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31
230화. 비수(匕首)빛이 폭발했다.
창천검왕의 검이 쏘아진 순간을 표현할 말은 달리 없었다. 일대를 장악한 시커먼 어둠을 찢어발기며, 눈부신 빛이 혜성처럼 폭발했다.
“성격도 급하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흑야마제는 그 빛을 포착했다. 그가 하얗게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 뻗었다. 어둠이 그를 호위하며 정면에 두꺼운 방어벽을 세웠다.
쩌어어어엉!
빛과 어둠이 충돌하며 막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남궁세가의 튼튼한 담벼락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적의 습격이다!”
“가주님과 태상가주님을 지켜라!”
두 절세고수의 충돌이 만들어 낸 굉음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놀라 몰려왔다.
그러나 의미 없는 희생을 염려한 남궁세가주 남궁천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상대는 절세고수다! 삼십 장 밖으로 물러나 포위하라!”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흑야마제를 포위했다. 하지만 그것은 포위라기보다,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거리를 둔 것처럼 보였다.
휘익!
흑야마제가 몸을 띄워 전각의 지붕 위에 올라섰다. 건들거리며 웃는 모습이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락호 같았다.
“만나자마자 칼질이라니. 오랜만인데 인사 정도는 나누고 싸워도 되잖아?”
“……본좌를 아느냐?”
창천검왕은 미간을 좁히고 흑야마제를 바라봤다.
십여 년 전부터 흑야마제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에 만났다면 살려 두었을 리 없었다.
불과 십 년 동안 수많은 살겁을 저질러 천흉(天凶)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마두를 말이다.
“크크큭……. 역시 못 알아보네. 하긴, 그때 나는 꼬맹이에 불과했으니.”
“자꾸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는구나.”
“이십 년 전의 당신이 저지른 업보 말이야. 위선자의 가면을 쓰고 한 역겨운 일들.”
“…….”
창천검왕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그 속에 비치는 가공할 살기.
흑야마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태어난 재앙이거든.”
화아아아악!
흑야마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장막처럼 펼쳐져 하늘을 뒤덮었다. 절세고수가 내뿜는 가공할 존재감에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듯했다. 멀리서 흑야마제를 포위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래도 못 알아듣진 않겠지?”
그 순간, 창천검왕이 손에 쥔 검에서 새파란 검강이 치솟았다. 창궁무애검법의 극의가 펼쳐졌다.
촤아아악!
흑야마제가 딛고 있던 전각 지붕이 통째로 소멸했다.
“하하하하! 내가 너무 정곡을 찌른 모양이군!”
광소를 터트린 흑야마제가 하늘 높이 도약했다. 그는 지상을 향해 어둠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오늘날 흑야마제를 사파지존이라 불리게 만든 성명절기인 흑암강기(黑暗? 氣)였다.
콰가가가각!
흑암강기가 스친 바닥에 사방팔방으로 깊은 고랑이 파였다. 희뿌연 먼지가 폭발해 시야를 가렸다.
그 속에서, 한 자루 검이 번뜩이며 솟구쳤다.
쐐애액!
흑암강기를 둘로 베어낸 검이 경로를 급격히 틀더니, 흑야마제마저 꿰뚫을 기세로 날아갔다.
민간에는 신선의 기술로 알려진 어검술(馭劍術)이었다.
그러나 흑야마제는 허공을 유영하듯 신묘한 보법을 밟았다. 창천검왕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옷자락을 스쳤다.
“이기어검!”
“허공답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검과 인간을 바라봤다.
전설로나 전해지는 무공의 기예들이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흑야마제가 사파제일인이라더니…….”
눈을 부릅뜬 남궁세가주가 두 절세고수의 싸움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창천검왕과 흑야마제를 제외하면, 그는 이곳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무인이었다.
남궁천은 언제든지 검을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흑야마제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강기를 마치 수족처럼 부린다더니, 소문 그 이상이로군.’
놀랍게도 흑야마제 주변에 펼쳐진 어둠 전부가 강기였다.
절세고수들 중에서도 저렇듯 유형화된 강기를 넓게 펼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자는 흑야마제가 유일했다.
기의 통제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이야기였다.
‘놈이 이름을 날린 건 불과 십 년밖에 되지 않았거늘…….’
그 십 년 동안 전대의 마두들을 격살하고, 문파 셋을 몰살했다.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흑야마제의 손에 고혼이 된 고수만 일백을 넘었다.
독보강호를 시작한 지 불과 오 년 만에, 흑야마제는 사파제일인, 혹은 천흉(天凶)이라 불렸다.
콰콰콰콰쾅!
두 절세고수가 충돌할 때마다 땅이 뒤집히고 지진이 일었다. 딛지도 않은 지반이 주저앉고, 담벼락에 맹수가 할퀸 듯한 상흔이 새겨졌다.
“갈!”
피해를 걱정한 창천검왕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절세고수가 허공을 디디며 맞붙었다.
그럼에도 싸움의 여파가 남궁세가를 황폐화시키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남궁가주가 두 초인의 영역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아버님! 제가 돕겠습니다!”
허공에서 신화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절세고수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다곤 하나, 남궁천 역시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였다.
창천검왕의 자존심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빨리 흑야마제를 죽여야 세가에 닥친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그를 제지했다.
“쯧쯧.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자가 비겁하게 합공을 하려는 겐가?”
소름 돋는 기파와 함께 옆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남궁천은 급히 검을 뽑아 휘둘렀다.
까가가강!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룬 후에야 상대의 검이 뒤로 물러났다.
‘고수다.’
남궁천은 갑자기 나타난 곱사등이 노인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검을 들었다. 노인의 주름진 눈매가 반달을 그렸다.
“주군께서 창천검왕과 일대일 대결을 원하시니, 그동안 가주는 이 늙은이와 어울리는 게 어떤가?”
“흑야마제에게 너처럼 늙은 종복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클클. 이제 보니 검보다 혀가 더 날카롭구나. 노부는 수라마검이라 한다.”
수라마검.
수십 년 전 악명을 떨쳤던 전대의 대마두였다.
그 별호를 떠올린 남궁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클클. 삼도천을 반쯤 건너다가 돌아왔지. 그 이후로 주군을 모시고 있다네.”
할짝.
혀로 검을 핥은 수라마검의 몸에서 소름끼치는 기세가 피어났다.
“남궁세가의 검이 제법 맵다고 하던데. 오늘 견식 좀 시켜 주겠나?”
남궁가주의 몸에서도 강대한 기의 파동이 번져 나왔다.
“한 수 지도해 주지. 수업료는 너의 목으로 받겠다.”
“클클클! 검법도 그 혀만큼 현란해야 할 것이야!”
수라마검과 남궁가주도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검격을 나누자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몰아치는 검기가 땅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동시에 지상에도 난전이 펼쳐졌다.
“적의 습격이다!”
“전열을 갖춰라!”
“검진을 펼쳐 대응하라!”
흑의를 입은 자들이 나타나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풍기는 살기가 지독했다. 망설임 없이 급소를 노리는, 살인에 익숙한 살귀들이었다.
딸랑- 딸랑-
흑의인들 사이로 방울을 흔드는 술법사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우웨에에엑!”
“커허억!”
방울 소리를 들은 남궁세가의 무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입에서 피를 쏟았다. 이성을 잃고 동료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자들도 있었다.
“자, 자네 왜 그러나!”
“정신 차리게!”
남궁세가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차라리 사파의 정예가 들이닥쳤다면 상대의 안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맞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자들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가족이자, 친구이고, 피로 맺어진 혈족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차마 그들을 베지 넘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흑의인들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살수를 펼쳤다.
촤아악! 푸화악!
남궁세가의 무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핏물이 허공에 비산하고, 바닥에 몸을 누인 싸늘한 시신이 점점 늘어났다.
설상가상 남궁세가의 최고수인 창천검왕과 철혈검의 발까지 묶인 상황.
흑야마제는 지옥도가 펼쳐진 남궁세가를 내려보며 창천검왕에게 물었다.
“재미있지 않나? 업보라는 게 이렇게 돌아오다니 말이야.”
“이노오오오옴!”
흉신악살처럼 변한 창천검왕이 흑야마제를 찢어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두 절세고수의 싸움은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쿠르르릉……!
남궁세가의 하늘 위로, 거대한 먹구름이 점점 짙게 드리워졌다.
* * *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방에서 비명과 쇳소리가…….”
“혈향이 진동합니다. 무언가 사달이 난 게 분명합니다!”
사대학관 신입 강사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곳에 모여 있었다.
남궁세가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명과 고성이 울리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타고 밀려온 짙은 혈향은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남궁세가가 적에게 습격당한 게 분명합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저희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까? 이곳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움직이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괜히 오해라도 받으면…….”
“그러다 탈출할 시기를 놓쳐 버리면요? 적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금방 수습될 겁니다. 괜히 천하제일세가겠습니까?”
강사들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쪽과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연배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지녔지만, 대부분 강호 경험이 일천했다.
다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사마영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주작학관은 이곳을 탈출하겠습니다.”
그녀는 천하제일세가라는 남궁세가의 저력을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남궁세가를 습격할 정도의 적이라면, 그들도 엄청난 준비를 했으리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우리 숙소는 남궁세가 외곽에 있어요. 운이 따라준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주작학관 강사들은 군말 없이 그녀의 뒤에 섰다.
사마영이 고개를 돌려 당백호를 바라봤다.
“백호학관은 어쩌실 거죠?”
잠시 고민하던 당백호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백호학관도 탈출한다. 우리가 이곳에 남아 남궁세가를 돕는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인질이나 안 되면 다행이지.”
현실적인 이유였다. 백호학관도 남궁세가를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청룡학관은?”
사마영과 당백호의 시선이 청룡학관 강사들을 향했다.
그런데, 그 안에 백수룡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명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백수룡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청룡학관은 남겠습니다.”
백수룡이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강하다지만, 그렇다고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저희는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사마영과 당백호도 그들의 사정을 이해했다. 오히려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럼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아쉽군. 가장 필요한 녀석이 대체 어딜 간 건지……. 아무튼, 무운을 빈다.”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강사들이 숙소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콰아앙!
문을 부서지고, 누군가가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에게 무기를 겨눴다.
“다들 괜찮나?”
남궁수였다.
평소 구김살 하나 용서하지 않던 그의 백의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험난한 싸움을 겪고 온 듯 숨도 거칠었다.
하지만 남궁수 특유의 표정만은 여전히 침착하고 냉정했다.
그가 청룡학관 강사들에게 물었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백수룡은 어디 있지?”
“모르겠습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부터 안 보였습니다.”
“하필 이런 때에……. 일단 알겠다.”
청룡학관 강사들의 안위부터 확인한 남궁수가 타 학관 강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입 강사 연수는 취소다.”
“예?”
“강사님!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기다렸다는 듯 강사들이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남궁수는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다. 본가에 변고가 생겼다. 지금부터 남궁세가의 영역에서 탈출한다.”
남궁수의 판단도 사마영, 당백호와 같았다.
그는 신입 강사들을 남궁세가 밖으로 피신시킬 생각이었다.
“무림맹 지부로 가서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곧바로 몸을 돌린 남궁수는 선두에서 길을 안내했다.
산을 탈 생각이었다. 어릴 적부터 뛰어논 천주산으로만 들어간다면, 추격자들이 붙는다 해도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남궁수 선생님! 수룡 형님은…….”
청룡학관 강사들이 바로 뒤에 따라붙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 녀석 혼자라면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서 돌아올 거다. 지금은 너희 앞가림부터 생각하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남궁수는 길을 가로막은 흑의인 무리를 발견했다.
흑의인 중 술사로 보이는 자가 방울을 맹렬하게 흔들었지만, 남궁수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릴 뿐이었다.
“돌파한다.”
남궁수는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의 신형이 백색의 뇌전이 되어 질주했다.
파지지직!
정면으로 뿜어낸 뇌전이 흑의인들을 감전시켰고, 뒤따른 검이 적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흑의인들의 급소를 베었다.
뒤따르던 신입 강사들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남궁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남궁수는 묵묵히 길을 열었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시게!”
남궁세가에 습격이 일어난 직후, 사태를 살펴보겠다며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만박자였다.
만박자가 경공을 펼쳐 남궁수의 옆에 따라붙었다.
“삼 공자. 어째서 신입 강사들을 데리고 산길을 오르는 거요?”
“본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신입 강사들을 대피시킬 생각입니다.”
“……나도 돕겠소. 이 앞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가는 게 더 빠르오.”
“감사합니다.”
만박자의 합류에 남궁수는 한숨을 돌렸다.
자신이 선두에 서고, 만박자가 옆에서 돕는다면 신입강사들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을 터였다.
남궁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박자는 잡학과 술법에 능하다. 도움을 받으면 쉽게 산을 넘을 수 있겠지. 그 후에는…….’
아주 약간의 방심.
만박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푸욱!
예리한 비수가 남궁수의 몸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