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7
296화. 다녀오너라
“이만하면 그럭저럭 기초는 알려 드린 것 같군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서리애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두 손으로 짚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백수룡은 그녀에게 단순히 빙백신공의 후반부 구결만 알려 주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절정고수쯤 되면 나름의 무공관이 생깁니다. 같은 무공을 익히더라도, 그걸 자신에게 맞도록 개량하고 발전시키죠.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싸워 보는 게 최선입니다.”
……라는 이유로 시작된 대련.
주화입마를 겪은 서리애에게 맞춰서 상당히 봐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백수룡이 살살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쩌적! 쩌저저적-!
연무장 주위로 얼음이 얼어붙었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했다.
나이가 많다고, 학부모라고 봐주지 않았다.
백수룡은 그 어떤 학생도 평등하게 가르쳤고, 또한 평등하게 갈궜다.
“서리애 학생. 마흔이 넘도록 익힌 빙공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아니면 본 교관이 우습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잘 안 됩니까?”
“……아닙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아닙니다아!! 다시 해 보겠습니다아!!!”
그렇게 초죽음이 될 때까지 대련을 하고, 이후에 빙백신공의 후반부 구결 전수와 초식 시범이 이어졌다.
‘이게 빙백신공의 후반부……!’
그러나 천하제일의 빙공을 배운다는 사실에 기뻐한 것도 잠시, 백수룡은 서리애가 무언가 실수를 하거나 틀리면 여지없이 갈구기 시작했다.
“서리애 학생. 구결 똑바로 안 외웁니까? 그리고 교정해 준 동작은 왜 자꾸 틀립니까. 지금 저한테 반항합니까?”
“아닙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한 번만 더 틀리면 본 교관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애초에 죄송할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모든 대답은 악으로 한다. 알겠나?”
“아악!”
……그야말로 악몽 같았던 하루.
과거 빙궁의 추격자들을 피해 사흘 밤낮으로 도망친 경험이 없었다면, 서리애는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버텼어!’
엄청난 성취감에 서리애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도 꼭 백수룡 선생님에게 배우게 하고 싶었다.
이 정도 갈굼을 당해 보면 앞으로 그 어떤 사회생활도 잘 견뎌 낼 텐데……. 얄밉게도 아들은 혼자 무림맹으로 가 버렸다.
“아쉬워…….”
그 중얼거림을 들은 백수룡이 작은 오해를 했다.
“혹시 수업이 부족했습니까? 조금 더 할까요?”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진심입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에 존경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힘든 건 힘든 거고,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서리애는 백수룡의 가르치는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선생님보다 뛰어나.’
그녀는 아들을 무림맹주로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과외 선생님을 수소문해 본 경험이 있었다.
직접 수업에 참관해 본 경험도 여러 번.
그중에는 오대학관에서 은퇴한 일타강사도 있었지만, 백수룡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힘들었지만, 진심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배운 학생들의 실력이 모두 일취월장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다 어머님이 잘 따라와 주신 덕분입니다.”
놀라기는 백수룡도 마찬가지였다.
가르칠 시간이 하루밖에 없어서 무리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였는데, 서리애는 곧장 진도를 따라왔다.
‘확실히 기본기가 튼튼해서 그런지 습득이 빨라. 머리도 좋고, 생각보다 자질도 뛰어나고…….’
간혹 재능이 남들보다 늦게 꽃피는 경우가 있는데, 서리애가 그런 경우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허락된 빙백신공의 전반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의 방식대로 발전시켰다.
여기에 오늘 백수룡이 가르쳐 준 것을 잘 소화해 낸다면, 훗날 초절정의 경지까지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여민에게도 큰 자극이 되겠지.’
백수룡과 구음마녀 외에는 제대로 된 빙공의 고수를 만나 본 적이 없는 여민이었다.
앞으로 서리애가 그녀를 지도해 준다면, 여민의 성취에도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가 없는 동안, 여민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선생님께 배운 그대로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독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는 서리애를 보니, 방학 동안 여민의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백수룡은 흐뭇하게 웃었다.
‘흐물흐물하게 가르치는 것보다 백배는 낫지.’
하지만 백수룡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훗날 빙공 수업의 일타강사, 한천빙모 서리애의 인생 2막이 시작되는 계기가 바로 오늘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 *
이른 새벽, 도시 외곽.
백수룡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춘 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낯익은 얼굴들.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곽두용까지.
함께 남궁세가 신입강사 연수에 다녀온 신입강사 동기들이었다.
악연호가 빠른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제 술자리에는 왜 안나오셨어요? 방학 전에 동기들끼리 가지는 마지막 술자리였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가지고.”
“늦게라도 오실 줄 알고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고요.”
“나 기다린다는 핑계로 진탕 퍼마신 건 아니고?”
“흠흠!”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었다. 백수룡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악연호가 헛기침을 했다.
피식 웃은 백수룡이 물었다.
“넌 이번에 세가에 다녀온다고 했지?”
“……예. 가주님께 창술 지도를 부탁드려 보려고요.”
악연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잊어버리긴 하지만, 악연호는 명문세가로 이름 높은 산동악가 출신이었다.
산동악가의 가주는 창왕 악비.
무림십존의 일원으로,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창술의 달인이었다. 악연호에게는 당숙 어른이었다.
문득 악연호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린 백수룡이 물었다.
“너희 아버지가 정혼자 구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하하. 인연 찾는 게 쉽나요. 그리고 방학에 잠깐 돌아온 건데 설마 내쫓기야 하겠어요?”
악연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딘가 변명처럼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백수룡은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정혼자를 찾으러 왔다는 말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으니까.’
겉과 속이 똑같아 보이는 이 녀석도, 말 못할 사연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백수룡은 굳이 그것을 캘 생각은 없었다.
“사실 요즘 위기감을 느끼고 있거든요.”
“위기감?”
“형님은 못 따라가도, 애들한테까지 따라잡힐 순 없잖아요?”
백수룡은 악연호가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에 조금 놀랐다.
재능은 출중하지만, 매사에 진지한 모습이 조금 부족한 녀석이었다.
늘 그게 아쉬웠는데, 지금의 악연호에게는 단단한 각오가 느껴졌다.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기대하고 있으마.”
“예!”
“저도 이 녀석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명일오가 악연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산동악가와 명가장은 같은 지역에 있었고, 어느 정도 교분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창왕에게 함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해 볼 거라고 했다.
“창왕께서 승낙해 주실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내 이름이라도 팔아서 부탁해 봐. 혹시 모르잖아.”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돕고 살아야지.”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대로 두면 명일오가 절이라도 할 기세였기에, 백수룡은 됐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제갈소영에게 물었다.
“남궁수는 같이 안 왔어?”
“집에 들러서 미아랑 같이 오실 거예요.”
백수룡은 남궁수, 제갈소영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두 사람은 호북이 목적지였고, 백수룡은 호북을 거쳐서 섬서로 향할 생각이었다.
중간까지 동선이 겹치기에, 호북까지는 그들과 동행할 계획이었다.
‘남궁수하고는 가면서 할 이야기가 많지.’
대부분 일 이야기였다.
학생들 문제, 이학기 강의 계획, 본격적인 천무제 준비 등등.
그리고 남궁수의 무공에 대해서도,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말해 볼 생각이었다.
‘그 자존심 강한 녀석이라면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게 뻔하니까.’
백수룡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흠흠. 나는 말이지. 학관에 남아서 부관주님에게 도법을 지도받기로 했다. 천무제 준비를 위해 방학도 기꺼이 반납하기로……. 어이! 내 말 듣고 있냐?!”
“할아버님!”
백수룡은 곽두용을 휙 지나쳐,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매극렴을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아직 안 떠났구나.”
매극렴의 양손에는 짐보따리가 한가득이었다.
“먹을 것 좀 챙겼다. 가면서 먹거라.”
“뭘 이런 걸 다…….”
백수룡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멋쩍게 웃었다.
전날에 서리애를 가르치느라 밤 늦게 짧게 인사만 하고 왔는데, 어느새 이런 것들을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백수룡은 매극렴이 건넨 보따리를 받아 들며 씩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건 갈아입을 내의와 버선이다. 여름이니 자주 갈아입도록 하거라.”
“예? 아……. 감사합니다.”
“금창약과 상비약도 가져왔으니 받고.”
“그건 저도 있는데요?”
“의원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받아왔다. 이걸로 가져가거라.”
“……넵.”
“그리고 이건 보약이다. 먼 길을 다니면 원기가 상할 터, 아침저녁으로 식후 두 번씩 챙겨 먹으면 된다.”
“하, 할아버님…….”
할아버지가 뭘 자꾸 준다.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는 내리사랑에, 백수룡은 점점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괴상한 얼굴이 되었다.
“이렇게 많이는 못 가져갈 것 같은데요?”
“가지고 있으면 다 쓸 곳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어차피 말에 싣고 갈 것이 아니냐.”
“…….”
결국 백수룡은 매극렴이 바리바리 싸 준 물건을 모두 말에 실었다. 비싸게 구한 준마가 잠시 휘청였다.
“수룡아.”
“예.”
매극렴이 손자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네 얼굴이 애비를 닮아 무림의 큰 우환이 될 법하다. 여인들 앞에서 특히 언행을 조심해야 하느니라.”
“…….”
이것은 칭찬인가 욕인가.
백수룡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대답할 말을 찾아냈다.
“할아버님. 저 스물여덟입니다. 잘 처신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생의 나이까지 합하면, 매극렴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극렴의 눈에는 하나뿐인 손자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남궁세가에서도 큰 일을 겪지 않았던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매극렴은 심장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모른다.
매극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명성이 갑자기 커졌으니, 그것을 노리고 덤벼드는 불나방이 많을 것이다. 거듭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매극렴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백수룡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되었다. 잔소리는 이제 그만하마.”
마침 그때, 저편에서 남궁수가 말을 타고 등장했다. 자신의 앞에 남궁미를 앉힌 채였다.
매극렴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남궁수가 다른 강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모였나?”
““예.””
“그럼 가지.”
강사들은 각자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관도가 끝나는 큰 길까지는 다 함께 갈 생각이었다.
말에 올라탄 백수룡이 매극렴에게 말했다.
“할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랴아!”
매극렴은 백수룡과 다른 강사들의 모습이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늙은이의 괜한 주책이지.”
염려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매극렴은 장성한 손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믿고 있었다.
저 나이에 이미 무림십존이 된,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손자가 아닌가?
밖에 나가서 또 어떤 일을 벌이려는지 모르지만, 또 한 번 무림을 놀라게 할 것이 분명했다.
노인의 주름진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다녀오거라. 이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네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매극렴은 비로소 돌아섰다.
한동안 청룡학관이 조용해지겠지만, 매극렴에게 그것은 익숙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