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47
146화. 옥면음랑 백무룡‘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백발마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분명 자신이 압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백수룡의 기도가 바뀌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까앙!
백수룡의 검을 겨우 튕겨낸 백발마수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은 무공을 한 번에…….”
백수룡은 외공의 달인처럼 싸우다가, 사납기 짝이 없는 도법으로 덤벼들었다가, 신묘한 보법으로 공격을 피하고, 다시 섬뜩한 검법을 펼쳤다.
보통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히면 그 깊이가 얕기 마련이다.
그런데 백수룡이 펼친 모든 초식은 그 연결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모든 무공에 통달한 사람처럼.
“크윽……!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한 번에 여러 명의 고수와 싸우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니, 백발마수의 손발이 점점 어지러워졌다.
‘말도 안 돼.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림백대고수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백발마수는 그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다고 자부할 만큼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백수룡이 지금 펼치는 무공 하나하나가 전부 신공절학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저 나이에 이 모든 무공을 전부 익혔다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택받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라면 저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천하제일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면…….
“갈!!!”
그 순간 찾아온 열등감, 박탈감, 분노에 백발마수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백발마수가 내공을 가득 담아 소리치자 학생들이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했다.
“놈! 쥐새끼처럼 도망만 다니지 말고 제대로 덤비란 말이다!”
백발마수의 전신에서 퍼져 나온 흉포한 기운이 맹렬하게 날뛰었다. 백수룡은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 살기가 활활 끓어올랐다.
“지금 어느 때보다 제대로 싸우고 있는데?”
반면 백수룡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역천신공에 연연하지 않고 네 사부의 무공을 연계해 펼치면서,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네 가지 무공이 조화를 이룰 수 있어. 어쩌면…… 하나로 합칠 수 있을지도.’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그는 네 사부의 무공을 절반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익히려면 평생을 바쳐야 하는 절세신공들.
하지만 방금 백발마수와 싸우면서, 그는 네 가지 무공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
물론 아직은 아주 작은 실마리일 뿐이었다.
잡을 수 있을지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이름은…… 나중에 붙여야겠군.’
당장은 길길이 날뛰는 백발마수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백수룡은 씩 웃으며 백발마수를 도발했다.
“덕분에 기연 아닌 기연을 얻었군.”
“날 기만할 셈이냐!”
휘익!
백발마수는 백발을 휘날리며 백수룡에게 달려들었다.
본래 백발마수는 굉장한 무공광이었다.
평소에는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무공과 관련된 일이라면 곧장 흥분하는 성격이었다.
그의 광증이 지금 폭발했다.
“혈옥수는 최강의 무공이다! 그러니 네놈도 정면으로 승부하지 못하고 쥐새끼처럼 피하기 급급한 것이 아니냐!”
“감사의 의미로 보여 주지. 조잡한 무공으로 어떻게 이기는지.”
백수룡은 백발마수의 벼락같은 공격을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검을 휘둘러 그의 손등을 때렸다.
까앙!
검기가 깃든 검과 맨손이 부딪쳤지만, 혈옥수를 익힌 백발마수의 손은 멀쩡했다.
백발마수는 핏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시뻘건 손을 백수룡에게 보이며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봐라! 멀쩡하지 않느냐! 너의 조잡한 무공으로는 혈옥수를 깨뜨릴 수 없다!”
“깨뜨릴 거야.”
“뭐라?”
“지금부터 깨뜨릴 거라고. 잘 봐둬.”
차갑게 내뱉은 백수룡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까앙! 까앙! 까가가강!
백수룡은 집요하게 백발마수의 손만 노렸다.
머리나 심장, 다른 요혈을 노릴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발마수의 손만 노렸다.
“그, 그만, 그만해라.”
백발마수가 자랑하는 혈옥수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계속해서 같은 부분을 공격했고, 기어이 혈옥수에 금이 가게 했다.
쩌적, 쩌적…….
수십 년 동안 사람의 피에 담가오며 단련한 혈옥수가 부서져 나가는 것을 보며, 백발마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아, 안 돼, 안 된다. 그만해라! 제발 그만해!”
백발마수와 찢어질 듯한 비명과 동시에 혈옥수가 떨어뜨린 유리처럼 깨져 나가고, 넋을 잃은 백발마수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혀, 혈옥수가…….”
백발마수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광인이 될 만큼 무공을 향한 집착이 강했기에, 자신의 무공이 깨져 나간 것을 본 순간 반쯤 정신이 나갔다.
“후우…….”
납검을 하며 호흡을 정리한 백수룡이 뒤를 돌아봤다.
제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공 시범은 이 정도면 충분했지?”
“…….”
“…….”
제자들이 멍청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멋졌습니다!”
“조, 존경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 보법 다시 알려줘요!”
우르르 몰려온 학생들이 백수룡을 둘러싸고 일제히 환호했다.
“뭐야. 망나니들답지 않게 왜 이런 반응이야?”
백수룡은 존경심 가득한 제자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입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일단 천이부터 챙겨라.”
“아, 네!”
거상웅이 얼굴이 창백한 위지천을 업었다. 위지천의 입술이 파랗게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백수룡은 위지천의 맥을 살피며 제자들에게 물었다.
“비상약 가진 사람?”
“상단에서 쓰는 게 있습니다. 몸을 보호해 주는 환약인데…….”
일단 거상웅이 가지고 있는 약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독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정도겠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다행히도 빠르게 퍼지는 독은 아니었는지, 위지천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위지천의 맥을 놓은 백수룡이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천이 데리고 잠깐 물러나 있어. 나는 저 자식하고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백발마수에게 악인곡에 대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제자들의 기척이 완전히 멀어진 후, 백수룡은 백발마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흐흐흐……. 날 고문한다고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냥 죽여라.”
처음 볼 때는 중년의 사내였는데, 지금의 백발마수는 머리가 하얗게 센 쇠약한 노인처럼 보였다.
익히고 있던 마공이 깨진 후유증이었다.
백수룡은 그의 산발한 머리를 덥석 움켜쥐었다.
“죽일 거다. 너에게 악인곡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흐흐흐. 내가 왜? 죽음으로도 나를 협박할 수 없는데, 네가 무슨 수로…….”
“그건 해 봐야 알지. 날 똑바로 봐라.”
순간 백수룡의 두 눈과 머리카락이 붉게 물들었다.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혈마안이 백발마수의 심령을 파고들었다.
“백발마수. 날 봐라.”
백수룡은 앞으로 역천신공에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가진 것을 활용하지 않을 생각도 없었다.
“뭐, 뭐, 뭐…….”
혈마안과 마주한 백발마수가 풍에 맞은 듯 몸을 덜덜 떨었다.
무공에 대해서 집착이 강했던 만큼, 그는 수많은 마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설마, 설마…… 당신은…….”
그중 내공을 일으킬 때 적발적안으로 변하는 무공은 무림에 하나뿐이었다.
지금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이름.
사형인 혈수귀옹에게서 그 공포스러운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혈, 마…… 컥!”
백수룡이 백발마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두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졌다.
“네 조법. 마뇌의 흑살조법과 닮아 있더군.”
마뇌.
지금 떠올려도 이가 갈리는 놈의 별호를 말하며, 백수룡은 스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혈교와 무슨 관계냐? 악인곡 자체가 혈교 놈들이 만든 건가? 아니면 그중 일부만 관계돼 있는 건가?”
“으, 으, 으으……. 저는 혈교와 아무 관계도…….”
백발마수의 눈이 게게 풀리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렸다. 어느새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목을 놓아준 백수룡이 그를 내려 보며 나직이 말했다.
“악인곡에 대해서 전부 말해라. 그럼 자비를 베풀어 편하게 죽여 주마.”
“예…….”
백발마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낱낱이 고했다.
* * *
“…….”
“선생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백발마수에게 악인곡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왔지만, 백수룡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악인곡. 생각보다 방비가 튼튼한 모양이다.”
백발마수는 악인곡이 천혜의 요새이자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도 쉽게 들어올 수 없었지만…… 지난번 무림맹의 토벌 이후로 대대적인 보강을 했습니다. 협곡 주변에 절진을 둘러 몰래 침입은 불가능하고, 고수들이 돌아가면서 순찰을 돕니다. 문지기들도 하나같이 절정고수라서…… 이제는 초절정고수가 와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겁니다…….
혈마안에 당한 자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전부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위지천의 해약을 구하기 위해 악인곡에 침입할 생각이었던 백수룡의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몰래 들어가서 일단 마의라는 놈만 납치해올 생각이었는데……. 끄응.”
침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 정면 돌파를 해야만 한다.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시간도 부족한데.’
백발마수는 사흘이면 독이 완전히 퍼질 거라고 했다.
금룡상단의 약을 먹었다고 해도, 거기서 하루 이틀 정도 더 버티는 게 한계일 것이다.
백수룡의 미간이 깊어지는 가운데, 헌원강이 그를 불렀다.
“선생님.”
백수룡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실로 망나니다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침입이 어려우면, 당당하게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요?”
“뭐?”
“악인곡이니까. 우리가 악인으로 변장하면 들여보내 주지 않겠어요?”
“무슨…….”
백수룡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제자들을 슥 둘러봤다.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차갑기 짝이 없었다.
특히 헌원강과 야수혁은 얼굴은, 과거 수많은 악인들을 봐 온 백수룡의 입장에서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 그렇게 봐요?”
자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헌원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백수룡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합격.”
“예?”
이 정도면 손을 많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 * *
“흐아암.”
악인곡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위 위에 앉은 세 명의 고수가 하품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중 어깨에 커다란 도끼를 멘 텁석부리 거한이 입을 열었다.
“심심하군. 요즘은 영 쓸 만한 신입도 안 들어오고.”
“이봐 나무꾼. 심심할 시간이 있으면 가서 나무나 해 오지 그래.”
빈정거린 이는 눈이 쫙 찢어진 얄팍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톱니가 돋아난 도가 매달려 있었다.
“뭣이? 이 인간 백정 놈이 뒈지고 싶나.”
“흐. 몸도 찌뿌드드한데 간만에 몸 한번 풀어?”
두 사내가 바위 아래로 내려가 무기를 뽑아 들 때였다.
“둘 다 조용히 해라. 명상에 방해된다.”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사내의 말에, 두 사내가 나직이 욕을 하더니 다시 바위 위로 올라왔다.
염라부. 낭아도. 벽안귀.
악인곡의 문지기로 유명한 세 명으로, 모두 절정의 고수였다.
“……누가 오는군.”
조용히 명상 중이던 벽안귀가 눈을 뜨며 바위에서 일어났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한순간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잠시 후, 다섯 인영이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나같이 ‘나 못된 놈이오.’ 하는 얼굴이었는데, 특히 앞에 두 놈은 문지기들이 봐도 인상이 살벌했다.
염라부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니들은 뭐냐?”
“흐흐. 형제들 안녕하시오?”
어깨에 도를 둘러멘 인상이 매우 험악한 놈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절강오마라고 하오. 악인곡의 명성을 듣고,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해서 찾아왔소이다.”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뒤를 돌아보더니 자칭 절강오마에게 말했다.
“자자. 형제들. 인사부터 하자고. 일단 나는 수라광마 혁원강이라 하오.”
그에 이어서 절강오마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폭렬철권마 야혁수다.”
“……냉혈비마 여곡.”
“나찰검마……. 위지호……입…… 이다.”
유치찬란한 그들의 별호에 세 문지기의 입술이 씰룩였다.
“큽…… 응?”
웃음을 참던 염라부가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온 사내를 보며 말했다.
그는 악인치고는 상당히 멀쩡한, 아니 너무 잘생긴 사내였다.
“그쪽은 왜 소개를 안 하나? 허여멀건 형씨.”
“나는…….”
사내가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 수라광마 혁원강이 그의 등을 펑펑 치며 말했다.
“으하하! 이분은 우리 대형으로 옥면음랑 백무룡 대협이오! 방중술과 색공의 대가이시지!”
“아하. 색공…….”
“어쩐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것이…….”
“잘하게 생겼군.”
헌원강의 소개와 그에 쉽게 납득해 버리는 문지기들의 모습에, 옥면음랑으로 변장한 백수룡의 표정이 똥 씹은 듯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