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30
229화. 업보(業報)실내에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긴 탁자에 귀한 다과와 차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손대지 않았다.
상석에 앉은 남궁세가주, 철혈검 남궁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결국 침입자를 보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태상가주인 창천검왕 남궁제학을 비롯한 장로들, 무력대의 수장들, 총관 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궁천의 세 아들도 참석했는데, 남궁세가의 기둥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인지라 장남과 차남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몸가짐을 바로 하고 있었다. 남궁수만이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소. 벼락을 쏟아내며 도망치더니, 내게 따라잡히자 먼지로 변해 사라지더군.”
남궁제학이 대답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였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가주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대를 했다.
“놈이 사술을 사용했단 말씀입니까?”
천풍대주의 질문에 남궁제학은 미간을 구겼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사술인지는 모르겠으나, 술법인 건 확실하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술법이었지.”
“…….”
십존의 일인인 창천검왕을 떨쳐내고 도망칠 정도였으니, 상대도 천하에 드물게 뛰어난 술법사임이 틀림없었다.
장로 중 한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하에 그만한 술법사는 몇 안 됩니다. 모산파의 문주, 현무학관의 현천신녀, 몇 년 전 종적을 감춘 전진의 후예, 혹은…….”
“혈교일지도 모르지요.”
가주인 남궁천의 말에 장내가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혈교(血敎).
그 한마디가 주는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다.
나이가 든 무인일수록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러나 남궁천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요즘 혈교로 짐작되는 무리가 준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어쩌면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궁천이 가주회의를 소집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이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았다.
“혈교의 무리가 본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침입했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체 놈의 목적이 뭐였을까요?”
“혈교라니. 섣부른 추측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장로들과 무력대의 수장들이 각자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남궁제학은 차를 홀짝이며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정말 혈교란 말인가?’
그는 폐쇄된 우물 지하에 묻혀 있을 음양마존을 떠올렸다.
이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입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며 자신을 저주하던 음양마존의 얼굴이 지금도 선연했다.
-검왕이여. 이대로 끝날 것 같은가. 언젠가 본교의 후예들이 남궁세가를 멸하러 찾아올 것이다.
-두렵지 않다. 그때쯤 본가는 천하제일세가가 되어 있을 테니.
-흐흐흐. 그래.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도 재미있겠지. 내 너를 지옥에서 지켜볼 것이다…….
-마존이여. 나를 자꾸 자극하지 말게. 그간의 정을 생각해 자비를 베풀어 마지막 기도를 올리도록 해 주는 것이니.
-흐흐흐…….
내버려 둬도 곧 죽을 것을 알았기에, 남궁제학은 음양마존의 숨통을 끊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남궁세가의 천하제일세가가 되었고, 혈교는 서서히 부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설령 혈교가 부활한다 해도…… 본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날, 남궁제학은 우물 지하에 있는 혈교의 잔당을 혼자서 몰살하고 기록을 모두 폐기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은 모두 단단히 입을 막았다.
아들에게 가주직을 물려준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즉, 현 가주조차 이십 년 전의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의미였다.
‘지저분한 과거는 나 혼자 무덤까지 안고 갈 것이다. 너희는 영광만을 누리거라.’
남궁제학은 현 가주인 아들과 장성한 손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죽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전부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들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남궁제학이 모두를 둘러보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설령 혈교의 무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본가가 정파무림의 선두에서 놈들을 쓸어버리면 될 일.”
태상가주의 말에 장로들과 무력대의 대주들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대남궁세가의 일원이었다.
다시 혈교와 전쟁이 벌어진다면, 천하제일세가의 깃발을 세우고 가장 먼저 참전할 것이다.
창천검왕 남궁제학이 그들을 이끌고 저 간악한 혈교 수괴들의 목을 베어 버리리라.
“태상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혈교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무림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요.”
다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혈교를 토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궁세가의 드높은 의기에, 창천검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여. 이번에야말로 흔적도 없이 멸해 주마.’
그러기 위해선, 어제의 첩자를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순간, 남궁제학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백수룡. 아무래도 그 녀석이 수상해.’
처음에는 천이당에 침입한 괴한이 백수룡인 줄 알았다.
막상 추격해 보니 웬 술법사이긴 했지만, 백수룡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면 녀석을 찾아가서 추궁해 봐야겠어. 이번에는 다소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고강한 무공도 그렇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고방식도 정파라기엔 너무 과감하다.
무엇보다 청룡학관 입관시험에서 스치듯 보았던 모습이 계속 신경 쓰였다.
당시 그는 백수룡에게서…….
“우선 침입자를 추적해야겠습니다.”
가주의 목소리가 남궁제학을 상념에서 깨웠다.
“술법에는 흔적이 남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본가의 빈객인 만박자도 술법에 상당한 조예가 있으니, 그에게 조언을 구한 후에…….”
우웨에에엑!
갑자기 가주전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남궁천이 말을 멈추고 문밖을 바라봤다.
“밖에 무슨 일이 있는가?”
방 안에 고수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다들 밖에서 누군가가 구토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일부는 질책 어린 시선으로 천풍대주를 바라봤다.
“크흠!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인 것이냐!”
얼굴이 다소 붉게 물든 천풍대주가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가주전 주변의 호위를 천풍대가 맡고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그의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다.
‘어느 놈이 술 먹고 토하기라도 한 게야? 내 이놈들을 그냥……!’
잠시 후, 문밖에서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주님.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조장이 갑자기…….”
“일조장이 왜?”
끄아아아악!
이번에는 찢어질 듯한 비명이었다.
다들 놀라서 흠칫하는 가운데, 남궁제학과 남궁천이 거의 동시에 신법을 펼쳐 바깥으로 나갔다.
콰앙!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나간 그들은 순식간에 비명이 들려온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무슨 짓이냐!”
“이노오옴!”
사방에 피가 낭자했다.
천풍이조장은 목이 잘린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곁으로 팔다리에 상처를 입은 천풍대 무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흐흐흐…….”
봉두난발에 피로 흠뻑 젖은 사내가 괴소를 흘렸다. 열 명이 넘는 무인들이 검을 빼 들고 그를 겨누고 있었다.
괴인의 정체는 천풍일조장이었다.
가족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그가 짐승처럼 포효했다.
“크아아아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의 검에서 검기가 줄기줄기 쏟아졌다. 천풍대의 무사들이 힘을 모아 힘겹게 막아 내는 중이었다.
가주와 태상가주를 뒤따라 나온 장로들, 무력대의 대주들도 그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이게 뭡니까?”
“저자가 천풍일조장이라고?”
“이건 마공의 흔적인데……. 천풍일조장이 마공을 익혔단 말이오?”
“말도 안 됩니다. 명중아! 네가 왜 그런 꼴로 있단 말이냐!”
남궁세가는 혈족으로 이루어진 세력이었다.
무력대의 대주쯤 되면, 보통은 직계에 가까운 혈족인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 있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형제, 친척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일단 저 아이를 제압하시오.”
“존명!”
천풍대의 대주가 달려들어 천풍일조장을 제압했다. 수십 합을 겨룬 끝에 죽이지 않고 생포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악!”
마혈을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짐승처럼 발버둥 치는 천풍일조장을 다들 참혹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남궁제학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신이 된 세가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런 일이…….”
하지만 남궁세가의 악몽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남궁세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괴성들.
그 순간, 남궁세가의 중진들의 표정이 모두 창백하게 변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궁제학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그는 천하를 질타하는 초고수였지만, 세가에 일어난 변고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짙은 피 냄새가 묻어났다.
전각에서 불길이 치솟는 곳도 있었다.
곳곳에서 남궁세가의 혈족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절세고수의 감각은 그 모든 것을 몸서리치도록 선명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각 대주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상황을 수습하라! 장로들도 도우시오!”
““존명!””
파바밧!
자리에 있던 남궁세가의 중진들이 신법을 펼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세가에 갑작스러운 닥친 재앙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신입 강사들에겐 제가 가 보겠습니다.”
남궁수였다. 형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는 신입 강사들의 숙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자리에는 이제 남궁제학과 남궁천만 남았다.
“감히 어떤 놈들이! 내 반드시 잡아서 뼈를 갈아 마시리라!”
남궁제학이 불같이 분노하는 가운데, 남궁천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님. 혹 이 일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뭐라?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알고 있었다면 가만히 있었겠느냐!”
“……제가 왜 침입자를 가장 먼저 혈교라고 의심했는지 아십니까?”
남궁천이 작정한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 했으나, 부자간의 대화는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쐐애애애액!
가공할 속도로 날아온 암기가 남궁제학의 심장을 노린 것이다.
무림십존의 일원인 창천검왕조차 경시할 수 없는 속도.
깜짝 놀란 남궁제학은 벼락처럼 검을 뽑아 날아온 암기를 베었다.
촤아아악!
헌데 베어 놓고 보니, 자신이 익히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창천검대주!”
남궁제학을 향해 날아온 것은 창천검대주의 잘린 머리였다.
천주산 정상에서 다음날 있을 실습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남아 있던 창천검대주.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이, 반으로 잘린 채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하늘에 울려 퍼지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
“오랜만이야. 검왕 늙은이.”
사아아아-
칠흑 같은 어둠이 밤하늘을 물들이며 번져 나갔다.
달과 별이 빛을 잃었고, 완벽한 어둠이 장막처럼 펼쳐졌다.
그 어둠 속에서 한 청년이 걸어왔다.
저벅저벅.
인세에 보기 드문 미공자였다. 대충 길러 묶은 머리카락의 절반은 흑발, 절반은 백발이었다. 그것이 청년의 존재감에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다.
“너는……!”
남궁제학은 갑자기 등장한 청년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봤다. 동시에 검파에 손을 올리며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만전의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그만한 강적이었다.
십대악인의 수좌이자, 삼흉(三凶)의 첫째.
천흉(天凶), 또는 사파지존이라고도 불리는 자.
부친과 동시에 검을 빼 든 남궁천이 낮게 침음하며 중얼거렸다.
“흑야마제…….”
퍼버버버벙!
흑야마제의 등 뒤에서, 남궁세가의 전각들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남궁제학이 분노에 치를 떨며 일갈했다.
“흑야마제! 네놈이 이 모든 짓을 꾸민 것이냐!”
“뭐, 나도 용무가 있어서 이 일에 끼기는 했지만…….”
흑야마제는 피식 웃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짓을 따라 주변을 잠식한 어둠이 일렁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결국 당신이 치러야 할 업보가 돌아온 것 아닐까?”
흑야마제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순간, 창천검왕의 검이 그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