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1
280화. 맹주에게 전하게
무림맹 강서지부장은 등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을 느꼈다.
‘왜 하필 내 집무실에서…….’
강서 지역에서만큼은 무림맹주를 대행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나 보는 형편이었다.
바로, 그를 중심으로 양쪽에 마주 앉은 두 명의 손님 때문이었다.
“흠흠. 두 분 편히 이야기 나누시겠습니까? 저는 밖에 계신 부관주님과 나눌 이야기가 좀 있어서…….”
집무실 밖에는 청룡학관 부관주 곽철우가 대기하고 있었다. 강서지부장은 그를 핑계로 슬쩍 빠져나가려 했다. 나눌 이야기? 각자 상사 뒷담화라도 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두 손님은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닐세. 자네도 앉아 있게나. 손님이 집주인을 쫓아낼 수는 없지.”
“지부장님도 함께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어느 안전이라고 거부할까.
한 명은 무림의 대선배고, 한 명은 그의 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 말이다.
지부장의 왼쪽에 앉은 여인.
무림맹 총군사 제갈소진이 맞은편의 상대에게 공손히 예를 취했다.
“제가 찾아뵙는 것이 마땅하나, 청룡학관이 현재 시험 기간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여나 제 방문이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까 하여 부득이하게 관주님께서 발걸음하시게 한 것,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신경 쓰지 마시게. 여기가 청룡학관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고. 자네야말로 멀리서 오지 않았나?”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천천히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청룡학관의 관주이자 전대의 초고수.
노군상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겨우 이런 일로 자존심을 세울 만큼, 내가 못돼먹은 늙은이는 아니라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갈소진은 알고 있었다. 이 노인은 결코,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천수관음 노군상.’
창천검왕과 같은 연배의 노고수로, 과거 동년배의 무림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백대고수로 명성을 떨쳤을 만큼 자질이 출중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천검왕보다도 먼저 말이다.
‘과거 혈교와의 전쟁에서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능히 무림십존에 들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지.’
하지만 오십 년 전 혈교와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이 노군상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 전쟁에서 노군상은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운이 좋아 목숨은 겨우 건졌으나, 후유증으로 크게 약해진 무공은 이후에도 발목을 잡았다.
무인으로서 성장이 끝나 버린 것이다.
‘오대학관의 관주들 중, 혈교에 누구보다 큰 원한이 있을 사람.’
제갈소진은 이곳에 오기 전에 맹주가 노군상에게 대해서 일러 준 말을 떠올렸다.
-천수관음 선배는 말이지. 젊었을 적에는 혈교도들에게 마귀라 불릴 정도로 물불 안 가리고 싸우던 사내였다. 한마디로 미친개였지. 지금은 얌전해졌다고 들었는데…… 혹시 모르니 총군사도 조심해라.
‘미친개…….’
꿀꺽.
다행히 지금의 노군상에게선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바뀐 걸까? 아니면 숨기고 있는 걸까?’
제갈소진이 긴장하며 분위기를 살피는 가운데, 노군상이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맹주께서는 잘 지내나?”
무림맹주를 부르는 말에 존대와 하대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제갈소진은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예. 혈교의 멸절을 위해 쉼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루라도 빨리 관주님을 뵈러 오고 싶어 하셨으나, 남은 업무가 과중하여 일단 제게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갈소진은 그리 말하며 작은 목함을 탁자 위에 올렸다.
좋은 향기가 방 안 가득 퍼지는 게, 귀한 영약이 담긴 것이 분명했다.
“맹주님께서 선배님께 드리는 약소한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허허. 약소한 선물이라…….”
공식적으로 만나기 전에, 수하를 먼저 보내서 개인적인 선물을 건넨다?
이걸 진실된 호의라고 믿을 만큼 노군상은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겠지.’
노군상은 목함을 제갈소진 쪽으로 밀며 말했다.
“마음만 받겠다고 전해 주게. 그 친구가 옛날에나 후배였지, 지금은 무림맹주가 아닌가. 이런 걸 함부로 받았다가는 나중에 괜한 풍문에 휘말릴 수도 있다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드렸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거절하겠다고 말했네.”
“……죄송합니다.”
제갈소진은 한 번 더 권하려다가 노군상의 서늘한 눈빛을 보고는 목함을 집어넣었다.
노군상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림맹 총군사께서 나와 긴히 논의할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맹주님께서 청룡학관에 공식적으로 방문하시기 전에, 일전에 서찰로 연락드린 사안에 대해서 제가 자세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노군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예상은 했다. 그 일로 담판을 지으려고 온 것이기도 하고.
탁.
그가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일이라면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혔을 터인데.”
혈교와의 전쟁에 대비해, 무림맹은 청룡학관을 무림맹 산하 무력단체로 편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며칠 전 노군상은 그 계획이 적힌 서찰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거절의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무림맹의 대답은 총군사의 호출이었다.
“혹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나?”
“받았습니다. 하지만 글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해서, 오늘 제가 직접 말씀드려 이해를 돕고자…….”
말을 하다가 말고 제갈소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노군상의 일으킨 무형의 기세를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슷…….
전신을 칼로 저미는 듯한 노군상의 기파에, 제갈소진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노군상이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내 예의로 대하려 했더니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구나. 서찰에 적힌 설명도 못 알아들을 만큼, 내가 모자란 노인으로 보였더냐?”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서, 선배님. 부디 고정하십시오. 제 얼굴을 봐서라도…….”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강서지부장이 쩔쩔매며 노군상에게 부탁했다. 제갈소진도 바로 사과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지만, 제갈소진은 노군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게 관주님을 설득할 시간을 내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설득이라?”
제갈소진이 대신 온 건, 그녀의 무공이 노군상처럼 강해서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고수들을 만나 이런저런 일을 조율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림맹 총군사는 하루에도 수많은 고수들을 만난다.
그들 중 무림맹 수뇌부의 일 처리에 불만이 없는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무림맹주이자 십존의 일원인 권왕에게는 감히 따지지 못하니, 만만한 총군사만 들들 볶기 일쑤였다.
제갈소진은 그런 무림맹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었다.
‘허어. 담이 센 아이로구나.’
그 모습에 노군상도 속으로 감탄했다.
하기야, 담이 약해서는 야율황 곁에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그 성정이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 같은 놈이라면, 며칠에 한 번씩 탁자를 부술 테니 말이다.
“어디 해 보게.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야.”
노군상이 기세를 거둬들였다.
너무 몰아붙이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올바른 처세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제갈소진이 공손하게 포권을 취한 후 말했다.
“혈교의 위협이 천하에 퍼지고 있습니다. 남궁세가의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맹에서 파악하기로는, 남궁세가에 투입된 혈교의 전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노군상이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게.”
“저희는 남궁세가가 겪은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혈교가 먼저 공격을 시작한 후에 대응하면, 그땐 늦습니다. 온 무림이 힘을 모아 선제대응해야, 흘릴 피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노군상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제갈소진이 계속 말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는 이미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백여 곳이 넘는 중소문파 또한 힘이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
무림맹은 노군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전쟁을 겪으신 관주님이라면, 혈교의 적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강한지 아실 겁니다.”
알다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만큼은 전쟁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령 나가게 된다 해도 헛되이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청룡학관에 동맹 제안을 드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혈교의 완벽한 멸절. 무림 전체가 힘을 모아야 이룰 수 있습니다.”
순간, 노군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림맹에서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조직 밑에 소속되는 것을 동맹이라고 부르나?”
“……명령 체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임시 조치일 뿐입니다.”
“군사답게 말은 청산유수로군.”
노군상의 서늘한 눈빛을 견디면서, 제갈소진은 생각보다 설득이 훨씬 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 달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혈교에 원한이 클 거라고 판단했는데, 아니었나?’
무림맹주는 청룡학관을 시작으로 오대학관을 순회하며 관주들을 설득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처음이 가장 중요했다.
청룡학관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다른 오대학관도 설득할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청룡학관은 대의에 함께하기로 했는데, 당신들은 비겁하게 몸을 사리느냐?
-라는 명분으로 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무림맹은 이번 일을 성사시키는 데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반응이라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닐까?
불길한 감각이 등줄기를 훑었다.
하지만 제갈소진은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노군상을 설득시켜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시간이라도 끌어야 한다.
지금쯤 맹주님도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과거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죽고 다쳤습니까? 저는 참전하지 못했지만,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그 참상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요? 또 다시 그런 고통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
“무림맹은 명목상의 지휘권을 가질 뿐, 실질적인 지휘권은 관주님께 드릴 겁니다. 청룡학관을 이끌고 혈교 멸절의 선봉에 서 주십시오. 저희에겐 관주님이 지닌 경험이 필요합니다.”
“…….”
노군상은 오십 년 전에 입은 부상으로 크게 다쳐 무공이 정체되었다.
분명 혈교에 원한이 없을 리 없었다.
제갈소진은 그 부분을 조금씩 건드렸다.
예상대로, 노군상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그가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혈교가 다시 발호한다면, 나는 노구를 이끌고 놈들과 맞서 싸울 것이네.”
제갈소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자신의 설득이 먹혔다고 생각한 것이다.
“관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 좋아하기엔 일렀다.
“나 혼자서 말일세.”
“……예?”
제갈소진의 멍청한 표정에 노군상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당황하나? 내 경험이 필요하다 했으니, 나 혼자 참전하겠단 말인데.”
“그럼 청룡학관은…….”
“제갈 군사. 자네는 내가 청룡학관이라는 무력단체의 수장으로 보이나?”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노군상은 고개를 저었다.
“난 청룡학관의 관주일세. 학생들의 교육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란 말이지.”
지난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은 후,
노군상은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발악했고, 그만큼 절망했으며, 아주 오랫동안 무기력한 세월을 살았다.
청룡학관에 관주로 부임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지난 후였다.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몰락해 가는 청룡학관과, 날이 갈수록 늙고 쇠약해져 가는 자신.
말년을 보내기엔 이보다 잘 어울리는 자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등바등 강해질 필요도 없고, 건강하게만 졸업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여러 강사와 협잡꾼들이 관주가 무능하다며 뒤에서 수군거린다는 것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 무능했으니까.
학관의 운영에도 거의 개입하지 않았고, 회의를 해도 허허 웃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 천무제. 제가 책임지고 청룡학관을 우승시키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흥미로 지켜보았던 청년이 그 말을 했을 때, 우습게도 가슴 속에서 다 타 버린 줄 알았던 불씨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청룡학관은 변화하고 있네. 이무기가 오래된 껍질을 탈피하고, 진정으로 용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지.”
자신은 그 변화를 주도하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변화를 지켜 주는 울타리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날 설득하는 건 포기하게. 설령 청룡학관이 전쟁에 참전하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할 것이야. 가서 맹주에게 전하게.”
노군상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기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내 경고를 무시한다면, 무림맹 한복판에서 미친개가 날뛰는 꼴을 보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