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13
312화. 어떤 지도를 받길 원하나?
무림맹에서 내어준 백수룡의 방.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기막을 펼친 방 안에서, 두 사람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혈교가 개방의 방주를 공격했고, 그 범인이 무림맹과 관련이 있다고?”
남궁수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방금 전 백수룡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만큼 믿기 힘든 탓이었다.
“잠깐 의식을 차린 방주가 손가락으로 맹(盟)이라고 적었어. 범인이 무림맹에 숨어 있다는 건지, 혈교와 손잡은 배신자를 경고한 건지는 몰라. 나는 거의 후자라고 확신하지만.”
“…….”
“이제 알겠지? 내가 왜 무림맹 정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이 난리를 쳤는지?”
“과연…….”
남궁수는 두 팔이 뒤로 묶이고 내공까지 쓸 수 없게 된 백수룡을 빤히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렇게 무모하고 멍청하게 굴었던 거였군.”
백수룡은 미간을 좁히고 남궁수를 노려봤다.
“무모하고 멍청한 게 아니라 다 작전이었지, 작전.”
“그래서 흉수는 찾았나?”
“아직.”
백수룡은 오늘 만났던 사람들,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무림맹 안에 혈교 무공을 익힌 놈은 없었어.”
“……그렇게 잠입이 쉬웠으면, 무림맹은 진작 혈교에 의해 무너졌을 거다.”
지금의 무림맹은 그 어느 때보다 혈교를 증오하는 맹주가 권력을 잡고 있다. 세작에 대한 대비를 소홀하게 했을 리 없었다.
백수룡도 그쪽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의심이 가는 건 역시 고위직의 배신이었다.
“일단 의천단주와 멸사단주가 가장 의심스럽긴 해. 맹주가 없을 때 뭔가 일을 벌일 수 있는 자들이니까.”
“……멸사단주는 왜?”
남궁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본 멸사단주는 백수룡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던 데다, 의심할 만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의천단주라면, 남궁수가 보기에도 백수룡에게 강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물론 백수룡도 도발을 하긴 했지만, 의천단주의 언행은 무림의 까마득한 후배에게 하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멸사단주가 마공을 익혔어.”
“……뭐?”
백수룡은 멸사단주가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류설이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그건 무림맹에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지, 남궁수에게까지 비밀로 할 이유는 없었다. 남궁수가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 위인도 아니고.
“마공이라니……. 알려지면 무림맹이 뒤집어지겠군.”
“너 오기 전에 잠깐 대화를 나눠 봤는데,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자기 친부를 죽인 사내를 따라서 무림맹에 투신한 여자였다. 겉보기와 달리 마음 깊은 곳에 독심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류설이 마공을 숨기고 있다는 말은, 마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오단의 단주 자리에 오를 만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만약 마공까지 사용한다면……. 백수룡은 류설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역천신공을 못 쓰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남궁수가 말했다.
“뒤에서 계략을 꾸밀 성격처럼 보이진 않던데. 그 모습이 전부 연기일 수도 있다는 건가?”
“우리가 본 모습이 원래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쩌면 인격이 여럿이거나.”
“…….”
마공을 익혔다고 반드시 마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마공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존재한다.
멸사단주가 보여 준 모습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감쪽같은 연기일 수도 있다. 또는 마공의 부작용으로 그녀에게 여러 개의 인격이 존재할 수도 있다.
남궁세가에서 마주했던 만박자 역시 금제를 걸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으니까.
백수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둘 외에는?”
“다른 오단의 단주와 부단주들, 넓게 보면 대주들도 용의자가 될 수 있겠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수룡은 용의자를 거의 셋으로 좁힌 상태였다.
의천단주 진광.
멸사단주 류설.
그리고 멸사단의 부단주 모용준.
다른 오단의 단주들은 무림맹을 비운 지 최소 몇 주는 넘었다. 방주가 공격당한 일과 연관 짓기엔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다.
“독마의 생사독이 사용됐어. 혈교에서는 장로급이 움직였다고 봐야 해. 공범 없이 혼자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말이 안 돼. 배신자는 분명 무림맹 내부에 있어.”
따라서 유력한 용의자는 의천단주 진광, 멸사단주 류설, 멸사단 부단주 모용준이었다.
“모용준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같더군.”
남궁수는 낮에 본 모용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오단의 부단주라면 분명 뛰어난 고수일 텐데도 불구하고, 모용준은 인상이 뚜렷하지 않고 흐릿한 느낌이었다.
워낙 개성이 강한 단주 옆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모용준 본인의 실력과 존재감을 능숙하게 감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 생각엔.”
백수룡은 자신이 지금까지 추측한 내용을 남궁수에게 공유했다.
“배신자는 맹주가 없는 틈에 혈교와 손을 잡고 뭔가를 꾸미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개방 방주가 냄새를 맡은 거지.”
남궁수가 말을 받았다.
“배신자는 그 사실을 눈치챘고, 정체가 들키기 전에 혈교에 방주를 죽여 달라고 요청했겠군.”
“그런데 일이 틀어졌어. 방주가 살아서 도망친 거야. 생사독에 중독당했으니 거의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겠지. 그 상황에서 네가 무림맹에 나타난 거로군. 청룡신협. 이미 한번 혈교의 음모를 막아 낸…….”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추리를 이어 나갔다.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머금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흑막 같았다.
“놈들은 지금 내가 굉장히 거슬리겠지?”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을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데 마침 내가 두 손이 묶이고, 산공독까지 먹었다는 걸 안다면? 그 기간이 사나흘뿐이라면?”
씨익.
남궁수는 오싹할 정도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반드시 죽여야겠군.”
“…….”
‘사실은 이 자식이 가장 위험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백수룡이 움찔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남궁수에게 백수룡은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죽일 놈의 은인이었으니까.
“흠흠. 아무튼, 우리는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야 해. 최악의 경우엔, 남궁세가에서 있었던 일이 반복될지도 몰라.”
“……있어선 안 될 일이지.”
남궁세가가 겪은 일을 떠올린 남궁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이야기는 이제 다 했다. 백수룡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미끼는 던졌으니까, 내일 함께 돌아다니면서 반응을 보자고. 오늘은 이만 쉬고.”
“……알겠다.”
남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나니, 팔 뒤로 수갑을 채운 것이 조금 미안했다.
‘숨어 있는 적을 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다니.’
자신의 역할은 이 녀석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 지금껏 받은 은혜를 일부나마 갚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에는 꼭.’
남궁수는 조용히 주먹을 쥐며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옆방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기척을 내도록.”
“부르면 바로 튀어와. 알다시피 팔도 뒤로 묶이고 내공도 못 쓰는 몸이거든.”
“……그러지.”
백수룡은 사실은 산공독에 당하지 않았다는 걸 남궁수에게 말하지 않았다.
‘병법에도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잖아?’
절대로, 남궁수를 고생시킬 목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주변 경계는 남궁수에게 맡기고, 백수룡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 * *
다음 날.
백수룡은 남궁수와 함께 무림맹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명목은 무인들의 훈련 상태 점검이었다.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총사범의 모습은 무림맹의 무인들에게도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정문을 부순 죄로 수갑을 찼다면서?”
“사흘 뒤에 징벌위원회가 열린다던데.”
“산공독도 스스로 삼켰다더군.”
“허! 십존의 말석이라더니, 간도 범인과 비교할 수 없이 큰가 보군.”
“원래 절세고수들은 하나같이 오만이 하늘을 찌르지 않나.”
지나는 길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백수룡은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우선 의천단이 훈련하는 모습을 살펴보러 갔다.
““하아압!””
동시에 기합을 내지르며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이는 의천단 소속의 무인들. 바닥을 딛는 발은 단단했고, 바람을 찢는 무기에 실린 힘은 호쾌했다.
“한 명 한 명의 훈련 상태가 상당히 좋네.”
백수룡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나로 움직이는 진형의 위력이 상당했다.
청룡학관 학생들과 비교하기에는 미안할 만큼 수준이 높았다.
단상 위에서 직접 훈련을 지도하는 의천단주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백수룡과 눈이 마주쳤으나, 전날 약속한 대로 백수룡이 훈련을 구경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무시했다.
“딱히 수상한 점은 안 보이지?”
“전혀.”
남궁수도 고개를 저었다. 기감을 활짝 열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으나, 별달리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때, 커다란 짐 마차 수십 대가 정문을 통과해 의천단 건물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천하상단?”
선두의 마차에 천하상단(天下商團)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천하상단은 천하십대상단 중 하나로, 의천단주 진광은 현 천하상단주의 동생이기도 했다.
백수룡은 천하상단의 마차와 그 곁을 지키는 표사들, 뒤따르는 쟁자수들까지 면밀히 살폈다.
잠시 후,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요즘은 쟁자수들에게도 무공을 가르치나?”
혼잣말이었는데,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천하상단의 쟁자수들은 다른 곳에 가면 표사로 대우받을 만큼 뛰어나지.”
언제 왔는지, 의천단주가 옆에서 잘난 척 으스대며 말했다.
“뭐지? 나한테 신경 끄라고 했을 텐데?”
“병장기를 실은 마차는 이쪽으로 가져오게!”
의천단주는 백수룡을 지나쳐 짐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뭐야?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의천단주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어이가 없네.”
마음 같아선 저 짐 마차 안까지 뒤져 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이렇게 많아서야 그럴 수 없었다.
훈련 구경도 충분히 했다. 백수룡이 남궁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봤으니 가자. 멸사단 훈련하는 것도 살펴봐야…….”
“총사범님! 한 수 지도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두 사람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삼십 대 초반쯤 되었을 법한 청년이 백수룡에게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평소 청룡신협의 명성을 흠모해 왔습니다. 한 수 지도해 주신다면 큰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청년 주변의 무인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의천단주도 말리지 않았다. 말리기는커녕, 백수룡의 곤란한 모습을 보고 싶은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청년의 태도는 몹시 정중했다.
하지만 지금 백수룡은 팔이 뒤로 묶여 있었고, 내공조차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총사범은 화를 낼까?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거절할까?
모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볼 때였다.
“그럴까?”
백수룡이 씩 웃더니 상대를 향해 걸어갔다.
남궁수가 짙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어느새 청년 앞에 선 백수룡이 물었다.
“소속과 이름.”
“……의천단 제오대 대주, 장곤입니다.”
장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본 총사범에게 어떤 지도를 받길 원하지?”
“아, 그게 음…….”
장곤은 단순히 총사범을 곤란하게 할 생각이었지, 실제로 무공을 지도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대련을 하지. 나도 자네의 수준을 알아야 맞춤 지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하.”
대련?
장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 꼴로 날 이기겠다고?’
팔은 뒤로 묶여서 수갑이 채워졌고, 산공독 때문에 내공도 전혀 쓰지 못한다고 들었다.
아무리 청룡신협이 뛰어난 고수라 해도, 저런 상태라면 실력의 일 할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진심이십니까?”
“자네에게 너무 불리하다고 생각하나? 그럼 내 옷깃만 베어도 이긴 것으로 해 주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
장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의천단에서 가장 최근에 대주가 된 혈기 넘치는 무인이었다.
실력에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의 성공가도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굳이 청룡신협을 도발한 이유는 선배 대주들의 부추김이 절반, 의천단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절반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
“장난도 적당히 하시는 게…….”
그 순간, 백수룡이 정색했다.
“내게 지도를 부탁한다고 한 말이 장난이었다고? 그렇다면 상관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겠군.”
“……아닙니다.”
장곤은 청룡신협에게 단단히 망신을 주기로 결심했다. 저 곱상한 얼굴을 흙바닥에 처박고야 말리라.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해.”
그 순간, 장곤은 벼락처럼 칼을 뽑아 휘둘렀다.
휘익!
백수룡은 상체를 뒤로 젖히는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눕혀 칼을 피했다. 뒷짐을 진 채였음에도 그의 몸은 유연하고 탄력이 넘쳤다.
“하압!”
장곤은 도중에 칼의 궤도를 꺾어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러나 그의 칼은 이번에도 허공을 베었다.
휘리릭!
백수룡은 뒤로 반쯤 누운 상태에서 몸을 회전시켜 칼을 피했다. 기예와 같은 회피 동작 이후 땅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휙 떠올라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선 후, 사뿐히 내려섰다.
툭.
정확히 상대의 칼끝 위에.
“무, 무슨…….”
백수룡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오연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장곤이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가르침을 내리지.”
무림맹 총사범의 지도대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