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무림맹주 (1)
할 말을 모두 마친 노군상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가 보겠네.”
직접 찾아와 제갈소진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고, 확실하게 경고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제아무리 무림맹주라 해도 청룡학관을 함부로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관주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데 제갈소진이 따라 일어서더니, 황급히 노군상의 앞을 막아섰다. 노군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더 할 말이 남았나?”
“……세부적인 조항이라면 조율 가능합니다. 부디 조금만 더 제 얘기를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입장은 이미 전했네. 비키게나.”
그러나 제갈소진은 비켜서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문을 가로막았다.
마치 노군상을 내보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 같았다.
“잠깐이면 됩니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양쪽이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안을 찾을 수 있을…….”
순간, 노군상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강호의 감이었다.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건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제갈소진은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일부러 시간을 끄는 중이었으니까.
‘맹주님은 아직인가?’
노군상이 무림맹의 제안을 거절할 것에 대비해, 그녀는 두 가지 계획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계획의 핵심은 노군상을 이곳에 묶어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아 보였다.
노군상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인의 두 눈에서 노기가 일렁였다.
“날 이곳으로 불러 유인하고, 다른 꿍꿍이를 꾸민 것이더냐?”
“오해십니다. 저는 단지…….”
“변명할 필요 없다.”
노군상이 벼락처럼 손을 뻗어 제갈소진의 목을 노렸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붙잡아서 묻겠다.”
제갈소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노군상을 노려봤다.
그녀의 무공으로는 어차피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이러시면 더 이상 저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무림맹 강서지부장이 노군상을 가로막았다.
파바박!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합의 손속을 나누었다. 놀랍게도 거의 팽팽했다.
잠시 손을 멈춘 노군상이 노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자네도 한통속이었나?”
“……죄송합니다. 무림맹 총군사가 공격당하는 걸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림의 대선배 앞이기에 쩔쩔맸을 뿐, 강서지부장은 무공으로 노군상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사내였다.
“끝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만…….”
제갈소진이 이곳을 회담 장소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만약의 경우, 노군상을 이곳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노군상도 그 사실을 인식하곤 자세를 달리했다.
“이곳에서 나가려면 자네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거로군.”
“선배님. 고정하시고 군사의 말을 들어 보시는 것이…….”
“집무실이 박살 나도 날 탓하진 말게. 자네들이 자초한 것이니.”
노군상의 장포가 막강한 내공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두 고수가 다시 충돌하기 직전, 제갈소진이 입을 열었다.
“……관주님께서는 아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원한다면 전쟁에 참전하게 하실 거라고. 그 말씀은 진심이셨습니까?”
노군상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도, 무림맹의 명령에 복종하는 산하 조직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학생들 스스로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요?”
“……뭐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노군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 제갈소진이 기다렸던 소식이 전음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맹주께서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제갈소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맹주님께서 먼저 청룡학관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
노군상의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맹주는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나?”
“예정보다 업무가 일찍 끝나신 모양입니다. 곧장 청룡학관으로 출발하셨고요. 빨리 관주님을 뵈려고 그리하신 모양인데…… 길이 엇갈리고 말았네요.”
제갈소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노군상은 비로소 무림맹주의 계획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없는 틈을 노렸군. 학생들을 선동하기라도 할 셈인가?”
노군상뿐만이 아니었다.
부관주인 화염도 곽철우도 집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관주와 부관주가 모두 부재한 상황.
이때 갑자기 무림맹주가 간다면?
‘다들 크게 당황할 테지. 맹주는 그 어수선한 상황을 이용할 것이고.’
“허허……. 제대로 한 방 먹었군.”
노군상은 내공을 가라앉혔다. 이곳에서 드잡이질을 벌일 이유가 없어진 탓이었다.
제갈소진도 문 옆에서 순순히 비켜섰다.
“지금 가셔도 늦었습니다. 이미 맹주님께서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계실 겁니다.”
강서는 큰 도시다. 경공을 펼친다고 해도 반 시진은 걸려야 청룡학관에 도착할 것이다.
반 시진이면, 무림맹주가 학생들을 모아 놓고 일장연설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노군상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무림맹주는 정파 무림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그런 맹주가 직접 나타나서 혈교와의 전쟁에 함께하자고 설득한다면?
“……한창 피가 끓는 나이에, 거절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제갈 군사. 머리를 잘 썼군.”
제갈소진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맺혔다.
‘노군상을 제외하면, 청룡학관에서 맹주님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명성으로는 최근 떠오르는 청룡신협이 있긴 하지만, 제갈소진은 그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최근에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신예고수에 불과해. 맹주님에 비할 바는 아니야.’
권왕 야율황.
현 무림맹주는 수십 년 전부터 무림에 명성을 떨친 절세고수다. 그의 권위는 고인이 된 창천검왕과 비견될 정도였다.
‘청룡학관을 시작으로 오대학관을 하나씩 굴복시킨다.’
제갈소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남은 건 노군상의 노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노군상은 의외로 화가 나지 않은 듯 보였다.
“허허. 이 상황에 화를 내서 무엇 하겠나.”
오히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히는 것이 아닌가.
제갈소진은 그것이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수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헌데 말이야. 자네 아직 청룡학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군.”
“네?”
“이런 계획이었으면, 반대로 그 녀석을 끌어내고 나를 학관에 두는 편이 나았을 텐데.”
“무슨 말씀이신지…….”
노군상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자세히 보니, 노인의 미소에 맺힌 감정은 체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난 또 무림맹이 청룡학관을 무력으로 제압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지 뭔가.”
“……저희가 혈교도 아니고,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알다시피 권왕 그 친구가 워낙 과격하지 않나. 허허허!”
노군상이 다행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갈소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함께 청룡학관으로 가세나. 볼 만한 구경거리가 생길 듯하니.”
밖으로 나온 노군상은 굳이 서두를 마음도 없어 보였다.
제갈소진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 뒤를 따랐다.
* * *
청룡학관 설립 이래의 최대 난장판도, 서서히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더 이상은 못 싸워…….”
싸우다 지친 학생들이 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부상 당해 강사들에게 끌려 나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다들 원 없이 싸웠다.
기말고사를 치르며 쌓인 압박감, 긴장감, 불안감을 모조리 이 난장판에 쏟아냈다.
그래서 다들 엉망인 꼴을 하고도 후련한 표정이었다.
“하하! 엄청 재미있었어!”
“기말고사 끝날 때마다 하면 안 되나?”
“괜찮을 것 같은데…….”
훗날 청룡학관의 명물로 자리 잡을 ‘기말고사 대난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막탄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바람에 대부분 날아가고, 그 안의 광경도 드러났다.
여전히 남아서 싸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집중됐다.
“저 녀석들은 괴물인가?”
“독고준, 당소소, 유이란은 원래 강한 줄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방백현 선배는 왜 저기 껴 있는 거지? 아까 보니까 제일 신났던데?”
원래 강했던 학생들이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학생들, 특히 청룡오망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탄이 어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청룡오망. 진짜 강하구나.”
“그러게…….”
“운이 좋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싸워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위지천. 헌원강. 거상웅. 야수혁. 여민.
청룡오망 전원이 난장판 속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싸우고 있었다.
겨우 한 학기 만에 이루어진 변화였기에,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까가가강!
“헌원강! 너 때문에 시험이 엉망이 됐다! 어떻게 책임질 건가!”
“내가 알 게 뭐야? 다 개판 됐으니까 전부 낙제하면 되겠네.”
“하여튼 너란 놈은!”
헌원강은 여전히 성적에 집착하는 독고준의 검을 수월하게 맞받아치고 있었으며, 휙! 휙휙휙!
“……여민. 널 쓰러뜨리고 내 실력을 인정받겠어.”
“뭐래. 난 너한테 관심 없거든?”
여민은 냉혈독수라 불리는 당소소의 암기를 모조리 피하고 있었다.
“방학 때 합숙 훈련 하는 건 생각해 봤어?”
“네? 아직 잘…….”
“다시 말하지만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니야.”
위지천과 유이란은 마치 합동 검무를 추는 것처럼 유려하게 검을 부딪쳤다.
그리고, 거상웅과 방백현이 어색한 해후를 나누고 있었다.
“백현아. 오랜만이다.”
“종종 잘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그런데 원래 그렇게 잘 꾸미고 다녔었나?”
방백현의 질문에 거상웅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오해다. 이건 다 사정이 있어서 생긴 일이야. 내가 무슨 기생오라비도 아니고…….”
“그런 것치곤 잘 어울리는데. 계속 그렇게 꾸미면 인기도 많아지겠네.”
“……정말? 너보다 더?”
“음. 그건 무리이지 않을까.”
두 사람은 잠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거상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엔 미안했다.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이제는 말해 줄 수 있는 거냐?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만간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
“너랑 다시 말하는 데 2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는데.”
“미안…….”
아직은 서로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억지로 분위기를 풀려 하지 않았다.
무인에겐 무인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오랜만에 한 번 붙어 볼까?”
“좋지!”
사 학년 두 명이 어우러졌다. 방백현의 현란한 검법과 거상웅의 우직한 주먹이 부딪쳤다. 검과 수투가 부딪치며 불티가 튀었다.
한때는 청룡쌍절이라 불렸던 둘이었다.
선배들이 보여 주는 뛰어난 무공에, 후배들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백수룡도 속으로 감탄했다.
‘방백현 저 녀석도 제법이군.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백수룡은 생각을 하다 말고 표정을 굳혔다.
그의 기감에 어떤 이변이 감지된 것이다.
구구구궁……!
처음에는 아주 작은 땅의 울림이었다.
하지만 점점 커지기 시작한 울림은 점점 무시하기 힘든 진동으로 변했다.
‘자연적인 게 아니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진동이다.’
백수룡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여전히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매극렴이 보였다.
“할아버님!”
“진지한 표정을 지어 봤자 소용없다. 또 무슨 핑계로 내빼려고…….”
“핑계가 아닙니다!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놈이…….”
그러나 잠시 후, 매극렴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와 동시에, 남궁수도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
“너도 느꼈냐. 뭔가가 오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쿠구구구궁……!
진동은 이제 지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 학생들도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절세고수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세 강사는 학생들에게 똑같이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라!””
그 순간, 천지를 부술 듯한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청룡학관의 담이 부서지고, 무언가가 바닥을 부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를 따라 일어난 흙먼지가 용권풍처럼 휘몰아쳤다.
-쿠우웅!
멈춰선 존재는 거구의 사내였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카락은 사자의 갈기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눈이 호랑이처럼 크고 인상이 사나웠다.
전신에 패도적인 기세를 두른 것이, 천 년 묵은 대호가 인간으로 둔갑했다면 이런 모습일 듯했다.
멈춰선 사내의 몸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막대한 공력 분출의 여파였다.
“학관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기에, 혈교의 기습이라도 받은 줄 알고 급히 달려왔더니.”
“……!!”
절세의 고수가 피워올리는 무시무시한 기파가 청룡학관 전체를 짓눌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침묵했다.
“학생들끼리 모의전이라도 했었나 보군. 훌륭하다. 전쟁을 앞둔 무인의 자세야.”
흡족하게 웃은 사내는 기세를 절반쯤 거둬들였다. 그럼에도 그와 시선이 마주친 자들이 하나같이 눈을 피하기 급급했다.
“겁먹을 것 없다. 본좌는 무림맹주다.”
“무, 무림맹주?”
“권왕…….”
“저분이 어째서 이곳에?”
곳곳에서 경악과 놀라움이 번졌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들도 입을 떡 벌렸다.
등장만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 무림맹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놀랐나 보군. 본좌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지만 그 속에서.
“장난합니까, 지금?”
백수룡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맹주든 뭐든. 무슨 자격으로 기말고사를 방해하는 겁니까?”
“……뭐?”
백수룡의 말에 모두의 입이 더 벌어졌다. 일부는 턱이 빠진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하…….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군.”
남궁수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지 눈을 감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