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6
295화.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입니다
백수룡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선생님께서 빙백환을 소유하고 계시고, 빙월신녀의 진전을 이으셨다면, 북해빙궁의 궁주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서리애는 아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백수룡을 빙월신녀의 계승자로 확신하는 눈치였다.
“…….”
백수룡은 침묵 외에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고개 숙인 서리애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은사부. 이런 말은 없었잖소.’
백수룡은 빙월신녀를 떠올렸다.
지하 뇌옥에서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그녀에게서 북해빙궁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빙궁에서의 생활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북해로 돌아가진 않을 거야.
폐쇄적이고 엄격한 문화를 가진 빙궁.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은예린은 궁주의 기대 속에, 어려서부터 혹독한 수련을 견뎌야 했다.
그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은예린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결국 궁주조차 어쩌지 못할 만큼 강해진 후에, 그녀는 서찰 하나만 남기고 미련 없이 북해빙궁을 나섰다.
중원의 무학을 견식하고, 북해빙궁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증명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이후 빙월신녀라는 별호를 얻기까지, 그녀는 중원에서 수많은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다.
그런데 백수룡이 그에 대해 묻자, 은예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빙궁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남긴 거였어. 애초에 천하제일 같은 건 관심도 없었어.
도도한 눈매에 맺힌 장난기.
은예린이 아주 가끔씩 그렇게 웃을 때마다, 뇌옥이 잠시나마 환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 뇌옥에는 그녀의 미모에 넘어갈 사내가 없었지만, 별개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사내도 없었다.
은예린이 중원에서 활동할 당시 수많은 사내가 그녀에게 도전했고, 쓰러졌으며, 열렬하게 사모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빙월신녀의 연인이 되지 못했다.
그녀가 섬서의 작은 고서점에서 한 남자를 만날 때까지.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곳에서 나가면, 그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어.
빙월신녀의 꿈은 소박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생을 함께 보내는 것.
그러나 혈교의 음모에 의해 그녀는 함정에 빠졌고, 정인의 소식을 알지 못한 채 뇌옥에서 오랜 시간을 갇혀 지냈다.
-산통 깨서 미안한데 말이다. 여기 갇힌 지 십 년이 넘었는데, 그 녀석이 아직 기다리고 있을까?
-…….
말없이 노려보는 빙월신녀의 눈빛에, 답지 않게 맹사부가 바로 사과를 하던 모습.
-흠흠. 내가 실언을 했군.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라도 기다려 줄 사람이야.
빙월신녀의 대답에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진한 슬픔이 느껴졌다.
-내가 오지 않으면,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릴 바보 같은 남자란 말이야. 그러니 반드시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 반드시…….
-…….
-…….
“선생님?”
“……아.”
서리애의 부름에 백수룡은 짧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갑작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빙월신녀도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실종된 이후 후계자 문제로 빙궁에 피바람이 불고, 봉문을 하게 될 줄은.
또한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백수룡이 북해빙궁과 인연을 맺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는 말이다.
백수룡은 이마를 긁으며 물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저는 애초에 북해빙궁의 사람이 아닌 외인인데, 궁주가 되는 게 가능합니까? 빙궁은 폐쇄적인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서리애가 흐리게 웃으며 대답했다.
“북해의 혹독한 환경은 북해빙궁을 핏줄이 아닌, 실력으로 계승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궁주의 핏줄이 다음 대까지 이어진 경우가 오히려 드뭅니다.”
북해빙궁이 다음 대 궁주를 선출하는 방식은 중원의 문파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모아 함께 빙백신공의 초반부를 익히게 하고, 경쟁을 통해 뛰어난 아이들을 선별합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가장 뛰어난 한 명이 소궁주가 됩니다.”
그 후, 소궁주는 궁주에게서 완전한 빙백신공을 전수받는다.
“빙월신녀께서는 빙궁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자질로 소궁주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가 지나기도 전에 빙백신공을 대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빙월신녀는 기존의 빙백신공을 더 뛰어난 무공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백수룡뿐이지만 말이다.
“……저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질이 부족해 빙백신공의 전반부밖에 익히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중원에서 빙공의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서리애는 백수룡을 바라봤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천하십대고수 소리를 들을 만큼 고강한 무인.
북해빙궁의 궁주에게 도전할 자격은 충분했다.
“물론 선택은 선생님의 몫입니다. 저는 그저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
백수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북해빙궁(北海氷宮).
구파일방에 못지않은 강력한 새외무림(塞外武林) 단체.
그러나 북해빙궁의 궁주라는 지위가 다른 사람에겐 매력적일지 몰라도, 백수룡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질색이었다.
‘……감투라면 이제 질렸다고.’
하지만 궁주가 되는 것까진 아니어도, 빙궁과 협력관계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훗날 혈교와의 전쟁에서 흘릴 피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빙궁도 알아야 해. 은사부가 왜 갑자기 실종됐는지, 어째서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소궁주를 잃고 내전을 벌이게 됐는지.’
비록 은사부가 빙궁에서의 삶을 싫어했다지만, 그녀가 건재했다면 빙궁의 다음 대 후계자 다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빙궁이 내전을 벌이게 된 이유도 혈교에 있는 셈이었다.
‘가장 먼저 빙궁에 가 봐야겠군.’
전생의 네 사부의 유언을 전달하고, 그들의 유품을 수습하는 것.
애초에 그것이 백수룡의 이번 방학의 가장 중요한 계획이었다.
다만 어디부터 갈지가 고민이었는데, 서리애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다.
“빙궁에는 그냥 가면 되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 서리에는 품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빙궁에만 전해지는 길을 그려 둔 지도입니다. 중원에 알려진 길로 가는 것보다 두 배는 빠르게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백수룡에게 지도를 건네는 서리애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선생님이 빙백환을 가지고 빙궁에 도착하면, 내 임무도 비로소 끝나는 거구나.’
오래전에 내팽개친 임무를 이런 식으로 완수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서리애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의 복잡한 표정을 지켜보던 백수룡이 불쑥 말했다.
“이게 빙백환입니다.”
그는 왼쪽 소매를 걷어 서리애에게 빙백환을 보여 주었다.
평소에는 투명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팔찌였지만, 빙백신공을 운기하자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아아…….”
서리애는 홀린 듯이 빙백환을 바라봤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영롱한 빛과 정순한 냉기에 그대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잃어버린 빙백신궁의 신물이 이곳에 있었다.
한동안 홀린 듯이 빙백환을 바라보던 서리애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선생님. 빙백환은 두 개가 한 쌍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하나는 저한테 없습니다.”
순간 서리애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였다.
“하, 한 쌍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의미는 충분히 있겠지만…….”
북해빙궁의 신물이 갖는 권위가 크게 손상될 것이다.
어쩌면, 백수룡이 빙월신녀의 전인이라는 사실을 의심받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문제없다며 웃었다.
“마침 방학이라 남은 한쪽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찾은 후에 빙궁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크게 안도하는 서리애를 보며, 백수룡은 뒷말을 삼켰다.
‘지금도 그곳에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상하게 남은 한쪽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라도 기다려 줄 사람이야.
단순히 은사부에 대한 믿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쁘실 텐데 오랜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서리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수룡도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났다.
“어머님.”
서리애가 대문 밖으로 나가기 직전, 백수룡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라 그녀를 불렀다.
“예?”
“저는 북해빙궁의 궁주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빙월신녀의 진전을 이었고, 빙백환까지 찾아와 준다면, 북해빙궁이 저를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수십 년 동안 못 찾았던 신물을 찾아 주셨으니, 마땅히 빙궁의 큰 은인으로 대접할 겁니다.”
“그런 은인이 부탁하면, 옛날에 죄를 짓고 도망친 궁도의 사면도 가능합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예를 들면, 중원의 남자와 정분이 나서 도망친 어떤 여인의 죄를 사면해 준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
서리애는 백수룡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설마…….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서, 선생님. 저는 무언가를 바라고 온 게 아닙니다. 그저 저희 아들을 도와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압니다. 그냥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백수룡이 웃었다. 보기 드문 담백하고 진지한 웃음이었다.
“북해빙궁의 추격자가 언제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루하루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사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났어도,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셨을 리 없죠.”
“…….”
“그런 상황에서 혼자 아들을 반듯하게 키운 것.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확언은 못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북해빙궁이 어머님을 공식적으로 사면해 드리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뚝.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죽은 이후로 한 번도 흘린 적 없는 눈물이었다.
당황한 서리애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만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제게…….”
백수룡은 말없이 미소지었다.
‘은사부와 겹쳐 보여서.’
빙월신녀 은예린은 끝내 헤어진 정인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천빙모 서리애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
백수룡의 눈에는 두 사람이 겹쳐 보였다.
끝내 은사부는 돕지 못했지만, 서리애라면 도울 수 있을 듯했다.
“대신,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제 제자들 중에 여민이라고 있습니다. 빙백신공을 가르쳤는데, 아직 수위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괜찮으시면 방학 동안 틈틈이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빙공의 고수는 무척 귀하다.
서리애가 백수룡보다 경지는 낮아도, 훨씬 더 오랜 시간 빙공을 익힌 만큼, 여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방백현 같은 기재를 훌륭하게 키워 낸 여인이었다. 잘 가르칠 거란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익히고 있는 무공이 문제였다.
“일단 어머님이 익히신 빙백신공을 좀 손봐야겠군요.”
“네?”
“완전하지 않은 거라면서요. 제대로 된 걸 알아야 제대로 가르치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서리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에게 완전한 빙백신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하, 하지만 그건 궁주에게만 전해지는…….”
“파문된 거나 다름없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리고 다 가르쳐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르쳐 드릴 거에요.”
“그래도…….”
백수룡은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한 그가 서리애를 재촉했다.
“오늘 안에 다 가르치려면 시간이 촉박합니다. 저 방에 가면 남는 무복이 있으니까,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오세요.”
“네, 네?”
“어허!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입니다! 실시!”
“시, 실시!”
생각지도 못한 기연에, 서리애는 허둥지둥 방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