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43
142화. 악인곡으로화르르륵!
사방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불꽃이 사납게 혀를 날름거리며 온갖 기물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불이야-!”
빈민가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장원.
적호방의 본거지에서 치솟은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휘감았다.
시뻘건 불길이 새벽을 밝히고, 매캐한 연기가 거리로 퍼져 나가자 잠에서 깬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불길에 휩싸인 적호방을 바라봤다.
“저, 저긴 적호방이잖아?”
“세상에. 어쩌다가 저렇게 불이…….”
“천벌을 받은 게야. 고얀 놈들! 다 불에 타서 죽어 버리라지.”
다행히 적호방의 장원은 빈민가의 외진 곳에 자리해서, 다른 건물까지 퍼질 염려는 없었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경공을 펼쳐 날듯이 내달린 인영들이 사람들을 지나쳐 적호방으로 향했다.
바로 청룡학관의 학생들이었다.
“정문은 우리가 부수마!”
거상웅과 야수혁이 선두로 나섰다.
그들은 닫혀 있는 적호방의 정문을 동시에 어깨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천둥소리에 비견되는 굉음과 함께, 장정 열 명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문이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장원 안쪽은 이미 불길과 매캐한 연기로 가득해 시야를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옆으로 나와! 으랴아아앗!”
헌원강이 맹렬하게 도를 휘두르자, 도풍이 불길을 흩어 버리며 잠시 장원 안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시체들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불꽃 아래에 잔인하게 난자된 시체들이 쓰러져 있었다.
적어도 수십 구.
팔에 문신이 새겨진 걸 보니, 전부 적호방의 방도들이었다.
“왜 이놈들이 죽어 있는 거야?”
“불에 타 죽은 게 아니야. 전부 찔리거나 베여 죽었어.”
“……위지천이 한 걸까?”
“설마…….”
학생들의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피어올랐다.
헌원강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떤 새끼건 우리 막내를 건드리면 죽여 버릴 거야.”
위지천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청룡학관의 일학년 후배이자, 여리고 소심해서 식당에서 바가지를 써도 따지지도 못하는 어리바리한 녀석.
형제가 없는 헌원강에게, 위지천은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저쪽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따라와.”
“잠깐. 잠시 진정해라.”
독고준이 헌원강의 어깨를 붙들었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은 몸으로 무리해서 따라오느라 창백한 표정이었다.
“상대는 위지천보다 강한 사파의 고수다. 흥분해서 달려들면 우리뿐 아니라 위지천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알고 있어. 상황을 봐서 기습할 거야.”
“……생각보다 냉철하군.”
그 말에 헌원강이 독고준을 돌아보더니 피식 웃었다.
“얼마 전에 누구한테 배웠거든.”
“…….”
일행은 기척을 죽이고 화재의 중심으로 향했다.
쿵! 쿠우웅!
장원 곳곳에 세워져 있던 기둥이 넘어가고 천장이 무너졌다.
매캐한 연기, 폐가 익어 버릴 것 같은 열기가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그들이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질식하거나 끔찍한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방주의 처소야. 준비해.]모두에게 전음을 보낸 헌원강이 앞으로 나섰다.
잠시 후, 일렁이는 불꽃 너머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더 접근하자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헌원강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생님?”
“왔냐.”
그는 백수룡이었다.
학생들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그는, 방주의 처소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살피고 있었다.
거상웅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위지천은요? 그리고 적호방주는 어디 있습니까?”
“한발 늦었다. 내가 왔을 땐 이미 이 상태였어.”
혀를 찬 백수룡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봤다.
독고준이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타는 장원, 그리고 쓰러진 시체들을 보고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오면서 적호방도들의 시체들을 봤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하신…….”
“내가 아니라 적호방주가 한 짓이다.”
“예?”
백수룡은 처소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체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라. 이건 검흔이 아니라 손톱에 뜯기고 베인 흔적이야. 조법(爪法)에 당한 거지.”
“조법이라면…….”
적호방주의 독문무공이 바로 조법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붉게 물들면, 두꺼운 쇠도 찢어 버릴 수 있다고 했다.
백수룡이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놈은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장원에 불을 지른 후 도망쳤어. 그런데 위지천은 데려갔다. 왜지? 단순히 미친놈이라서?”
“세상에……. 자기 부하들을 도륙했다고요?”
“완전 미친놈이로군.”
경악한 학생들이 장원을 둘러봤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적호방도들의 시체만 수십 구가 넘었다.
저들 대부분이 동정할 가치도 없는 구제 불능의 악인들이었지만, 그래도 섬기던 주군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은 불쌍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 헌원강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미친놈이 위지천을 데려갔다는 거잖아. 선생님! 빨리 쫓아가야 해요!”
“그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백수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적호방주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폐관을 깨고 나올 줄이야.’
설상가상으로, 조용히 적호방에서 빠져나온 적호방주는 그 주변에서 감시하고 있던 하오문도를 발견하고 죽였다.
때문에 백수룡은 위지천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한발 늦게 들었다.
‘아직 멀리 가진 못했다.’
이 주변 시체들의 상태를 보면, 적호방주가 이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하오문의 정보력을 동원하면, 놈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금방 알 수 있을 터였다.
학생들을 돌아보는 백수룡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난 곧바로 놈을 쫓을 거다. 너희는 학관으로 돌아가서 사정을 설명해. 길어지면 며칠 걸릴 거야. 돌아와서 확인할 테니까 아침저녁으로 수련 빼먹지 말고.”
그런데 백수룡을 막아서는 제자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선생님. 저희도 함께 갈게요.”
“이런 상황에서 수련이 될 리가 없잖아요.”
“산길은 제가 잘 알아요.”
제자들의 격렬한 반응에, 백수룡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나 혼자 쫓는 쪽이 훨씬 효율적…….”
“방해 안 할게요!”
“죽어라 쫓아갈게요!”
“못 쫓아가면 버리고 가셔도 돼요!”
“…….”
잠시 말을 멈춘 백수룡은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단호한 눈빛과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표정들.
‘데려간다고 추적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잠시 고민을 한 백수룡을 다시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다. 너희 중 한 명이라도 추종술을 익힌 사람이 있다면…….”
“제가 익혔어요. 그럼 된 거죠?”
여민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추종술을 익혔다니 다소 의외였지만, 백수룡은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알았다. 그럼 따라오는 걸 허락하마.”
“아싸아아!”
주먹을 불끈 쥐는 제자들에게, 백수룡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할 것 없어. 죽도록 힘들 테니까. 낙오하는 녀석은 중간에 놓고 갈 거다. 너희 챙기느라 천이를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예!””
“하여간 대답은 잘해.”
혀를 찬 백수룡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여민에게 던졌다.
“추종향이다. 내 옷에 뿌려 놨으니까, 만약 날 놓치면 이걸로 쫓아오면 된다.”
“네.”
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종향까지 주었으니 중간에 놓고 가더라도 길을 잃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이것도 경험이 되겠지.’
원래도 외부 수업을 핑계로 강호로 나갈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빈민가의 정리가 다 끝난 이후, 그리고 이 병아리들이 조금 더 성장한 이후였다.
‘생각보다 빠르지만…….’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여러 변수가 발생하고, 거기에 맞춰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다.
백수룡은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자.”
일행은 화재로 무너져가는 적호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이 빠져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장원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추적조는 백수룡, 거상웅, 헌원강, 여민, 야수혁 다섯 명으로 꾸려졌다.
독고준도 함께 가고 싶어 했으나, 부상이 낫지 않아 무리라고 판단한 백수룡이 제외했다.
그에겐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먼저 돌아가도록 말해 두었다.
“잠깐만. 그런데 니들, 다른 수업은 어떡하려고?”
청룡학관의 학생들은 하나의 수업만 듣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세 개에서 네 개, 많으면 여섯 개까지도 들었다.
적호방주를 추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수업은 못 듣게 된다.
“네? 그게 왜요?”
“왜냐니?”
하지만 제자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헌원강이 대표로 씩 웃으며 말했다.
“모르셨어요? 저희는 원래 학점 신경 안 써요.”
“자랑이다. 이 망나니들아…….”
머리를 짚은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돌아와서 매극렴에게 깨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뭐 그땐 그때고……. 출발할 테니 알아서 잘 따라와라.”
“네!”
잠시 후, 하오문의 보고를 받은 그들은 추적을 시작했다.
* * *
타닥, 타닥.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작은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먹어라.”
“싫습니다.”
위지천은 적호방주가 건넨 음식을 거절했다.
적호방주는 피식 웃더니 두 번 권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혈도가 제압당한 위지천은 조용히 적호방주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말을 걸자 적호방주가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나?”
가까이에서 본 그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사내였다.
봉두난발에 흰자위가 누렇긴 했지만, 사람을 죽일 때가 아니면 꽤 얌전했다.
솔직히 별로 미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위지천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죠?”
“별것도 아닌 질문이로군.”
턱을 긁적거린 적호방주가 대답했다.
“죽이고 싶으니까 죽인다.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
“…….”
위지천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이 남자는 미쳤다.
미쳐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었다.
적호방주가 투명한 눈동자로 위지천을 바라봤다.
“너는 왜 살검을 억누르려고 하지?”
“저는 당신처럼 쉽게 사람을 죽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흐흐. 어린놈이 누굴 속이려고 드느냐. 살검은 살인을 하면서 익히는 검이다. 네가 죽인 사람만 오십이 넘는다는 데 내 평생의 무공을 걸지.”
“…….”
위지천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사실이었다.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가짜 무극검을 익혔을 당시 소년이 죽인 낭인의 숫자만 수십이 넘었다.
‘죽여라.’
살검이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머릿속에서, 그리고 눈앞에서도.
“아이야. 살검에 몸을 맡겨라. 그 해방감을 만끽하란 말이다. 그럼 네 무공도 일취월장할 것이다. 네 자질이나 나이를 볼 때…… 십 년 안에 능히 백대고수가 되겠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적호방주는 진심으로 위지천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평범한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그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마침 이 아래에 화전마을이 하나 있더군. 나와 함께 그곳에 가자. 혈도도 풀어주마. 살검에 몸을 맡기고 함께 흠뻑 피에 취하자꾸나. 너도 한번 그 쾌감을 맛보면 다시 잊지 못해서…….”
“그런 짓을 했다간!!!”
버럭 소리친 위지천이 눈을 부릅떴다. 가공할 살기가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짓을 했다간 혀를 깨물고 자결하겠습니다. 혈도를 짚어도 소용없어요. 언제든 혈도가 풀리면, 그 즉시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릴 테니까요!”
“……이해할 수 없군. 어째서 그렇게까지 거부하는 거지?”
위지천은 백수룡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말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에요. 전 절대로 살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돌팔이 선생 하나가 천하제일고수가 될지도 모르는 천재를 망쳤군.”
“선생님을 모욕하지 마세요. 당신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니까.”
백수룡이 비난하는 말에 위지천이 적호방주를 노려봤다.
물론 적호방주는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네 스승이 그렇게 잘났단 말이지? 천하제일고수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천하제일고수는 아니지만 당신 따위는 간단히 이길 수 있는 분이에요.”
“호오. 그럼 백대고수 정도는 되나 본데.”
낄낄 웃은 적호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로 모닥불을 짓밟아 끈 그가 위지천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네 스승이,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어딘지 알고도 쫓아올 수 있을까?”
적호방주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위지천이 입을 다물고 대꾸하지 않자, 그가 도발하듯이 다시 물었다.
“나랑 내기할 테냐? 네 스승이 우리를 쫓아올지 안 올지 말이다. 만약 끝까지 쫓아오면 너에게 다시는 살검을 익히라고 하지 않겠다.”
“……어디로 가는데요?”
적호방주는 모닥불을 꺼뜨린 자리에 발로 슥슥 글자를 적으며 즐겁게 웃었다.
“우리는 악인곡으로 간다. 십대악인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있던 모닥불가에는 ‘악인곡(惡人谷)’이라는 세 글자만 불길하게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