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8
357화. 곱게 죽지 못할 테니까
“놈과 눈을 마주치지 마라! 괴이한 사술을 쓴다!”
백수룡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설가의 무인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제법 눈썰미가 좋은 자였다.
“사술?”
백수룡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사술 따위가 아니다. 거역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저절로 몸이 굳어 버리는 것일 뿐.
까앙!
처음으로 검이 막혔으나, 백수룡은 개의치 않았다.
저들이 역천신공에 저항한다 해도, 그의 무공은 적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놈! 더 이상 멋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다!”
백수룡은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상대의 검을 위로 쳐올렸다. 당황하는 상대의 얼굴이 보였다. 몸이 굳을까 봐 감히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면서, 허겁지겁 물러나며 마구 검을 휘두른다.
백수룡이 그런 느린 공격에 맞을 리 없었다.
휘익!
검날이 옆 엎굴을 스친다. 백수룡은 상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룡신검이 만들어 낸 은빛 궤적이 상대의 가슴을 갈랐다.
“안, 돼……!”
상대의 눈은 겨우 그 궤적을 쫓았으나, 몸은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푸화아악!
고꾸라지는 적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러나 전신에 냉기를 두른 덕에, 백수룡의 몸에 닿는 피는 없었다.
후두둑…….
후두둑…….
허공에서 얼어붙은 핏물이 붉은 얼음 조각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진다.
백수룡은 무심한 얼굴로 다음 상대를 찾아 몸을 돌렸다. 설가의 무인들이 눈에 독기를 품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놈! 무후께서 거둬 준 은혜도 모르고!”
“가문을 배신한단 말이냐!”
“설신우의 자식이라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거늘!”
저들은 여전히 백수룡을 설룡휘라고 믿고 있었다. 백수룡은 굳이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
은사부는 과거를 잊고 현재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노력해 본다고 했지, 반드시 그렇게 할 거란 약속은 안 했잖소.’
은사부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 대가로 권세를 누려온 자들이다. 백수룡의 검은 그들에게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창룡신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비명이 터지고, 팔다리가 분리된다. 백수룡에겐 그 소리가 감미롭게 들렸다.
어느새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두 눈에는 혈광이 어린다. 무아지경에 빠져 적들을 난도질했다. 발밑에 피 웅덩이가 고여 철벅거렸다.
[진정하거라!]창룡신검의 현기가 담긴 일성(一聲)이 아니었다면, 한참은 더 핏빛 검무를 추었을 것이다.
“……후우.”
우뚝 멈춰선 백수룡은 검을 내렸다. 겁에 질린 설가의 무인들이 한군데에 뭉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괴, 괴물…….”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백수룡은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 돌아섰다. 흥분이 조금 과했다. 은사부의 진짜 원수는 저들이 아닌 것을.
“대장로. 나머지는 맡기겠소.”
부상자들을 수습한 한송백이 무인들을 이끌고 다시 싸움에 참여했다.
“혈교와 붙어먹은 반역자들을 처단하라!”
백수룡의 뒤에서 한송백과 그를 따르는 무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설가의 무인들이 마공을 사용하는 모습까지 보았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의 손속에도 망설임이 완전히 사라졌다.
“……끝났군.”
상황이 대충 정리되는 모습을 보며 백수룡은 검에 맺힌 핏물을 바닥에 털어냈다. 한송백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부 죽이지는 마시오. 설가가 마공을 익혔다는 증거가 필요하니까. 나중에 심문도 해야 하고.] [걱정 말게.]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송백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반역도들은 무릎을 꿇어라!”
설가의 원로들이 하나둘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다.
이미 승부가 완전히 기운 싸움이었다.
극렬하게 저항하던 대부분이 백수룡에게 죽었고, 그 외 잔당들은 빙궁의 무인들이 처리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죽음 아니면 항복뿐이었다.
“모두 포박하라!”
한송백이 포로들을 포박하는 동안,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눈보라 속에서 충돌하는 두 절세고수를 바라봤다.
콰콰콰콰콰콰!
저곳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 주는 신위는, 중원에서 십존이라 추앙받는 무인들에 비해서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넓은 궁주전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한 번씩 눈보라를 뚫고 튀어나오는 강기의 파편이 할퀴고 간 영향이었다. 천장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쿠구구궁……!
이미 궁주전에서 벌어진 싸움이 바깥에도 알려졌을 것이다. 실제로 문밖에선 몰려온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백수룡은 한송백에게 가서 말했다.
“대장로는 이제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수습해 주시오.”
엄청난 반발이 따르겠지만, 설가의 수뇌부가 모조리 죽거나 포박당했으니, 무력을 동원하면 큰 어려움 없이 수습이 가능할 것이다.
한송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은휘령이 걱정되는지, 그의 시선이 연신 눈보라 속을 향했다.
“궁주님은…….”
은휘령은 자신이 직접 설수련을 처단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돕고 싶다고 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저 눈보라 속에서 제대로 싸울 수는 있겠소?”
“……힘들겠지.”
한송백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극에 이른 빙백신공과 빙백신공이 부딪쳐 거대한 상승작용을 만들어 낸 것이 저 눈보라였다.
‘완전한 빙백신공을 익혔다면 모를까. 빙공의 고수들도 저 안에서는 반 각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버티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었다.
현실을 인정한 한송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백수룡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할 것인가?”
“나는 여기 남겠소.”
한송백은 설룡휘가 얼마나 고수인지 알고 있었다.
북해빙궁에서 설룡휘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은휘령과 한송백뿐이었다.
‘청룡신협이라 했지.’
중원에서 수천 리나 떨어진 북해에는 중원의 고수들에 대한 소문이 잘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룡신협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다.
현 중원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고수.
젊은 나이에 그 말석에 이름을 올렸고, 혈교의 주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명성을 높여 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가 사실은 빙월신녀의 후계자이며, 빙백신공을 익혔을 줄이야.
‘예린. 너는 대단한 제자를 남겼구나.’
그는 옛 친우의 제자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궁주를 부탁하네.”
잠시 후, 한송백을 필두로 북해의 무인들, 포로가 된 설가의 무인들 모두가 궁주전을 빠져나갔다.
문밖에서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한송백의 호통에 빠르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네가 설득한다면 설가의 반발이 훨씬 적을 텐데.]창룡신검의 물음에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이야 그렇겠지만, 설룡휘가 가짜라는 건 결국 모두에게 알려질 거야.’
나중에 또 큰 혼란을 겪느니, 처음부터 제대로 수습하는 것이 낫다. 이제부터는 북해빙궁의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저쪽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설수련과 은휘령의 싸움은 점점 흉험해지고 있었다.
눈보라가 점점 거세져, 이제는 혈마안으로도 두 사람의 형체만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수련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확실해.”
설수련의 무공을 보면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설수련의 움직임에 ‘신월빙백무’가 녹아 있다는 것을.
까득…….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른다. 혈교에 남긴 빙백신공을 혈교가 설수련에게 공유했는지, 아니면 실험체들이 익힌 무공을 보고 스스로 깨우친 것인지.
“……은사부를 혈교에 팔아넘겼으면서, 은사부가 남긴 무공을 배웠다 이거지?”
설수련은 애초에 제대로 된 빙백신공을 익혔을 테니, 부작용 없이 신월빙백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완전한 신월빙백무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궁주의 손에 죽는 게 좋을 거야. 내 차례까지 오게 되면.”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감정이 가라앉는 것일까.
백수룡은 검파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설수련을 노려봤다.
“곱게 죽지 못할 테니까.”
* * *
콰콰콰콰콰콰!
광풍이 몰아친다. 사방으로 휘날리는 눈발은 하나하나가 암기에 가까웠다. 천 년을 버텨 온 바위라 해도 이 안에서는 잘게 분해될 터였다.
“신물의 힘을 빌려도 고작 이 정도더냐?”
“노괴야. 오만을 떨기에는 네 행색이 초라하다.”
설수련과 은휘령.
두 사람의 옷은 넝마가 된 지 오래였다. 두툼한 털옷과 화려한 궁장은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찢기고 베인 상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얼어붙은 핏자국이 문신처럼 남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백색 안광을 폭사시키며, 눈보라의 중심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며 연신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천신들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눈보라 속에서 백색의 강기가 충돌할 때마다 천둥이 울렸다. 충돌 지점마다 용오름이 생겨나 수십 개의 소용돌이가 두 사람을 둘러쌌다.
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초고수들의 영역.
오랜 시간 서로에게 살기를 키워 온 두 사람은 생사결 내내 설전을 멈추지 않았다.
“은가 아해야. 기물의 도움을 받아 내게 대적하는 네 모습이 하찮구나.”
“설가의 노괴만 할까. 네가 끼니때마다 챙겨 먹은 영약으로 이 안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텐데.”
내공의 절대량과 노련함은 설수련이 앞섰으나, 초식의 정교함과 굳건한 의지는 은휘령이 앞섰다. 북해빙궁의 신물들도 그녀에게 힘을 보탰다.
콰아앙! 콰아앙!
폭음이 울릴 때마다 대기가 요동쳤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지 중 하나가 날아갈 것이다.
“뿌득…….”
설수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낭패감을 느꼈다.
은휘령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강했다. 지금까지 무위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럴 수는 없다.’
게다가 초고수의 이른 기감은 싫어도 주변의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익숙한 기척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설가의 무인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의 다 이루었거늘……!”
설수련의 두 눈에서 실핏줄이 터졌다. 그녀는 지금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북해빙궁의 옥좌가 바로 앞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번 내려왔으나, 자신은 결코 내려왔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영원불변할 설가만의 왕국이!
“설가의 노괴여. 네 망집(妄執)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눈에 피눈물이 흘렀다. 지옥에 가서 그 죗값을 치르도록 하라.”
“닥치거라!”
설수련은 쌍장을 휘두르며 은휘령에게 돌진했다.
정면 대결로는, 은휘령은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휘령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마주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휘청이며 물러서는 은휘령을 설수련이 따라붙으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 순간, 검을 쥐지 않은 은휘령의 왼손 손목에서 빙백환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빙백환은 천하의 어떤 암기보다 날카로웠다.
사악!
빙백환이 설수련의 오른쪽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에 벌어진 일. 은휘령의 승부수였다.
“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졌다.
설수련의 한쪽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녀는 빙백신장을 사방으로 마구 펼치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눈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상처로 막대한 냉기가 스며들어 시신경을 파괴하고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상까지 입히는 치명적인 한 수였다.
“끄아아악! 이 찢어 죽일 은가의 계집이!”
괴성을 지르는 설수련을 향해, 은휘령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녀 또한 내상이 적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 죄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유언 정도는 남기도록 해 주겠다.”
“이 건방진 것이……!”
푸화아아악!
설수련의 무복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해진 공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오냐. 네 목을 들고 은가로 직접 찾아가마.”
설수련은 거슬리는 오른쪽 눈알을 스스로 뽑아 버렸다. 그러곤 히죽 웃었다. 산발이 된 머리가 허공에 미친 듯이 나부꼈다.
“육십 년 전에 씨를 말려 버렸어야 했거늘……. 오늘이라도 그리해야겠다.”
“아직도 이런 힘이…….”
그 모습을 본 은휘령이 눈을 부릅떴다. 상식을 벗어난 일. 설수련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야 정상이었다.
설마?
“북해빙궁의 궁주였던 자가 마공을 익혔단 말인가? 정녕 자존심마저 버렸는가!”
“……건방지게, 누구에게 훈계를 하는 것이냐.”
삽시간에 짓쳐든 설수련의 일장이 은휘령의 심장을 노렸다.
은휘령은 빙백신검을 들어 급히 막았으나, 막대한 공력이 담긴 일격을 제대로 막아 내진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십 장을 넘게 튕겨 날아간 은휘령은 벽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울컥 피를 토했다.
“커헉…….”
눈보라가 서서히 그치고, 머리가 산발이 된 설수련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스스로 뽑아낸 눈구멍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 내 말을 거역하는 것들을 모두 다 죽이고, 북해의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아니, 이미 늦었어.”
백수룡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를 본 설수련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두 손에 맺힌 백색 수강이 몹시 흉험했다.
“이노옴! 네 정체가 무엇이더냐!”
설룡휘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원래 얼굴로 돌아온 백수룡이 싸늘하게 웃었다.
“잘 들어. 널 지옥으로 보낼 사람은.”
백수룡은 검을 들어 설수련을 겨눴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세가 피어났다.
“빙월신녀 은예린의 제자, 백수룡이다.”
설수련의 하나뿐인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