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0
19화. 왜 죽였습니까?
“유언장 말입니까?”
마지막 용의자인 복만춘을 만나고 나오는 길.
우리는 복만춘에게 들은 이야기를 청천 포두에게 다시 확인했다.
“맞습니다. 허 노인이 죽기 얼마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하더군요.”
“왜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은 겁니까?”
내 질문에 청천 포두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유언장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자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문이 흘러나가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에 입단속을 했습니다만…….”
청천 포두는 “설마 그 상황에서 복만춘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군요.” 하고 중얼거렸다.
즉, 청천 포두에게 나와 악연호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청천 포두의 협조 없이는 범인을 잡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청천 포두를 응시했다.
“포두님. 이번 사건은 저희 무림맹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민간인이 마공을 익혔을지도 모르는 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빨리 범인을 찾지 못하면 희생자가 몇 명이나 더 늘어날지 모르고요.”
“알고 있습니다.”
“포두님께서는 갑자기 나타나 수사에 끼어든 저희를 신뢰하기 어려우실 수 있지만, 저희 무림맹은 강호의 정의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할 뿐, 결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조직이 아니란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청천 포두에게, 나는 포권을 취하고 고개까지 정중하게 숙여 보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림맹의 일원으로서 저희가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나는 ‘무림맹’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해 청천 포두를 은근히 압박했다.
[형님. 언제부터 저희가 무림맹 소속이었어요?]악연호가 황당하다는 듯 전음을 보내 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력서에 한 줄 보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때, 한동안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고 있던 청천 포두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께 모든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허 노인에 대한 소문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로 유명했던 허 노인.
그러나 청천 포두는 그에게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고리대금업자치고는 이자도 높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채무자의 사정을 봐주기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착한 고리대금업자라 이건가요?”
“그런 셈이지요.”
청천 포두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또한 인근 고아원에 기부를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고아들을?”
“자기도 고아였다는 이유였습니다. 꽤 많은 고아들이 허 노인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원하면 학관에 다니며 공부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지요.”
악연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리대금업자라길래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고리대금업자의 선행.
악연호는 그것이 살인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이 사건과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 고아들 대부분은 나중에 허 노인이 운영하는 기루나 도박장에서 일하게 됐을 거야. 미래를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한 셈이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은인이라고 생각하게 한 다음, 훗날 그 마음의 빚을 이용해 충성하게 만드는 방법.
사파에서 아이들을 어렸을 때 데려와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내 추측에 청천 포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긴 했습니다만…… 간혹 예외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고아 중 하나였으니까요.”
“예?”
전혀 생각지 못한 고백에 나와 악연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악연호가 물었다.
“포두님이요?”
“저는 친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마저 어릴 때 돌아가셨지요. 그때 허 노인의 지원이 없었다면 관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청천 포두는 덤덤하게 말했는데 오히려 악연호가 죄라도 지은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일에 제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고요.”
“…….”
청천 포두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고, 잠시 후 나타난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밤이 늦었으니 살해 현장은 내일 가 보도록 하지요.”
허 노인이 시체로 발견된 곳은 그의 자택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있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예. 아침 일찍 저희가 관청으로 가겠습니다.”
청천 포두는 그대로 관청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묵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나는 우직하게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청천 포두의 가만히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내 옆에서 악연호가 나직이 감탄을 터트렸다. 뭐가 역시냐고 물었더니, 청천 포두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멋있잖아요. 사내라면 저렇게 묵직한 맛이 있어야지. 게다가 가슴 아픈 사연까지……. 얼굴은 좀 평범해도 오히려 저런 사내가 인기가 많다는 거 알아요 형님?”
“그딴 거 알게 뭐냐.”
이 녀석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내가 나직이 혀를 차자, 악연호가 울컥해서 물었다.
“참나. 그럼 형님은 포두님 뒷모습을 왜 그렇게 보고 있는데요? 멋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 한심한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그냥 이게 습관이야. 사람 관찰하고, 분석하고, 이것저것 봐두는 게.”
나는 이 습관으로 혈교에서 수십 년을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 * *
그날 밤.
모든 용의자를 만나고 객잔으로 돌아온 우리는 일단 좀 씻은 후에 내 방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형님은 누가 범인 같아요?”
방금 씻고 온 악연호가 두부처럼 뽀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악연호의 생각이 먼저 듣고 싶어서 되물었다.
“넌 누구 같은데?”
“씻으면서 계속 생각해 봤는데, 역시 그 허일이라는 아들놈이 수상해요.”
악연호는 내게 허일이 의심스러운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걸 간단히 요약하면…….
“그냥 마음에 안 든다?”
“느낌이 온다니까요! 느낌이! 그 쓰레기가 범인이 확실하다니까!”
악연호는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린 적이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스럽기는 전부 의심스럽지.”
一. 기루의 운영을 두고 최근 자주 다투었다는 내연녀.
二.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는 말종 아들.
三. 셋 중 유일한 일류고수인, 과거에 낭인이었던 호위무사.
‘셋 다 의심스러워. 그리고 허 노인이 남긴 유언장……. 못 찾은 걸까? 아니면 누가 숨기고 있는 걸까.’
허 노인이 정말 유언장에 적힌 이름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줄 작정이었다면, 거기에 적힌 이름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용의자를 좁힐 수 있게 된다.
유언장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이 허 노인을 죽이진 않았을 테니까.
‘한 가지 더 걸리는 게 있어.’
바로 허 노인을 죽이는데 사용된 마공.
내게도 익숙한 그 마공은 어쩌면 혈교에서 흘러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자세한 건 직접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후우…….”
“형님이 생각하기에도 허일이 맞죠? 그렇죠?”
“넌 가서 잠이나 자라.”
나는 생각을 정리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 닫혀 있던 창문을 열었다.
저 멀리서 붉은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야밤에 어디서 불놀이라도 하나?
아니 그럴 리는 없고…….
“어디에 불이라도 났나 보네.”
“그러게요. 크게 난 것 같은데요.”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지만, 남의 불행을 관음하는 취미는 없기에 나는 창문을 닫으려 했다.
불꽃이 치솟는 위치가 아까 눈대중으로 대충 봐 둔 곳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잠깐만. 저기 설마……!”
나는 말하다 말고 몸을 돌려 문을 박차고 나왔다.
황급히 객잔 밖으로 뛰쳐나가는 내 등 뒤에서 악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형님! 어디 가요! 같이 가요!”
우리는 함께 야밤의 거리를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경공을 펼쳐 달려오는 청천 포두와 마주칠 수 있었다.
“허 노인의 자택에 불이 났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다소 상기된 채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현장에서 바로 오시는 겁니까?”
“아니요. 소식을 듣고 관청에서 여러분을 모시러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청천 포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그러나 우리가 허 노인의 자택에 도착했을 땐, 불이 너무 크게 번져서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화르르륵!
대궐 같은 저택이 커다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하늘 높이 너울거렸다.
“물을 더 가져와!”
“빨리빨리 움직여라!”
“안에 사람은!”
불을 끄는 금화군(禁火軍)이 출동해 물동이를 나르기 바빴다.
겨우 불길이 수습된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자택은 거의 전소되었고, 반쯤 탄 시체 하나가 발견되었다.
“……허일이 죽었습니다.”
유력했던 용의자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청천 포두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에게 전해 왔다.
* * *
그날 오후.
“허일이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의 눈앞에는 거의 숯 더미로 보이는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자살인 건 어떻게 압니까?”
내 질문에 청천 포두는 한 장의 서찰을 내게 내밀었다.
“오늘 아침. 제 앞으로 온 허일의 유서입니다.”
“…….”
나는 유서를 펼쳤다. 악연호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 함께 읽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자신이 술에 취한 채로 아버지와 다투다 홧김에 아버지를 죽였고, 수사망이 좁혀오자 두려워서 죽음으로 속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속죄를 할 만한 인간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이 당시에도 술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살이 아니라 보여 주기 식으로 하려고 했다가 못 빠져나온 것일 수도 있지요.”
청천 포두는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악연호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사건은 해결됐네요. 죽긴 했지만 범인도 찾았으니…….”
“그러게.”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결돼 버렸다고?
우리는 다소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었다. 청천 포두가 그런 우리를 보더니 포권을 취했다.
“무림맹의 협력은 잊지 않겠습니다. 두 분께서 기루에서 허일을 추궁하지 않았다면, 범인을 찾는 데 더 많은 시일이 걸렸을 것입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죠.”
“…….”
그렇게 허 노인 살인 사건은 범인의 자백과 죽음으로 종료되었다.
우리는 청천 포두에게 인사를 한 후 관청을 나왔다.
“…….”
“형님. 형님?”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내 표정이 어두워 보였는지, 악연호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위로랍시고 말했다.
“어쨌든 저희 협조로 범인을 찾았잖아요. 이 정도면 면접 때 가산점도 확실히 받을 수 있을걸요?”
“그래. 가산점…….”
가산점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거 잘만 하면, 그거보다 훨씬 많은 걸 얻게 될지도.
나는 자리에서 멈춰 서서 악연호를 돌아봤다.
“먼저 가라. 난 포두님이랑 따로 얘기 좀 해야겠다.”
“따로 할 얘기요? 나도 같이 듣지…….”
“…….”
내가 미간을 좁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악연호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객잔에 가 있을게요.”
악연호는 혼자 객잔으로 돌아갔고, 나는 몸을 돌려 청천 포두를 다시 찾아갔다.
내가 돌아오자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신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여기서는 좀 곤란한데. 조용한 곳으로 가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청천 포두와 나란히 걸으며, 나는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잠을 거의 못 잤는지 무척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특히 밤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잠시 후, 자리에 멈춰선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쯤이면 될 것 같군요. 말씀하시지요.”
“사실 어제부터 궁금했던 건데…….”
지금 이곳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때문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죽였습니까?”
“…….”
범인의 무표정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