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63
262화. 검재(劍才)
쩌엉!
두 검객의 검이 다시 부딪쳤다. 이번에는 힘에서 밀린 위지천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휙!
위지천은 고개를 옆으로 홱 젖혔다. 머리카락 몇 올이 추혼검객이 날린 검기에 잘려나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얼굴이 베였을 것이다.
“그 입부터 찢어 주마.”
추혼검객의 검이 집요하게 위지천의 얼굴을 노렸다. 처음엔 팔만 자르려 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절정의 검객에겐 더 이상 살검을 펼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까가가각!
두 검날이 서로를 긁어 대며 불꽃이 튀었다. 기세를 탄 추혼검객이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위지천은 불안정한 자세로 용케 공격을 피하고 막았다.
‘강해!’
방심을 떨쳐 낸 추혼검객은 위지천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했다. 흐릿한 잔상만 남을 정도로 검이 빨랐다.
‘방심하면 내가 당할 거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위지천은 모든 감각을 상대에게 집중했다. 부딪치는 검날에서 불티가 쉬지 않고 튀었다.
‘힘으로는 당해 낼 수 없어.’
신체를 단련한 세월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동안 위지천이 아무리 녹림십팔식을 부단히 수련했어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애초에 소년은 또래보다 작은 체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타고난 약점이었다. 노련한 검귀인 추혼검객은 상대의 약점을 놓치지 않았다.
쩌어엉! 쩌어엉!
빛살 같은 쾌검에 강검의 묘리가 더해졌다. 속도가 조금 느려진 대신, 일격 일격에 실린 힘이 견디기 버거울 정도였다. 부딪칠 때마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했다.
“큭…….”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붉은 선혈과 함께였다.
순식간에 궁지에 몰린 위지천의 모습에 구경꾼들이 탄식했다.
“추혼검객이 본격적으로 손을 쓰니 맥을 못 추는군.”
“저렇게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저 소년이 오만했어. 상대가 방심했을 때 몰아쳐서 승부를 냈어야지.”
“쯧쯧. 흐름이 기울었으니 곧 결판이 나겠군.”
“어린애를 상대로 너무 과한 손속은 아닌지…….”
모두가 위지천의 패배를 예상했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 한 번 빼앗긴 흐름을 되찾아오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상대가 노련한 검객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서걱!
검이 위지천의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다. 뒤로 물러났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무복 위로 핏물이 붉게 번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심장이 갈라졌을 것이다.
“……하.”
뒷덜미가 오싹했다. 찰나에 목숨이 몇 번이나 오갔다. 목숨 건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하, 하하!”
위지천은 웃었다. 땀방울로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소년의 눈이 보석처럼 빛났다.
“……뭐가 웃기지?”
추혼검객은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그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위지천은 목덜미를 노리는 검을 쳐 내며 대답했다.
“즐거워서요.”
허세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위지천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 검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격렬함이 소년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날 선 위기감에 온몸의 세포가 올올이 깨어났다.
살아남으려면,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실력을 쥐어짜 내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자 머릿속이 불타는 것 같았다.
꽈악……!
위지천은 검파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추혼검객의 검을 받아 내며 손바닥은 찢어진 지 오래였다.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무척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위지천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가실 줄을 몰랐다.
“검에 미친 놈이었군.”
추혼검객이 흐흐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도 위지천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어쩌면 뛰어난 검객은 다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여기서 죽는다.’
추혼검객의 눈에 광폭한 살기가 맺혔다.
그는 위지천이 머지않은 미래에 강력한 적수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아니, 미래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저 어린 검귀는 당장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자신의 심장에 검을 꽂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싹을 뽑아야 한다.
화아악!
추혼검객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회색 무복이 터질 것처럼 펄럭였다. 그의 검에 맺힌 검기가 더욱 짙어졌다.
‘아직 여물지 않은 몸으로는 내 강검을 버티지 못할 터!’
추혼검객은 위지천의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했다.
또래의 소년들보다도 작고 가녀린 체구.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며 날카롭게 검을 휘두르지만, 기교에 비해 힘과 속도는 부족했다.
‘외공도 내공도 내가 우위다.’
상대가 기교가 뛰어나면 기교를 펼칠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된다.
압도적인 힘과 속도로 싸움을 최대한 단순하게 끌고 가는 것.
그것이 숱한 실전에서 검을 갈고닦은 추혼검객의 전략이었다.
쩌엉! 쩌엉! 쩌어엉!
검이 부딪칠 때마다 위지천의 자세가 무너질 듯 휘청였다. 겨우 버텨 내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파리한 안색은 이미 내상을 입었음을 증명했다.
‘조금만 더 하면 무너지겠군.’
추혼검객의 입꼬리가 조소를 그리며 올라갔다.
위지천을 상대로 내린 그의 판단은 노련하고 적절했다.
하지만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똑같은 검술은 이제 안 통해요.”
바로 압도적인 검의 재능.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추혼검객이 코웃음을 치는 순간, 위지천의 신형이 푹 꺼지듯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듯 보였다.
“!!”
놀란 추혼검객이 검을 거두며 몸을 홱 돌렸다. 왼쪽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채앵!
수십 합 만에 추혼검객이 뒷걸음질 쳤다. 급하게 검을 휘두르느라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탓이었다.
추혼검객의 사각에서 나타난 위지천이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 차례죠?”
위지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채채채채챙!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달라졌다. 한층 경쾌해지고 박자가 빨라졌다. 추혼검객의 눈에는 위지천의 움직임이 갑자기 가속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고?’
추혼검객이 눈을 부릅뜨고 위지천을 노려봤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위지천에겐 실력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저 몸에 생긴 상처들, 그리고 내상은 진짜였다.
그럼 갑자기 위지천의 움직임이 빨라진 이유는 뭐란 말인가?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냐!’
추혼검객은 이를 악물며 검을 내질렀다. 십성 공력이 담긴 찌르기가 빛살처럼 공간을 갈랐다. 평생을 통틀어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빠른 쾌검이었다.
휘익!
그러나 추혼검객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베었다. 위지천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몇 번을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추혼검객의 검은 더 이상 위지천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전부 막히거나 파훼당했다.
“똑같은 검술은 안 통한다니까요.”
“설마……!”
그 순간, 소름 돋는 사실을 깨달은 추혼검객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위지천의 움직임이 빨라진 게 아니었다.
계속 한 발 먼저 움직였기에 빨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내 검로를 전부 읽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해야 일백 합 정도를 겨뤘다.
초식을 하나씩 천천히 보여 준 것도 아니고, 목숨이 오갈 정도로 위험한 실전에서 검을 맞댔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검로를 전부 파악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듣도 보도 못한 재능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현실이었다. 평생을 연마해온 검초가 위지천에게 모조리 파훼당하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추혼검객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전부 헛손질에 불과했다. 혼자서 허공을 베는 기분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추혼검객이 갑자기 맥을 못 추는데?”
두 검객을 따라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는 구경꾼들도 비무의 흐름이 변했음을 눈치채고 웅성거렸다.
개중에는 고수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조차 위지천을 괴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군.”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검초를 전부 파악했다는 건가?”
“근골은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검에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났다고 봐야지.”
“허허. 저런 재능은 들어 본 적도 없소이다.”
“못 들어 보셨소? 천무학관에 비슷한 천재가 있다던데…….”
모든 사람들이 위지천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천재.
범인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검의 천재가 나타났다고.
“청룡학관에 가공할 검재(劍才)가 나타났군.”
개방 강서분타주, 대력수 왕손이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변에 적지 않은 고수가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크아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유일하게 추혼검객만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여전히 위지천을 노렸다.
하지만 닿는 것은 없었다. 흥분할수록 손발은 더 어지러워졌고, 혼자서 날뛰는 꼴이 되었다.
반대로, 검을 부딪칠수록 위지천은 차분해졌다. 소년은 검을 거두며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고 선생님에게 무례한 말을 한 걸 사과하세요. 그럼 저도 여기서 끝낼게요.”
“사과? 지금 사과라고 했느냐?”
치미는 모욕감에 추혼검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절반밖에 살지 않았을 애송이에게 검으로 패배한 것도 부족해서, 수많은 구경꾼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었다.
들끓는 분노가 뇌를 마비시켰다.
“같잖은 애송이가……!”
추혼검객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살기가 이성을 잠식했다.
위지천은 추혼검객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꼈다.
‘살검!’
한때 위지천을 괴롭혔던 심마였다.
“흐흐흐…….”
괴소를 흘린 추혼검객이 위지천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기이하게 꺾이며 위지천의 목을 노렸다. 이전과는 다른 검로에 위지천의 반응이 순간 늦었다.
푸확!
위지천의 어깨에서 피가 터졌다. 비무가 끝난 줄 알았던 구경꾼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크흐흐흐! 뒈져라-!”
살검에 사로잡힌 추혼검객이 폭주했다. 핏빛 궤적이 허공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그 궤적 안에 위지천이 있었다.
까가가가가각!
“크크…… 크하하하!”
추혼검객은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살검의 목소리에 몸을 맡겼다. 그들을 중심으로 거센 혈풍이 몰아쳤다. 흙먼지가 피어올라 구경꾼들의 시야를 가렸다.
“마,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주화입마 같은데…….”
걱정하는 말과 달리, 두 검객을 둘러싼 무인들이 점점 더 멀어졌다.
가까이 있다간 눈먼 검기에 신체 중 하나가 절단될 것 같았으니까.
‘이대로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
왕손은 심각한 표정으로 두 검객을 바라봤다.
휘몰아치는 혈풍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싸움이 얼마나 흉험한지는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 왕손은 천천히 그들에게 접근했다. 어떻게든 싸움을 멈춰 볼 생각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조금 더 지켜봅시다.”
“!!”
왕손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아무리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해도, 그는 절정에 이른 고수였다. 그런데 이토록 쉽게 옆을 내주다니!
그러나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되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청룡신…….”
“쉿.”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백수룡이 손가락을 들어 입을 막았다.
왕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추혼검객이 죽어도 청룡…… 그쪽의 명성에 큰 흠이 생길 겁니다. 소문이란 대부분 과장되고 나쁘게 퍼지니까요.”
백수룡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소문이 두려워서 제자의 싸움을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이후에 생각할 문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천이는 상대를 죽이지 않을 겁니다.”
“…….”
백수룡은 사납게 몰아치는 혈풍 속에 갇힌 소년을 바라봤다.
위지천의 작은 체구는 분명 약점이었다.
잘 먹으면서 부단히 수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지천은 또래보다 성장이 느렸다.
‘하지만 작다고 약한 것은 아니지.’
체구는 크지 않지만, 소년의 몸은 폭풍을 흘려보내는 갈대처럼 유연했다.
겉으로는 여리고 약해 보여도, 그 속에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예리한 검이 있었다.
고작 추혼검객 따위에게 꺾일 재능이 아니다.
오히려 위지천이라면 저 싸움으로 한 번 더 성장하리라. 백수룡은 확신했다.
“그렇지.”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순간, 혈풍 속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쨍강!
사납게 몰아치던 혈풍이 서서히 멈췄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가려졌던 두 검객의 모습이 드러났다.
털썩.
의식을 잃은 추혼검객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온몸에 거미줄 같은 상처가 있었지만,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위지천은 그 앞에 심호흡을 하며 서 있었다.
“후우…….”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숨죽였던 군중들이 일시에 승자를 향해 환호와 탄성을 터트렸다.
“무명의 소년이 추혼검객을 이겼다!”
“위지천이라고 했나? 별호는 검재가 어떻소!”
“어허 검제(劍帝)라니! 그건 너무 과한 별호가 아닌가!”
“검제 말고 검재 말이오. 허허! 언젠가는 검제라 불리게 될지도 모르지!”
검재(劍才) 위지천.
훗날 무림을 놀라게 할 소년의 별호가 처음으로 불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