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9
358화. 해 볼까?
텅 빈 눈구멍에서 흘러내리던 핏물은 순식간에 얼어붙었지만, 그 흔적은 얼굴에 고스란히 남았다.
설수련은 흡사 피에 젖은 마귀의 형상으로 말했다.
“……은예린의 제자라고?”
수십 년 전에 죽은 망령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설수련이 권력을 차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방해물이었던 존재.
경악스러운 재능을 타고났으면서 아무런 야망도 없고, 고작 사내에게 홀려 행복을 찾았다는 서신이나 보내오던 머저리.
그래서 치워 버렸다.
무능한 궁주가 될 것이 뻔한 은예린보다, 자신이 궁주가 되는 것이 북해빙궁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결정이라 여겼으니까.
혈교의 제안이 왔을 때, 설수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붓을 들었다.
「예린. 문득 너의 정인이 몸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이 서신을 써. 내가 아는 사람에게 듣기로, 생사신의의 거처에 대한 풍문이 있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
설수련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헌데.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육십 년의 세월이 지나, 은예린의 제자를 자처하는 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도망친 설가의 핏줄을 연기해 자신을 기만하고, 설가가 수십 년 동안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 자.
놈이 은예린을 언급했다.
설수련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그녀의 전신에서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은예린은 혈교에서 죽었다. 탈출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죽었어. 그런데 어떻게 제자를 키운단 말이냐!”
“……그래. 전부 알고 있었단 말이군.”
백수룡은 서늘하게 웃으며, 검으로 설수련의 미간을 똑바로 겨눴다. 그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가득했다.
“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 없어. 나는 은예린의 제자이며, 스승의 핏값을 받으러 왔다. 설수련.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여 주마.”
그 순간, 돌연 설수련이 광소를 터트렸다.
“아하하하……!”
그녀의 시야에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설가의 원로들.
가문의 수뇌부가 몰살당했다.
수십 년 동안 이룩한 것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지다니.
텅 빈 눈구멍에서 다시금 핏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설수련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년은 죽어서까지 나를 괴롭힌다는 말이구나?”
광기가 골수를 침식한다.
사실, 설수련은 오래전부터 광인이었다.
스스로의 야망에 잡아먹힌 광인.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숨기지 않아도 될 뿐이었다.
츠츠츠츳…….
가라앉았던 눈송이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그쳤던 눈보라가 다시 불기 시작했다. 북해의 삭풍이 칼날처럼 사방을 할퀴어댔다.
“은예린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못해서 아쉬웠거늘, 오늘 그 제자에게 한을 풀어야겠다.”
설수련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빙백신공의 냉기 위로 마공의 마기가 섞여들었다. 혼탁한 잿빛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 모습을 본 창룡신검이 백수룡에게 조심하라며 경고했다.
[저자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기의 흐름이 무척 거칠고 괴이하구나.]‘폭혈마공을 썼어.’
백수룡은 설수련이 익힌 마공을 알아보았다.
폭혈마공.
짧은 시간 동안 막대한 공력을 얻는 대신, 그 대가로 평생 쌓아 온 내공과 수명의 상당 부분을 잃는 위험한 마공. 혈교에서도 거의 사장된 무공이었다.
“죽어라.”
낮게 뇌까린 설수련이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에서 쏟아진 강기가 세 줄기로 갈라져서 백수룡의 전신을 노렸다.
쩌저저저정!
창룡신검을 타고 손아귀에 전해지는 반동에 백수룡은 이를 악물었다. 일격 일격이 바위를 먼지로 만들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강해.’
유형화된 강기를 채찍처럼 다룬다. 처음에는 세 가닥이던 것이 여섯, 일곱, 여덟까지 늘어났다.
말 그대로 팔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백수룡은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끊임없이 공격을 쳐 냈다.
“아하하하! 정말 은예린의 제자가 맞느냐?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보이는구나.”
위에서 조롱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수룡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내 스승의 무공을 훔쳐 익힌 주제에 말이 많네.”
번쩍 고개를 치켜든 백수룡의 두 눈이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키이잉!
설수련의 공격에 잠시 빈틈이 생겼다.
그 즉시 백수룡은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다. 창룡신검이 순식간에 설수련의 목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순간, 굳은 줄 알았던 설수련의 입매가 그림 같은 호선을 그렸다.
“그 눈…… 매혹적이구나. 뽑아서 전리품으로 삼아야겠다.”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백수룡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비쳤다.
‘큰 효과가 없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역천신공의 위압감은 설수련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마공에 앞서 빙백신공을 깊이 익힌 데다가, 그녀의 무공 수위가 십존에 버금갈 만큼 뛰어난 탓이었다.
그럼에도 설수련의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네게서 풍기는 기운이 아주 불쾌하구나. 날 내려보는 듯해.”
설수련의 의지에 따라, 흩어져 있던 여덟 줄기의 강기가 하나로 뭉쳐 백수룡을 내리찍었다.
콰콰콰콰쾅!
바닥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거듭된 충격에 궁주전의 벽에 간 금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천장에서는 돌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아하하하!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다니는구나!”
설수련이 광소를 터트리며 사방으로 강기의 채찍을 휘둘렀다. 여덟 줄기의 강기가 수십, 수백의 궤적을 만들었다. 하나하나가 벼락처럼 빨랐다.
백수룡은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거나 피해 냈지만, 설수련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독마와 싸울 때보다 더 지독한 싸움이었다.
한 번의 실수, 찰나의 망설임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백수룡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일단은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창룡신검의 제안이었다.
한쪽 눈을 잃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설수련은 전보다 더 강력한 무위를 보였다.
[결코 오래 갈 힘이 아니다. 내버려 두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설수련은 본래도 십존에 버금가는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생을 통째로 불태우며 싸우고 있었다. 정면승부는 미련한 짓이었다.
백수룡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냐?]창룡신검은 백수룡이 또 어떤 꾀를 내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라고 항상 계략을 준비해 두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정답일 때가 있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돼.”
츠츠츠츳…….
술법으로 물들인 백발이 역천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에서부터 붉게 물들었다. 백수룡이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우…….”
머리색이 변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도 있었지만, 백수룡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곳에 쓰이는 티끌만 한 심력조차 온전히 집중해야 했기에.
독마와 생사결을 펼친 이후로 처음으로, 백수룡은 역천신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몸 안에서 들끓는 파멸적인 힘이 느껴졌다. 전보다 더 강해진 듯했다.
[그 이상 역천의 힘을 끌어쓰면 네 육체에 부담이……!]“전에 한두 번은 무리해도 버틸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건 만약을 위한 보험이라고 하지 않았더냐!]“오늘이 그 만약이야. 여기서 내가 물러나면 북해빙궁은 쑥대밭이 돼.”
스스슷……. 붉게 물들던 머리카락이 중간쯤에서 멈추었다.
백수룡의 왼손에는 빙백신공의 새하얀 기운이, 오른손의 창룡신검에는 역천신공의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아까부터 무어라 혼잣말을 지껄이는 게냐!”
설수련이 깔깔 웃으며 강기의 채찍을 내리쳤다. 백수룡은 아래로 늘어뜨렸던 검을 무심히 치켜올렸다.
콰드드득!
여덟 줄기의 강기가 모조리 짓이겨졌다. 부릅뜬 설수련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본능적인 판단으로 뒤로 크게 물러났다.
‘말도 안 되는!’
설수련은 급히 공력을 끌어모아 다시 강기를 만들어 냈다. 잿빛 강기로 이루어진 채찍들이 여덟 마리의 뱀처럼 그녀를 호위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목소리. 설수련이 몸을 회전시키며 강기를 쏟아냈다. 여덟 마리의 뱀이 동시에 이빨을 드러냈다.
서걱!
일격에 절반이 넘는 뱀이 머리를 잃었다. 단숨에 방어를 뚫고 들어온 백수룡의 왼손이 설수련의 오른손을 노렸다. 금나수였다.
“저리 꺼지지 못하겠느냐!”
설수련은 손가락을 구부려 조법의 형태로 펼쳤다. 그녀의 손톱에 잿빛 강기가 길게 자라났다.
맨손박투는 설수련이 가장 좋아하는 싸움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장기보다 권장법을 즐겼다.
파바바바박!
그러나 백수룡과 손을 섞을수록, 설수련은 자신의 투로가 뻔히 읽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내 투로를…….”
“훔쳐 배운 신월빙백무 말이지?”
설수련은 빙월신녀가 남긴 신월빙백무를 훔쳐 배웠다.
그러나, 그 무공을 빙월신녀와 함께 만들다시피 한 사람이 백수룡이었다.
공력만 대등하게 받쳐 준다면, 완벽하게 압도할 수 있었다.
콰직! 콰지직!
우선 설수련의 손가락을 모조리 부러뜨렸다.
우드득!
그다음은 손목을 부러뜨렸다. 설수련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왼팔을 아예 쓸 수 없도록, 뼈마디를 모조리 박살 냈다.
“아아아악!”
분노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왼팔을 잃은 설수련의 눈빛이 일순간 악독하게 빛났다. 백수룡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채고 물러섰다.
퍼어어어엉!
왼팔이 암기처럼 폭발하며 수십 조각의 뼈마디가 백수룡이 있던 공간을 휩쓸었다.
“……제대로 미쳤군. 자기 팔을 터트리다니.”
하지만 팔을 희생한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설수련은 그 틈에 경공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시선이 혼절해 있는 은휘령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곁에 떨어져 있는 북해빙궁의 신물들이 목표였다.
‘저것만 있으면!’
빙백신검과 빙백환.
자신보다 하수인 은휘령은 북해의 신물의 힘을 빌려 자신과 팽팽히 맞섰다.
‘내가 바로 진정한 북해의 주인이다. 내게 더 큰 힘을 빌려줄 것이야!’
설수련은 허공섭물로 빙백신검과 빙백환을 끌어당겼다.
허공으로 떠오른 신물들이 설수련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한번 해 볼까? 저 녀석들이 누굴 선택하는지.”
날아오던 빙백신검과 빙백환이 돌연 허공에서 멈췄다.
백수룡이 반대편에서 똑같이 허공섭물을 펼친 것이다.
부르르르……!
허공에서 몸을 떨던 신물들이 서서히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백수룡이 있는 방향이었다.
설수련의 표정이 점점 절망으로 물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당기는 힘이 더 강해서가 아니었다. 북해빙궁의 신물들은 스스로 백수룡을 선택했다. 신물들이 내뿜는 기운이 설수련의 기운을 밀어냈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백수룡의 전신에 신령스러운 흰빛이 흘렀다. 그의 왼손에는 빙백신검이, 양손의 손목에는 빙백환이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저벅, 저벅.
백수룡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설수련을 향해 걸어가며 사납게 웃었다.
“눈 하나, 팔 하나.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네.”