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1
20화. 나한테 주는 건 어때청천 포두의 표정이 무너진 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웬만한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평소 표정과 미세한 차이.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순식간에 평소와 다름없는 신색을 회복한 그가 내게 물었다.
내가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청천 포두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장난이나 하자고 불러내신 건 아닐 테고……. 설마 절 범인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내 판단에 확신이 있었다.
지금부터 그것을 검증할 생각이었다.
“그 마공 말이죠.”
나는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 다행히 예상했던 반응이 왔다.
“예?”
“범인이 익힌 무공 말입니다. 혈우마공(血雨魔功)이라고 부릅니다. 예전에 혈교 무인들이 익히던 것 중 하나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공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확신하게 됐습니다.”
“…….”
청천의 눈빛이 흔들리고 동공이 확장된다.
표정이야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신체 반응을 조절할 정도의 고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 들어 보셨을 겁니다. 마공은 처음에는 성취가 아주 빠르지만, 뒤로 갈수록 몸에 문제가 생긴다고요. 정신이 피폐해져서 결국 미쳐 버리거나, 기혈이 뒤틀려서 죽음에 이른다거나…….”
“……들어 본 적 있습니다.”
“다행히 혈우마공은 꽤 안정적인 마공입니다. 혈교에서 수많은 실험을 거쳐서 부작용을 최소화했지요. 크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미치거나 죽을 일은 없습니다.”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내가 일조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금 그 얘길 왜 저한테…….”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혈우마공을 익혔을 때 이야기입니다. 포두님이 익힌 건 어설픈 아류 같군요. 계속 사용하면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
나는 청천 포두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흰자위가 붉게 충혈되는 것을 보며 말했다.
“혈우마공의 부작용 중 하나. 감정이 격해지면 흰자위가 붉게 충혈됩니다.”
“……그것 하나로 절 의심하신 거라면, 며칠 동안 수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운기 직후에 경문혈이 아프고 소화가 잘 안 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대표적인 부작용인데.”
“…….”
“결정적으로 신경이 점점 예민해지게 됩니다. 그걸 숨기기 위해 항상 감정을 죽이고 무표정하게 지내게 되지요.”
“저는 원래 표정이 이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부터.”
“……제 뒷조사도 하셨습니까?”
청천은 불쾌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허일의 시체를 보러 오기 전에, 나는 청천 포두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처음엔 호위무사를 의심했습니다. 일류고수인 데다, 낭인 출신답게 표정 관리를 잘하더라고요. 망한 혈교의 무공을 입수하는 것도 여기저기 떠돌다 보면 가능할 것도 같고……. 그런데 말이죠.”
나는 표정이 굳어 있는 청천 포두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낭인은 몸을 망가뜨리는 무공을 함부로 익히지 않아요. 그것도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
“혈우마공은 익히는 과정도 꽤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무공을 익혀야 했다면 보다 간절한 사람이었겠지요. 돈방석에 앉아 있는 기루 주인이나 망나니 같은 아들이 아니라, 예를 들면…….”
나는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고아로 태어났고 근골도 나쁘지만, 무관이 되고 싶다는 꿈만은 간절했던 소년이라면 어떨까요.”
“…….”
청천 포두는 침묵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부 가설이군요. 아무 증거도 없이 추측일 뿐입니다. 제가 마공을 익혔다고요?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나는 그가 마공을 익힌 걸 증명할 방법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 시선은 청천의 발을 향했다.
“신고 있으신 신발.”
“……?”
“불에 그을려 있더군요.”
“……!!”
“제가 어제 사건 현장에서 왔냐고 물었을 때, 분명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어째서 신발이 그을려 있었을까요?”
“이건…….”
당황하며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청천.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허일을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옷은 갈아입었지만, 신발까지 갈아 신을 정신은 없으셨나 보죠.”
사실 그을렸다고 하기에도 희미할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청천이 이를 악물며 나를 노려봤다.
“겨우 그것만으로 날 범인으로 몰 수 있을 것 같소?”
“어렵겠죠. 하지만 이 정도면 무림맹이 당신을 더 조사해 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큭…….”
완벽한 나의 승리였다.
“당신은 허일을 죽여서 죄를 덮어씌우고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려고 했겠죠. 그 조급함이 일을 망쳤습니다.”
“하…….”
청천의 두 눈에 붉은 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동안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죽였소.”
당장이라도 덤벼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죽어도 싼 인간이었으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청천이 왜 허 노인을 죽였는지, 나는 여전히 그의 범행 동기를 알 수 없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그 인간이 내 친부였으니까.”
“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실과도 달랐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 고아라고…….”
“그 인간이 버린 수많은 사생아 중 하나요.”
그 순간, 나는 허일이 기루에서 지껄여 대던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 영감이 싸지른 새끼가 나 하나인 줄 알아?!
무표정 연기는 이제 포기한 듯, 청천은 어깨를 들썩이며 큭큭 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소. 죽어라 공부했지. 어머니 유언이 자식이 번듯한 관인이 되어 나라의 녹봉을 받으며 사는 것이었거든. 그런데 공부 머리는 없고, 몸도 허약했소. 밤새 공부를 하다 코피를 쏟으며 쓰러지기 일쑤였지.”
“혈우마공은 어디서 구한 겁니까?”
“……어머니 무덤에 엎드려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때였소. 돌아가신 후에 종종 찾아가곤 했거든. 흑립을 쓴 어떤 사내가 책자를 하나 던져 주더이다. 익히면 힘을 갖게 될 거라면서…….”
청천은 흑립 사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비급이 혈우마공인지도 모르고 익혔고, 신체가 건강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몇 년 만에 포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청천이 허 노인을 만나게 된 건 그 이후였다.
“포두가 되고 어느 날, 허 노인이 날 먼저 찾아왔소. 내가 자기 젊을 때랑 꼭 닮았다면서……. 처음엔 뇌물 주면서 하는 뻔한 이야기인 줄 알았지. 그런데 갑자기 자기 어릴 때 초상화를 꺼내는 거요. 그건…… 거울을 보는 줄 알았소.”
“…….”
그 후, 청천은 어머니가 과거 허 노인의 저택에 시녀로 일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하자, 당시 허 노인의 애첩이었던 손 부인이 그녀를 쫓아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자는 그걸 알면서도 방관했던 거요. 관심조차 없었겠지. 그래 놓고 나 보고 자기 젊을 때랑 똑같이 생겼다고, 내 아들이 확실하다면서……. 날 안고 웃더군. 그때 처음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소.”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그가 쌓인 한을 모두 쏟아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청천은 마침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그거 아시오? 그 인간은 매병(치매)을 앓았소.”
“매병이라면…….”
“정신이 오락가락했지. 처음엔 초기라 괜찮았지만, 점점 심해지더군.”
“…….”
“시간이 날 때마다 날 불러다 온갖 이야기를 해댔소.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떻게 성공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고,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인생을 망쳤는지……. 그걸 자랑하던 인간이 내 친부라니!”
뿌드득.
이를 가는 청천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장 가관인 건 뭔지 아시오?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겠다며 유언장에 내 이름을 적은 거요.”
“……유언장이 당신한테 있었던 겁니까?”
“…….”
청천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죽여서 쓸데없이 사건을 만든 겁니까? 시간이 지났으면 허 노인의 재산이 저절로 다 당신 것이 되었을 텐데.”
“돈 따위엔 관심 없소. 난 사람들이 그 인간이 내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되는 게 싫소! 그 인간이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되는 건 더더욱 싫고!”
“그런…….”
저런 이유라면 논리적으로는 설득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을 더 감정적으로 만드는 마공까지 익힌 상태이니.
“……내가 할 말은 이게 전부요.”
모든 사실을 다 쏟아낸 청천은 차라리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자수할 겁니까, 아니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천은 허리춤에 검을 뽑아서 기습을 가했다.
휘익!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칼끝이 내 귀 옆을 스쳤다. 두 눈이 붉게 물든 청천이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덤벼들었다.
“그 인간이 내 친부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해!”
“아니, 말을 좀 끝까지…….”
이미 들리지 않는 듯, 청천은 사납게 검을 휘둘러대며 덤벼들었다.
혈우마공은 몸 안의 잠력을 끌어와 신체 능력과 내공을 일시적으로 폭발시키는 무공이다.
이렇게 들으면 무슨 불로장생의 비법 같지만, 그랬으면 마공(魔功)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하는 대신, 노화가 빨라지고 사용할수록 골병이 들지.’
즉, 수명을 끌어다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무공이다.
“으아아아!”
그런 만큼, 지금 청천의 힘과 속도, 그리고 내공은 일류고수에 필적했다.
반면에, 나는 아직 역천신공의 2성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다.
단전에 티끌만 한 내단을 만들긴 했지만 그 힘은 아직 끌어다 쓸 수 없었다.
작정하면 아예 못 쓰는 건 아닌데…… 부작용이 좀 있다.
‘뭐, 내공까지 쓸 필요도 없는 상황이고.’
청천도 나름 무공을 열심히 익힌 모양이지만, 혈우마공의 모든 초식을 아는 내게는 칼 들고 허우적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휘익! 휙!
몇 합 만에 청천의 검초를 모두 파악한 나는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혈도 몇 곳을 짚었다.
타다닥!
“……!!”
마혈을 점혈 당한 청천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나는 그의 힘을 역이용해 바닥에 강하게 메다꽂았다.
―콰앙!
나는 바닥에 대자로 쓰러진 청천의 몸 위에 올라탔다. 두 팔을 무릎으로 제압해 찍어 누르고, 손바닥으로 목을 압박했다.
내 아래에 깔린 청천이 끅끅대며 필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죽이……시오. 차라리 지금…… 죽여.”
“일단 진정 좀 하라고.”
경동맥을 누르던 손을 살짝 풀자, 청천이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난 죽여 마땅한 쓰레기를 죽였을 뿐이오. 하지만 세상은 날 친부를 살해한 패륜아로 기억하겠지! 그러니 차라리 지금 죽여 주시오. 어차피 마공의 부작용으로 오래 살지 못할 거라면…….”
“성격도 급하네. 내가 언제 관아에 신고한댔어?”
“……뭐?”
꿈틀대던 청천의 몸이 멈췄다. 나는 천천히 팔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천 역시 벌게진 목을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고하지…… 않겠다는 거요?”
“당신 하는 거 봐서.”
“……무슨 소리요?”
나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다.
고리타분한 정의를 내세우는 정파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청천이 죽일 만한 놈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사건의 해결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일은 모른 척해 주지.”
“왜…….”
얼마나 당황했는지, 청천은 내 말투가 바뀌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혈우마공의 부작용도 내가 없애 줄 수 있어. 이미 깎인 수명은 회복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서 쓸 수 있게 해 주지.”
“어, 어떻게?”
내가 혈교의 무공 교관 출신이거든.
혈교의 거의 모든 무공을 알고 있고, 무공을 잘못 익히거나 주화입마에 걸렸을 경우의 처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까.
“그 대신.”
물론 공짜로 해 줄 생각은 아니다.
나는 씩 웃으며 청천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당신한테 쓸모없는 그 유언장. 목숨값으로 나한테 주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