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설득해야 할 사람은
“거기 앉아.”
“예.”
방백현은 긴장한 얼굴로 백수룡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시에 곁눈질로 방 안을 살폈다.
‘남궁수 선생님 못지않은 일중독자라더니.’
방 안에는 온갖 서류가 지저분하게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퇴근 후에 돌아와서도 이 정도 일을 한다고? 잠은 자는 건가?’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백수룡은 마치 방백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피식 웃었다.
“쉬면서 틈틈이 하는 거야.”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고강한 무공에, 학관 수업에, 이곳에서 매일 학생들의 무공도 봐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몸이 세 개라도 못할 겁니다.”
방백현은 두 눈에 존경심을 듬뿍 담아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은 가볍게 어깨만 으쓱했다.
“차라도 한잔 줄까?”
“저는 괜찮…… 아니,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거절하려다가 도중에 말을 바꾼 방백현은 멋쩍게 웃더니,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청룡신협이 직접 내려 준 차를 맛볼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싶어서요. 두고두고 자랑으로 삼겠습니다.”
“차 한잔 가지고 자랑은 무슨.”
차를 내어준 백수룡은 방백현을 유심히 관찰하며 눈을 빛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방백현의 무공보다 더 흥미로운 쪽은 처세였다.
방금도 별로 긴장하지 않았으면서 긴장한 척했고, 과하지 않은 칭찬으로 백수룡의 체면을 세워 줬다.
뿐만 아니라, 적당히 농담까지 던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는 시도까지.
‘적을 안 만드는 성격이라더니, 그 이유를 알겠어.’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처세술.
여기에 훤칠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소마저 갖췄으니, 학생들 가운데 방백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건 세작으로서도 아주 훌륭한 자질이다.
“일단은 합격.”
“예?”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
백수룡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방백현은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일을 맡겨도 될 만한 녀석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
곧바로 본론을 꺼낼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하나씩, 진로상담을 통해 방백현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었다.
“무림맹 입맹 시험에도 여럿이 있는 거로 아는데. 1지망은 어디지?”
“일단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방백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무대(天武隊) 공채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천무대라고? 정보조직인 통천대(通天隊)가 아니라?”
“……통천대요?”
“예상 밖이라서 말이야.”
무림맹에는 다섯 개의 단(團)이 있고, 각 단마다 다섯씩, 총 이십오 개의 대(隊)가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무림맹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하지만 맹주의 친위대인 천무대(天武隊)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무림맹주를 호위하며 무림의 수뇌부들을 만나고, 오직 맹주의 명령만을 들으며, 종종 비밀스러운 임무를 단독으로 수행하는 특수부대.
명예와 영광이 보장된, 무림맹 입맹을 지망하는 젊은 무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천무대 소속 무인 대부분이 천무학관 졸업생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방백현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천무학관과 천무대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천무대에 천무학관 졸업생 비율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는 천무학관 졸업이 마치 천무대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을 방백현도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천무대 합격자를 살펴보면, 천무학관 졸업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소수지만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졸업생도 있었습니다.”
“청룡학관 출신은 한 명도 없다는 거네?”
“……재수, 삼수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방백현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백수룡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천무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실적을 쌓아서 위로 올라갈 겁니다. 천무대주를 거쳐서 오단의 단주, 결국에는 무림맹의 정점, 맹주가 될 겁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오는 대답.
이전에 남궁수와 상담할 때도 같은 말을 했지만, 남궁수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었다.
과연 백수룡은 어떻게 반응할지, 방백현은 무척 궁금했다.
“거짓말은 하지 말지?”
“……예?”
그런데 이건, 방백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노력하면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거나, 아니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저렇게 싸늘한 눈으로 자신의 목표를 거짓말이라 할 줄이야.
“지금 무슨 말씀을…….”
방백현은 이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겨야 하나? 하지만 저 표정은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연기를 꽤 잘하긴 하는데, 날 속일 정도는 아니야.”
피식 웃은 백수룡은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방백현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정체를 들킨 세작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방백현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제 말이 거짓이라고 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그런 말씀은…….”
“무림맹주가 되겠다는 놈이 그런 눈을 하고 있는데, 그게 진심이겠어?”
“제 눈이 어떻길래…….”
스스로는 연기가 완벽하다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 웬만한 사람은 다 속여넘길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백수룡이 보기엔 아직 멀었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는 눈. 신념, 혹은 광기에 가까운 욕망이 없는 눈.”
“…….”
백수룡이 아는 맹주, 혈교주, 그리고 큰 세력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무서울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가진 인간들이었다.
당장 오늘 만난 무림맹주만 해도,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사내였던가.
물론 냉철하고 차분하다고 해서 맹주감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방백현에겐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들끓는 욕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백현. 작년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교우 관계도 두루 원만함. 책임감과 성실함을 겸비했으며, 주변에 모범이 되는 학생. 여기까지만 보면 무림맹주라는 목표와 잘 어울리지. 하지만 이건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이고…….”
“…….”
백수룡은 오는 길에 남궁수에서 받아 온 서류를 품에서 꺼냈다.
남궁수가 수업 중에 열심히 정리한, 방백현에 대한 학생기록일지였다.
“방백현.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것을 즐김. 수업 중 크게 나서지는 않으나, 실습이나 시험에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음. 대부분의 수업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지만, 그중 첩보, 공작, 세작 관련 강의에서 가장 큰 흥미를 보임.”
탁.
서류를 덮은 백수룡이 방백현을 바라봤다.
“나한테는 이쪽이 진짜 방백현처럼 보이는데?”
“……꼼꼼히도 적으셨군요.”
방백현은 설마 남궁수가 자신을 그렇게 평가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보단체 쪽 일에 흥미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부드러운 미소가 걷힌 방백현은 꽤 차가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역시 그랬군.”
방백현의 성격은 어느 정도 백수룡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더 쉽게 상대의 기질을 알아본 것도 있었다.
백수룡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정말 무림맹주가 되고 싶은 건 맞아? 왜 그런 귀찮은 감투를 쓰려는 거지?”
“무림맹주가 귀찮은 감투라고요? 하하! 하하하하……!”
드디어 가면이 깨졌다.
방백현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한동안 눈물까지 맺힐 정도로 웃어젖히던 방백현이 겨우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선생님이 안 믿으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제가 무림맹주가 되고 싶다는 건 진심입니다.”
한동안 뚫어져라 방백현을 바라본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거짓말 같지는 않군. 좋아. 그렇다고 치자.”
“…….”
“그러니까, 천무대에서 시작해 출셋길을 차근차근 밟아 나갈 거고, 결국엔 무림맹주가 되는 게 네 목표라 이거지?”
“예.”
“그래. 그런데……. 잠깐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백수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애초에 왜 청룡학관에 입학한 거지? 처음부터 천무학관에 입학했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재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방백현의 현재 실력은 독고준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즉, 천무학관에도 충분히 입관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굳이 청룡학관에 들어와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냉정히 따져 봐도, 팽사혁처럼 편입 시험을 보고 천무학관에 들어가는 게 가능성이 크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를 선택하는 전략이었다고 하기에도, 천무학관과 청룡학관의 위상은 천지 차이였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방백현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평소 같았으면 백수룡도 여기서 학생의 개인사를 더 이상 캐묻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사실은 이미 짐작 가는 것도 있었다.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나도 널 도와줄 수가 없다.”
“절 도와주신다고요?”
가면을 벗은 방백현이 차가운 시선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마치 ‘네가 뭘 도와줄 수 있느냐?’라고 묻는 듯했다.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한테는 무림맹에 너 하나 꽂아 넣을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 거기가 천무대든 통천대든, 원하는 곳 어디든지.”
“……말도 안 돼.”
방백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무림맹의 원하는 곳 어디든 꽂아 준다니, 방백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무림맹 본단 입맹 시험은 인맥이 통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구파일방 장문인의 추천서도 소용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백방으로 알아보셨지만…….”
야율황이 맹주가 된 이후로, 무림맹은 외부 인사의 추천이나 청탁은 일절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백수룡은 방백현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예외가 하나 있지. 단주급 이상의 무림맹 간부가 보증할 경우, 특채로 인원을 충원할 수 있다는 조항.”
눈치가 빠른 방백현은 그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맹주님과의 인맥을 통해서 절 꽂아 주시겠단 겁니까?”
‘내가 직접 꽂아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하나 보군.’
하기야, 방백현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천하의 무림맹주가 지금쯤 총군사와 머리를 맞대고, 백수룡의 제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백수룡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때. 이제 좀 진로상담에 솔직해질 마음이 들었나?”
“하…….”
방백현은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귀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방백현은 쉽게 기뻐하지 않았다.
“왜 절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공짜는 아닐 것 같은데요.”
“역시 눈치가 빨라. 미끼가 보이지만 덥석 물지 않고 의심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백수룡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슬슬 본론을 꺼낼 때였다.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앞으로 너는 내 눈과 귀가 되어 주면 된다.”
“……선생님의 세작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순간, 방백현의 숨이 살짝 가빠졌다. 눈동자도 생기 넘치게 반짝였다.
‘역시 이쪽이 적성에 맞나 보군.’
피식 웃은 백수룡이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하지만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졸업생 취업도 시키고, 겸사겸사 내부 사정에 밝은 인맥을 하나 심어 두려는 거니까.”
“음. 위험하진 않은 일이군요…….”
방백현은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아쉬운 거야?’
정말이라면 이것도 꽤나 골 때리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이런 일을 믿고 맡기려면 서로 간에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네가 왜 그렇게 무림맹주가 되는 것에 집착하는지 물어보는 이유다.”
“그건…….”
방백현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들어오십시오.”
백수룡은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말했다.
낯선 기척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실례하겠습니다.”
백의궁장 차림의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도도한 표정.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많아도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
그녀를 본 방백현의 표정이 굳었다.
“어, 어머니…….”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엄마에게 걸린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을 본 순간, 백수룡은 짐작에 불과하던 것을 확신했다.
‘이쪽이었군.’
설득해야 할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