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8
287화. 제가 어떻게든
서리애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포권을 올렸다.
“백수룡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전에 백수룡을 만났을 때, 그는 신입 강사에 불과했다.
서리애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관에서 내쫓을 수 있었던 그런 존재.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반대였다.
지금의 청룡신협은 무림맹주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고강하고 명성 높은 무인이었다.
“늦은 밤에 찾아뵙는 게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돼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중하고 공손했다.
서리애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고개가 아니라 무릎도 꿇을 수 있는 여인이었다.
“괜찮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백수룡은 그녀에게 방백현 옆자리를 권했다.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온 서리애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방백현은 그런 어머니를 불안한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본의 아니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밖에서 조금 들었습니다.”
그럴 테지. 들으라고 일부러 기막을 치지 않았으니까.
백수룡은 말없이 서리애를 바라봤다.
“저희 현이는 장차 무림맹주가 될 아이랍니다. 지닌바 무공, 인성,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게 키웠습니다.”
“저도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수룡이 자신의 아들을 인정하자 서리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감사합니다. 다만…… 선생님 말씀대로 천무학관이 아닌 청룡학관에 입학한 것이 유일한 흠이겠지요. 하지만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답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 때문입니다.”
“어머니!”
방백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서리애는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말했다.
“전부 저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현이는 천무학관에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왜 어머니 잘못…….”
“너는 가만히 있으렴!”
아들에게 언성을 높인 서리애가 다시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 표정이 간절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 자세히는 묻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서리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백수룡이 예전에 만났던 그 도도한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자세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방금 그녀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분명 ‘광기’였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머님.”
고개를 든 서리애가 백수룡을 바라봤다.
어떤 집념으로 가득한 두 눈의 흰자 부분이, 아주 미세하게 붉었다.
백수룡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보기엔, 방백현 학생은 천무대보다는 통천대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천무대여야 합니다.”
웃고 있지만 입술을 살짝 깨문다.
목소리에서도 격앙된 감정이 느껴진다.
“선생님. 제 아들은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저희 현이는 천무대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실적을 쌓아야 가장 빠르게 출세할 수 있으니까요.”
백수룡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피면서, 일부러 어깃장을 놓았다.
“천무대로 가면 텃세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오히려 선배들의 방해로 출셋길이 더 막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장차 맹주가 될 아이인데, 그 정도 경쟁은 당연히 이겨 내야지요!”
눈 끝이 사납게 치켜 올라간 서리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스스로 깜짝 놀라서 곧바로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현이 이야기만 나오면 가끔씩 이렇게 흥분을 해서…….”
“……괜찮습니다.”
백수룡은 서리애의 손끝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아들이 관련되었다고 해도, 방금 그 말이 이 정도로 화가 날 일인가?
백수룡은 이제 확신했다.
확실히 서리애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어머님. 통천대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림맹의 정보조직은 개방 못지않게 유능합니다. 그곳이라면 방백현 군의 재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천대는 천무대에 비하면 한직이 아닌가요? 좁은 곳에서 서류 작업이나 하는 일이 대부분일 텐데요.”
“…….”
백수룡이 말없이 가만히 있자, 서리애가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쩔그렁.
“작은 성의입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탁자에 내려놓은 전낭이 꽤 묵직했다. 액수가 상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전낭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방백현을 바라봤다.
“너는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
“……어머니와 같은 생각입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서리애 옆에 있는 방백현은 생기가 없는 무생물 같았다.
썩은 생선 같은 눈. 표정이 사라진 얼굴.
서리애는 아들의 이런 표정을 못 본 걸까?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걸까?
“선생님. 현이 말고 저와 이야기하시죠. 이 애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쪽은 서리애 당신 같은데.
“선생님께서 뭘 원하시는지 알아요. 무림맹의 정보를 현이가 빼내 오길 원하시는 거죠? 그래서 통천대로 보내시려는 거죠?”
“하하…….”
황당하다는 듯 웃은 백수룡이 말했다.
“어머님.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무림맹에 심어 둘 세작이야 있으면 좋지만, 사실 없어도 그만이다.
방백현에게 천무대가 아닌 통천대를 권한 건, 정말로 방백현의 적성이 그쪽에 잘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였다.
“선생님.”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선 서리애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들을 째려봤다.
“뭐 하는 거니? 너도 어서 부탁드리렴.”
방백현도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 표정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표정을 굳힌 백수룡이 묻자, 서리애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봤다.
“부탁드려요. 저희 현이, 맹주님께 부탁드려서 꼭 천무대로 보내 주세요.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우리 애는 반드시 무림맹주가 되어야 해요!”
“…….”
백수룡은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집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서리애의 광기 어린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얼마든지 더한 짓도 할 수 있겠지. 아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방백현이 왜 지금까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서운 걸까?
아니면 말할 수 없다는 그 이유 때문일까?
뭐가 됐든, 백수룡은 이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어머니께서 직접 무림맹주가 되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당황하는 서리애에게, 백수룡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천무대에 어머님 자리를 만들어 드리죠.”
맹주가 당황하긴 하겠지만, 밀어붙이면 못할 것도 없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아들보다 본인이 더 무림맹주 자리를 원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꼬는 것임을 깨달은 서리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선생님. 말씀이 좀 지나치시군요.”
“지나친 사람은 어머님입니다. 본인의 꿈을 아들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건 폭력이고 학대입니다.”
“감히……!”
서리애의 아름다운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벌떡 일어난 그녀가 백수룡을 노려봤다.
“제가 강요한다고요? 우리 현이는 어려서부터 무림맹주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안 그러니?”
“……예.”
방백현은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대답했다.
서리애는 배신이라도 당한 표정으로 그런 아들을 노려봤다.
“너 지금 엄마한테……!”
아들과 백수룡을 번갈아 바라보는 서리애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그러더니 혼자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알겠어. 당신이 내 아들을 현혹시킨 거지? 무림맹에 심어 둘 세작으로 만들려고, 맹주가 꿈인 내 아들을 한낱 세작 따위로 만들겠다고? 내가 그 꼴을 두고 볼 것 같아!”
“어머니? 그런 게 아닙니다!”
“넌 조용히 해!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아들에게 소리를 지른 서리애는 죽일 듯한 눈빛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이러니 반항을 못 하지.’
방백현이 말을 듣지 않자 발작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이런 일이 반복됐다면, 감히 어머니에게 저항할 수 없었으리라.
“저는 진로상담을 했고, 학생에게 적성에 맞는 곳을 추천해 줬을 뿐입니다.”
“적성에 맞는 곳? 당신이 우리 현이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어머님이 지금 정상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군요.”
서리애의 손끝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눈의 흰자에 붉은 기운이 점점 짙어진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백수룡은 무인의 저런 증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화입마군요. 언제부터였습니까?”
아마 천천히 오랫동안 진행되었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주화입마를 키우고, 주화입마가 아들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을 터.
주화입마 중에서도 밖으로 티가 나지 않는, 그래서 알아보기 쉽지 않은 경우였다.
“날 미친 여자 취급할 생각하지 마!”
콰콰콰콰……!
서리애의 몸 주변으로 새하얀 냉기가 휘몰아쳤다.
“누구도 내 아들을 빼앗지 못해!”
그녀는 두 눈에서 새하얀 안광을 쏟아내며 백수룡에게 달려들었다.
옆에서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깜짝 놀란 방백현이 소리쳤다.
“어머니!”
서리애는 고강한 절정의 무인이었다.
하지만, 백수룡과의 격차는 하늘의 땅 차이였다.
주화입마로 이성까지 잃은 상태에서는 더더욱 상대가 되지 않았다.
파바바박!
팔이 몇 차례 부딪치는 듯하더니, 백수룡은 몇 합 만에 서리애를 제압했다.
“어떻게 빙공을……!”
주화입마로 이성을 거의 잃은 와중에도, 서리애는 몸 안으로 파고드는 찬 기운에 놀라 소스라쳤다.
푹.
수혈을 짚자 서리애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방백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슨 짓입니까!”
“기절시키지 않았으면 끝까지 덤벼들었을 거야.”
백수룡은 방백현에게 기절한 서리애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어머니가 대체 왜…….”
방금 전 그녀의 돌발행동에, 방백현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주화입마에 빠진 걸 전혀 모르고 있었냐?”
“전 전혀 몰랐습니다. 최근 들어 집착이 심해졌다고만 느꼈지…….”
“어쩌면 본인도 몰랐을 수 있겠군.”
“왜 어머니가…….”
어느새 방백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으면서, 어째서 백수룡이 한눈에 알아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단 말인가.
파리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
백수룡은 어머니를 껴안고 흐느끼는 방백현을 조용히 바라봤다.
‘저대로 두면 구음마녀처럼 변하겠지.’
구음마녀는 백수룡에게 아픈 기억이었다.
전생에 자신이 만든 가짜 빙공을 익히고, 그 부작용으로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미쳐 버렸던 여인.
그녀가 남겨 준 빙정 덕분에 수월하게 빙공을 익힐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이쪽은 아직 늦지 않았다.
“운 좋은 줄 알아. 몇 달만 늦었어도 힘들었을 테니까.”
백수룡이 다가가 서리애를 바닥에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백현에게, 씩 웃어 주었다.
“내가 또 주화입마 치료 전문이거든.”
백수룡은 양손을 서리애의 단전과 이마에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역천신공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츠츠츠츳…….
역천신공이 서리애의 몸 안을 일주천하며, 주화입마로 쌓인 탁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백수룡의 경지가 전보다 훨씬 높아진 덕분에, 과거 위지천이나 공손수 때보다 속도도 훨씬 빨랐다.
“후우…….”
잠시 후, 내공을 갈무리한 백수룡이 손을 떼며 방백현에게 말했다.
“위기는 넘겼다. 의원에 모시고 가서 허해진 몸을 보호하는 약을 지어 달라고 해.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지실 거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훨씬 편안해진 어머니의 표정을 본 방백현은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저 통천대에 지원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어쩌고?”
서리애가 의식을 차린다고 해서, 방백현이 통천대에 지원하는 것을 찬성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백현은 이미 마음을 굳힌 표정이었다.
“제가 어떻게든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든가.”
피식 웃은 백수룡은 얼른 의원에 가 보라며 손을 저었다.
“그럼 조만간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방백현이 서리애를 등에 업었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펼치는 경공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휘익!
백수룡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인연이라 이건가.”
서리애가 익힌 빙공.
북해빙궁의 빙백신공이었다.
* * *
다음 날, 무림맹주가 백수룡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