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6
285화. 진로상담 좀 할까?
“왜 이렇게 안 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맹주님 실제로 보니까 엄청 무섭던데…….”
백룡장으로 돌아온 학생들은 저녁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한 번씩 대문 밖을 힐긋거렸다.
귀가가 늦어지는 백수룡이 신경 쓰이는 탓이었다.
헌원강이 은근슬쩍 사심을 담아 말했다.
“맹주님한테 까불다가 맞고 있는 거 아닐까?”
“에이. 설마…….”
“아까 못 봤어? 당신이 뭔데 시험 방해하냐면서 엄청 도발했잖아.”
“저도 그때 간 떨려서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그치? 나였으면 조용한 데 데려가서 둘만 있을 때 먼지 나게 팼다.”
헌원강의 말에 두 일 학년, 위지천과 야수혁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수룡이 누구에게 맞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안 가지만…… 그래도 무림맹주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세 소년의 마음속에 은근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공교롭게도 그때, 별똥별이 밤하늘을 가르며 긴 꼬리를 남기고 지나갔다.
휘이이익-
세 소년은 손을 모아 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맹주님. 무림에 정의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 주세요!”
“딱 저희가 평소에 맞는 만큼만 때려 주십쇼!”
“뼈와 장기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아프게…….”
차례대로 헌원강, 야수혁, 그리고 위지천의 소원이었다.
기말고사를 겪다 보니, 그 착한 위지천마저 나쁜 물이 들었다.
“어이구 이 화상들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민은 한숨을 내쉬더니 셋의 등짝을 차례대로 후려쳤다.
짜악! 짜악! 짜악!
평소 빙백신장을 수련하는 여민의 손맛은 아주 매웠다. 덕분에 다들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아악!””
여민은 철없는 사내 녀석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맹주님이 너희 같은 줄 알아? 헛된 희망 접고 수련이나 해!”
그리고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유쾌한 후배들이군.”
방백현은 마루에 걸터앉아 수련 중인 후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이상한 놈들이라고.”
그 옆에는 여전히 말끔한 모습의 거상웅이 앉아 있었다.
‘처음엔 기생오라비 같아서 싫다더니, 은근히 마음에 들었나 보군.’
방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같이 가자더니. 이걸 보여 주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였어?”
“이곳 구경도 시켜 주고 싶었고. 너랑 따로 얘기도 좀 하고 싶었고.”
방백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듯, 몸을 돌려 친구를 똑바로 바라봤다.
“난 준비됐다.”
“민망하니 너무 진지하게 듣지는 말고.”
어색하게 웃은 거상웅은 이내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2년 전 천무제에서 말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거상웅은 자신이 왜 2년 동안이나 무공을 멀리하며 폐인처럼 지냈는지, 어쩌다 도박과 식도락에 빠져 시간을 허비했는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천천히 털어놓았다.
“……혼자서 극복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안 되더라. 무공만 익히려고 하면 그때가 생각나서 식은땀이 나고 몸이 굳어 버리는 거야. 그게 일종의 주화입마였다는 건 선생님한테 듣고 알게 됐어.”
방백현의 표정이 점점 굳더니, 나중에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천무제에 다녀온 후 의욕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다.”
자존심 강한 거상웅이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지,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짐작할 수 있었다.
거상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하다.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죽어도 말하지 못하겠더라. 특히 너한테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거든.”
“…….”
두 사람은 과거에 청룡쌍절이라 불릴 정도로 촉망받던 후기지수였다.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경쟁자.
그 탓에, 거상웅은 방백현에게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싶지 않아 진실을 숨겼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몰랐던 방백현은 거상웅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두 사람은 이 년 만에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방백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는 무공을 익혀도 괜찮은 거지?”
“보다시피. 허송세월한 시간이 아까운 것 말고는 다 괜찮아.”
“그래…….”
분위기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거상웅이 화제를 돌렸다.
“방학 때는 뭐할 거냐? 우리한텐 마지막 방학이잖아.”
두 사람은 올해 사 학년이었다.
아직 2학기가 남아 있지만, 방학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졸업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방백현이 밤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마지막 방학이라……. 어느새 벌써 그렇게 됐네.”
“시간 정말 빠르지. 어느새 우리가 졸업 학년이라니 말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연무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후배들을 향했다.
내심 아직 학관에 일 년 이상 더 남아 있을 수 있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거상웅이 더 컸다.
“나는 죽어라 수련할 거다. 내가 나갈 수 있는 천무제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흠칫 놀란 방백현이 고개를 돌려 거상웅을 바라봤다.
“천무제에 나가겠다고? 설마 너…….”
“맞아. 갚아주려고.”
거상웅의 눈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권패 초일. 그 자식을 만나서 묵사발을 내줄 거다. 이 주먹으로 말이야.”
방백현은 자기도 모르게 거상웅의 주먹을 바라봤다.
자신이 알던 주먹보다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모르던 흉터도 많이 늘었다.
‘이 년이나 폐인처럼 지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거상웅이 말한 권패 초일은 천무학관에서도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
천무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용봉비무에서 매년 높은 성적을 낸 것으로도 유명했다.
‘반면, 상웅이는 이 년이나 시간을 허비했다.’
과거에도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솔직히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백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려 봤자 소용없겠지?”
“역시 잘 아네.”
씩 웃은 거상웅이 방백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방학 때 뭐할 건데?”
방백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야 무림맹 입맹 시험을 준비해야지. 학점은 다 이수했으니까, 다음 학기 때는 학관에 나올 일이 거의 없을 거다.”
“음…….”
무언가가 못마땅한 듯, 거상웅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방백현의 저 부드러운 미소.
거상웅은 방백현이 저 미소 뒤에 자신을 감추는 게 능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것 맞냐? 네 어머니가 원하는 게 아니고?”
방백현의 어머니는 학부모회의 회장이었다.
한천빙모 서리애.
그녀는 아들을 무림맹주로 만들기 위해 어려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관리했다.
방백현은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거상웅.”
표정을 굳힌 방백현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어머니는 날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신 분이야.”
“하지만 네 인생이 어머니 소유는 아니잖아.”
“네가 뭘 안다고…….”
거상웅은 코웃음을 쳤다.
“알 만큼 안다. 내가 아는 방백현은 그렇게 대단한 야망이 있는 놈이 아니야.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사실은 어머니의 부탁 하나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놈이지.”
“너 진짜…….”
화를 내려던 방백현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주제로 다투고 싶진 않았다.
“상웅아. 우린 이 년 동안 안 보고 지냈다. 내가 방황하던 시절엔 너한테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나. 어머니가 날 너무 가혹하게 훈육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했었지.”
“…….”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방백현의 눈은 어떤 신념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난 내 목표에 확신이 생겼어. 무림맹의 정점에 서는 것. 나는 여기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너…….”
한동안 친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거상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상인의 안목으로도, 저 말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거상웅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르겠군. 넌 옛날부터 워낙에 연기를 잘했으니까.”
“진짜라니까?”
“넌 역시 세작이 어울려.”
“옛날에도 툭하면 그런 소리를 했었지. 졸업 후에 나는 세작, 너는 산적이 될 거라고.”
옛 추억을 떠올린 두 사람이 마주보며 큭큭 웃었다.
그때, 둘 사이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둘이 뭐가 그렇게 재밌어?”
헌원강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련이 끝난 후배들이 전부 몰려오더니, 어느새 마루 주변으로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후배들을 둘러본 방백현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림맹주가 될 거라는데, 이 친구가 반대해서 말이야.”
반쯤은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보통 이 말을 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짓거나 피식피식 웃기 짓기 마련이니까.
이번에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방백현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맹주? 오, 좀 멋있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솔직히 아까 본 맹주님도 별로 정파 같지는 않았어.”
“음. 우리 업계 사람에 가깝지.”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방백현이었다.
“……안 이상한가?”
“뭐가요?”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청룡학관 출신이 맹주가 될 거라고 하면 보통은 이상하게 생각하거든.”
백룡장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가 이상하지?”
“청룡학관 출신이면 못 한단 말이야?”
“맹주가 되는 게 천무제 우승보다 어려운 건가?”
……이 녀석들은 청룡학관의 천무제 우승을 장담한 선생의 제자들이었지.
그런 생각이 들자 방백현도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하하! 너희 말을 듣다 보니 진짜 별것 아닌 것 같네. 청룡학관 출신이 무림맹주가 되는 것도 말이야.”
방백현은 묘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녀석들과 며칠간 쫓고 쫓기며 난투를 벌이고 가까워진 덕분일까.
초면이나 다름없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부담이 없었다.
“사실 나는…….”
“맹주님 말이야.”
하지만, 방백현의 이야기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학생들은 이미 대화 주제를 바꿔 버렸다.
헌원강이 야수혁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난 처음 봤을 때 야수혁 얘네 아버지인 줄 알았다니까.”
“어?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외모가 되게 닮았더라고요.”
“진짜 숨겨 둔 아들인 거 아니야? 이름까지 비슷하잖아.”
선배들의 놀림에 야수혁이 발끈해서 외쳤다.
“뭔 소리요 대체. 나는 야 씨. 맹주님은 야율 씨잖수!”
“새끼야, 너도 나한테 맨날 원강 선배라고 부르잖아.”
헌원강의 말에 여민이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선배, 헌 씨 아니었어……?”
“이게 진짜!”
학생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는 방백현에게, 거상웅이 어깨동무를 하며 큭큭 웃었다.
“여긴 원래 이래. 선배고 뭐고 없지.”
“……진짜 이상한 곳이군.”
방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백수룡이 대문을 열고 백룡장으로 들어왔다.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
““선생님!””
학생들이 우르르 백수룡에게 달려갔다. 꼬리라도 있었으면 열심히 흔들 모양새였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이야기가 좀 길어졌어. 그리고 삐진 놈도 좀 달래 주고 오느라고.”
“삐진 놈이요?”
“그런 놈 있어. 남궁 모 씨라고.”
백수룡은 질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사내 새끼가 뭘 그런 것 가지고 삐지는지, 무림맹주를 상대할 때보다 더 진땀을 뺐다.
“선생님. 맹주님한테 어디 맞은 데는 없어요?”
“뭐?”
“아까 소원까지 빌었는데. 이렇게 멀쩡할 리 없…….”
빠악!
헌원강은 백수룡 주변을 기웃거리며 어디 맞은 곳이 없나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결국 뒤통수를 얻어 맞고 바닥에 뻗었다.
“맞긴 누가 맞아?”
정녕 백수룡을 단죄할 무림의 영웅은 없단 말인가…….
백수룡은 주저앉아 구시렁거리는 헌원강의 엉덩이를 멀리 걷어찼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평소 백룡장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얼굴이 보였다.
“사 학년 방백현 맞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방백현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청룡신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흐음…….”
백수룡은 이번 기말고사에서 방백현을 눈여겨 봐뒀다.
‘실력도 괜찮고,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은 편에 친화력도 좋아 보이던데.’
이곳에 오기 전에 남궁수에게 몇 가지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단지 삐진 걸 풀어주려고 남궁수를 만나고 온 게 아니었다.
-방백현? 모든 성적이 뛰어나지만, 그중 잠입, 첩보, 공작 등 세작 관련 성적이 특출났다. 본인도 즐거워했지.
‘마침 올해 졸업 예정이기도 하고.’
무림맹에 심어 두면 좋을 똘똘한 녀석.
지금 백수룡에게 딱 필요한 인재였다.
“졸업 후 진로 희망이 무림맹이라면서?”
“예? 예. 맞습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방백현에게, 백수룡은 긴장하지 말라는 의미로 씩 웃어 주었다.
이상하게 그 미소에 방백현의 표정이 창백해졌지만, 어쨌든.
“선생님이랑 진로상담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