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5
284화. 매달려야 할 쪽은 제가 아니라
“자리를 달라고?”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맹주의 표정이 이내 밝아졌다.
그는 백수룡의 말을 ‘무림맹에 투신하겠다’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하하하! 자네 같은 고수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내 얼마든지 마련해 주겠네!”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맹주는 불현듯 어떤 계획이 떠올랐는지, 호랑이 같은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돌아가면 짐을 싸 두게. 자네도 나와 함께 오대학관을 순회하는 것이 좋겠어. 다른 학관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최근의 명성만큼은 무림십존에 못지않은 청룡신협이 무림맹에 투신한다?
맹주가 원하는 대로 여론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맹주가 자신의 생각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짐을 싸라니요? 청룡학관은 어쩌고요?”
“앞으로 무림맹 사람이 될 것인데 청룡학관이 무슨 상관인가? 숙소는 맹에서 마련해 줄 테니 몸만 오면 되지.”
백수룡은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맹주를 바라봤다.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왜 그만둡니까?”
“……그만두지 않으면 무림맹은?”
맹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백수룡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청룡학관을 관두고 무림맹에 투신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림맹에도 한 다리 걸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겸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겸직?”
맹주의 두꺼운 목에 핏대가 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하려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맹주에게는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권력은 크고 책임은 없는 자리로 주십시오. 청룡학관 일만으로도 바빠서 어차피 자주 가지도 못할 테니니까요.”
맹주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시선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진심입니다.”
그래 보이니까 문제였다.
너무 진심 같아서, 평소 다혈질인 맹주로서도 여기서 화를 내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무림맹에서 그간 수많은 별종들을 봐 왔지만, 백수룡 같은 유형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이놈은 내가 무섭지도 않나?’
제아무리 무공이 강해 봤자 자신의 아래가 분명하거늘……. 대화를 할수록 어째 말리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놈의 혀에 놀아날 수 없다.’
표정을 굳힌 맹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청룡학관에서 강사 일을 계속 할 거면서, 무림맹의 요직을 달라는 거냐?”
“무림맹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닙니다.”
콰직!
이미 반으로 쪼개진 탁자가 발에 밟혀 가루로 변했다. 맹주가 거대한 몸을 백수룡 가까이 숙이며 으르렁거렸다.
“네가 알량한 무공과 명성을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지금부터는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맹주의 몸에서 피어난 가공할 기세가 온몸을 옥죄는 듯했으나, 백수룡은 태연하게 맹주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왜 무림맹이 손해가 아닌지. 오히려 얼마나 큰 이득을 볼 수 있는지.”
당장 혈교무공총람을 만들어서 무림맹에 건넬 수도 있었다.
물론 의심을 받을 받을 것이 뻔하기에 대놓고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 외에도 백수룡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첫 번째, 저는 혈교에 대한 고급 정보를 다수 알고 있습니다.”
“정보?”
순간, 맹주의 입매가 비틀리며 비웃음이 맺혔다.
네까짓 게 알아봤자 무림맹주인 나보다 많이 알고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어진 백수룡의 한마디에, 맹주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사도(使徒)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맹주의 호랑이 같은 눈이 더욱 커졌다.
사도에 관한 정보는 무림맹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하는 것.
백수룡이 결코 알 수 없는,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그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맹주의 눈에서 놀라움을 넘어 은은한 살기마저 비쳤다.
백수룡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물론 백수룡은 완벽한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일전에 남궁세가에서 척살한 혈교의 장로를 심문해 알아낸 정보입니다.”
맹주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을 완전히 거두진 못한 표정이었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어째서 맹에 바로 보고하지 않았지?”
“제가 보고해야 할 의무라도 있습니까?”
“건방진…….”
정확히 말하면 무림맹도 믿을 수 없어서였다.
무림맹 어디에 혈교의 세작이 숨어 있을지 모르고, 또 어디까지 썩어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환경에서 무림맹주와 독대하게 된 것은 백수룡에게도 기회였다.
‘맹주. 그리 마음에 드는 성격은 아니지만, 혈교에 대한 원한만큼은 진짜다.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해.’
그때, 맹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본좌는 무림맹주다. 네가 아는 정보는 이미 내가 아는 것이다.”
“남궁세가의 혈사를 주도한 인물이 일사도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지.”
누구 앞에서 연기를 해?
눈치를 보니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백수룡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거짓말을 잘 못 하시는군요. 최근 이십 년 동안, 무림맹에서 혈교의 장로급 이상의 인물을 사로잡은 일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
맹주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과격해 보이지만, 결코 우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백수룡이 가진 정보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림맹의 요직을 요구하기엔 부족하다.”
물론 더 있었다.
“두 번째, 저는 혈교 무공의 파훼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단언컨대 제가 맹주님보다도 뛰어납니다.”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무공을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의미에서,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타인의 무공을 잘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파훼식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백수룡은 무림십존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전생에 읽고 분석한 무공만 수백 종이 넘거든.’
심지어 그게 혈교의 무공이라면, 종이만 주면 파훼식을 줄줄이 쓸 수 있었다.
“혈교 무공의 파훼식을 만들 수 있다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어떻게 증명할 테냐?”
“이미 만들어 둔 것이 있습니다.”
맹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젠 놀랄 힘도 없군. 대체 혈교 무공이 어디서 났지? 그것도 혈교 장로를 죽이고 빼앗았나?”
그것도 괜찮은 변명이겠지만, 백수룡은 더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남궁세가 가묘. 그 지하 우물 밑에 뭐가 있었는지 들으셨습니까?”
“……남궁가주에게 전해 들었다.”
창천검왕이 숨기고 있었던 남궁세가의 치부.
그 사실은 아직 무림의 수뇌들에게만 공유되고 있었다.
백수룡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죽은 혈교도들이 남긴 무공 비급 몇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걸 보고 파훼식을 만들었습니다.”
“……남궁가주에게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당연하죠. 제가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요.”
“비급을 도둑질했단 말이냐.”
맹주의 어쭙잖은 비아냥에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누구에게서 말입니까? 죽은 혈교? 아니면 그들을 몰살한 남궁세가?”
“…….”
본전도 못 찾은 맹주가 입을 다물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비급과 함께 제가 만든 파훼식도 무림맹에 넘기겠습니다.”
남궁가묘 지하의 우물에서 비급을 구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비급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백수룡의 머릿속에 수백 종의 무공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니까. 적당히 낡아 보이게 꾸미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혈교 무공과 그 파훼식을 알리는 거야.’
적의 무공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싸우기 전에 적의 한쪽 손을 뒤로 묶고 싸우는 것과 비슷했다.
“제가 가진 것 외에 맹에서 입수한 혈교 무공도 보여 주시면, 그것도 파훼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훗날 무림맹이 흘릴 피가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맹주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설득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 지위는 무공 총사범이면 됩니다.”
무림맹 무공 총사범.
무림맹 무사들의 훈련을 총괄하는 지위.
그 권한은 무림맹에 다섯 명뿐인 단주급에 해당했다.
“총사범이라……. 반발이 심하겠군.”
“맹주께 그 정도 힘은 있으시잖습니까.”
청룡신협의 명성과 무공, 오대학관 강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맹의 무인들은 거칠다. 학관의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달라.”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친 놈들 다루는 건 익숙하니까요.”
“으음…….”
야율황은 팔짱을 낀 모습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백수룡이 제안한 패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혈교의 장로를 심문해 얻어 낸 고급 정보와 혈교 무공의 파훼식.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겠다는 말도 아주 과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한 거지?’
맹주는 고민 끝에 그 찜찜함의 이유를 알아냈다.
그가 팔짱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세고수의 감각이 바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정체였다.
“네가 혈교의 세작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냐?”
맹주는 호랑이 같은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눈빛만으로 백수룡의 속마음까지 꿰뚫을 기세였다.
‘내 정체를 의심하는군.’
창천검왕도 백수룡을 의심했지만, 끝까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무공의 경지도 더 올라간 상황.
백수룡은 마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맹주를 똑바로 바라봤다.
“제가 혈교의 세작이라면, 남궁세가를 돕는 짓을 왜 했겠습니까? 내버려 두기만 했어도 무림은 큰 혼란에 빠졌을 테고, 지금쯤 혈교가 판을 아주 유리하게 만들었을 텐데요.”
무림맹주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백수룡은 무림맹주를 설득하기 위해 완벽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 이야기에 허점은 없었다.
“……그래. 세작이었다면 남궁세가를 구할 이유가 없지.”
맹주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표정이 미묘했다.
잠시 침묵하던 맹주가 말을 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감을 신뢰하는 편인데, 내가 느끼기에…… 너는 혈교도는 아니다.”
백수룡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헌데…….”
의심에서 벗어난 줄 알았던 맹주의 눈에서 다시 불꽃이 튀었다.
“혈교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지.”
“무슨…….”
순간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살기에 백수룡은 몸을 굳혔다.
이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집채만한 대호가 눈앞에서 이빨을 드러낸 듯한 기분.
이어질 대답에 따라, 맹주는 그를 진심으로 공격할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겠다. 넌 혈교와 무슨 관계냐?”
“저는…….”
백수룡이 맹주를 똑바로 노려보며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맹주! 트집 잡는 짓은 그만두게.”
문이 벌컥 열리며 노군상이 접객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무림맹 총군사 제갈소진도 보였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세를 거둔 맹주가 포권을 취했다.
지난 혈교와의 전쟁을 함께한 선배에 대한 예의였다.
노군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오면서 들었네. 백 선생을 혈교의 세작이라고 의심하는 건가?”
“세작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노군상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백수룡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내 명예를 걸고 보증하겠네. 백 선생은 혈교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물일세.”
이렇게 되자 맹주가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그는 괜히 총군사 제갈소진을 째려봤다.
이래서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한 것이었는데.
“……청룡신협이 혈교의 세작이 아니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번에는 백수룡의 날 선 목소리가 맹주의 말을 끊었다.
“이건 아까 말을 안 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백수룡을 향했다.
“세 번째는, 다른 오대학관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백수룡은 품에서 보은패를 꺼내 맹주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이건 사천당가, 이건 염왕의 보은패입니다.”
“……!!”
백호학관은 사천에 있었다. 사천의 패자인 당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염제는 주작학관의 관주인 데다가, 노군상보다 더 윗대의 노고수였다.
두 개의 보은패를 가지고 있다는 건, 두 학관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어떻게 저 두 개의 보은패를……!’
총군사 제갈소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대학관 중 두 곳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백수룡이 가지고 있을 줄이야!
보은패의 존재는 함부로 알리지 않는 것이 예의이기에, 당시 백수룡이 보은패를 받는 것을 보았던 모든 사람이 함구했다.
때문에 무림맹에는 이 사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마침 제갈소진과 눈이 마주친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남궁세가는 안 주더군요. 보은패는 한 번밖에 못 쓰는 거니까, 그냥 아무 때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면서.”
비록 혈교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지만, 남궁세가는 여전히 일타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백수룡이 보은패를 사용해 얼마든지 무림맹의 행사에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맹주님. 아직도 본인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수룡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 동맹을 해 달라고 매달려야 할 쪽은 제가 아니라 맹주님입니다.”
“…….”
맹주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먼저 무례를 범한 것은 분명 자신이었고, 그 장면을 하필이면 노군상이 보았다.
화를 낼 명분은 백수룡에게 있었다.
무언가를 더 요구할 명분도 같이 말이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무공 총사범 말고 공석인 부맹주 자리를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불가능합니다!”
맹주와 총군사가 동시에 안 된다고 외쳤다.
그러나 백수룡이 알 바는 아니었다.
“싫으면 말든가.”
피식 웃은 백수룡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콰앙!
맹주와 총군사가 허망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는 가운데, 노군상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맹주에게 말했다.
“그렇다는군?”
맹주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