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거든선우진과 그의 지지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우르르 빠져나갔다.
“휴우…….”
상황이 겨우 정리되는 분위기에, 잔뜩 긴장해 있던 위지천은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유이란과의 대련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소심한 소년의 콩알만 한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짜식. 대련에서 이겨 놓고 왜 어깨를 움츠리고 있어?”
헌원강이 친근하게 다가와, 그런 위지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위지천이 소심하게 대꾸했다.
“저 때문에 큰 싸움이 날 뻔했잖아요.”
“그게 왜 너 때문이야? 저기 있는 생선눈깔 새끼들 때문이지.”
헌원강은 코웃음을 치며 유이란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아까 위지천을 몰아붙인 자신의 광적인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단단히 엄포를 놓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그땐 당신들을 세상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하겠어요.”
유이란의 서슬 퍼런 경고에, 추종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검화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소이다!”
“선배님. 제발 그것만은…….”
그녀의 추종자들에게 가장 큰 벌은 유이란의 무관심이었다.
앞으로 자신들을 모른 척하겠다는 유이란의 경고에, 그들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분위기였다.
“저한테만 사과하고 끝날 일인가요?”
유이란도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에서 넘어갔을 것이다.
검화라는 별호로 불리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쳐 낼 만큼 매몰찬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당신들은 대련의 정당한 승자를 죄인 취급했어요. 승리를 만끽해야 할 순간에 누명을 씌우고 조롱했죠.”
유이란의 두 눈에서 불꽃이 터져 나올 듯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위지천을 가리켰다.
“가서 제대로 사과하세요. 다시 저와 말이라도 섞고 싶다면.”
잠시 후, 유이란의 추종자들이 위지천에게 우르르 몰려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게나.”
그들의 절박한 사과에, 위지천은 어쩔 줄을 몰라 손을 저었다.
“괘,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어휴. 착해 빠져서는…….”
헌원강은 위지천의 옆에서 고래를 절레절레 젓다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지켜보는 유이란을 바라봤다.
‘저 녀석도 보통이 아니네. 검만 잘 휘두르는 줄 알았더니, 자기 추종자들을 아주 조련까지 하잖아?’
헌원강은 유이란이 왜 상검연이라는 큰 단체의 수장이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위지천에게 사과하던 유이란의 추종자들까지 모두 물러가고, 비무대 주변에는 헌원강과 위지천, 유이란과 상검연 간부들 몇 명만 남았다.
유이란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히 경고했으니 오늘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전 정말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위지천의 해맑은 표정에 유이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너무 착해도 탈이야. 뭐, 나는 그것도 괜찮지만…….”
“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휙 고개를 돌린 유이란이 헌원강을 바라봤다. 위지천을 볼 때와 비교하면, 표정에서 보이는 온도 차이가 극심했다.
“자리를 옮길까? 이제 한배를 탔으니 선거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좋지. 가자고.”
잠시 후, 그들은 상검연의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 * *
상검연의 회의실로 이동한 뒤, 유이란은 맞은편에 헌원강이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네가 회장이면, 위지천도 회장단의 간부가 되는 거겠지?”
“물론이지. 이 녀석은 내 오른팔이니까 부회장이야.”
팔로 어깨를 감싸오며 툭 던진 헌원강의 말에, 당황한 위지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님. 저는 그런 말 처음 듣는데요?”
“당연하지. 지금 정했으니까.”
“……너희들. 상상 이상으로 허술하구나.”
“애초에 선거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도 며칠 안 됐다고.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그게 이렇게 당당한 태도로 할 말이야?!”
유이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연 헌원강으로 동연 회장으로 지지하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것일까.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공개적으로 지지를 했으니 돌이킬 수도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유이란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너희를 지지하면서 상도연과 완전히 척을 졌어. 이왕 이렇게 됐으니, 반드시 너희를 당선시킬 거야.”
“듣고만 있어도 든든하네.”
“……그래서 몇 가지 도움을 주고 싶은데. 혹시라도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어.”
“오해는 무슨.”
유이란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헌원강이 씩 웃었다.
안 그래도 당소소에게 미리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상검연의 지지를 얻게 되면, 가장 먼저 받아야 할 도움.
헌원강이 먼저 말을 꺼냈다.
“회장단을 꾸릴 인원이 부족해. 상검연에서 인원을 지원해 줬으면 싶은데…….”
동아리 연합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은 있어야 한다.
전체 회원이 다섯 명에 불과한 영약 요리 연구회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반드시 상검연에서 인력 지원을 받아야 해요. 동연을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아리 중에서도, 동연의 권력에 관심이 없는 유일한 곳이니까.
당소소의 당부를 떠올리며, 헌원강은 유이란에게 먼저 도움을 청했다.
유이란도 한결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해가 없다니 다행이네. 확실히 말해 두지만, 우린 동연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유이란이 직접 선거에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유이란과 상검연은 동연 내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헌원강과 한편이 되었으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뿐이었다.
“동연에 검술 관련 동아리만 일곱 개야. 우리가 의견을 전달하면 그들도 널 지지할 거야.”
“상검연의 지지를 얻으면 승률이 사 할까지는 오를 거라더니, 괜한 말이 아니네.”
헌원강이 감탄하자, 유이란이 피식 웃었다.
“벌써 들뜨지 마. 여전히 선우진에게 이 할이나 밀린다는 소리니까.”
그 이 할을 좁히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이란은 목이 마른 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조금 마셨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던 그녀가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헌원강은 그녀의 시선이 위지천을 힐긋거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니라 지천이한테 할 부탁인가 보네?”
유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강을 대할 때와 달리, 위지천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다소 조심스러웠다.
“……대련에서 진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기 좀 그렇지만, 상검연 명예 회원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네?”
당황하는 위지천에게, 유이란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말 그대로 명예 회원이라 강제사항은 아무것도 없어. 우리 동아리 행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아도 돼, 물론 해 주면 좋지만……. 부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
“전 좋아요.”
유이란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위지천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네!”
마지못해서 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위지천은 진심으로 상검연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원래는 동아리 활동 자체에 관심이 없었지만, 유이란과 대련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유이란뿐만이 아니었다.
상검연에는 검을 좋아하는 또래의 학생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과 검을 부딪치고, 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상상만 해도 위지천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혼자 검을 배울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회장님. 잘 부탁드려요.”
“……그냥 선배라고 불러.”
그렇게 위지천은 상검연의 명예 회원이 되었다.
“네. 선배님!”
“님도 빼고.”
“……선배?”
흡족한 대답에 유이란이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청룡학관의 수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던 미소.
여기에 더해, 유이란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살짝 넘겼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교제하는 거지?”
“……네?”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는 위지천에게, 유이란이 장난이라며 웃었다.
“검으로 말이야. 검으로.”
“아, 네! 그럼요!”
하지만 그 순간, 상검연의 간부들은 묘한 시선으로 자신들의 회장을 바라봤다.
그들이 아는 검화 유이란은 농담으로라도 남자에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거 설마……?’
‘회장이?’
섣불리 확신할 수는 없었다. 유이란의 속마음은 본인만이 알 터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가 다른 남자를 대할 때와 위지천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상검연의 간부들은 위지천이 마냥 부러웠다.
* * *
헌원강과 위지천이 상검연의 지지를 얻고 돌아온 다음 날.
헌원강은 오랜만에, 백수룡과 함께 청룡학관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백수룡은 제자의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식. 기분 좋은가 보다? 아침부터 콧노래를 다 부르고.”
“후후후. 차기 동연 회장이라고 불러주십쇼.”
헌원강은 아침부터 헤벌쭉한 표정이었다.
전날 상검연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승산이 아예 없을 것 같았던 선거에 드디어 승산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동연 회장 후보 헌원강입니다!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헌원강은 개인 수련을 하려고 아침 일찍 등교한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다.
그 열정적인 유세에, 함께 걷는 백수룡은 조금 창피할 지경이었다.
“처음엔 하기 싫다더니. 이젠 아주 정치 권력에 맛을 들였구나.”
“이 시대의 정직하고 성실한 일꾼 헌! 원! 강!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기다립니다!”
“……고생해라, 원강아. 난 먼저 간다.”
발걸음을 서두르는 백수룡의 뒤로, 헌원강이 바짝 따라붙었다.
“아 왜 혼자 가요! 잘생긴 얼굴로 같이 손 좀 흔들어 줘요!”
“이 자식아! 내가 학생이냐? 너랑 같이 선거 유세를 하게?”
“당신이 나보고 선거에 나가라며!”
“쉿! 이 멍청아! 여기서 그걸 말하면 어떡해!”
스승과 제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티격태격하며 청룡학관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청룡학관 정문에 붙은 큼직한 대자보를 보기 전까지는.
청룡학관 삼학년 헌원강을 고발합니다.
“이건…….”
멈춰선 두 사람은 대자보에 적힌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
대자보에는 헌원강이 재학 중에 저지른 온갖 사건·사고가 나열돼 있었다.
폭행. 음주. 난동. 기물파손.
헌원강의 지난 행실을 문제 삼으며 이제 와서 위선을 떠는 모습이 가증스럽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게다가 헌원강에게 저지르지 않은 비행도 사실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져 쓰여 있었다.
‘뭐? 동급생에게 춘약을 써서 겁탈하려고 한 의혹이 있다고?’
헌원강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이야기.
하지만 헌원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악의적인 소문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적혀 있었다.
누가 이런 대자보를 붙였는지는 뻔했다.
“원강아.”
백수룡은 헌원강의 굳은 옆얼굴을 바라봤다.
“……아, 괜찮아요.”
하지만 하는 말과 달리, 헌원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생기가 넘치던 눈빛이 흐릿해지고,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졌다.
동아리 연합 학생들에게 묻겠습니다. 이래도 헌원강을 뽑으시겠습니까?
대자보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었다.
내용을 다 읽은 헌원강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선우진 이 새끼. 뼈아프게 때리네.”
“사실과는 다른 것도 보인다만. 네가 사람도 패고 술도 좋아하는 놈인 건 맞지만, 여자는 안 밝히는 놈이잖아.”
“사람들이 그걸 믿겠어요?”
헌원강은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애써 웃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과거에 제가 저지른 짓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오리라고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비겁하게 변명은 안 할래요. 사과를 하라면 하고, 머리를 숙이라면 숙일게요.”
백수룡은 잠시 그런 제자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당연히 책임져야지.”
“네.”
“하지만 네가 한 짓만 책임져.”
“……네?”
헌원강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백수룡을 돌아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백수룡의 두 눈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책임? 좋지. 하지만 네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왜? 나는 내 제자를 호구 등신으로 가르친 적 없거든.”
“서, 선생님?”
큭큭거리며 웃는 백수룡의 표정이 무척이나 사악했다.
과연 이 인간이 정파 무관에서 무공을 가르쳐도 되는 걸까?
헌원강은 그런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백수룡은 그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원강아. 저쪽에서 먼저 이렇게 나온 거야. 그렇지?”
“그, 그렇긴 하죠.”
“은혜는 두 배로, 원수는 백 배로 갚아 주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니겠냐?”
“은혜 쪽이 너무 짠 것 같은데……. 아무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데요.”
헌원강의 불안한 표정에, 백수룡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가만히 있으려고 했어. 학생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경쟁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만 보려 했다고.”
“거짓말하지 마. 당신 당소소한테 맨날 보고 받았잖아.”
백수룡은 헌원강의 말을 가볍게 씹었다.
“돈도 없고 뒷배도 없는 우리 원강이의 분투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 이제 겨우 상대해 볼 만해졌는데……. 치사한 새끼가 과거를 물고 늘어지네? 그것도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백수룡이 고개를 돌려 헌원강을 똑바로 바라봤다.
“원강아.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어떻게 하긴. 똑같이 해 줘야지.”
자문자답한 백수룡의 입매가 비틀렸다. 악인곡에서도 본 적 없는 사악한 미소였다.
“뭐, 뭘 똑같이 해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거든.”
언젠가 이럴 줄 알고, 하오문에 미리 의뢰를 넣어 둔 백수룡이었다.
그가 비열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흙탕 싸움? 한번 해 보자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