용포사내들은 인상을 구겼다.
하나같이 비슷한 인상에 흉터가 가득한 얼굴들이다.
게다가 왕이나 입은 곤룡포를 단삼으로 만들어 입었다. 목소리도 거칠었다.
“섬을 버리자는 건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칠주해룡의 첫째가 말하자 운악은 왜 그러냐는 시선을 던졌다.
그 답은 둘째가 내놨다.
“이 섬을 버리고 우리가 어딜 가겠습니까? 여긴 우리가 일군 우리터전입니다. 대동보의 기습에 놀라 터전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다른 곳에 이만한 터를 닦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여길 지켜야 합니다. 쳐들어온 것들을 때려죽이고 대동보주 명세기의 목을 베야 합니다. 그놈의 머리통을 장대에 달아 온주만 포구에 꽂아야 합니다.”
첫째가 자신의 생각이 그렇다고 고갯짓을 할 때 셋째가 입을 열었다.
“큰형님과 둘째형님의 생각도 일리는 있지만, 싸움에 임해서는 우선 형세를 살펴야 합니다. 적의 세를 알고 싸울 것인지 등을 돌린 것인지 정해야지 기분에 따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기세입니다. 큰 전쟁이든 작은 전투이든 기세를 잃으면 지고 맙니다.”
셋째는 운악과 다른 형제들의 눈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냈다.
“그런데 우리는 기세를 잃었습니다. 반면에 적은 기세가 올랐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기습으로 섬에 들어온 자체가 그렇습니다. 대동보주 명세기는 치밀하고 끈질긴 놈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온 겁니다. 이 안개 속을 뚫고 섬에 들어온 것 하나만으로도 그놈은 비상한……”
“명세기 놈의 칭찬을 듣자는 게 아니다!”
첫째가 버럭 소리치자 셋째는 입을 닫았다.
다른 형제들은 표정을 굳혔다.
첫째의 분노도 공감하지만 셋째의 상황파악도 틀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운악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일곱째를 응시했다.
“꾀주머니 막내야, 네 생각은 어떠냐?”
운악을 비롯한 형제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일곱째가 입을 열었다.
“누구보다도 비금도에 애착이 크고 강한 사람이 대형이십니다. 그런 대형께서 섬을 버리는 방안까지 언급하신 것은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겠지요. 그럼 그 녹록치 않은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인데, 단순히 대동보가 은천장과 힘을 합쳐 쳐들어온 이 기습만으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막내의 예측에 첫째와 둘째를 비롯한 칠주해룡은 미간을 좁히고 시선을 교환했다. 그 눈빛들의 얽힘은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운악에게 돌아갔다.
“역시 막내구나.”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운악은 고갯짓을 했다.
“그래, 대동보주 명세기 따위가 두렵지는 않다. 그놈이 분명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만큼 능력이 있고 경계해야 할 놈인 건 사실이지만, 그놈은 호랑이에 불과해. 정작 무서운 건 그놈의 뒤에 돌아앉아 있는 늙은이야.”
첫째가 바로 의문을 드러냈다.
“늙은이라면 누구를 말함입니까?”
운악이 딱하다는 시선을 던지자 머쓱한 표정일 지었던 첫째는 답을 찾아냈다.
“설마, 혁리(赫里)세가를 말하는 겁니까?”
운악은 시린 미소를 지었다.
“맞다. 바로 그들이다. 그 집안의 뒷방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다는 늙은이, 혁리장천(赫里長天)이다. 그야말로 정말 무섭다. 그는 태상가주라는 자리로 물러나 있지만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오늘 일도 그가 결정한 거야.”
“그, 그런?”
놀라워하는 첫째의 눈에서 의혹어린 둘째의 눈으로, 뭔가를 알아 챈 듯한 셋째의 눈을 거쳐 살기를 번들거리는 넷째와 다섯째와 여섯째를 지나 일곱째의 명민한 눈에까지 이른 운악의 눈동자는 칼날처럼 곤두섰다.
“절강은 혁리세가의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결정하지, 그들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표국에서부터 지물포와 반점과 백정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영향 하에 있는 거다.”
입을 허 벌린 첫째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운악은 숨겨왔던 비밀을 토했다.
“너희에겐 숨겨왔던 것이다만, 혁리세가와 연결된 일을 한 적이 수차례 있었다.”
셋째와 막내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고 모두가 눈을 치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대형?”
“아니, 이게 무슨?”
무거운 숨소리를 내며 운악은 이야기를 이어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은천장의 딸년 일이다. 삼년 전이구나. 은천지혈사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이 붙은 그 일, 혁리세가의 청을 받아 한 일이다.”
칠주해룡은 하나같이 눈을 부릅떴다.
“그, 그건 대형이 은세희라는 그 계집을 취하려고 한 게, 아, 아니란 말입니까?”
대표해서 묻는 첫째에게 운악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내가 아니다. 혁리세가의 후계자, 혁리검천(赫里劍天)이 원해서 만들어진 일이다.”
혁리검천, 태상가주 혁리장천의 손자이자 현가주 혁리명(赫里名)의 아들이다. 이대독자인 그의 귀함은 범인의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런 그가 은천장의 은세희를 보고 탐낸 것이다. 그 일을 비금도가 했다.
“중간을 거친 연결과 접촉이 있었다. 물론 혁리세가와 우리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고 그들도 알지. 왜 그들이 그런 방법으로 은세희를 취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막내가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이 그 결과라는 겁니까? 살인멸구요?”
운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린 눈동자로 미소를 지었다.
“그거다. 그들은 직접 손을 안대고 대동보를 움직였다. 대동보주명세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뿐, 내막을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하겠지. 그에겐 혁리세가가 우릴 치도록 승인했다는 것이 중요할거야. 우릴 쳐 없애고 온주만 해상을 장악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 기회가 온 거지. 게다가 은천장의 설분을 한다는 대의명분도 있다. 이건 완벽한 기회지.”
첫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혁리세가가 은세희 일의 배후라는 걸 폭로하면 되잖습니까?”
“폭로? 그것 좋지. 하지만 우리로선 혁리세가가 은세희 일의 배후라는 심증만 있을 뿐 증거는 없다. 증거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 혁리세가의 누군가를 만난 것도 아니고, 정해진 장소와 시간을 통보받고 일을 처리한 후에 돈 받고 계집을 넘겨 준 게 다니까 말이다.”
운악은 한층 더 무거워진 숨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그 계집을 혼자 취하고 죽여 없앴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은세희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혁리세가다. 물론 아무도 모르지만.”
운악이 다시 입을 열려는 그때 전령 놈이 뛰어 들어왔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소리치며 숨을 헉헉댄 전령 놈은 다급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대동보주 명세기와 은천장주 은발야, 춘추검 오세명과 파랑검 호일도를 위시한 수십 명의 고수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수채는 박살났습니다!”
운악이 제일먼저 일어섰다.
“결정했다. 저것들을 죽이고 떠난다.”
비금도주 운악과 칠주해룡은 동굴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