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0
289화. 종업식 (1)
휘이잉-
백룡장 지붕 꼭대기의 용마룻대 위.
한 사내가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서서 백룡장 아래를 살피고 있었다.
“…….”
강인하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내였다. 사내는 백룡장 아래를 시야에 담으며, 검파에 손을 올린 채 혹시라도 모를 침입자에 대비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의 명령을 받은 천무대의 무사들이 백룡장을 둘러싼 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서릿발 같은 기세에,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만약 천무대의 경계가 뚫린다고 한들, 감히 누가 맹주를 해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사내는 한 번도 자신의 임무에 태만했던 적이 없었다.
‘맹주님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사내가 옥상에서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경계할 때였다.
휘익!
지붕 위로 올라선 천무대 무사가 사내에게 포권을 취하며 보고했다.
“대주. 반경 삼백 장 안에는 수상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수고했다. 삼조와 교대한 후 서쪽 측면을 경계하도록.”
그러나 수하는 대주의 명령을 즉시 따르지 않았다.
“저…… 대주님.”
“무슨 일인지?”
“맹주께서 청룡신협을 총사범으로 임명할 거란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그래서?”
되묻는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하는 움찔했지만, 이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사범이면 오단의 단주와 동급의 지위가 아닙니까? 아무리 맹주님이라도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
“대주께서 맹주님께 한 말씀…….”
“자리로 돌아가라.”
“대주…….”
“돌아가라고 했다.”
“……예.”
살기를 드러내서야 수하가 자라목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수하를 돌려보냈지만, 사실 사내의 속마음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에 들끓는 감정은 누구보다 강했다.
‘청룡신협.’
실제로 본 그는 과연 비범해 보였다.
최근 무림십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고 있는 신진고수.
동년배의 무인으로서, 투기가 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시험해 보았거늘.’
절정의 고수도 소스라칠 정도의 날카로운 기파를 등에 쏘아 보냈다.
시험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절반, 망신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절반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무시당했지.’
그 순간, 사내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상대는 자신을 신경도 쓰지 않는데, 혼자서 도발한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아직 수양이 부족한 모양이야.”
천무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본인의 임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끓어올랐던 투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 * *
맹주는 도박판에서 쌈짓돈까지 다 털린 노름꾼 같은 얼굴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어쩌다가 이런 놈한테 걸려서…….’
이 협상에서 아쉬운 쪽이 자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만남에선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무림맹 총사범 자리도 확실히 약속했다.
이 정도면 백수룡도 충분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맹주 자리를 달라고 한 건 홧김에 해 본 말이었겠지. 안 된다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 테니.’
……라고만 생각했다.
설마 그걸 양보한다는 빌미로 다른 것을 요구할 줄이야. 순 날강도가 따로 없지 않은가.
“끄응…….”
맹주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였다.
“혹, 무림맹에서 청룡학관 학생들을 채용해 달라는 말씀인가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총군사 제갈소진이 끼어들었다.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수습 맹원으로서 경험을 쌓게 해 달라는 겁니다. 정식 채용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정식 채용까지 해 준다면 좋겠지만, 백수룡도 이 이상 바라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억지를 부렸다간, 자칫 유리한 협상의 주도권도 빼앗길 수 있었다.
“청룡학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류조차 통과하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보다 공평한 기회를 원할 뿐입니다.”
오대학관 중 가장 평가가 떨어지는 곳.
때문에 무림맹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청룡학관에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가 아닐 텐데요?”
“총군사. 어떻게 생각하나?”
맹주는 제갈소진에게 판단을 맡겼다. 제갈소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씩 웃은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또?”
맹주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는 것으로 보였기에, 백수룡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총사범이면 오단의 단주와 동급이죠?”
“그렇지.”
“그럼 총사범이 보증하면 맹원을 충원할 수 있겠군요. 제가 가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습니다.”
“……그런 조항은 또 어디서 봤나?”
“앞으로 겸직할 직장인데, 꼼꼼히 읽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얄밉게 웃으며 할 수 있을까.
탁자 아래에서 맹주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 대 쥐어패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그랬다간 동맹이고 뭐고 다 날아가기에 참아야만 했다.
“통천대에 자리 하나만 만들어 주십시오. 올해 졸업생 중에 똑똑한 녀석이 하나 있는데, 통천대에 두고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
맹주가 그 말의 의미를 못 알아챌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대놓고 자기 사람을 무림맹, 그것도 정보단체인 통천대에 심어 두겠다는 말이었다.
백수룡은 그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몰래 수작을 부리는 것보단 차라리 낫다고 해야 하나.’
맹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의 말대로 이건 총사범이 되면 따라오는 권한이었다.
이렇게 남용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알겠네. 단, 능력이 안 되는 녀석이라면 통천대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야. 그것까진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걸 알아두게.”
“거기까진 저도 바라지 않습니다.”
백수룡은 방백현을 믿었다.
녀석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통천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학생은 여기 있는 총군사에게 보내게. 안 그래도 요즘 인원이 부족하다고 들었으니.”
맹주가 총군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총군사는 무림맹의 정보조직인 통천대의 대주를 겸하고 있었다.
백수룡이 웃으며 제갈소진에게 물었다.
“굴러온 돌이라고 해서 일부러 괴롭히고 그러진 않으시겠죠?”
“물론입니다. 제 가문의 이름을 걸고, 공정하게 평가하겠습니다.”
제갈세가의 이름까지 걸었으니, 방백현이 대주에게 찍혀서 쫓겨날 일은 없을 것이다.
기존에 있던 인원들에게 텃세에 시달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 정도는 스스로 버텨 내야지.’
큰 틀에서 동맹에 대한 합의는 그렇게 마쳤다.
세부적인 사항은 노군상과 청룡학관의 간부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제갈소진이 내용을 정리하며 말했다.
“동맹에 대한 공식 발표는 곧 있을 청룡학관 종업식에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도록 하지.”
“좋습니다.”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맹주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따로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음…….”
백수룡의 질문에, 맹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무림맹 내에서는 자네의 실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네. 갑자기 총사범으로 임명하면, 반발이 상당히 클 것이야.”
“그거야 맹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럴 생각이네. 내 결정에 감히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네.”
앞에 놓인 차를 후루룩 마셔 버린 맹주가 말을 이었다.
“특히 오단의 단주들은 자네를 인정하지 않을 게야. 그들 휘하에 있는 대주들도 마찬가지로 아니꼬운 눈으로 자네를 보겠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총사범의 무공 지도를 거부할 수도 있네.”
“…….”
가르치는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면 뭐 하나?
배우는 자들의 태도가 불량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맹의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총사범이라는 백수룡의 지위도 큰 의미가 없었다.
“자네에게 총사범이라는 지위만 필요한 거라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맹원들의 무공을 제대로 지도하고 싶다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정받아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은 자네의 무공이 소문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겠지.”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맹주를 바라봤다.
왠지 모를 어떤 꿍꿍이가 느껴졌던 것이다.
“설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맹주님이랑 싸우라는 말입니까?”
맹주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야 그러면 공식적으로 자네를 쥐어팰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긴 하겠지만, 내가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아. 자네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보여 줘도, 결국엔 내가 합을 맞춰 준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
‘자기가 질 거라곤 조금도 생각 안 하는군.’
백수룡은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직 맹주는 못 이겨.’
권왕 야율황은 십존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초고수였다.
역천신공까지 쓸 수 없는 조건에서, 백수룡이 맹주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맹주님이 아니면, 무림맹에 제 실력을 감당할 상대가 있습니까?”
갑자기 맹주가 껄껄 웃었다.
그 콧대 높은 오단의 단주 놈들이 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이곳에는 단 한 명의 단주도 데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백수룡의 상대가 없냐고 묻냐면 그건 아니었다.
“내 생각엔, 천무대주 정도면 자네와 자웅을 겨뤄볼 만할 것 같은데.”
“……천무대주라면, 아까 뒤에서 저를 노려보던 녀석입니까?”
백수룡은 등 뒤에서 느껴지던 노골적인 시선을 떠올렸다.
꽤 강렬했던 기파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맹주가 아니었다면 곧장 돌아서서 검을 겨눴을 정도로.
“맞네. 그가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더군.”
“예? 제가 뭘 잘못했다고 싫어합니까?”
백수룡은 황당했다.
안면도 없는 천무대주가 자신을 왜 싫어한단 말인가?
그 이유는 제갈소진이 대신 알려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무림십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고, 이제는 무림맹 총사범이 될지도 모르는데,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요? 그것도 나이가 엇비슷한 동년배라면 말이죠.”
“…….”
듣고 보니 충분히 싫어할 만했다.
여기에 맹주가 덧붙였다.
“천무대주는 속이 좁은 사내는 아니지만,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는 절대 굽히지 않는 성격이지.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자가 상관으로 들어오는 판이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총사범이 되면 천무대주보다 높은 위치가 되실 텐데, 행여나 마찰이 잦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맹주와 총군사가 분위기를 몰아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맹주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종업식에서 천무대주와 자네의 친선 비무를 추진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천무대는 오단 중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맹주의 명령만을 듣는 친위부대였다.
그 실력은 무림맹 안에서도 단연 손에 꼽힌다.
천무대주는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으로, 그 실력은 이미 오단의 단주들과 엇비슷하다고 말할 정도로 고강한 무인이었다.
‘결국 내 실력이 궁금한 모양이군.’
백수룡은 맹주의 속내가 뻔히 보였다.
체면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천무대주를 통해서 백수룡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은 모양.
“뭐, 좋습니다.”
이쪽도 바라던 바였다.
백수룡이 흔쾌히 승낙하자 맹주가 씨익 웃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지. 천무대주의 실력을 얕보지 말게. 오단의 단주들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실력자이니 말이야. 몇 년만 지나면, 자네가 원했던 부맹주는 그 녀석이 될지도 몰라.”
‘맹주가 이 정도로 인정하는 사내라고?’
이쯤 되자 백수룡도 상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천무대주.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설마 누군지도 모른단 말인가?”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맹주가 말을 이었다.
“조천상이라 하네. 별호는 화산검호(華山劍豪). 자네 또래에서 가장 촉망받는 고수 중 한 명으로, 화산파 장문인의 제자이기도 하지.”
“그리고 십 년 전 천무학관의 수석 졸업생이기도 합니다.”
총군사 제갈소진이 덧붙였다.
화산검호 조천상과 그녀는 천무학관 동기로, 조천상은 예전부터 검의 천재로 유명했다.
‘청룡신협. 아무리 당신이라도 화산검호는 쉽지 않은 상대일 겁니다.’
청룡신협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은 보고를 받아서 알았지만, 정말로 무림십존에 필적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천상은 그 나이에 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권을 다툴 만한 고수. 자질만 보면 훗날 십존까지도 넘볼 수 있을 정도야.’
그만큼 자존심 강한 성격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십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은 청룡신협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리 없었다.
‘어차피 갈등이 생길 거라면, 지금 푸는 것이 나아.’
과연 누가 이길까?
제갈소진은 총군사이기 이전에 무인으로서 진심으로 궁금했다.
힐긋 맹주를 바라보니, 그도 비슷한 생각인 듯 히죽 웃고 있었다.
“화산파 장문인의 제자에, 천무학관 수석 졸업생 출신이라…….”
“이제 좀 긴장이 되나?”
“재미있겠네요.”
상대에 대해서 알게 된 백수룡의 입꼬리가 점점 호선을 그린다.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구파일방의 무공을 견식할 생각에, 백수룡도 들뜬 기분이 들었다.
“진행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잊지 못할 종업식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네.”
그렇게, 종업식 당일 청룡신협과 천무대주의 친선 비무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