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절대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위지열이 백룡장을 떠나기 전날.
“내일부터 철방은 문을 닫을 것이오.”
“예에?”
“갑자기 말입니까!”
위지철방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청룡신협을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입소문이 돌아, 지금은 도시 최고의 철방이라 소문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위지열이 만든 무기를 사려고 줄을 서 있던 손님들에겐 날벼락이었다.
“어르신! 제 것까지만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값을 두 배, 아니 세 배로 쳐 드리겠습니다!”
위지열이 만든 무기의 가치를 알아본 고수들이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소용 없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지병이 깊어져서 한동안 요양을 하게 되었거든.”
아파서 문을 닫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일부 손님들은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물었다.
“얼마나 요양을 하실 겁니까? 돌아오실 거지요?”
“모르겠소.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는……. 돌아온다 해도,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소이다.”
“그런……!”
끝내 위지열의 무기를 사지 못한 무인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노인은 천하에 드문 장인(匠人)이었다.
그가 쇠를 두드려 만든 무기 하나하나가 혼이 깃든 명품이라 할 만했다.
청룡신협의 보증이 아니었더라도, 오래 걸리지 않아 위지철방은 문전성시를 이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철방에서 무기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 앞으로 위지열이 만든 무기들이 암중에서 몇 배로 비싸게 거래될 것은 자명했다.
모든 손님을 떠나보낸 후.
“…….”
위지열은 텅 빈 철방에 홀로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달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다.
백수룡을 졸라서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도망자로 살아온 세월 동안 못했던 야장 일을 한이 맺힌 사람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리고, 평생의 숙원도 이루었다.
이쯤이면 한이 남지 않을 법도 한데, 미련이 남는지 자꾸 여기저기에 눈길이 갔다.
위지열은 고개를 저어 미련을 털어냈다.
“혈교에 들어가서도 무기는 실컷 만들 테지.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겠지만…….”
위지열은 혈교의 생리를 잘 알았다.
위지가는 과거의 권세를 잃었고, 자신의 무공은 어설펐다.
기껏해야 일류 언저리로, 팔대 가문의 가주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위지가의 가주는 대대로 무공으로 평가받지 않았지만, 위지열은 유독 무공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예전처럼 안정적인 세력을 구축한 혈교였다면 야장 실력을 인정받아 한자리 꿰찰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혈교는 전쟁을 준비 중이다.
무공이 어설픈 노인은 검 만드는 도구 취급을 당할 것이 뻔했다.
아니, 노예처럼 부려질 것이다.
‘각오는 이미 했다.’
위지열은 마지막으로 철방 내부를 정리했다.
하지만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철방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위지천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백수룡도 같이 있었다.
굳어 있던 위지열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허허. 다들 왔구나. 이쪽으로 앉거라. 차라도 대접하마.”
학생들은 위지열이 내준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위지열은 학생들이 전부 손주들처럼 귀여워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몸이 편찮으셔서 요양을 가신다면서요? 많이 편찮으세요?”
헌원강의 질문에 위지열이 고개를 저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니다. 그간 너무 많이 일해서 지친 게야. 강호 유람이나 좀 다니면서 쉴 생각이란다.”
위지열이 생각해 낸 핑계였다.
그가 철방에 들어가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학생들도 쉽게 수긍했다.
“유람을 떠나기 전에, 너희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려고 불렀다.”
선물이라는 말에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원강이부터 주마.”
위지열은 옆에 쌓아 둔 목함 중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은은한 묵빛이 흐르는 도가 들어 있었다.
헌원강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 이거 저한테 주시려고요?”
“흑도(黑刀)다. 독각마룡의 이빨을 갈아서 만든 칼로, 네 무공에 어울릴 것이다. 도집은 놈의 가죽으로 만들었지.”
흑도를 받아 든 헌원강은 여인에게 한눈에 반한 사내처럼 멍하니 도신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위지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허허. 마음에 들어 하니 나도 기쁘구나.”
한눈에 봐도 대단한 보도였다. 독각마룡의 이빨로 만들었다면 그 강도와 예기는 말할 것이 없었고, 독각마룡의 사나운 기운마저 품고 있었다.
헌원강은 히죽거리며 흑도를 품에 꼭 안았다. 잘 때도 안고 잘 기세였다.
“너희 둘에게는 이걸 주마.”
거상웅과 야수혁에게는 권법을 사용하는 무인들이 손에 끼는 수투(手套)를 건넸다.
이것 역시 독각마룡의 가죽과 비늘로 만든 물건이었다.
“너희의 외공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르면 필요하지 않을 테지만, 아직은 필요할 게다. 강기와 부딪치더라도 몇 번은 버텨 줄 것이야.”
거상웅과 야수혁이 감격한 표정으로 수투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잘 쓰겠습니다!”
귀찮아서, 불편해서, 그리고 맞는 치수가 없어 지금껏 수투를 끼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위지열에게 받은 수투는 분명 손에 착용했는데도, 아무것도 끼지 않은 것처럼 편안했다.
“허! 감촉이 무슨…….”
“선배. 이따 나가서 대련해 봅시다.”
둘 다 수투를 빨리 사용해 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표정이었다.
위지열은 마지막으로 여민을 불렀다.
“너에겐 이걸 주마.”
여민에게 건넨 것은 쥘부채와 비수 한 자루였다.
쥘부채는 눈처럼 하얀 자태에 수묵화가 그려져 있었다.
“얇아 보여도 한철(寒鐵)로 만들어서 웬만한 도검은 막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니, 부서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빙공을 익히고 있는 여민에게 한철(寒鐵)로 만든 무기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위지열의 꼼꼼한 배려였다.
“비수는 독각마룡의 뼈로 만든 것이다. 편한 용도로 사용하거라.”
“이렇게 비싸고 귀한 걸……. 정말 감사해요, 어르신!”
“다들 마음에 들어 하니 기쁘구나.”
위지열은 부드러운 눈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봤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훗날 이 아이들이 겪을 험난한 싸움에서 한 번이라도 목숨을 지켜 주기를 바랐다.
“내가 없는 동안, 다들 우리 천이를 잘 부탁하마.”
“걱정 마세요. 귀여운 막내는 제가 지킬 테니까요.”
헌원강이 위지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씩 웃었다.
그러자 거상웅이 코웃음을 쳤다.
“누가 누굴 지켜? 천이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장난해? 누가 한주먹이야? 이제 오십 합 이상은 겨룰 수 있거든!”
“글쎄. 천이가 봐주니까 오십 합이지. 제대로 하면…….”
“이 자리에서 붙어봐?!”
티격태격하는 학생들을 보며 위지열은 큭큭 웃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들 돌아가거라. 나는 선생님과 할 말이 남았으니.”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한 학생들이 철방을 나갔다.
그러나 위지천은 나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소년의 표정은 전에 없이 어두웠다.
“천아.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
“호, 혹시 섭섭해서 그런 게냐? 너는 검혼으로 충분할 것 같아서 검을 새로 만들지 않았는데…….”
“할아버지. 강호유람 가는 거 아니죠?”
“…….”
위지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손자는 순진하기만 한 소년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구나.’
천하의 백수룡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피가 섞인 혈육의 감은 속일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린 위지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단다.”
“……위험해요?”
“아마도 그럴 게다.”
“……혈교 때문이죠?”
“그래.”
“꼭, 가셔야 해요?”
위지천의 눈빛이 간절했다. 순간 위지열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만, 그는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 한다. 이 할애비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위지천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꼭 돌아오셔야 해요. 할아버지까지 없으면 전 혼자예요.”
‘네가 왜 혼자란 말이냐? 이제 사부도 있고, 청룡학관에서 사귄 친구들도 있는데.’
위지열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백수룡이 위지천의 어깨를 감쌌다.
“천아. 걱정하지 마라. 어르신은 반드시 돌아오실 테니까.”
백수룡은 평소보다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 * *
위지천마저 철방에서 나가고, 위지열은 백수룡과 마주 앉았다.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할 생각이네.”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나야 뭐, 준비라고 할 것이 있겠나.”
백수룡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초췌한 안색을 살핀 위지열이 말했다.
“자네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어르신 때문에 며칠 밤을 새웠습니다.”
“괜히 마음 쓰게 해서 미안하네.”
“아시면,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백수룡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위지열에게 내밀었다.
“개방과 하오문에 연락 가능한 방법을 적어 둔 종이입니다. 제 모든 인맥을 동원했으니, 어르신이 어디서든 신호만 보내면 그들이 어떻게든 찾아낼 겁니다. 외우고 바로 태우십시오.”
“고맙네. 가는 길에 읽어 보겠네.”
위지열은 백수룡이 준 종이를 품에 잘 챙겨 넣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백수룡은 이번에는 두툼한 서책을 꺼냈다.
“이건 틈틈이 익히십시오. 마찬가지로 다 외우신 후에 태워 버리시면 됩니다.”
“이건…….”
『화령신공火靈神功』
아직 먹이 다 마르지도 않은 서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위지열은 놀란 표정으로 백수룡에게 물었다.
“……과거 혈교에 화령마공이라는 절세마공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
백수룡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인곡에서 발견했던 걸 제가 뜯어고쳤습니다. 마공으로 생기는 부작용은 없애고, 성취를 빠르게 높일 수 있도록 개선했습니다. 야장 일로 화기를 가까이 한 어르신과 잘 맞을 겁니다.”
“열흘도 안 돼 마공을 뜯어고치다니. 자네는 대체…….”
“그리고 이것도 드시고요.”
놀랄 시간도 없었다. 백수룡은 품에서 영약들을 꺼내 위지열에게 건넸다.
전부 화기(火氣)를 지닌 영약들이었다.
“화령신공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사흘에 하나씩 드시면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혈교는 강자존입니다. 무공이 약하면 무시당하지만, 무공이 강하면 모두가 경외하고 따를 것입니다. 지금 어르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야장 실력이 아니라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백수룡이 내린 결론이었다.
위지열이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이 나이에 강해져 봤자 얼마나 강해진다고…….”
백수룡은 씩 웃었다.
“제가 예순이 넘은 노인도 청룡학관에 입관시킨 사람이거든요? 익혀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정말 고맙네.”
“절대로 죽지 않게 할 겁니다. 어르신도. 제 주변의 그 누구도.”
혈교에 소중한 인연을 잃는 일은, 과거의 네 사부로 충분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것은 위지열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대신, 백수룡은 단단히 약속을 했다.
“석 달. 그 안에 어르신께 연락이 없으면 제가 직접 찾으러 갈 겁니다.”
“……반드시 연락하겠네.”
위지열은 품 안에 화령신공과 영약을 챙겨 넣었다.
아직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건만, 가슴 속이 뜨거워서 목이 멜 것만 같았다.
* * *
백룡장을 떠난 위지열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다.
정말 강호유람을 나왔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녔다.
혈교 본단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신 여기저기 쏘다니며 혈교의 수뇌만 알 수 있는 표식을 남겼다.
‘기다리면 저쪽에서 연락이 올 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다리며, 틈나는 대로 화령신공을 운기했다.
백수룡의 호언장담이 사실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놀랍구나. 진정 절세신공이야!’
위지열의 몸 안에는 철방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화기가 쌓여 있었다. 그것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여기에 백수룡이 준 영약까지 섭취하자, 수십 년간 멈춰 있던 무공의 성취가 하루하루 달라졌다.
화르륵!
이윽고, 위지열은 화령신공을 수련한 지 열흘 만에 삼매진화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허허. 이대로 절세고수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처음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즐겁다고 느꼈다. 위지열은 화령신공에 점점 매진했다. 화기와 친숙한 그에게 화령신공은 천하제일신공이었다.
혈교에서 접촉해 온 것은, 위지열이 강호유람을 시작한 지 달포쯤 지났을 때였다.
스르륵.
“……본교의 표식을 남기고 다니는 자가 네놈인가?”
객잔의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온 흑립인이 스산하게 물었다. 끈적끈적한 살기가 온몸을 옭죄었다.
그러나 위지열은 당당하게 호통을 쳤다.
“네놈이라 했느냐? 이런 건방진 놈을 보았나! 그 표식을 보았으면 내가 존귀한 신분임을 알 터!”
“……누구시오?”
“본좌는 위지가의 가주 위지열이니라! 당장 본단으로 안내하거라!”
가슴에 불꽃을 품은 위지가의 가주가, 혈교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