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2
21화. 전문가의 도움내 말에 청천이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유언장을 달라고?”
“그래. 이 사건을 조용히 덮고, 혈우마공의 부작용도 없애 주는 조건으로.”
“…….”
“설마 벌써 찢어 버리거나 불태운 건 아니겠지?”
그럼 일이 꼬이는데…….
다행히 청천은 고개를 저었다. 유언장은 어딘가에 잘 숨겨 둔 모양이었다.
그때 청천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유언장의 내용을 밝힐 생각이 없소. 그 인간이 내 친부라는 사실을 밝히느니, 차라리 죽는 쪽이…….”
“쯧쯧. 사람이 왜 이렇게 순진해?”
“……순진하다니?”
가볍게 혀를 찬 나는 청천에게 물었다.
“유언장에 당신 이름이 정확하게 적혀 있나?”
“……그건 아니오. 그 인간의 성을 따서 허천이라고 적었더군. 허천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고…….”
짝!
손뼉을 친 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럼 더 잘됐네.”
“뭐가 잘됐단 거요! 어머니께 물려받은 성을 그 인간이 멋대로……!”
내 말을 오해했는지, 청천이 울컥한 얼굴로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당신 이름은 청천이잖아. 그리고 거기 적혀 있는 건 허천이라며?”
“……그래서?”
씨익.
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 있던 계획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다.
“사실 청천이라고 적혀 있어도 상관없어.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야?”
“설마…….”
이 정도로 말했는데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청천은 머리가 나쁜 녀석이 아니다.
내 계획을 눈치챈 청천이 물었다.
“당신이 내 행세를 해서 그 인간의 유산을 대신 받겠다는 거요?”
정답이었다.
나는 유언장에 적힌 ‘허천’이라는 인물이 되어, 정당한 상속자가 포기한 유산을 챙길 생각이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냐. 호패와 인피면구 하나만 있으면 가능하지.”
“……신분을 위조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오. 그리고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서 유산을 받겠다고 하면 저들이 쉽게 믿을 것 같소? 당연히 뒷조사를 할 텐데…….”
청천이 말하는 ‘저들’이란 적화루의 주인인 손 부인과 호위무사 복만춘이었다.
허 노인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자 가장 친밀했던 두 사람.
그들을 속여 넘겨야 뒤탈 없이 유산을 꿀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에 대한 대비책도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 말이다.
“이런 답답이. 네가 누구야?”
“나? 나는, 갑자기 누구냐고 물으면…….”
청천이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나는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 그의 머리통을 퍽! 후려쳤다.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대답하래? 너 직업이 뭐냐고!”
“……포, 포두, 포두요.”
청천은 왠지 자신 없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청천의 직업은 포두다.
무인들은 무공이 별 볼 일 없다는 이유로 포두를 무시하지만, 포두의 가치는 무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무과 시험을 치러 합격한 국가직 공무원이라는 말이지.”
“…….”
청천이 근무하는 관아의 치안 최고 담당자는 포도대장이다.
그 밑에 몇 명의 포도부장이 있고, 그다음이 포두다.
이렇게만 말하면 끗발이 약한 것 같이 보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니며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잡는 것이 바로 포두다.
밑에 수십의 포졸을 데리고 다니면서 말이다.
‘즉, 도시에서 실제로 법을 집행하는 위치라는 뜻이지.’
허 노인도 처음에는 청천을 불러 뇌물이나 좀 찔러 주려고 했다가 자신과 꼭 닮은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면,
“호패 하나 새로 파는 거.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런…….”
남창쯤 되는 큰 도시의 포두라면, 적지 않은 인맥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청천이 허 노인을 죽이기 전까지 아무리 청렴결백하게 살아왔다고 해도 말이다.
“내 신분도 그쪽에서 보증해 주면 되고 말이야.”
“허…….”
지금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청천은 나와 한배를 탄 공범이 된다.
내게 범인이란 사실을 들킨 순간부터 내게 꼼짝할 수 없는 운명이 되긴 했지만, 이제부턴 운명 공동체가 되는 셈이다.
“선택해.”
나는 청천이 길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 사건을 깔끔하게 덮고, 혈우마공의 부작용도 치료할 건지. 아니면…….”
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들키기 싫은 치부가 모두 드러나고 무림맹에 끌려간 다음, 마공을 건네준 그 흑립 사내에 대해서 없는 기억까지 만들어 내야 할 정도로 고문을 당하다 죽을 건지.”
“……애초에 선택지가 하나뿐이군.”
청천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적화루의 최상층.
손 부인은 자신의 방 금고에 가득한 보석과 금괴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곱구나. 정말로 고와.”
살면서 여러 아름다운 여인과 사내를 보았지만, 모두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고 시들었다.
하지만 금은보화는 늙지도 변하지도, 배신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그녀는 금은보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내 것이야. 이 적화루도, 그 영감의 유산도!’
죽은 허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자 손 부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표독스러워졌다.
‘뱀 같은 인간. 잘 죽었다. 잘 죽었어.’
그녀가 허 노인의 첩이 된 것은 3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동안 겪은 고초는 극심했다.
매를 맞은 적도 많고, 기억하기도 싫은 치욕을 당하기도 수십 차례.
허 노인이 나이가 들고 조금 유순해지면서, 그리고 정신이 조금 오락가락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때 맺힌 원한이 깊어지면 깊어졌지, 사라지진 않았다.
까드득.
“……그 멍청한 아들놈이 안 죽였으면 언젠가 내 손으로 죽였을 거야.”
하지만 그녀는 허일처럼 요란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용히, 술잔에 독 한 방울만 타면 가능한 일이었다.
‘죽기 전에 고통에 떠는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건 아쉽지만,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것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금은보화를 두 팔로 끌어안은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유언장만 찾으면 돼.”
허 노인의 유일한 아들 허일이 죽었다(사생아는 대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알 바 아니었다).
고아로 태어난 허 노인에게는 허일 외에는 피붙이가 없었다. 정실도 죽은 지 오래였다.
즉, 그가 남긴 재산에는 정당한 상속자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유언장을 찾아야 한다.
못 찾으면 만들어서라도 찾아야 한다.
‘필적과 도장이야 하오문에 맡겨 위조하면 그만이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좀 찔러 주고 가장 어여쁜 아이들을 데려다 옆에 붙이면…….’
양물 달린 놈들은 전부 여자와 돈에 약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들을 구워삶는 것쯤, 남창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루를 운영하는 그녀에겐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호호호!”
손 부인은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이미 허 노인의 재산을 모두 차지한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청천 포두가 그녀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청천은 허 노인의 호위무사였던 복만춘, 그리고 처음 보는 사내와 함께 왔다.
괜히 불안감이 든 손 부인이 물었다.
“여긴 또 어쩐 일로…….”
“주변을 좀 물려 주시겠습니까?”
청천의 요청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고, 자리에는 청천과 손 부인, 복만춘, 그리고 낯선 사내만이 남았다.
청천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허 노인이 남긴 유언장을 찾았습니다.”
“네?”
“뭐?”
함께 오긴 했지만 복만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청천은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유독 딱딱했다.
“피해자와 긴밀한 관계이셨던 두 분께는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순간 손 부인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필이면 꽉 막히기로 유명한 청천 포두가 유언장을 찾아내다니…….’
만약 허 노인이 거기에 쓸데없는 내용이라도 적어 놨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갑자기 유언장이라니…….”
복만춘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허 노인에게 고용된 입장으로, 고용주가 죽은 이후에는 무직 백수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언장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느냐에 따라, 이후 그의 거취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때 복만춘의 시선이 청천의 옆에 있는 청년에게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분은 누굽니까? 이런 얘기를 함께 들어도 되는 분인지…….”
“유언장에 적혀 있는 상속자입니다.”
“뭐?”
“뭐라고?”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사내를 쳐다봤다.
청천 포두 못지않게 표정이 없는 사내였다.
키가 훌쩍 컸고, 인상은 청천보다 더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반갑습니다.”
입꼬리를 살며시 말아 올린 사내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허천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 * *
청천은 유언장에 적힌 내용을 요약해 주었다.
허 노인이 자신이 죽으면 모든 재산을 자신의 아들인 ‘허천’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손 부인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가 그 사람 아들이라니!”
예상대로였다.
손 부인은 적화루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반면 복만춘은 신중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저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그 유언장이 가짜일 수도…….”
청천이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유언장의 진위는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유언장은 진짜입니다.”
“하, 하지만…….”
“제가 확인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국가직 공무원의 묵직한 권위가 민초의 반발을 찍어 눌렀다.
“하, 하지만…….”
손 부인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청천이 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유언장의 진위는 이미 확인이 끝났습니다. 이분의 신분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런데도 계속 의심을 하신다면, 관아에 대한 불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청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했다.
어머니를 쫓아낸 손 부인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손 부인은 청천의 싸늘한 시선에 쩔쩔맸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겠군.’
나는 공손한 태도로 청천에게 양해를 구했다.
“청천 포두님.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분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시지요.”
청천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방에서 나간 후,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어머니는 과거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던 시녀였습니다.”
“…….”
“…….”
나는 청천의 사연을 적당히 각색해서 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도시에서 어렵게 자랐고, 몇 달 전 이 도시에 왔다가 우연히 허 노인과 만났다는 것이었다.
“저런……. 고생이 많으셨겠소.”
내(허천의) 안타까운 사연에 복만춘이 혀를 찼다.
그는 무림의 낭만주의자답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내였다.
“……해서, 여러분에게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이란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손 부인은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었고, 복만춘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인 표정이었다.
“저는 장사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업들을 잘 관리할 자신이 없습니다.”
허 노인은 고리대금업계의 큰손이었다.
하지만 고리대금업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루, 객잔, 주점, 상단.
명목상이긴 하지만 표국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한입에 삼키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나는 이 둘을 적으로 만드느니, 차라리 내 편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
하지만 이렇게 적당히 어르고 달래 주면, 그들은 내 정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리대금업은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청천과 미리 이야기를 끝냈다.
청천은 민초의 피를 빨아먹는 돈벌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나도 그 부분에 동의했다.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고, 만들 거면 아예 싹을 뽑자는 것이 이번 생의 내 신조였다.
하지만 그 외에 사업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다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영약이나 사 먹는 방법도 있지만…….’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이익을 포기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나는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여기서 쫓겨나든가.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지만, 이 안에 그 정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먼저 대답한 것은 복만춘이었다.
내 제안이 자신에게 썩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알았어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손 부인도 대답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